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00화 (100/488)

100. 왕자는 튀었다.

조이의 격투 능력은 꽤 대단했다. 어떻게 보면 에바보다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위협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좀 애매하지.

거리를 재고 자신의 무기를 십분 활용한다. 그게 끝이다.

난 조이의 주먹을 피하며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일어난 걸까?

딱히 고민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결과를 보면 원인을 아는 법이니까.

변신족 후각으로 위치 파악.

흥분한 척 속여서 끌어들이기.

근접전이라면 자신이 유리하다는 판단.

고로, 조이가 만든 건 작은 함정.

내가 에바를 속인 걸 역으로 쓴 거나 다름없다.

팀장이 보면 멍청한 놈이라고 열흘은 놀려 먹었겠는데.

정기남이 알았다면 뒤에서 엄청 쪼갰을 거고.

요한 형이 알았다면 회사 전 직원이 다 알았겠지.

여기에 아무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툭,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조이의 손끝을 보며 얼굴을 비틀어 피하고 옆으로 폴짝 뛰며 발길질도 피했다. 조이가 거듭 달려들었다.

난 끝까지 지켜보고 다 피했다.

이건 일도 아니지.

불멸자는 재생하는 육체를 지녔으며, 예민한 오감도 가졌다.

재생하는 육체와 예민한 오감은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게 한다. 그건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게 하는 힘이다.

그게 화력전이 됐든 근접전이 됐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불멸자가 된 내가 처음 배운 건, 변신족과 근접해서 싸우지 말라는 거였다.

그 이유가 뭐겠나.

순혈 변신족은 괴력과 미친 운동 능력, 운동 신경을 갖고 있다.

결국, 상대보다 빠르고 유연하며 강한 힘을 지닌다는 말이다.

어지간한 훈련으로는 변신족에게 거리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물론 조이는 잘 싸웠다.

어지간한 변신족이라면 금세 불 맛보고 깨갱거릴 정도였다.

“좀 맞아라!”

원투 훅, 어퍼의 콤비네이션이다. 그 와중에 로우킥도 섞은 걸 보면 진짜 꽤 잘 치는 편이란 말이지.

난 혼혈이지만, 변신족 과외 선생이 말했듯이 놀라운 하드웨어를 가졌다.

조이의 움직임을 다 파악할 필요도, 예측할 필요도 없다.

움직이는 걸 보고 피해도 충분했다.

속도의 차이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손과 발은 피하고 몸은 맞닿지 않게 움직인다. 털끝도 스치지 않았다.

열화 능력자는 불을 토할 수 없다.

닿아야 의미가 있다. 피하며 조이의 옆구리에 어퍼를 꽂으려 하자, 열기가 훅 느껴졌다.

진짜 컨트롤 능력 하나는 끝내주네. 옆구리에 열기를 집중한 거다. 이대로 치면 갈비뼈 몇 개는 바삭-이겠지만, 내 주먹도 바짝 익겠지.

꼭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난 뻗던 주먹을 거두고 그사이 가슴팍을 노린 조이의 손날을 피했다.

저 손날은 달군 인두와 같았다. 맞으면 그대로 살을 터트려 버릴 거다.

“쥐새끼.”

조이가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진짜 화가 난 것 같긴 한데.

이거 또 미안하네.

그래, 열화 능력자라 내가 때리는 순간 내 주먹이나 발을 지지겠다는 건데.

그럼 손과 발을 안 내밀면 되는 거라.

핑.

발끝으로 땅을 찍어, 흙을 조이의 얼굴로 찼다.

그와 동시에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면서 허리를 푹 숙이고 손이 닿을 거리에 들어왔다.

조이가 흙무더기를 피한 순간, 그와 나는 팔이 닿는 거리에 있었다. 날 본 조이는 위에서 밑으로 손을 내리치고 무릎을 올려 찼다.

손은 고개를 옆으로 꺾어 피하고 무릎은 몸을 비틀어 타격 범위를 벗어났다.

그와 들고 있던 슬러그 나이프를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이 무기는 단발성이고 근접 거리에서밖에 못 쓰지만, 일단 맞으면 어지간한 방탄복은 무용지물이다.

꽝!

폭음이 터지고, 터진 산탄이 조이의 턱과 가슴팍 중간을 헤집었다.

음.

이건 예상 못 했네.

아니, 자식이 방탄복 좀 목 끝까지 입지.

무슨 옷을 입다 말았어.

탄이 턱을 뚫었다. 산탄 범위가 거기까지 닿았다는 거다. 탄의 일부가 놈의 목구멍에도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꺽!”

조이가 양손으로 목을 감쌌다.

치이익.

손이 붉게 빛나며 목을 지졌다. 불로 지져 상처를 감싸기라도 할 요량일까?

그건 실패였다.

조이의 눈이 급격히 빛을 잃는다. 기분이 참 더럽네.

첫 살인이었다.

“씹.”

나도 모르게 왕자의 입버릇을 뱉을 뻔한 걸 꿀꺽 삼켰다.

살인은 기분 나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람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불멸자는 제 몸을 찌르고 베고 깎으며 훈련하는 족속이다.

그들은 고통에 둔감해지며 잔인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불멸자란 족속이 그렇다니까?

나도 그런 불멸자고.

기분이 더럽다고 해서 할 일을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진 않았다는 소리다.

“어지간하면 덤비지 마라. 나 지금 손에 자비가 없는 것 같다.”

말하고 나니, 조금 부끄러운 대사 같다.

팀장이 들었다면 ‘왼손에 흑염룡도 감았다고 하지 그러냐?’라고 비아냥거리지 않았을까?

팬더 대리는 좋아했을 것 같고.

사수는 뭐, 관심 없었겠지.

급격히 그 셋과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긴 하네.

조이는 무릎을 꿇은 채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걸 보자니, 정말 기분이 더러웠지만, 멍청하게 그걸 얼굴에 드러내진 않았다.

그저 무표정이면 충분했다.

조이의 뒤에서 달려들려던 경호원 몇이 걸음을 멈췄다.

혼혈 몇 명. 그 뒤에 다니엘 하나.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덤비지 마.”

바닥에 떨어진 피가 흙에 스며든다. 그걸 본 맨 앞에 선 변신족의 눈깔이 세로로 쪼개졌다가 인간의 그것으로 돌아왔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변신족 친구가 침을 삼켰다.

술래가 겁을 먹었다.

고로, 이 놀이는 끝이었다.

“이거 정말 놀라운데.”

다니엘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털었다.

지금 기분이 몹시 불쾌해서 딱히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덤비지 말라니까. 나서지도 마. 그냥 가만히 있어.”

그를 위해 조언했다.

“오해하지 마라. 난 왕자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소리하지 말라니까.”

난 경고했는데 저 자식이 무시했다. 결코, 다니엘이 나흘 내내 날 무시하고 열 받게 해서 그런 게 아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다니엘이 반응하기도 전에 놈의 명치에 한 방 먹이고, 좌우 훅을 날려 턱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우득.

어, 힘 조절 실패했네.

턱뼈가 조금 깨진 듯했다. 다니엘의 눈이 풀리고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더 할 거 아니면 다들 무기 내려놓고 손 좀 들어줄래?”

쓰러진 다니엘을 두고 말하자.

전부 무기를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기왕이면 무릎도 꿇고.”

바닥에 자갈도 있는 경사로에서 다들 용케도 무릎을 꿇었다.

“후, 고마워.”

진심을 담아 말했다. 누구 하나 덤볐으면 반병신을 만들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다니엘이 쓰러지자 주변을 감싸는 이질감이 사라진다. 공간 격리 능력을 해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그 능력의 주체를 때려눕히면 된다.

이질감이 사라짐과 동시에 십수 명의 기척이 느껴지고, 하나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곧 시발 팀장과 사수를 포함, 강희모 대리와 아는 얼굴이 잔뜩 나타났다.

“유광익.”

저 작자가 누구더라.

그래, 외부 보안 1팀 차장이다.

“왕자님은 이미 죽였나?”

그가 물었다.

설마, 죽였겠나.

“초능국 왕자 납치 및 살해, 국가 위기를 초래한 행위 및 해사(害社) 행위에 대한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팀장님?”

“나 보지 마. 나도 월급쟁이야. 자식아.”

근데 왜 실실 웃으며 말하는데.

“반항하면 어쩔 수 없이 힘으로 제압할 것이다. 물론 이중봉 팀장님도 도울 거고.”

차장이 말했다. 잘생겼는데 이상하게 얄밉게 생긴 쥐상이었다.

사수를 슬쩍 봤다.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튀어야 하나? 아니, 왕자가 증언하면 끝날 문제인데.

“알은, 왕자님은 잘 살아 있는데요?”

일단 손을 들고 말하자.

“어디서 수작질인가.”

이 차장님은 속고만 사셨나?

“맞지?”

난 제압한 이들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려 물었다.

“맞습니다.”

눈치를 보던 변신족 경호원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니엘을 때려눕히는 게 아니었는데.

그 친구 아까 왕자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지, 나 그거 차마 못 듣고 두들겨 팬 거지.

나중에 물어보면 그렇게 답할 작정이었는데.

못 들어서 일단 때려눕히고 봤다고.

“덤비지 마라. 꽝 자식아.”

팀장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말했다.

앞에는 팀장, 그 뒤에는 사수.

둘 다 날 빠져나가게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어. 여기서 튀면 문제가 더 복잡해져.

사수가 수신호와 입 모양을 섞어 말했다.

뭐, 오해는 금방 풀리겠지.

감봉이나 몇 달 받고 끝나지 않을까.

난 양손을 들었다.

“네, 잡아가십쇼. 왕자님은 저 위에 계시니까요.”

빡.

다가온 차장이 권총 뒤편으로 내 뒤통수를 후렸다.

“질긴 놈.”

설마 이거 기절하라고 때린 건가?

시발, 그냥 아프기만 한데?

뜨끈한 액체가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게 느껴졌다.

“얌전히 갈 거고, 내가 책임진다. 건들지 마.”

그걸 본 팀장이 읊조렸다. 평이하지만, 싸늘한 말투였다.

“……책임지셔야 합니다.”

차장이 말하고 몇 걸음 물러났다. 이 새끼 바지에 오줌은 안 지렸나 모르겠네.

평소에도 상사 똥구멍이나 핥는 새끼가 왜 여기 나서서 지랄인지.

불멸특수대라고 다 잘난 놈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새끼를 포함한 몇 놈 때문에 알았다.

“왕자님의 안전을 확보한다.”

차장이 말했고 사태는 빠르게 수습됐다.

몇 명 요원 몇이 날 힐끔거리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이걸 혼자서 한 거야?”

“쟤가 걔야.”

“동대문의 구원자?”

“난놈이네.”

“요즘 이 팀 저 팀에서 저 친구 빼 달라고 난리잖아.”

음, 내 소문이 그렇게 널리 퍼졌나.

뭐, 한 일이 있으니까.

어쨌든 이 일은 이거로 마무리되겠지?

내 눈에 쓰러진 조이의 시신이 보였다. 찝찝하지만, 특수종의 세상에서 살기로 한 몸이다. 이런 일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 * *

알 칼리드 볼리아나는 불멸특수대원의 안내를 받고 내려갔다.

그곳에 유광익은 보이지 않고 제압된 자신의 경호원 무리만 보였다.

‘산다.’

살면 좋은 일이 있을까.

모르겠다.

“할 수 있으니까요.”

유광익은 그렇게 말했다.

‘유광익.’

어느새 그 이름 세 글자가 왕자의 머릿속에 박혔다.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리한다.

그럼 살 수 있으면 사는 게 맞지 않나.

“재밌네.”

알은 아이돌이 되고 싶었다. 그건 도피였다.

죽으려 했다. 그 또한 도피였다.

그럼 피하지 않으면 어찌 될까.

모른다. 앞날은 누구도 모르니.

예언가는 예언을 말한 순간, 미래는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언은 입 밖에 내는 순간, 또는 그걸 토대로 행동하는 순간 예언이 아니게 되는 법이다.

미래는 가변적이니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알은 그 답을 알았다. 알면서 안 했을 뿐이다.

제 권리를 찾으면 될 일이다.

도피하고 회피하는 멍청한 꼬맹이가 아니라.

피를 나눈 이들과 싸우며 제 몫을 쟁취하면 된다. 알에게 산다는 건 그런 거였고.

알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 수 있었다.

꿈틀.

광익이 건네준 작은 불꽃이 알의 심장에서 타올랐다.

왕국으로 돌아간다. 제 권리를 찾는다. 두 가지 명제를 머리에 박았다.

알은 천재였다. 고작 열 살의 나이에 정치적 입지와 주변 정세를 읽고 외국어를 능숙하게 익히는 그런 천재.

왕자는 자기가 할 일을 알았다.

일단 제 몸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필요했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이대로 죄를 시인하고 죽을 테냐, 아니면 날 위해 목숨을 걸 테냐?”

알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경호원 무리에게 물었다.

“살려 주십시오.”

누구나 제 목숨은 중요하지.

알은 그런 생각을 하며 코트 깃을 여몄다.

친구가 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유는?”

지나가는 요원에게 물었다.

“본대로 송환입니다.”

표정 없는 여자가 말했다.

“왜?”

여자는 광익이 받은 혐의를 읊었고 알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본국으로 귀환한다.”

알, 아니 왕자는 말했다.

경호원 무리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너희는 날 위해 싸웠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할 것이다.”

알은 자신이 할 일을 알았고 되새겼으며, 행동으로 옮겼다.

지금 할 일은 고작 증언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그럴 이유가 있을 터.

다른 형제자매보다 자신을 먼저 죽이려 했다면 그 이유도 있을 터.

외면했던 자신의 위치를 직시한 어린 천재가 몸을 돌렸다.

친구가 선물해 준 코트가 여전히 그의 어깨를 감쌌다.

경호원 하나가 와서 다니엘이 사실은 왕자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시인했다.

“끄윽.”

때마침 턱이 쪼개진 다니엘이 통증을 호소하며 일어났다.

“누구의 명이었나?”

왕자가 물었고, 다니엘은 답했다.

왕자는 그 길로 전용기를 타고 귀환했다.

* * *

“네?”

전신을 구속복으로 몸을 감싸니, 갑갑했다.

그래도 뭐, 왕자가 증언하면 끝날 일이니까, 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어딜 가요?”

“그날 밤에 바로 돌아갔어.”

팬더 대리가 말했다.

아니, 이 미친 왕자 새끼가?

증언해 줄 놈이 살았다고 그대로 내뺐다.

“어, 음, 그럼 저는요?”

“사내 재판.”

아니, 염병할 증언은 해 주고 가야지, 이 미친 왕자 새끼야.

속으로 열불을 토한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었다. 왕자는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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