102. 역전재판
“왜요?”
동훈이 대뜸 묻는 말에 중봉이 되물었다.
“뭐가.”
“기대하지 않은 주식이 오른 표정인데요.”
“아니야.”
중봉은 슬쩍 거울을 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다시 본래대로 돌렸다.
다시 평소와 똑같은 무표정이었다.
“올라가셔야죠?”
“가야지.”
신입이 사고를 쳤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겁니까?”
동훈이 물었다.
“그런 거 없다.”
중봉은 평소처럼 말하고 걸었다. 다만, 그 걸음이 평소보다 조금 가볍게 느껴졌을 뿐.
한 이틀 푹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쉰 다음 걷는 기분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는 법이었다.
꽝 신입이 지껄인 말?
치기다.
어린 마음에 갖는 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친 신입 새끼.’
자신의 세상은 눈에 보이고 마음이 닿는 곳이라 했던가.
‘또라이 신입 새끼.’
그게 전부였다. 또라이를 봤고, 황당해서 웃음이 픽 새어 나온 게 전부다.
중봉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팀원을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회의에 참관했다.
2급 사원 유광익의 범죄 혐의에 관한 사내 재판이었다.
* * *
“초능국 왕자를 납치하고 일신을 위협한 행위.”
납치란다. 왕자를 살리기 위해 한 건데.
“경호원 살해.”
덤벼서 죽였지. 죽이고 싶어서 죽인 건 아니고.
찝찝하긴 하지만, 어쩌겠냐고.
그 새끼랑 강강술래 하고 있었으면 다른 경호원을 가장한 쌍놈의 암살자가 왕자를 잡았을 거 아니야.
난 그 싸움을 길게 끌 수 없었다.
“임무 수행 시, 보고 없이 주관적 판단으로 회사에 해를 끼친 행위.”
그 와중에 회사에 전화해서 ‘왕자가 뒈질 것 같다. 내 직감이 경고했다. 그러니까 일단 왕자를 구해야 한다.’라고 하면 뭐라고 했으려나.
미쳤다고 안 하면 다행이지.
“세 가지 혐의만으로도 중죄입니다.”
분석팀 차장, 조명태가 말했다.
아니, 일이 왜 이렇게 꼬여.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말을 좀 바꾸니 정말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그건 왕자님 납치가 아니라 보호를 위해서 그런 건데요.”
“누가 그걸 요청했지?”
“왕자님이요.”
알이 그랬지. 그랬었지.
“제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위해 증언 한마디 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
있습니다. 알 그 새끼요.
“경호원을 살해하고 왕자를 납치한 죄는 명백합니다.”
조 차장을 시작으로 이사 몇 명이 나섰다.
“그, 이런 경우, 저 친구를 굳이 회사에 남겨 둘 이유가 있습니까?”
김동철 이사다.
말을 조심하긴 하지만, 그 뜻은 명확하다.
날 내보내란 거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불멸특수대라고 해서 살인 면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임무 중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참작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수준이다.
어차피 죽고 죽이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거고, 그런 상황을 맞이해서 싸운 거니까.
조이를 죽인 것도 그와 같은 경우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불멸특수대가 아니라면?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불멸자라면?
일이 좀 꼬이는 기분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남명진 사장을 바라봤다.
다리를 꼬고 중앙에 앉은 채, 그저 일어나는 일만 바라볼 뿐이다.
사장님, 두 번째 아버지, 잃어버린 아들을 이렇게 내칠 생각은 아니시겠죠?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애초에 내가 사장 사람이어서 생긴 일이기도 하잖아.
사장이 준 임무를 수행하다가 그랬고.
그럼 책임을 져야지.
“왜 그랬지?”
다다다다- 죄다 내 잘못이라고 떠들던 조명태 차장이 물었다.
꼬인 실타래다. 이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왕자를 납치한 게 아니라는 것부터 풀어야 하는데.
증언해 줄 놈이 사라졌다.
“왕자님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조 차장은 내 말에 대꾸도 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상대 경호원 살해는 인정하나?”
“그건 왕자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습니다.”
“상대는 왕자를 지키기 위해 종사하는 사람인데, 왕자를 지키기 위해 그를 죽였다고 하는 건가?”
뭐라는 거야?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왕자님이 보호를 요청하셔서…….”
“왜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
말 끊는 거 하나는 세계 챔피언이구나.
“보고할 틈이 없었습니다. 당장 목숨이 위험한 대상이 제 곁에 있었고…….”
“강희모 대리에게 전화할 틈은 있고?”
했지, 그건 급하니까.
보고도 보고지만, 당장 쫓는 놈들이 누군지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거 아닌가.
수틀리면 왕자가 죽는 판이고.
그 왕자가 죽으면 나도 진짜 납치범이 되는 판이니까.
“그건 상대를 알아야 피해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기…….”
“그럼 그 이후는? 왜 연락하지 않았지?”
이 새끼 진짜, 한 번만 더 말 끊으면 재판이고 뭐고 구속복이고 뭐고 다 찢어발긴 다음 일단 때리고 본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사람 열 받게 하는 데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2급 사원 유광익은 왕자를 납치했고, 상대 경호원 무리를 따돌리며 주요 경호원 넷을 전투 불능으로 만든 후 한 명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증언이 가능한 왕자는 일이 끝나자마자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조명태 차장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으나, 그 말 사이에 끼어들 사람은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었고.
난 된통 당한 셈이었다.
외통수였다.
사장을 슬쩍 봤는데,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팀장도 마찬가지.
꼬인 실타래가 엉켰다. 풀 수 없다.
그리 생각한 순간이다.
퉁.
대회의실 문이 밀렸다. 문은 천천히 열렸고 밖에서 사람 몇 명이 들어왔다.
예민한 불멸자가 잔뜩 모인 곳이기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들어오는 사람의 기척을 읽을 수 있었다.
나 말고는 전부 눈으로도 확인했겠지만, 난 구속복 덕분에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기척만 읽었다.
걷는 소리, 공기의 파동, 숨소리 따위로 파악되는 사람은 총 넷.
코? 아니, 턱이 불편한지 숨소리가 일정하지 않은 성인 남성 하나.
건장한 성인 남성 하나.
적당한 체구의 남자 하나.
어린아이 하나.
“조금 늦었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전에는 불퉁스럽게만 들렸지만, 지금은 꽤 부드러워진 다니엘의 목소리였다.
“아니요. 제시간에 왔네요.”
사장이 일어났다.
“됐어. 앉아.”
그 뒤를 이은 알의 목소리도 들렸고.
“접근하지 마십시오. 이곳이 어디든 난 왕자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둔탁한 목소리도 들렸다.
뒤를 돌아보고 싶다.
“통역해.”
왕자는 한국말을 쓰지 않았다. 유려한 영국식 발음의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난 초능국의 마지막 왕자, 알 칼리드 볼리아나다.”
알이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섰다.
어, 음,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런 표정의 조 차장이 보였다.
싸늘한 침묵이 회의실 내부에 감돌았다.
그 침묵을 깬 건 알이었다.
“이 자의 죄를 묻겠다는 건가?”
통역관이 급히 알의 말을 번역해서 뱉어 냈다.
“……맞습니다.”
조명태 차장이 찔끔했는지 대답이 늦었다.
“무슨 죄목으로?”
“그는 왕자님을 납치해서 일신의 위해를 가했기에…….”
“개소리군.”
“네?”
왕자의 말에 통역가가 되물었다.
“그대로 전해라. 개. 소. 리.”
하하하하, 받아라, 여기 성격 나쁜 십 세를.
통역관이 땀을 흘리며 말했다.
“개소리.”
“……이외에도 경호원 살해와 보고 체계를 헝클어뜨린 죄목이 있습니다.”
조명태는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고 말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당황했지만, 할 말을 간신히 잇는 수준이다.
“조이? 조이를 말하는 건가? 다니엘!”
알이 외치자, 다니엘이 나섰다.
수려한 금발의 영국 경호원은 부서진 턱을 붕대로 칭칭 감싸고도 발음이 흐르지 않았다.
새삼 미안해지네, 턱 쪼개 놓은 거.
“조이는 왕국의 배신자이자 반역자로, 현재 수배범입니다.”
“……네?”
차장이 되물었다.
“수배범.”
통역관이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실 이 자리에 영어 한마디 못 알아듣는 사람은 드물다. 다만,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통역관을 대동한 거지.
“남은 건 화림의 보고 체계? 뭐 그런 건가? 불멸특수대 요원으로의 의무 같은 거?”
왕자는 말하고 눈으로 조명태 차장을 뚫어지게 보더니 읊조렸다.
“씹쌔.”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옆에 있다가 딱 한 글자만 뱉었다.
“끼.”
“통역.”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통역관이 얼굴에 흐르는 땀이 더 많아졌다.
난 그가 불쌍해 보였다.
“제가 대신해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왕자가 오만하게 턱 끝을 들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진짜 왕자님 말 통역만 하는 겁니다.”
조명태 차장을 보며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뱉고는,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씹새……끼.”
“끼는 네가 했잖아.”
뒤에서 팬더 대리가 중얼거렸다.
아니, 그걸 콕 집어서 말하면 어떻게 하나.
“아, 실수. 씹쌔.”
다시 한번 찰지게 말해 줬다.
“응. 맞다. 씹쌔.”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명태 차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이 새끼가…….”
흥분한 그가 나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걸 본 왕자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유는 이 몸의 유일한 친구이자, 초능국의 손님이다. 근데 뭐? 이 새끼? 야, 너 직급 뭐야?”
마지막은 반말이었다.
왕자는 왕자, 알은 알이다.
“차장입니다.”
“차장 나부랭이 따위가.”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고개를 팍 숙였다.
금세 표정 관리를 하고 고개를 드니, 조 차장이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어딜 봐? 눈 안 깔아?”
알이 나섰다.
“네.”
조 차장은 금세 꼬리 만 개가 됐다.
이쪽은 초능국의 왕자다.
어디서 일개 회사원 따위가.
“한국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말하러 왔는데, 이곳에는 그 일에 관여한 사람이 없길 바란다.”
왕자는 다시 영국식 영어를 구사했고, 통역관도 다시 나섰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요청한다. 날 지켜 준 유에게 어떠한 죄를 묻지 않기를. 비공식이 안 되면 공식적으로 해도 좋고.”
사장은 이걸 보더니 웃어 버렸다.
정말 파하하하 하고 웃었다.
왕자는 사장을 슬쩍 보고 나한테 물었다.
“남명진?”
“에, 알아요?”
“어떻게 몰라?”
뭐, 꽤 유명한 사람이긴 하지.
1세대 불멸자이자, 한 세대를 이끈 영웅이라니까.
왕자도 무시할 수 없는 위인이었나 보다. 우리 사장.
“좋습니다. 이번에 있었던 일을 무마해 준다니, 2급 사원 유광익에게 있었던 일은 전부 없던 거로 하죠.”
사장이 말했다.
그거로 끝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대한민국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고.
아니야, 틀렸어.
전 세계가 그래.
난 왕자가 친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상이 달라졌다.
분위기 반전에 이어, 이사진이 나서서 왕자와 인사하려고 하자, 알은 몸을 팩 돌리고 나에게 물었다.
“눈치만 봐도 알겠다. 쟤들이 너 노린 거지?”
실제로는 내가 아니라 사장님을 노린 거지만.
“네, 뭐.”
“재수 없는 씨입쌔들.”
“욕은 안 좋은 건데요.”
“너한테 한 거 아니잖아.”
나한테 안 해도 안 좋은 건데.
박다람 팀장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은근히 말했다.
“언제 초능국 왕자님을 꼬신 거야?”
“꼬시다니요.”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
“유를 잠깐 빌리겠어. 따라 나와. 유.”
나한테 이렇게 찰싹 달라붙을 줄은 몰랐지.
이 타이밍에 와서 구해 줄 줄도 몰랐고.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홀로 남은 조명태 차장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이사진 뒤를 쫓아가다가, 문이 쾅 닫히자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돌아서는 조 차장과 눈을 마주친 난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말했다.
‘힘내요.’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일희일비하지 말 것.
그게 바로 회사 생활의 기초가 아닌가.
“갑시다. 오늘 내가 쏜다.”
기분이 좋아서 한마디 했더니.
“유는 가난해. 내가 사 주지.”
왕자가 숨도 안 쉬고 답했다.
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