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회귀한 신입 사원이 싸움을 너무 잘함
“뭘 봐?”
“너 지금 나보고 그런 거냐?”
반도의 흔한 남자 둘이 시비 붙었을 때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난감한 건 무엇일까.
상대가 만두 귀일 때? 아니면 턱을 당기고 파이팅 포즈를 취할 때?
가장 난감한 건, 갑자기 등 뒤에서 여섯 놈쯤 일행 놈들이 몰려나올 때다.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니까.
팀장이 땅을 박찬 것과 동시다.
“쇠대가리야, 미안.”
난 말과 동시에, 4번 타자를 들어 입에 걸레를 문 블루 트윈스 용병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떵!
쇠와 쇠가 만났다.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4번 타자는 통짜 아다만티움, 그 자체로 둔기이자, 흉기다.
뻑 하고 이마를 땅에 박은 놈이 기절했다. 기절하며 놈의 능력이 풀려 피부가 다시 검게 돌아왔다.
그 잠깐 사이다.
징!
레이저 눈깔의 왼쪽 붉은 눈이 팀장을 따라 움직였다.
허공에 긴 붉은 선이 그어진다.
치이익!
닿는 모든 게 잘렸다.
“시발, 피해!”
용병 무리가 공격 범위 밖으로 분분히 몸을 날렸다.
콰가각.
중간에 멀뚱히 서 있던 드럼통이 레이저에 잘렸다.
팀장은 조금씩 전진하면서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총알이든, 레이저든 회피 메커니즘은 같다.
총구를 보고 피하는 것 대신 눈깔 돌아가는 걸 보고 피하면 된다.
물론 눈알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사출구가 변하기에, 그만큼 잘 보고 잘 뛰어야 했다.
팀장은 그렇게 했다. 잘 보고 잘 뛰었다.
그걸 보며 난 허리춤에서 연막탄을 꺼내 레이저 눈깔의 발치를 향해 던졌다.
휭 하고 날아간 기다란 쇠통이 바닥을 구르며, 치이익 하고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회색 연기가 시계를 가리기 시작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레이저 눈깔 용병이 연막탄이 터진 걸 보고는 뒤로 뒤뚱뒤뚱 뛰었다.
무거운 아머를 입은 채로 용케도 뛴다.
난 그걸 보며 움직였다.
소리 없이, 기척 없이.
땅에 발이 닿을 때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힘을 줘 부드럽게 밟고, 뗀다.
용병 무리는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경꾼이 됐다.
깜둥이는 기절했고.
본래라면 머릿수가 부족한 건 우리 쪽이지만.
이 순간만은 이쪽이 다수다.
고로, 굳이 시발 팀장 혼자 발에 땀 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연막을 뚫고 나온 레이저 눈깔은 팀장에게 모든 신경을 쏟았다.
난 놈과 두 발자국 거리까지 다가갔다. 레이저 눈깔은 날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문제라면 놈이 두른 슈트 아머뿐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어떤 아머라도 이음새는 있기 마련이, 난 그 틈을 찾았다.
정확히는 옆구리와 골반을 잇는 틈새에 나이프를 꽂았다.
트드드팅!
힘으로 욱여넣은 나이프 칼날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며 불똥이 튀었다.
“핫!”
놈은 놀랐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기합을 내지르며 팔을 크게 휘둘러 내 머리를 노렸다.
난 고개를 숙여 피하고, 칼 손잡이를 쥐고 뒤로 당겼다.
내가 꽂은 나이프는 경호팀장에게 선물로 받은 특수 무기, 슬러그 나이프였다.
이 무기는 본래 근접 무기고.
그 용도는 상대의 외피를 뚫는 데 있다.
발사 스위치는 손잡이를 잡고 당기는 거고.
즉, 난 지금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과 같은 행위를 했다.
꽝!
폭음과 함께 슬러그탄이 칼날 끝에서 터지며 외피에 꽂힌 채로 폭발했다.
양팔을 교차해 페이스 가드를 대신했다.
훅하고 매캐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후드득. 티디딩.
곧 날붙이 따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쿨럭!”
매캐한 화약 연기 사이로 빨간 피를 토하는 레이저 눈깔이 보였다.
왼쪽 옆구리와 골반 쪽이 패여, 피가 흐른다. 얼핏 내장도 보였다.
“크으르륵.”
피거품을 토하는 놈을 보니, 내가 좀 과했나 싶기도 하지만.
놈은 포기하지 않고 날 향해 시선을 돌렸다.
위잉, 빛이 모인다. 정신력이 대단했다. 보통 초능 특수종은 통증에 예민하다. 아프면 제대로 능력을 못 쓰는데, 이 친구 어떻게든 나한테 한 방 먹이겠다는 각오가 보인다.
아니, 근데 친구야. 나한테 집중하면 어떻게 하냐.
“눈깔아, 새끼야.”
본래 그쪽이 상대하던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팀장이다. 어느새 레이저 눈깔 용병 바로 뒤였고.
삐죽 솟은 송곳 형태의 무기를 뒤통수에 겨눈 채였다.
“안 들리냐? 눈 깔라고.”
말 한번 찰지게 하네.
레이저 눈깔이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능력을 풀었다. 눈에서 빛이 사그라진다. 그와 동시에 옆구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무릎을 쿵 찍으며 쓰러졌다.
팀장이 칭찬하면 적당히 겸손한 말을 할 차례인가.
네 덕분이다.
알면 됐어요.
따위의 말을 준비하며 팀장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훙.
처음 느낀 건 바람이 일어 생기는 공기의 파동이었다.
그 뒤에는 소리가 닿았다.
옷자락이 파라락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팀장의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노을빛을 가로막는 그림자의 손에서 길쭉한 뭔가 튀어나왔다.
세 번째 블루 트윈스 용병, 근처까지 기척 없이 접근 고로 불멸자, 손에 든 건? 길쭉한 칼.
보는 순간, 순식간에 정보가 머리를 스쳤다.
팀장에게 뭐라 경고성을 발하기도 전이다.
땅.
레이저 활줄은 튕기면 독특한 소리를 낸다.
울림 가득한 소리가 대기를 채우고, 막대 끝에 레이저 화살촉을 단 화살이 빛살이 되어 날아왔다.
막 손에든 칼날이 팀장의 헬멧 뒤쪽에 닿을 때였다.
한순간 놈이 몸을 틀었다.
따당.
놈은 칼을 돌려 그 화살을 쳐 냈다.
핑그르르 하고 레이저 화살 막대가 허공을 날았다.
미치도록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검은 그림자가 화살을 쳐 내고, 바닥에 내려서며 무릎을 굽힌다. 곧바로 움직일 의도가 엿보인다.
빠르다. 판단력도 훌륭하다.
다만, 이 자리에는, 그것도 근거리에 그 속도와 판단력에 대응할 사람이 둘이 더 있었다.
화살을 쳐 내는 사이, 팀장이 몸을 반 바퀴 돌리며 돌려차기를 날렸다
신고 있는 건 압축 강화 부츠.
저거로 조인트를 까면 정강이가 부러지는 흉기다.
놈은 경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히다 못해 허리까지 뒤로 젖혀 피했다.
그러면서도 땅을 차, 몸을 뒤로 날린다.
난 팀장의 몸이 반쯤 돌아갈 때쯤, 땅을 박찼다.
쾅!
힘을 아끼지 않았기에 내가 박찬 흙이 치솟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구리에 장사 없는 법.
난 단숨에 놈의 옆으로 붙었다. 가로로 누운 놈과 그걸 위에서 바라보는 나.
둘의 눈빛이 엇갈렸다.
화살과 뒤돌려차기까지 피한 대가다. 몸의 균형이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다.
난 놈의 발에 왼발을 걸고 팔꿈치로 배를 찍으며 무게를 실었다.
난 일반 불멸자보다 무겁다. 꽤, 아니, 많이 무겁다. 변신족 통뼈다.
거기에 허리춤에는 4번 타자도 들고 있다.
발을 살짝 띄우며 무게를 실어 팔꿈치를 위에서 밑으로 꽂았다.
내리꽂는데 놈이 급히 입고 있던 코트 옷자락을 당겼다.
그게 최선이냐? 그게 최선의 방어냐? 뭐, 그렇게 믿는다면야.
기도나 하라고.
놈의 코트는 보통 수준의 장비는 아니었다. 팔꿈치를 내리찍는데 저항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냥 저항감만 느껴졌다.
이 정도면 그냥 단단한 버터 수준이지.
힘으로 찍어 눌렀다.
코트를 뚫고 팔꿈치가 상대의 복부를 찍었다.
쿠직.
내장을 보호하는 갈비뼈 몇 개가 허무하게 부러지고.
“꺽.”
헛바람 빠지는 비명이 들렸으며.
우지직.
내장까지 부순 감촉이 팔에 여실히 느껴졌다.
불멸자니까 안 죽는다. 그리고 불멸자를 상대할 때는 손을 과하게 써야, 전투 불능이 되는 법.
찍은 팔꿈치를 회수하며 땅을 다시 디딤과 동시다.
난 그대로 상대의 머리를 걷어찼다.
뻥!
우둑- 하며 목이 돌아가면 안 되는 각도까지 역방향으로 돌아가고, 바닥에 툭 떨어진다. 난 들었던 왼발을 당겼다.
더 덤빌 놈은 없나, 주변을 돌아볼 때다.
모두 날 빤히 보고 있다.
“……왜요?”
“분석팀은 안 와도 된다. 넌 일선에서 뛰는 게 맞아.”
강희모 대리가 그리 말하고.
다가온 사수는 내 어깨를 툭 때리며 말했다.
“많이 잘했어.”
‘잘했어’에 ‘많이’가 붙었다.
“미친.”
기남은 날 외면했다.
고개를 돌리다,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적당하네.”
“네, 제 덕분이라뇨. 아닙니다. 모두가 힘을 합친 덕분이죠. 별말씀을요. 아유, 아니에요. 전 그냥 숟가락만 얹었습니다.”
“에라이, 미친 새끼, 시발, 어디서 저런 게 들어와서.”
팀장이 날 외면했다.
뭐, 왜? 겸양을 떨어도 지랄이냐.
그사이 팬더 대리가 다가와 물었다.
“너 회귀자지?”
“네?”
“사실은 회귀한 거잖아. 난 다 안다.”
뭘 알아, 이 양반아.
“대리님?”
“차기작 제목 정했다. 회귀한 신입 사원이 싸움을 너무 잘함.”
이 양반 집에서 웹소설이라도 쓰나 보다.
독자의 감각으로 봤을 때, 그리 나쁜 제목은 아니었다.
“아오, 대박 각이네.”
팬더가 말하며 날 두고 나아갔다.
“우린 안으로 진입한다. 닭대가리가 여기 정리해.”
뼝아리에서 닭대가리가 진급했다.
“네이, 네이. 별말씀을요.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적당히 음을 붙여 말하니, 팀장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보기 좋았다.
그리 말하며 팀장과 일행이 들어가고, 나만 남았다.
한 일 없는 기남을 시켜 이곳을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뭐, 기남이 혼자 남았다가 남은 용병무리한테 뒤통수라도 맞으면 답이 없으니.
내가 남는 게 맞다.
막강한 능력을 보여 준 참이다. 날 보고 덤빌 사람은 없겠지.
적어도 상식이 있는 놈이라면 안 덤빈다.
당연하게도 이곳에 몰상식한 용병은 없었다.
난 레이저 눈깔의 손을 크롬강으로 만든 케이블 타이로 묶고 발목도 묶은 뒤, 물었다.
“혹시 지혈제나 뭐 좋은 약 없어?”
영어가 짧아서 묻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치고는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시도였다.
“가슴 안쪽.”
서슴없이 손을 넣어 보니, 급할 때 쓰는 인젝션이 보였다.
“아무 데나 꽂아 줘.”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난 가슴팍 아머를 뜯어 주사기를 콱 꽂았다.
쭈우욱, 하고 파란 약물이 들어가더니, 눈깔 친구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오줌 싸지 말고.”
적당히 말하며 놈이 입은 아머를 살폈다.
내가 부수지 않았어도 이건 쓸 수 없는 물건이었다.
몸에 맞춘 물건이었다. 거기에 철저하게 몸의 보호를 위한 물건이고.
불멸자가 입기엔 너무 무겁다. 초능, 그것도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후위를 맡는 포지션에나 어울리겠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나 이번에는 반쯤 시체가 된 검은 그림자 친구를 살폈다.
부러진 부분이 아프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서 코트를 벗기자, 뒤에서 레이저 눈깔이 물었다.
“너 뭐하냐?”
난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전리품 회수.”
이번에 세 가지 무기, 4번 타자, 아다만티움 정글도, 슬러그 나이프를 써 보며 느낀 점이 있다.
보통 손에 익은 무기, 오래 쓴 무기가 더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니야, 너희는 틀렸어.
써 보니까 알겠다.
비싼 게 최고다.
들어간 과학력과 자재가 비쌀수록 좋은 거다.
그게 진리였다.
“허.”
뒤에서 레이저 눈깔이 허탈한 웃음을 뱉었고.
“당연한 거지, 뭘.”
“위너 테익쓰 올. 용병이라면 잘 알지 않나?”
“저 새끼들 으스대더니.”
“근데 우리는 가도 되지 않냐?”
용병 무리 쪽에서 나온 목소리다.
마지막 질문에는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내 뒤통수를 흘깃흘깃 보는 시선이 따가웠다.
“계속 계시게? 불멸특수대 지원 병력 오시면 공무집행 방해로 파출소라도 가고 싶으신가.”
혼잣말인 듯, 아닌듯한 말을 중얼거렸다.
돈 때문에 나선 길에서 괜히 목숨을 잃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것도 의뢰자의 괴팍함 때문이라면 더더욱 억울하겠지.
그러니 적당히 하고 집에 갔으면 한다는 마음이다.
계속 있으면 불멸특수대로서 작전 방해라는 명목으로 뭐라도 해야 하니까.
“용병은 의리지, 나 같으면 다친 애들 끝까지 챙긴다.”
뒤처리까지 맡겼다.
용병 무리가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팀장과 내가 팔다리를 부러뜨린 용병까지 알뜰히 챙겼다.
그렇게 슥슥 물러나는 가운데,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자른 근육질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왜요?”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름 좀 알려 줘.”
“알아서 뭐 하게요?”
데스 노트에 이름이라도 적으시게?
이 양반아, 지금 내가 보여 준 게 배려라는 걸 모르시나.
“알려 줘.”
모히칸의 까만 두 눈을 보며 난 어깨를 으쓱하고 답했다.
“유광익.”
“……동대문의 구원자?”
아니, 시발,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더니.
소문 한번 빛의 속도로 퍼지네.
“네, 뭐.”
“신세 졌다.”
무뚝뚝하지만, 그만큼 무게가 느껴졌다.
다음에 갚겠다거나 뭐 어쩌겠다는 말은 없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용병 무리 중 일부가 날 보고 고개를 숙였다.
나도 마주 고개를 숙여 줬다.
모히칸을 마지막으로 용병 무리가 다 떠나고.
난 코트를 탁탁 털며 살폈다.
자, 이건 뭐가 특별한 거냐.
일단 질기다. 당겨도 쉬이 찢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하는 김에 힘을 더 줘 봤다.
안 찢어진다. 아까 내 팔꿈치 일격에도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이거 소재가 뭐야?”
깜둥이, 레이저 눈깔, 코트 뺏긴 반 시체를 한곳에 모으며 물었다.
유일하게 기절하지 않은 눈깔이 답했다.
“그리핀 섬유다.”
난 상식이 풍부한 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끔 뉴스도 본다.
그런데도 처음 들어 봤다.
“그리핀?”
되물으니, 눈깔 용병이 설명했다.
탄소 섬유, 그래핀 섬유 같은 이쪽 세계의 신소재 섬유에 아더 사이드 소재를 섞은 거고.
현미경으로 보면 그 섬유 조직 연결 형태가 마치 독수리 모양이라.
어디서 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신화빠돌이가 그리핀 섬유란 이름을 붙였단다.
엑스큐라시가 만드는 독자적인 제품이란 말도 덧붙였다.
근데 이거 왜 이렇게 친절해.
설명을 끝낸, 눈깔이 말했다.
“살려 줘.”
이 친구 봐라. 담담하고 당당하게 잘도 요구하네.
“본사에서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거다.”
귀가 솔깃한 얘기도 이어졌다.
팀장에게 물어봐야겠다.
이 친구들을 어떻게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