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90화 (90/488)

90. 적적하신 어머니를 위하여

꿈뻑.

목뼈가 부러지진 않았기에 존은 금방 눈을 떴다.

‘끄으.’

신음을 흘리려는데 옆구리부터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누군가 갈비뼈를 조각내서 내장에 박아 넣은 것 같았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몸을 꿈틀하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격통이 몸을 치달린다.

‘아.’

기억이 역순으로 떠올라 현재에 이르렀다.

목뼈가 어긋나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낀 존이 말했다.

“자이언? 에이저?”

“자이언은 못 일어나.”

“에이저? 살아 있었군.”

“수지에 안 맞는 일이었어.”

“그 새끼 뭐였어?”

블루 트윈스 내에서 당당히 상위 클래스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다.

그런데 손도 못 써 보고 당했다.

“불멸특수대, 올드 포스 한국 정부의 요원.”

“쿨럭, 미친. 무슨 불멸자 요원 새끼 힘이.”

맞는 순간, 잠깐 천국의 문이 보였다.

힘도 힘인데, 깔끔한 타격점이 더 예술이었다.

존은 단 두 방에 전투 불능이 됐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드물었다.

그 덕분에 존은 뒤늦게 허전함을 느꼈다.

쌀쌀하다. 허전함이 그 쌀쌀함을 더했다.

있어야 할 게 없었다.

코트가 없다. 육각결계식, 달리 말하며 헥사곤필드가 새겨진 코트가 없었다.

“내 코트가 없어.”

“그건 전리품이 됐지.”

“뭐?”

존은 힘을 줘 목을 돌렸다.

뿌득.

끔찍하게 아팠지만, 견뎠다.

어둠이 내려앉긴 했지만, 존은 순혈의 불멸자였다.

미약한 달빛이면 충분했다.

암적응한 눈이 에이저의 전신을 훑었다.

“네 아머는?”

“내 거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

아니, 뭐 이런 새끼가.

아무리 용병 업계에서 때려눕히고 물건을 채가는 일이 있다지만.

무슨 정부 요원이란 놈이, 물건을 훔친단 말인가.

“오는군.”

“어? 일어났네요? 목 그렇게 돌리면 어긋나요. 잘못 붙으면 다시 비틀어야 한다고요. 그거.”

요원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가 입은 코트도 보였다. 자신의 것이었다.

뭐라 입을 열기도 전이다. 쭈그려 앉으며 무식한 한국 정부 요원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죽여서 묻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긴 한데.”

“몸값이 최소 삼만 달러가 될 텐데? 안 아까워?”

에이저가 말했다.

“아까워요.”

“그럼 돈을 받고 우리는 놔줘.”

“박사님의 비밀을 알지 않나요?”

“관심도 없었어. 안 그런가?”

실제로 셋은 박사가 방 안에 숨겨 둔 미친 변신족 따위 알 바가 아니었다.

박사도 머저리가 아니었으므로, 이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았고.

“그렇지.”

존도 급히 답했다.

돈을 주고 풀려난다면 남는 장사다.

존은 요원이 입은 코트에 자꾸 시선이 갔다.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아, 이 코트 당신 거였지?”

요원이 물었다.

맞다고 답하기도 전이다.

“그건 선물로 주지.”

에이저가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저 코트가 삼만 달러보다 비싼데?

물론 몸값은 핑계일 뿐, 실제로는 일로 만났을 뿐이니, 서로 척지지 말자는 게 핵심이다.

“정말? 그럼 얘기가 다르지.”

요원이 반색했다.

“그래, 가져. 가지고 돈도 받고 우리를 풀어 주는 거지.”

존은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욕설을 꾹 눌러 참았다.

빌어먹을 새끼가 왜 남의 코트로 생색인지.

쭈그려 앉았다가 일어난 요원이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더니 슉슉 그었다.

끈이 잘리고 사지에 자유를 얻었다.

셋은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유광익이란 이름을 기억했다.

특히나 존은 그의 이름을 뼈에 새겼다.

* * *

밖에 셋은 어떻게 하죠?

라는 물음에.

“쟤들도 프로잖아. 풀어 줘. 돈 받고.”

팀장이 말했고 어쩌다 보니 내가 나서서 일을 처리했다.

그 뒤에.

“어설프게 다루면 데려가지도 못해.”

실험체와 날 번갈아 본 팬더 대리가 날 걱정했다. 쟤를 데려가는 일 자체가 곤욕이 되리라는 거다.

이런 일을 많이 해 본 건 아니지만, 딱히 어려울 건 없지 않나?

난 실험체의 뒤통수에 로우킥이라는 이름의 진정제를 꽂았다.

변신족 몸뚱이는 약물 저항력이 높다.

지금 당장, 쟤 몸에 맞는 진정제를 구하는 건 어렵다.

“……나쁜 방법이라고 하고 싶지만, 다른 수가 없긴 했지.”

질린 눈으로 팬더 대리가 말했다.

대신 이걸 본 박사가 목 뒷덜미를 잡았다.

“끅.”

신음을 흘린 박사가 날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니, 따님 생명의 은인인데.

“내 딸을 살려 줘서 고맙다.”

눈을 부라리긴 했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그나마 정상적이네.

눈빛은 영 아니었지만.

“네, 걱정하지 마시고 협조하세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가 받아 주신다면 말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못 만나게 하면 어떤 협조도 하지 않아.”

박사가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저도 당신 예뻐서 그러는 거 아니니까.

그런데 진짜 왜 아버지를 자처하는 건지 모르겠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진짜 딸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딴마음 품은 거 아니죠?”

“날 뭐로 보는 거야. 그 아이는, 그 아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팬더 대리가 뒤에서 고개를 저었다.

그만 물어보란 거다.

뭐, 알겠습니다.

일단 얘를 박사 옆에 두지 않을 테니까, 상관없겠죠.

“일 꼬이면 도로 데려와.”

사수가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적적한 와중에 수양딸 한 명쯤은 괜찮잖아.

“팀장님, 괜찮을까요?”

팬더 대리가 내 뒤에서 묻는다.

“지가 나선 건데 알아서 하겠지.”

매몰찬 팀장의 말이 들렸다.

나도 사태 파악은 한다. 이 실험체를 놓치는 순간, 대형 사고다.

제대로 케어가 안 돼도 문제가 될 테고.

그런데도 나한테 맡긴다는 건 날 믿는다는 걸까.

모르지, 그거야.

다만, 머리가 식고 주변 돌아가는 걸 보니까 하나는 알겠다.

놀란 강 대리나 기남이는 놓쳤지만.

내가 사장님의 사생아라는 게 거짓임을 아는 나는 놓치지 않았다.

실험체를 봤을 때의 우리 팀의 반응.

내가 흥분하고 애를 살리자고 덤빌 때, 이 셋은 답을 정해 놓고 움직였다.

아무리 손발이 잘 맞는 팀이라고 해도 팀장의 의견은 물었어야 했다.

설득까진 아니어도 서로 생각이 같은지 확인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신 사수는 팬더 대리를 힐끗 바라봤고.

팀장은 그 둘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셋은 눈짓도, 수신호도 주고받지 않고 결론을 정해 놓고 움직였다.

그걸 본 순간 확신했다.

저 셋은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는 거다.

그때도 실험체는 살렸을 거고.

경험은 곧 판단력이 되고 행동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래도 몇 개의 의문이 남긴 한다.

사수는 왜 팬더 대리의 눈치를 본 걸까.

팀장은 왜 이런 위험한 일에 주저하지 않는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이전에 사수의 방에 들어가 프로메테우스와 사수의 관계를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무슨 일 있으면 직통으로 연락해라.”

팬더 대리가 말했다.

“회귀자를 우습게 보지 마시죠. 괜찮을 겁니다.”

“진짜 회귀했냐?”

팬더 대리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 양반아, 농담이잖아.

결론만 말해서 우리는 미션을 성공했고.

박사의 적극적인 협조도 약속받았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붙긴 했다.

박마리가 멀쩡하게 살아 있고, 잘 크고 있다는 걸 알려 줘야 한다는 거다.

블루 트윈스 용병을 풀어 줘서 먹은 돈은 다섯이서 나눴다.

이 통 큰 친구들은 풀리자마자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입금했고.

그건 팬더 대리가 차명 계좌로 받았다.

“그런 건 언제 만들어 뒀어요?”

궁금해 물어보니.

“일하다 보면 이런 게 쏠쏠해. 잘 챙겨 먹어야지.”

이리 답한다.

합법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런 경우가 꽤 있는 듯했다.

“본사로 복귀하겠습니다.”

강 대리는 먼저 빠졌다. 그는 복잡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기남이를 데려갔다.

이 일에 더 관여하면 회사 내에서 입지가 곤란해질 것이다.

입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놓은 자식이 된다.

그렇다고 여기서 시발 팀장과 사장님의 사생아를 두고 저 실험체를 죽일 수도 없고.

그럴 능력도 능력이지만, 사장님이 뒷배가 된다면 이 일도 무마할 수 있다는 게 컸다.

하지만 이 일에 더 관여해서 좋을 건 없는 법.

강 대리는 기남이를 데리고 빠졌다.

“운전은 할 줄 알지?”

팬더 대리가 물었다.

“네.”

면허는 땄다. 운전대는 몇 번 안 잡아 봤지만, 변신족의 육체는 몸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 잘하는 법.

“문제없죠.”

답했다.

마리를 데려가려면 차가 있어야 하니.

그렇다고 누구와 동행할 일도 아니다.

모든 일이 끝났다.

아침 해가 밝아올 때쯤, 난 기절한 마리를 차 뒷좌석에 눕힌 뒤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고.

팀장과 팬더 대리 사수는 모두 본사로 복귀하기로 했다.

“넌 부상이 심해서 하루 휴식 후 월요일 복귀다.”

팬더 대리가 적절하게 내 알리바이를 만들어 줬다.

일단 얘를 데려가야 하니, 난 복귀 불가다.

“갑니다.”

“중간에 사고 나면 우린 너 모른다.”

팀장이 책임감이란 무엇인지, 각인시켜 줬다.

“나가는 루트는 이쪽으로.”

팬더 대리가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길을 잡아 줬다.

이미 돌아갈 때를 대비해 오면서 차를 한 대 더 가져왔다고 했다.

팬더 대리는 준비성이 철저하기도 하지.

국산 SUV였고, 트렁크 밑을 열면 무기를 숨길 공간이 있었다.

가면서 오디오를 트니.

간밤에 가평 일대 화산이 폭발했다는 둥, 불법 실험이 있었다는 둥 개소리가 흘러나왔다.

폭탄이 터지고 꽤 시끄럽긴 했겠지.

아나운서가 정부 쪽의 공식 발표라면서 일대의 군사 훈련이 있었다고 했다.

불멸특수대의 작전 지역이었다.

나라가 나서서 무마해 줬다.

이게 바로 타이틀의 힘이지.

뒤쪽으로 감각 일부를 열어 두고 달렸다.

혹시라도 애가 깨면 다시 진정제를 줘야 했다.

부릉.

집 앞에 도착해서 길가에 차를 대고 이번에 사용한 무기를 모은 뒤, 코트로 잘 여며서 트렁크에 담고.

근처 목욕탕에서 씻었다.

화약 냄새 따위를 지울 필요가 있었다. 탈취제도 썼다.

그렇게 냄새를 지우고 옷도 갈아입고.

차는 적당한 무인 유료 주차장에 넣어 둔 뒤에,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애를 품에 안았다.

나가는 길에 사람들 시선이 따갑긴 했다.

다 큰 어른이 여자애를 품에 안고 가는 모습이 흔한 건 아니지.

1층 출입구 비밀번호를 누르고 올라가서 문 앞에서 숨을 골랐다.

“후.”

삑삑.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필라테스 영상을 튼 채로, 강사보다 유연한 몸을 자랑하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 TV에 나온 강사보다 열두 배는 예쁘시네요.”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일단 사고는 쳤다.

아부는 필수다.

어머니는 고개만 돌려, 날 바라보셨다.

정확히는 내 품에 안은 애를 빤히 보셨다.

“변신족 본능이 발동해서 여자애를 어떻게 한 게 아니라면 설명부터 해야겠는데 아들?”

“누구, 광익이 왔어?”

어라? 혼자 계신 게 아니네.

요즘 적적하다고 하시더니 친구를 데려오셨다.

다행히 아는 얼굴이다.

일전에 본 적 있는 내 변신족 과외 선생님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흐음, 걔는 뭐야? 너 벌써 할머니 되는 거니?”

선생님이 어머니께 말했다.

“그건 아니고요.”

“할머니만 되면 다행이게? 교도소에 들어간 채로 애가 태어나는 걸 보지 않으면 다행이지.”

독설도 이런 독설이 없다.

두 분 다 오해가 심하시네.

“그런 게 아닙니다.”

난 적절하게 말을 끊으려 했는데.

“하악!”

타이밍 좋게 마리가 깨어나 몸을 튕겼다.

딱 하고 내 턱을 들이받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담요를 던지며 단숨에 전투태세다.

끈으로 칭칭 감은 채로 데리고 다닐 수는 없어서 풀어놨는데, 깨어나자마자 사고 치네.

그리고 풀려난 마리 앞에는 변신족 마더 테레사와 그녀의 친구가 있었다.

둘은 동시에 눈을 빛냈다.

과외 선생의 눈빛은 파랗게 빛났고, 어머니의 눈은 노랗게 빛났다.

박마리 양께서는 개기는 대신 눈만 샐쭉 올려 떴다.

덤비려나? 적당한 힘으로 때려눕히시겠지? 설마 죽이진 않으시겠지?

내가 먼저 애 뒤통수를 후려서 기절시켜야 하나 고민할 때다.

말썽꾸러기 박마리 양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반항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꼬리 만 강아지의 자세였다.

어쭈? 놔두면 아예 배도 깔 기세일세.

박병준 박사가 보면 통탄할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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