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조명태 차장은 상황을 수습하며 경이의 신입이라 불리는 유광익이 한 일을 확인했다.
‘이건 시발, 뭐 하는 새끼지?’
왕자의 납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다.
불멸자, 변신족, 초능 특수종 둘.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능력자였는데, 그 넷을 전부 따돌렸다.
변신족을 때려눕혔고.
불멸자도 부숴 놨으며.
초능 특수종 하나는 죽였다.
‘왕실 경호원이라며?’
거기에 이 넷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중대급 병력이 함께였다.
조 차장은 왕자가 떠나기 직전, 경호원인지 암살자인지 하는 놈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야 했다.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직후.
“미친.”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는 조 차장을 보며, 왕실의 초능 특수종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이 준비한 거 아니었소? 저 작자가 그 유명한 팬텀인가?”
‘팬텀’은 이중봉 팀장이 한창 활동할 때의 이명이었다.
“아니야.”
“사우전드 페이스는 아니겠지?”
되레 묻는 경호원 겸 암살자를 보고, 조 차장은 몸을 돌렸다.
명색이 분석팀 차장이다.
상대가 말하는 게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사우전드 페이스, 천 개의 얼굴 따위로 불리는 불멸자를 칭하는 별명이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정부가 숨긴 가장 날카로운 칼.
수없이 많은 얼굴로 갖가지 불가능한 임무를 해낸 요원을 칭하는 이름이다.
사우전드 페이스라니.
‘그럴 리가 있냐.’
유광익의 입사 이후 과정을 포함해 모든 걸 안다.
사장이 그를 찍은 것도 알고.
외부 보안 3팀으로 온 뒤에 터진 일도 다 안다.
진짜 그 천 개의 얼굴이라는 비밀 요원이 유광익이라면, 여기서 한가하게 회사원 코스프레 따위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럼 저 새끼는 뭔가.
사장이 직접 키워 낸 경력직 신입 사원?
아니, 그건 무슨 신박한 미친 짓인가.
사장이 키운 비밀 병기라면 굳이 신입의 명함을 들고 올 이유가 없다. 언더커버 보스도 아니고 왜 그러겠나.
경호원의 증언으로 확실해진 건 하나였다.
유광익은 혼자 왕실 경호 인력 전부를 상대했고, 이겼다.
‘어떤 미친 신입 사원이 이런 짓을 하지? 아니, 애초에 가능은 한 건가?’
가진 능력만 보자면 이중봉 팀장급이다.
상대가 팬텀, 사우전드 페이스라는 이름을 꺼낸 게 우연은 아니었다.
뒤를 따라온, 본래 경이의 신입이라 불려야 했던 정기남을 슬쩍 바라봤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특유의 예민함으로 시선을 느낀 기남이 먼저 물었다.
“네 룸메이트지?”
“불행히도.”
몇 년 묵은 쓰레기를 보는 표정이었다. 기남은 표정 변화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게 또 신기해 보이긴 했다.
“이게 혼자서 가능한 일이냐?”
“기회를 주시면 저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니…….”
조 차장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이 새끼도 정상은 아니지.’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먼저 아닌가?
왜 일 대 다수의 싸움을 자초하나.
“됐다.”
말해서 뭐 하나.
조 차장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칙- 붙이고,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
‘상황 처리는 뭐 이렇게 능숙한데?’
전투 흔적, 움직임, 판단력까지 전부 훌륭했다.
모든 걸 듣고 보고 생각한 조 차장은 연기를 내뿜으며 결론을 내렸다.
가진 능력이 남다른 이레귤러 혼혈이라고.
능숙한 상황 판단력과 행동력?
신입인데 경력 있는 신입이라고 치면 된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무척 궁금했지만, 그건 기밀이니까.
불멸특수대의 인적사항은 기밀 중의 기밀이다.
아무리 분석팀 차장이라 해도 알 수 없었다.
대신, 여전히 궁금한 게 하나 남았다.
“회귀자야, 2회차지.”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만든 목소리다.
“1회차 정기남 힘내, 유광익은 2회차니까 어쩔 수 없지.”
이동훈 대리였다.
저 새끼도 정상은 아니다.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기남이 그 말에 반응했다.
“그렇지, 그런 자세 좋다.”
이동훈이 기남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이동훈.”
“네, 대리 이동훈.”
“이리 와 봐.”
기왕 본 얼굴이니 불렀다. 이 자식은 알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도, 반응으로 숨겨진 뭔가가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고.
“내가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말씀하십쇼.”
이동훈은 싹싹하게 굴었다. 애초에 이런 캐릭터다. 오덕후에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긴 하지만, 타 팀에 일을 받아 가는 잡무 하이에나, 그게 이동훈이었다.
물론 그건 유광익이 오기 전까지다. 지금은 실적이 쌓여서 그럴 이유가 없었다.
외부 보안 3팀의 넷이서 이룬 일이 많았다.
“걔가 왜 이런 거야?”
“걔요?”
“또라이 신입 말이야. 왜 이런 거냐고. 솔직히 왕자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기왕 왕자를 빼돌렸으면 회사로 달려와서 나 몰라라 해도 됐잖아?”
조 차장은 시류를 탈 줄 알았기에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시류를 탈 줄 안다는 건 멍청하지 않다는 말과도 동의어였다.
자신이 말한 대로 됐다면 왕자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거라는 것도 안다.
광익이 왕자를 빼돌려 회사에 데려왔다면 그건 유광익 2급 사원의 실수로 치부되고, 적절한 징계 후 왕자는 다시 저들의 품으로 돌아갔을 거다.
그럼 왕자는 살았을까?
모른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다만, 시체가 될 확률이 높았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일개 사원이 나설 이유는 아니다.
이동훈은 눈깔을 몇 번 굴렸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기에, 조 차장도 그 얼굴에서 뭔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왕자를 구하는 데 왜 제 목숨하고 커리어를 거냐고.”
재차 묻자, 이동훈 대리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응?”
“저도 궁금하네요.”
“아니, 야, 이동훈이. 아는 거 없어?”
잡무 하이에나 따위로 불리지만, 다들 이동훈의 능력을 안다. 그는 컨트롤 타워, 앉은 자리에서 모니터 밖의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하는 천재다.
“사람 속이라는 건 알 수가 없지요.”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그러니까.’
왜 이런 일에 목숨을 거냐 이거다.
조 차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유광익에게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 무슨 짓을 했든 상관없지.’
유광익이 왜 그랬는지 뭐가 중요한가.
조 차장은 담뱃불을 발로 비벼 껐다.
유광익이 한 일을 듣고 생각하는 내내, 전신에 소름이 돋은 채였다.
오싹했다. 춥지도 않았는데 오한이 드는 기분, 조 차장은 위협을 느꼈다.
월등히 뛰어난 전투 능력, 상황 판단 능력, 실행력, 행동력.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할까?
기회가 왔을 때 싹을 잘라야 했다.
본래 잘난 놈 제치고, 못난 놈 보내고, 얌생이 같이 배신하는 놈을 다 없애야 제 몫이 느는 법이다.
그리고 이건 윗선에서 원한 일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넌 끝이다.’
조 차장은 그리 생각하며 손을 털고 움직였다.
이 일을 위해 움직인 사람만 해도 한둘이 아니었다. 유광익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 * *
난 구속복을 입었다.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너무 답답한 건 둘째치고, 디자인이 너무 흉하다.
몸을 칭칭 감는 끈은 전부 강화 섬유인 데다가, 제 손으로는 밥 한 숟갈도 못 뜨게 만들었다.
오른팔이 왼쪽 어깨를 쥐고, 왼팔이 오른 옆구리를 감싸게 만드는 묘한 자세를 강요하는 것도 싫었다.
거기에 칙칙한 회색으로 만드는 건 진짜 아니다.
검은색이었으면 간지라도 났지.
“이건 아니죠.”
“알아.”
내 말에 팀장이 답했다.
나도 감옥까지 가진 않았다. 그래도 회의실 한 곳에서 구속복을 입고 갇혔다.
밖에는 감사팀 직원 둘이 날 지켰다.
그리고 팀장이 면회를 왔고.
“디자이너를 바꿔 주시죠.”
“……뭐?”
이 말에는 팀장도 당황했다.
뭐야, 이게 먹히네.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우리 팀장님 센스 없는 것 봐라.
“이거 제 스타일이 아닌데요.”
혀로 구속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넌 머릿속에 있는 나사가 한 예순다섯 개쯤 빠졌냐? 시발, 또라이.”
“거, 사람 면전에 대고 또라이라뇨.”
“미친 새끼.”
“그만하시죠. 저도 누군가의 훌륭한 아들입니다.”
진짜다.
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다.
“말을 말자. 시발.”
“말을 안 하실 거면 여긴 왜 오셨습니까?”
“말장난 한마디만 더하면 양쪽 어금니를 뽑아 주마.”
“……말씀하십쇼.”
가끔 팀장은 너무 진지하게 말한다. 진짜 자기가 한 말을 지킬 것 같은 박력이다.
팀장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할 거야?”
“네?”
팀장이 턱을 괴고 날 빤히 바라봤다.
꽤 부담스러운 걸, 이런 시선.
“꽝.”
“네, 2급 사원 유광익.”
농담 한마디 더 하면 내 어금니를 잃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네가 다 구할 거냐고.”
무슨 질문이 이 모양이야.
“넌센스인가요?”
어머니, 이건 어머니 탓이에요.
어릴 때부터 위트로 단련된 내 혀는 참지 못하고 멋대로 말을 뱉었다.
“어금니 대, 이 새끼야.”
팀장이 성깔을 부렸다. 뭐, 다행히 말만 그랬다.
그래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난 질문에 답했다.
“네. 다 구할 겁니다.”
“니가 슈퍼맨이야?”
“아닌데요.”
“근데 세상 사람을 다 구해?”
팀장이 피식- 하며 날 비웃었다
이 양반 봐라. 표정 살아 있네.
진짜, 보는 순간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비웃음이다.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기남이한테 써먹어 봐야지.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왕자가 네 책임이었어?”
냉정하게 말하면 아닌가?
그래도 내 임무의 일부였는데.
“니가 아무리 꽝 대가리라도 알긴 알았을 거야. 임무 중 이상 상황 보고만 했으면 넌 바로 복귀였어. 그 뒤에 일이 터지건 말건, 회사에서 해결할 일이었지.”
꽝 대가리가 뭡니까, 꽝 대가리가.
거, 빡 대가리보다 기분이 나쁘네.
“근데 왜 그랬을까, 왕자를 구하면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라서?”
“뭐, 후환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건 좀 과하긴 하네요.”
구속복은 좀 과하지.
감옥에는 안 보냈지만, 회의실에 가두는 것도 그렇고.
감사팀 직원은 명확하게 경고도 했다.
탈출 시도를 한다면 제압할 거라고.
칼 들고 다리를 썰겠다는데 어쩌겠어. 알겠다고 하고 입을 다물었다.
“착한 사마리아인 콤플렉스 같은 거야?”
다른 사람이 볼 때 착해야 하는 강박?
나한테 그런 게 있나.
아니지, 문제가 다르다.
난 세상 모든 사람을 구할 거다. 힘닿는 대로 그리할 거다.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데 왜 하면 안 되지?
세상 전부라고 해서? 그게 정말 전 세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팀장님, 세상은 뭡니까?”
내가 물었다.
“뭐?”
팀장은 예전에 나에게 ‘사명감은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왜 이곳에 있냐고 물었다.
난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한마디에 숨겨진 의미 따위는 없었지만, 내포된 다른 뜻은 있다.
내 ‘세상’에 포함된 사람이 죽는 걸 두고 보지 않겠다는 거다.
“제 세상은 제 눈에 닿는 곳이고, 제 마음이 가는 곳이죠. 그러니까 내 세상에 있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팀장은 말없이 날 바라봤다.
그 눈빛이 왜 뜨겁다는 생각이 들까.
사실 팀장은 불멸자가 아니고 초능 특수종이라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나?
뭐, 나도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봤다.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하고 뜨거운 게 솟는 기분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게 잘못된 일이라고 할 것인가.
그래, 화림은 그랬다.
어스 블랙홀이 웨이브로 변할 때, 회사는 사수와 나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소수의 피해는 무시하라고, 근처에 있는 사람은 그대로 두라고 했었지.
하지만 싫었다. 그러기 너무 싫었다.
박병준 박사의 딸도 그렇다.
애가 실험체라서 죽어야 해?
왕자는? 겨우 십 세인 왕자한테 무슨 죄가 있는데? 아직 세상 더 살아도 되잖아.
“……유광익.”
팀장이 말하며 일어났다.
왜? 뭐? 갑자기 왜 이름을 똑바로 부르고 그러시나.
“순 제멋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시발.”
팀장은 그 말만 하고 감옥 겸 회의실에서 나갔다.
왜 저래, 진짜.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맞다. 마음 가는 대로 하겠다는 거다. 할 수 있고, 그럴 힘이 있으니까.
내 마음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도 있다.
“팀장님한테 뭐라고 한 거야?”
팀장에 이어, 사수가 들어오며 물었다.
“음, 별건 아닌데요.”
“그래. 그건 됐고. 아직 화났어?”
“네?”
화라뇨?
아, 맞다. 사수는 나에게 왕자의 소식을 전해 줬었다.
“화를 왜 냅니까. 제가.”
그저 결심할 뿐이죠. 왕자님, 아니 알을 향한 내 결심을 되새기자.
I will find you. And I will kill you.
알, 난 널 찾을 것이고 죽여 버릴 거다.
알 이 새끼야, 테이큰은 봤냐?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넌 꼭 찾는다.
“화났네.”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눈이 안 웃고 있어.”
“그래요?”
그건 몰랐네.
“갈 시간이야.”
사수가 말하며 날 일으켜 세워 줬다.
드디어.
사내 재판 시간이 도래했다.
염병할 알 새끼 때문에 단단히 꼬여 버렸지만, 그래도 사장이나 팀장이나 뭐라도 해 주겠지 뭐.
사실 내가 잘못한 건 없잖아?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