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범국가적 왕따의 친구
이중봉은 자신의 출입을 막는 무형의 막을 느끼고 멈췄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막의 형태를 그려 냈다.
‘돔 형태.’
무형의 막, 연락이 닿지 않는 신입 새끼, 쫓는 쪽에 있는 초능 특수종.
‘공간 격리.’
그것도 대규모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능력자다.
본래라면 왕자의 일신에 위해가 가해지면 그를 보호하기 위한 능력이, 지금은 반대로 왕자를 잡기 위한 감옥이 됐다.
“잘 도망갈 줄 알았는데 이건 의외군요.”
강희모 대리는 광익과 일을 해 봤다. 중봉은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꽝 신입이라면 왕자라는 짐을 안고도 잘 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는 거다.
이중봉도 이제까지 본 꽝 새끼가 이리 쉽게 잡힐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물며 강희모가 상대 능력에 관한 정보도 전해 줬다.
그 정보의 실제 출처는 이동훈이었지만, 그거야 꽝 신입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고.
고로 공간 격리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
“뚫을까요?”
김정아가 물었다.
“아니.”
미친 신입 새끼.
꽝 새끼가 피하지 않고 갇혔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다.
중봉은 속으로 웃은 뒤, 말했다.
“대기한다.”
공간 격리, 이건 일순간 이 일대 공간을 막아 버리는 초능이다.
깨려면 손이 많이 간다. 이 정도 규모라면 제한 시간이 짧을 터.
굳이 뚫을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지금 뚫고 들어가면 문제도 복잡해질 테고.
“당장 유광익 사원을 제압해야 합니다. 기다릴 이유가 있습니까?”
분석팀 과장이다.
화림은 스탠스를 정했다.
왕자의 신병 확보와 미친 짓을 한 유광익을 제압한 후 화림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이거 깰 수는 있고?”
“네?”
“너 격리 능력자 만난 적 없지?”
없었다.
“모르면 닥치고 있어. 이거 뚫으면 안에서 반응한다. 강제로 뚫고 들어갔는데 납치범이 위협을 느끼고 왕자를 죽이면? 네가 책임질래?”
회사원은 ‘책임’이란 단어에 민감한 법이다.
“…….”
“이번 일은 그냥 못 넘어갑니다. 아시죠? 감싸 줄 수 없습니다.”
외부 보안 1팀의 차장이다.
외부 보안 3팀 팀장이 왔으니, 구색을 갖추기 위해 보낸 작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장이 편애하는 광익의 흠을 잡으러 온 거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지금 내 판단은 격리 능력자의 힘이 다한 후 진입이다, 이거야.”
중봉은 코를 팠다. 그걸 본 차장은 눈을 돌렸다.
어차피 말이 통할 작자는 아니었다.
무려 왕자 납치 사건이다. 이 일이 끝나고 왕자가 살든 죽든, 광익은 최소 수감이리라.
그리고 이건 사장에게 보내는 경고장이 될 수 있을 터.
이전에 불멸교도의 일로 한 방 먹은 걸 되돌려 줄 기회였다.
전무님이 그걸 원하니, 차장은 그리할 작정이었다.
여기서 이중봉 팀장이 신입을 빼돌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사장이 잘도 구경만 하겠다.’
왕자 납치 건이야 일이 크긴 한데, 왕자가 살기만 하면 증인으로 나서 줄 것이다.
이건 진짜 납치가 아니니까.
그러므로 감옥에 끌려갈 일은 아니다.
중봉은 차장 놈을 무시하는 대신 유광익 놈이 하는 짓을 떠올렸고, 속으로 낄낄 웃었다.
‘틀을 바꿀 수 없다면 깨 버려라.’
자신이 가르친 그 한마디를 그대로 실행한다. 하지만 절대로, 눈앞의 놈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기에.
‘기특한 새끼.’
팀장은 속으로만 말했다.
* * *
조이는 자신의 능력을 잘 안다. 그걸 활용하는 법도 잘 알고.
흔히 다른 이들이 열화 계열 초능 특수종을 바라보는 시각도 알았다.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 타입.’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자신을 그리 보곤 했다.
조이는 평소에 웃음을 달고 살았고, 일이 터지면 화내는 척을 했다.
그럼 상대가 너무도 쉽게 속으니까.
그 속은 상대를 요리하는 건 더 쉽고.
“으아아, 이 빌어먹을 놈!”
조이는 나무를 쥐며 열기를 터트렸다. 통나무 중간쯤부터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과도한 열기는 나무 옆을 갉아 먹으며 태웠고, 옆구리가 찢어진 나무가 꾸드득 소리를 내면서 옆으로 기울었다.
쿵!
쓰러진 나무를 보고 조이는 괴성을 질렀다.
반드시 죽인다고도 외쳤다.
나무를 연신 발로 걷어찼다. 그런 뒤에야 외쳤다.
“왕자 위치!”
“전방 150m입니다!”
“내가 먼저 간다!”
조이가 선두로 달렸다.
흥분한 모습을 연기하며 대열에서 앞으로 삐죽 나갔다.
이만큼 탐스러운 먹이가 어디 있을까.
‘와라.’
오는 순간 바로 끝낸다. 조이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냥 무작정 나선 건 아니다. 대비도 했다.
상대는 불멸자의 특기를 이용했다.
소위 말하는 ‘기척을 흘려 속이는’ 기예다. 조이는 불멸자를 상대한 경험이 많기에 맹점을 알았다.
이런 숲속에서 자신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는 거다.
조이의 바로 뒤쪽에는 변신족 부하 하나가 있었다.
변신족의 뛰어난 후각은 상대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는 사이.
달리던 조이는 사방에서 조여드는 기척을 느꼈고.
“우측.”
변신족 부하가 한쪽을 특정했다.
* * *
“이놈, 날 보호해라.”
다시 만난 왕자는 반쯤 미친 것 같았다.
“지금 하고 있는데요.”
“다시는, 다시는 날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의연해 보이기에 놔두고 갔더니 눈물 자국도 있는 것 같고, 코트에 코도 풀었다.
“울었어요?”
“감히, 내가 울 것 같으냐?”
응, 울었는데 뭐.
모른 척해 주며 뒤쪽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며 뛰니 상대가 바짝 쫓지 않았다.
무슨 생각일까나.
에바랑 로버트가 시즌 아웃돼서 고민이 많아졌을까?
그걸 노린 거기도 했다.
“어서 답해라. 날 혼자 두지 않겠다고.”
“네네.”
대충 답하자, 왕자가 눈을 부라렸다.
“진심을 담아서 말해. 이 씨입…….”
“욕은 나쁜 건데.”
생각지도 못했는데, 왕자가 나한테 꽤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툭 던져 봤는데.
“씨입 씨입, 숨 쉰 거야.”
풉 하고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참았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욕은 안 좋은 거예요.”
우리 어머니 앞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왕자고 뭐고 간에 거꾸로 매달아 버릴 겁니다.
아버지도 만만치 않게 이런 면에서는 무서운 분이니, 잔소리 폭탄이 떨어지겠지.
“근데 쟤들은 왜 저래요?”
초능국, 공식 명칭은 에르자루드. 위치는 태평양과 말레이시아에 인접한 곳으로 과거 테러블 이어 이후 초능력 혈통을 앞세워 왕국이 된 나라.
그런 나라의 왕자를 작정하고 죽이는 경호원이라…….
이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
“얘기하자면 길어.”
왕자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뭘 또.
“한국에는 왜 왔는데요?”
애초에 이게 작전 목적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뭐 크게 중요한 건 아니지.
“죽으러.”
“죽고 싶어요?”
그냥 들으면 이상하겠지만, 내 어투는 진짜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죽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궁금증을 담아 물은 거다.
“아니.”
왕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썰 좀 풀어 봐요. 도망가면서 라디오 듣는 기분으로 듣게.”
“씹새.”
이 말에는 왕자도 참지 못하고 욕을 뱉었다.
탁탁, 달리며 나무 사이를 통과.
왕자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가지를 손날로 쳐 냈다.
나뭇가지 몇 개가 눈앞에서 부러져 튕겨 나갔다.
소리를 숨길 생각도, 내가 지나간 흔적을 숨길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왕자 몸에 박힌 추적기 때문에 숨지도 못하는 거, 속도나 올려야지.
왕자도 적응됐는지, 아까처럼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귀로는 왕자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작전을 구상했다.
판을 바꿀 수 없다면 부숴라.
팀장에게 배운 거다.
난 배운 대로 했다.
술래잡기에서는 도망이 정답이지만, 술래를 때려눕히는 게 오답은 아니잖아?
일단은 왕자의 안전이 우선이다.
상대는 다수니까 함부로 정면 대결을 할 수는 없다.
실수로 왕자를 잃으면 지는 싸움이니까.
나 하나 사는 건 일도 아니다. 이건 왕자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렇게 된 거다.”
왕자는 말재주가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딱히 지루하진 않았다.
내용이 워낙 막장이어야지.
“피를 나눈 형제애 따위는 없네요.”
“그런 걸 바랄 수는 없지. 왕께서는 후계를 그리 정하지 않으시니.”
어색한 단어의 연속이다.
하긴. 왕국이 있고, 후계를 정할 때 암투가 오가는 나라라잖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는 거리감이 있다.
초능국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혈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이트홀 너머에서 채취하는 자원 일부를 독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의 땅에서만 연결되는 아더 사이드가 있었고 자원 채취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니까.
덕분에 왕국이 유지되고 떵떵거리며 사는 거지.
그나저나, 이 십 세…… 얄밉고 짜증 나는 구석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더럽게 불쌍하잖아.
범국가적 왕따를 당한 아이다.
난 예전부터 일진이나 왕따 따위가 참 싫었단 말이지.
왕자를 보며 생각을 이어 가는 중에, 왕자가 날 빤히 보며 입을 열었다.
“돈을 원하느냐? 날 위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냐?”
쭈뼛대며 말하는 게 귀여워 보였다.
“솔직히요?”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으니까요.”
“……음, 뭐?”
“방금 들은 그대로요. 할 수 있으니까.”
“후환은?”
십 세가 쓰는 단어가 고급지다. 이걸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 새끼, 욕도 알고 쓰는 거다. 얄미운 꼬맹이 같으니라고.
“후환이요?”
이래 봬도 제가 불멸특수대 소속에 제 위로는 미치광이 팀장과 그 위로는 취미 고약한 사장이 있습죠.
뭐, 왕자가 살면 증인이 되기도 할 테고.
적절한 증언만 있다면 이것도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지 않나?
고로, 왕자만 살리면 되고. 난 자신 있었다.
“미쳤군.”
“그런 소리는 자주 듣죠.”
“할 수 있으니 한다니.”
“그러니 살 수 있으면 사시죠. 죽는다고 땡깡부리지 말고.”
“무엄하다. 땡깡이라니.”
이 새끼 한국 사극도 꽤 본 것 같은데.
무엄이라니, 이런 단어를 누가 생활 회화에서 배우냐고.
“그럼 투정.”
“그 또한 무엄하지.”
왕자는 그리 말하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뭔가 결심한, 나쁘지 않은 눈빛이다.
“처음부터 넷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왕자가 물었다.
동시에 넷을?
“그럼 조금 힘들긴 했겠죠.”
“그런데 뭐가 할 만하다는 거냐?”
궁금한 것도 많네.
“지금 상황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주하면 쫓을 것이고, 그사이 방심한 넷 중 하나둘만 눕히면 된다.
그럼 술래잡기를 해도 굳이 도망갈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난 이 일을 단순하게 생각했다. 왕자를 저들 손에 닿지 않게 하고, 내 손이 닿을 때마다 때려눕히자고.
그럼 되잖아? 이게 어렵나? 쉬운데.
“넌 똑똑한지 미친 건지 잘 모르겠다.”
“둘 다라고 해 두시죠.”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가 중요하지.
“죽인다아아!”
뒤를 힐끗 보니, 조이가 보였다.
잔뜩 흥분했구나. 친구.
“엿차.”
난 왕자를 안아 들고 다시 위로 뛰었다. 대충 지형을 가늠해 봤을 때, 여길 넘으며 총탄 피격 범위 밖이 된다. 경사를 넘어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형이다.
고로, 이 꼭대기에는 작은 분지가 있다. 곡사포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피격 범위 밖이란 소리다.
그 위에 왕자를 앉힌 뒤, 몸을 돌리자.
“살면, 그러니까 살다 보면 즐거운 일이 있을까?”
뒤에서 왕자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을 하시네.”
에라이. 기분이다.
이 범국가적 왕따에게 난 선물을 주기로 했다.
“알, 오늘부터 친구 하죠. 본래라면 형 동생인데 외국 사람이니까 봐줬다.”
“……천민 따위가. 사실 슬레이브 걸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살 이유가 있지.”
고 새끼, 주둥이 놀리는 거 보소.
“팝콘이라도 있으면 씹으라고 하겠는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구경해요.”
코트 주머니에서 마이쭈를 꺼내 줬다.
편의점에 갔을 때 사 둔 건데, 입이 심심할 때 하나씩 먹으면 아주 괜찮다. 물론 그만큼 치아가 썩을 확률이 늘지만,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쓰면 군것질 못 하지.
툭툭, 땅을 차며 밑으로 내려가니, 뒤에서 다시 왕자가 말했다. 말도 많네.
“날 혼자 두고 죽지 마라.”
“걱정하지 말아요. 알.”
내려가며 어둠 속에 몸을 숨긴다. 동시에 기척을 숨기고 속이고 흩날린다.
속도를 붙이며 내달리자, 금세 조이가 보였다. 라이트 빛이 흐르며 그의 빨개진 얼굴이 보였다.
우리 조이, 화 많이 났구나.
흥분해서 달려든 적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이의 오른쪽에서 소리를 죽이고 달려들었다.
단숨에 다리를 걸고 팔 하나쯤은 자를 셈으로 나이프에 손을 대는데.
“잡았다.”
조이가 돌며 중얼거렸다.
어라?
기다렸다는 듯, 빨갛게 물든 손을 조이가 휘둘렀다.
저건 보이는 것 이상의 흉기다.
손 주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스쳐도 최소 3도 화상은 입을 거다.
표피와 진피를 넘어 내 몸의 지방을 태울 고열의 손바닥이다.
“얍.”
난 기합과 함께 왼발로 땅을 찍고, 정면으로 달리던 몸을 옆으로 꺾었다.
조이의 손가락이 소매를 스쳤다.
파삭.
스친 소매가 타서 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살벌하네.
손가락을 세워 허공을 그은 조이는 날 향해 몸을 돌리며 이전의 그 미소를 입에 물었다.
“다들 초능 특수종은 근접전에 약하다는 편견이 있더라고, 불꽃을 다루면 쉽게 흥분한다는 선입견도 있고.”
“어, 그건 그렇네.”
하나 배웠다.
“불멸자는 화상에 약하지.”
조이가 말했다. 저것도 맞는 말이다. 피부를 지져 버리는 능력은 재생을 더디게 한다. 차라리 잘라서 새로 만드는 게 빠르지.
하지만 일반 불멸자가 사지 절단을 그리 쉽게 할 수 있을 리 없지.
허벅지라도 스치면 끝이니.
“덤벼 보시지? 불멸자?”
조이가 말하기에 난 손에 쥔 나이프를 손에서 돌리며 생각했다.
이거 되게 미안하네.
“미리 말할게. 미안해. 조이.”
속은 건 속은 건데, 내가 그냥 불멸자는 아니라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