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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98화 (98/488)

98. 미끼 풀어 술래잡기

미친 듯이 뛰다 보니, 교통량이 부쩍 줄고 비포장도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더라.

도심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으니까.

대모산?

그쯤이겠지.

가로등이 줄고 달빛 너머로 삐죽 솟은 산이 보였다.

“우웨엑.”

왕자가 바로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속에 있는 걸 게워 냈다.

“지랄맞아.”

허리를 숙인 채로 말하는데 왕자의 입술에 묻은 침이 걸쭉하게 이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아야 합니다.”

왕자는 대답 대신 입술을 훔쳤다.

질질 짜거나 징징거리는 대신에 토악질이라면 괜찮다. 사실 많이 괜찮지.

“여기가 더 불리하지 않겠어?”

왕자가 물었다.

천재라 이런 건가, 아니면 이런 일이 익숙한 건가.

애가 참, 애 같지가 않다.

팬더 대리였으면 ‘혹시 너 회귀자니?’라고 묻지 않았을까?

고작 열 살, 그런데도 상황 판단을 한다.

음음, 진짜 나쁘지 않다.

난 반쯤 잘린 팔을 슬러그 나이프를 꺼내 자르고 품에서 긴급 수혈팩을 꺼내 어깨에 꽂았다.

혈관을 따라 쭉쭉 피가 돈다. 손실된 신체는 수복할 수 있다. 하지만 잃어버린 피는 어쩔 수가 없다.

불멸자는 실혈이 더 위험하니까.

수혈팩을 꽂으면 몸 안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불쾌한 감각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잠깐 숨을 돌리며 머리를 굴리는데, 왕자가 날 빤히 바라봤다.

뭘 보나, 십 세야.

“잘 생겼죠?”

“미친 거야?”

“그래 보입니까?”

“그래 보여.”

뒤에 멍청이, 머저리 또는 다른 욕설이나 못 알아듣는 언어가 안 붙었다.

없으니 영 허전하네.

“왜 그러는 거야?”

왕자가 물었다.

나는 지금 막 허벅지에 박힌 총알을 칼날 끝으로 후벼 파는 중이었다.

씁, 더럽게 아프네.

“뭘요?”

“아니야.”

왕자가 말을 돌렸다.

이 꼬맹이가 왜 이러나.

당장 십 세 꼬맹이가 문제가 아니다.

왕자의 토악질까지 감수하며 번 시간이다.

박힌 총알을 빼야 하고, 피도 수급하고 장비도 점검하고.

손 쉴 틈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이, 전화가 울렸다.

강희모 대리였다.

“좀 파 보셨어요?”

“몇 개만.”

“오케이. 알려 주세요.”

“너 때문에 분석팀 전원 야근 뺑뺑이인 건 아냐?”

화림 내에 비상이 걸렸나?

“모르죠. 전 지금 외근 중인데.”

“그래, 그렇지.”

강희모 대리는 짧고 굵지만, 탄탄한 내용을 알려 줬다.

에바, 별명 ‘스토커’.

영국 용병 출신, 한 번 찍은 상대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스토커란다.

그게 남자가 됐든, 목표물이 됐든 말이다.

조이, 별명 ‘토쳐’.

이 새끼는 완전 또라이다. 사람을 태워 죽이는 걸 즐기는 고문에 환장한 새끼다.

어떻게 이런 새끼가 왕실 근위병이지?

로버트, 별명 ‘수다쟁이’.

어쩐지 말이 많더라니.

왕실 근위병, 특기가 투척 무기란다.

힘이 최고라느니, 불멸자도 힘을 길러서 근접전에 밀려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설교를 한 놈이다.

음흉하다. 참, 음흉해.

마지막은 다니엘.

이쪽도 왕실 근위병.

가진 능력은 ‘공간 격리’.

잘못 걸리면 독 안에 든 쥐가 되겠는걸.

이제까지 이 넷이 참전한 작전, 수행한 미션 등을 토대로 알아낸 정보다.

우리 강 대리 칭찬해.

그 짧은 시간에 많이도 알아냈어.

여기에 하나 더, 이 넷은 전부 한 사람의 밑에서 일한다.

알 드리어 레노이.

우리 십 세의 누나이자, 가장 유력한 왕위계승자다.

배경은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시.

당장 필요한 건 왕자 뒤를 쫓는 애들이지.

스토커라는 에바를 조져놨으니, 이제 한 명씩 덤비는 건 기대할 수 없다.

로버트를 제외한 불멸자가 몇 명이나 될까.

보면 알겠지.

“이제 어쩔 건데?”

왕자의 안색이 초췌해 보였다.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네, 그게 아니라면 발발 떨었을 거다.

이런 상황, 사실은 끔찍하기 그지없는 그런 일의 연속인데도, 십 세 왕자는 의연해 보였다.

난 머리를 굴렸다.

이 의연함,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듯싶었다.

* * *

불멸과 변신만이 혈통의 개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주 드물지만, 초능 특수종도 그럴 수 있었다.

알이 그랬고, 알의 핏줄이 그런 것처럼.

다만, 알은 다른 이들과는 좀 달랐다.

“네가 살 가치가 있느냐?”

“내 눈에 띄지 말아라.”

“차라리 죽지 그러니?”

형제, 남매.

알에게 피가 이어진 형제란 이런 이들이었다.

그 어미의 핏줄은 천하고, 왕은 왕자를 마지막으로 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래서 알에게 붙은 별명은 ‘마지막 왕자’.

“내 눈앞에서 내 아이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알이 살 수 있었던 건, 왕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왕의 배려는 거기까지였다.

공식 왕국 명칭보다 초능국이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왕국.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은 마지막 왕자를 미워하거나 피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하르.”

자신의 호위가 사고로 죽는다.

“베니아.”

자신의 하녀가 병으로 죽는다.

알은 참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봤고.

그 결과 누구도 알의 곁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를 원하지 않았고.

죽으라 종용하는 이들만 있었다.

알은 그렇게 살았다.

거기에 가진 능력은 측정 불가능.

초능국의 왕자는 가진 게 없었다.

날로 쇠약해져 가는 아버지의 그늘이 왕자를 더 감쌀 수 없을 때쯤.

“기회를 주마. 나라를 위해 죽어라.”

첫째 누이가 말했고.

그 뒤를 받치는 둘째 형님이 덧붙였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네 주변 모든 사람을 죽이며 그 같잖은 삶을 이어 갈 셈이냐? 이 제안을 받는다면 그래도 왕국의 역사에 이름 하나는 남겠지.”

태어나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에게 살라 하지 않았다.

살고 싶냐 묻지도 않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타인에게 피해만 입히는 삶.

어떤 호위도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걸지 않고 어떤 하녀도 자신에게 쉬이 말을 걸지 않는다.

국가적 은따이자, 왕따였다.

그런 삶의 끝에서 알은, 마지막 왕자는 깨달았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텐데.’

현실 도피가 필요했다.

때마침 홀로그램 TV에 나온 한국 아이돌은 좋은 도피처였다.

“당장 한국으로 떠날래.”

그렇게 왕자는 한국 빠돌이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마지막 왕자는 ‘마지막’ 임무를 받았다.

곱게 죽는 것.

그런 왕자의 곁에 처음 보는 한국 아이돌을 닮은 놈이 서 있었다.

‘믿어도 되나?’

이 새끼는 왜 이럴까.

왜 자신을 이렇게 돌볼까.

왜 자기 목숨을 아끼려 하지 않을까.

날 도우면 다들 죽는다.

이 자식도 다를 바 없겠지.

에바를 반쯤 죽여 놓은 걸 봤지만, 지금 자신의 뒤를 쫓는 이들을 보라.

조이, 다니엘, 로버트를 포함한 왕국 경호대다.

첫째 누이가 직접 뽑은 이들이다.

자신은 살아남을 수 없다.

“살고 싶으세요?”

불멸특수대에서 온 아이돌을 닮은 남자, 유가 물었었다.

그 순간, 왕자는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뛰는 심장, 박동하는 맥박,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어미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아비는 그저 자신의 눈앞에서 형제나 남매가 서로 죽이는 걸 보이지 말라 했다.

그 누구도.

살면서 그 어떤 누구도 왕자에게 묻지 않았기에, 왕자는 답할 수 없었다.

고작 죽고 싶지 않다고 답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지금.

유가 자신을 옆구리에 낀 채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는데 유는 용케 나뭇가지를 쳐 내며 내달렸다.

왕자는 입을 열었다.

“살고 싶다. 많이.”

글레이브 걸스도 만나고 싶고, 춤추면서 노래도 하고 싶다.

한국 아이돌이 되고 싶다. 왕자는 이 순간 꿈이 생겼고.

이 남자를 믿기로 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고 총알에 맞았으며 싸우는 사람이다.

“널 믿…….”

채 말이 이어지기도 전.

우뚝하고 멈춰선 광익이 입을 열었다.

“왕자님, 여기 잠깐 혼자 있을 수 있죠?”

“……여기?”

달빛도 비치지 않는 어두운 산을 타고 올라온 참이다.

우엉-

정체를 알 수 없는 밤새의 울음소리와.

찌르으-

벌레의 울음소리.

멈추고 나니 들리기 시작한 삭삭거리는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까지.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알면서도 공포심을 자극하는 환경이었다.

“왕자님, 사냥에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알 게 뭔가. 지금 이 미친 작자가 자신을 이곳에 혼자 두고 가려 한다는 게 문제일 뿐.

“농담이지?”

왕자가 물었는데 광익은 듣지 않았다.

“엽총? 덫? 사냥개? 아니죠. 사냥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미끼입니다.”

싸늘했다. 비수가 날아와 심장에 꽂힌 것 같았다.

왕자는 설마 했다. 핑계를 대는 광익이다.

‘날 놔두고 간다고?’

다시 입을 열기도 전이다.

“이따 봐요.”

광익이 그 말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선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왕자는 광익의 코트를 여민 채로 생각했다.

또라이를 믿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복잡한 심경이 된 왕자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죽게 된 몸, 다만 지금 더 괴롭긴 했다.

‘씹쌔.’

왕자는 속으로 광익을 욕했다.

다 저 또라이 때문에 그랬다. 다 포기했다고 다시 살기로 했는데 자신을 버리고 가다니.

사냥이고 미끼고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왕자는 조용히 숨을 죽일 뿐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흘렀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건 타인이 처음으로 보여 준 헌신에 대한 기대감이었고 그 기대감이 무너져 생긴 실망감이었으며.

혹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주룩주룩.

코가 자꾸 흘러 왕자는 코트 깃으로 코를 훔쳤다.

깃에 걸쭉한 콧물이 묻었다.

광익이 보면 기겁할 장면이었다.

* * *

“음흉한 놈.”

조이의 말에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바가 당했다.

거기에 왕자를 납치해 갔다.

방심의 결과다. 불멸특수대원 유는 연기가 꽤 뛰어났다.

“복잡할 거 없어. 이대로 일 끝낸다.”

로버트가 말했다. 왕자의 몸에 심은 추적기는 제거 불가.

적절한 장비와 전문가가 필요하다.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왕자는 서울에서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곧 초능국의 정치적 입지를 단단하게 해 줄 계기가 될 것이다.

불멸특수대원 유는 납치법이자, 희생양이 될 거고.

“위치 확인.”

통신기를 통해 목소리가 들렸다.

“로버트.”

“내가 앞장선다.”

조이가 말하고, 로버트가 답했다.

불멸자가 선두에 서는 건 기본이었다.

“왕자부터 확보해.”

로버트가 먼저 시야를 확보하면 이후 사방에서 조인다. 다수와 소수의 싸움이다. 거기에 이쪽은 수틀리면 왕자부터 죽이면 끝이고.

변수라면, 불멸특수대나 한국에 있는 다른 집단이 끼어드는 정도?

그건 또 나름대로 막을 수 있었다.

“다니엘.”

“준비됐어.”

조이의 말에 다니엘에 제 능력을 발동했다.

공간 격리.

이 일대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능력이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어지간한 초능 특수종이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했다.

고로, 시간 벌기로는 충분하다는 거였다.

다니엘은 왕자가 있는 위치를 가늠하고 양팔을 펼쳤다.

곧 이질감이 일대를 채웠다.

“30분 이상은 무리야.”

다니엘이 말했다.

“충분하지.”

조이가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빈틈은 없었다. 적어도 조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유광익이란 놈은 참 잘도 뛰었다.

또 도망가는 놈을 쫓는 건 이제 끝이었다.

그들의 눈에 왕자의 위치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조이는 웃었다.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쩍, 우둑.

작지만 명확히 귀에 꽂히는 소음에 조이가 몸을 돌렸다.

“누구야!”

조이가 외쳤다.

남은 경호원이 라이트를 비췄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쓰러진 네 명의 경호원만 보였다.

“왕자 위치.”

“그대로입니다.”

“확보해!”

조이의 외침에 로버트가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경호원 셋이 화살 형태로 붙었다.

조이는 뒤쪽에 신경을 집중했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그대로 지져 버릴 셈이었다.

그의 양손이 빨갛게 물들었다.

다니엘이 곁에 붙고.

로버트보다는 못하지만, 감각이 날카로운 불멸자 둘이 조이의 뒤에 섰다.

사방을 비추는 라이트로 숨을 곳은 없었다.

로버트는 그사이 왕자와 거리를 좁혔다.

잡으면 끝이다. 로버트가 손을 뻗었을 때.

퍽, 푹, 찍.

소음이 귀를 때렸다. 로버트는 반사적으로 뒤로 뛰며 투척 단검을 던졌다.

소리가 들린 방향의 바닥에 단검 세 자루가 꽂혔다.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 셋이 보였다.

적이다. 아마도 유겠지.

언제 나타났을까?

머리를 굴릴 때가 아니었다.

로버트는 왼손에 투창, 오른손에 권총을 꺼내며 오감을 곤두세웠다.

왼쪽.

로버트의 감은 날카로웠다.

그는 서슴없이 좌측을 향해 총구를 겨눠 당겼다.

타다다당!

자동 권총이 불을 뿜었다.

어둠 속, 총구 끝에서 빛나는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튀어나온 광익이 로버트의 목을 잡고 꺾었다.

우두둑.

불멸자라고 해도 목뼈가 부러지면 전투 불능이다. 당연한 소리였다.

빛과 빛 사이의 어둠 속에서 광익의 몸이 드러났다. 새파란 안광과 그 밑에 널브러진 로버트, 뒤에 선 왕자의 앞을 막은 상태였다.

그 광익이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조이를 포함한 모두가 경계심을 일으킬 때, 광익은 말했다.

“밤 산책하기 좋은 날이지?”

긴장감을 무너뜨리는 말에 조이는 불쾌감을 느꼈다.

참으로 빌어먹을 새끼였다.

저 손짓 하나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는데 하는 짓이 인사라니.

‘이 개새끼.’

조이는 악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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