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멍멍, 월월, 컹컹.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당기기까지 고작 몇 초.
그 짧은 틈이다. 놈은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총을 집어 던졌다.
소총이 시야를 가린다. 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팡!
난 날아오는 총열의 중간을 맞췄다.
불멸자의 묘기다.
날아오던 총기가 공중에서 튕겨 나갔다. 시야가 다시 열리자, 부쩍 확대된 놈의 얼굴이 보였다.
다릿심이 좋은 놈이다. 대쉬가 빨랐다.
그래도 총구를 돌려 머리에 구멍을 내줄 시간은 충분했다. 총구를 내리고 겨누고 쏜다.
그 모든 작업이 고작 1초 이내에 이뤄진다. 총을 내리고 겨누며, 난 깨달았다.
놈에게 총탄 따위 소용이 없으리라는 걸.
단서는 많았다.
가벼운 옷차림, 여유 있는 태도, 기감으로 놈을 읽기도 했다.
불멸과 변신이 아니니, 초능 특수종이다.
단서가 귀결되어 적의 능력을 파악한다.
강체(强體), 외피 강화의 초능.
달려오는 사이, 놈의 전신에 은빛이 어린다.
타다다다당! 티디디디디딩!
총탄이 놈에게 맞아 불똥을 튀겼다. 그중에는 안구에 맞은 탄도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눈에서도 은빛이 새어 나온다.
외피 강화 강체 능력자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다.
머니 & 세이브 특수부대에서도 보지 못한 놈이었다.
달려오던 놈이 허리춤에 있는 칼을 뽑았다.
챙!
두꺼운 칼날, 크롬 합금, 고강도의 무기였다.
단단한 몸과 단단한 무기.
놈의 노림수가 보였다.
어지간한 포탄을 몸으로 받아 내는 초능력, 즉 절대의 방어.
맞으며 벤다. 뻔하지만, 뻔하기에 막기 어려운 수다.
4번 타자를 쏘면 먹히긴 하겠지만, 일격에 죽일 순 없다.
가위바위보와 같다. 보자기를 내민 상대를 강력한 바위로 찢는 건 고된 일이다.
이럴 땐 가위를 내야 했다.
탕탕!
놈이 윗니와 아랫니를 번갈아 부딪쳤다. 은빛으로 빛나는 치아다. 날 씹어 삼키겠다는 굳은 의지로 보였다.
총을 위로 던졌다. 오른손이 가벼워진다.
동시에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허리를 조금 더 왼쪽으로 튼다. 왼손을 칼집에 대고 오른손은 칼손잡이를 쥔다.
모든 것이 한 동작에 이뤄졌다.
놈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열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 한 걸음 안쪽에 다다른 순간.
“야, 불멸자는 필요하면 기계보다 더 정밀하게 움직이는 거다.”
팀장의 잔소리가 떠올렸다.
이번 작전 내내 꽤 시끄러웠지.
난 오른손에 힘을 줬다.
내 정글도는 무게 중심이 엉망이다. 칼날에 무게가 실린 형태다.
난 그걸 활용했다.
오른손에 쥔 정글도를 뽑아 긋는다.
칼날의 무게, 칼집과의 마찰, 모든 것이 운동 에너지로 변환하며 허공에 은빛 실선을 그었다.
슁.
놈과 엇갈려 섰다.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쳤다. 해가 지며 내가 선 자리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반대로 놈이 있던 자리에는 노을이 비췄다.
내가 던진 총이 그제야 퉁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난 천천히 몸을 돌리고 칼을 도로 수납했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다.
깜둥이의 왼팔이 상박부터 미끄러지듯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푸슈슈슉.
곧 상처 부위에서 피가 쏟아졌다.
“……미친.”
놈이 중얼거리며 급히 팔을 붙들었다.
내 칼, 아다만티움 칼날이 달린 정글도는 무게 중심이 엉망이다. 그럼 그에 맞춰 쓰면 그만이었다.
첫 일격 외에 쓰기에는 나쁘지만, 발도 일격만큼은 아주 아주 괜찮았다.
그 결과가 이거다.
놈은 칼이 잘렸고 팔이 잘렸다.
“어떻게…….”
놈이 중얼거렸다.
“미안, 내 칼은 묵철이라.”
자세를 잡고 놈을 향해 걸었다. 검둥이, 아니 이제는 은둥이라고 해야 하나.
“자이언!”
두툼한 아머를 입은 놈이 외쳤다. 그 소리와 함께 까드득하고 어금니를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칙칙한 은회색 몸뚱이가 다시 내달렸다.
난 반사적으로 칼에 손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불길한 직감이 머리를 스치고.
상대가 가진 능력의 효율성을 알아챘다.
방어, 부서지지 않는 몸.
본래의 전술은 달려들어서 칼을 휘두르는 것.
보통은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법이지만, 놈은 살을 줄 필요도 없다.
외피 강화 초능이 있으니까.
고작 전법이 그거 하나일까?
상대는 서른 전후로 보였다.
아무리 늦게 능력을 깨달았어도 스물다섯 이내일 거다.
불멸자나 변신족과 달리 초능 특수종은 스물다섯 전후로 능력을 깨닫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럼 최소 몇 년은 저 몸을 갖고 싸웠을 것이다.
그것도 블루 트윈스라는 유명한 민간 군사 기업에서 싸운 용병이었다.
놈이 주먹을 뻗는다. 아까보다 느려진 속도와 힘이다.
놈의 눈이 보였다. 그 눈은 포기를 말하지 않았다. 기대감, 긴장감이 엿보이는 눈이었다.
상황 파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칼을 뽑았다.
훙.
바람이 인다. 칼날이 놈의 오른 손목을 뱄다.
서걱, 외피 강화 강체를 무시한 아다만티움 칼날이 살벌한 소리를 뱉어 냈다.
순간, 잘려서 공중에 뜬 놈의 손이 보였다. 그 손에 쥐고 있는 수류탄도.
이 무식한 새끼.
두 번째 전법은 제 몸의 강도를 믿고 무작정 달려들어 폭사하는 거다.
쉽게 말하면 자폭 전략이었다.
난 칼날을 회수하고 4번 타자를 뽑아, 총열 위에 만든 손잡이를 쥐고 휘둘렀다.
깡!
경쾌한 소리가 터졌다.
수류탄을 쥔 손이 하늘 높이 솟았다.
꽈-앙!
머리 위에서 대형 폭죽이 터졌다.
투두둑.
불씨 몇 개가 건물 위와 바닥에 떨어졌다.
놈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놈을 보자니, 이 한마디를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홈런이다.”
말하며 놈의 발을 걸었다. 당황한 놈을 제압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넘어뜨리고 등을 무릎으로 찍은 뒤, 4번 타자로 뒤통수를 겨눴다. 차가운 총구의 감촉을 연신 느끼게 눌러 주며 말했다.
“이 총이 저기 구멍을 만든 장본인이다. 이 거리라면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무리일 거다. 그냥 잘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일 거고.”
조곤조곤하게 말한 뒤, 고개를 슬쩍 들었다.
멍하니 구경 중인 용병 무리와.
날 뚫어지게 노려보는 강철 안대 친구가 보였다.
“여기는 불멸특수대가 접수한다. 남은 사람은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내 말이 끝나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의 끝이다.
“이 일은 포기요, 의뢰주에게 전해 주시오.”
용병 하나가 말하고 몸을 빼자, 나머지도 슬금슬금 움직였다.
“돈을 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슈트 아머, 몸에 갑옷 수준의 방어구를 두른 친구가 말하며 강철 안대를 벗었다.
곧 그 눈에서 빨간빛이 뿜어지며 긴 줄을 그렸다.
지-잉.
소음과 함께 붉은 레이저가 슬금슬금 물러나던 용병의 다리를 뚫었다.
푹, 퍽.
물러나던 용병의 허벅지에 손가락 두 마디 크기가 넘는 구멍이 생겼다.
“으아아악!”
피는 흐르지 않았다. 허벅지를 뚫으며 그대로 지져 버린 상처가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본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토했다.
“와, 씨. 레이저. 엑스맨.”
그동안 꽤 많은 초능 특수종을 만났다.
발화, 결빙, 부유, 염동.
이런 능력자는 처음이었다.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가는 친구라니.
지이이잉.
허벅지를 뚫은 빛이 눈에 모인다. 한쪽 눈은 갈색, 다른 눈은 붉게 빛났다.
“박사는 못 데려간다.”
그가 선언했다.
자신할 만했다. 이 친구는 보기 드문 특수한 초능력을 가졌고.
아무리 불멸특수대라고 해도 특별한 장비 없이 레이저 사출 장비를 상대하긴 어려우니까.
보는 순간 맞춰 뚫는다. 방금 슬금슬금 발을 빼던 용병의 허벅지를 뚫는 걸 보고 알 수 있었다.
보는 순간 구멍을 만든다. 그 궤적만 아련히 남았다.
“크크크크.”
깜둥이가 삼류 악당이 낼 법한 웃음을 토했다.
모든 초능 특수종이 그러하듯, 종일 내내 능력을 유지하는 건 엄청난 지구력을 요구한다. 깜둥이의 지구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뒤통수부터 은빛이 흐려지는 중이었다.
곧 능력이 풀어지는 중이라는 것.
딱.
난 놈의 뒤통수에 꿀밤을 먹였다.
“악, 왜 때려.”
“미안, 나도 모르게 손이 가네 손이.”
“이 미친 자식, 애미…….”
놈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을 쥐고 뒤로 당겼다.
말이 끝나면 뒤통수에 물리적 충격을 선사해, 땅에 얼굴을 반쯤 파묻어 줄 생각이었다.
“자이언, 닥쳐. 너도 그만둬라.”
빨간 레이저 눈깔이 날 향해 말했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팀장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다물고 레이저 눈깔을 쳐다봤다. 도망가려던 용병 무리도 슬금슬금 다시 무기를 들었다.
이거야, 원 박쥐 무리도 아니고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비루한 양반들일세.
“너희는 전부 내 사정거리 안에 있다.”
레이저 눈깔이 말했다.
자신할 만하긴 한데, 저 친구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네.
불멸자가 총알은 보여서 피하나, 내가 보기에 레이저나 총알은 같다.
보이지 않는 걸 피하는 방법 하나.
쏘아지는 방향을 예측하는 것.
이 자리에는 몸짓 하나로 바로 옆의 불멸자의 감각을 예민하게 하고.
손짓 하나로 상대에게 거짓된 기척을 날리는 성격 나쁜 불멸자가 있었다.
팀장이 피식피식 웃었다.
그걸 보며 난 오늘 낮에 일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팀장이 나한테 이상한 훈련을 시켰었다.
* * *
“기왕 잡아 온 거 써야지.”
묶인 채로 날 보는 더블 능력자는 그 말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불멸특수대요? 의뢰를 받고 한 일이었소.”
당당한 척하지만, 겁먹은 기색을 숨길 순 없었다.
팀장은 더블 능력자의 뺨을 때렸다.
신호도, 기척도 없는 일격이었다.
짝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다들 모인 자리였다.
팬더 대리와 사수는 외면했고, 강희모는 미간을 찌푸리고 정기남은 물을 끓였다.
어쨌거나 팀장이 하는 일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여기서 널 죽이면 누가 알까?”
파르르.
더블 능력자가 어깨를 떨었다.
“여기서 네 손톱을 다 뽑고 괴롭힌다고 누가 알까.”
거, 말 한번 섬뜩하게 하시네.
더블 능력자의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다.
“왜 그러는 겁니까.”
묶인 친구가 물었다.
강단 있어 보이는 친구는 아니었다.
“능력 안 묶었다.”
초능 특수종을 잡으면 특수한 파장을 일으키는 수갑을 채운다. 그게 곧 초능력자 특유의 아우라 발동을 방해하게 하곤 하는데.
이 친구에게는 그걸 안 채웠다.
“얘 기절시키면 보내 준다.”
팀장이 말했다.
그가 말한 ‘얘’가 나였다.
“……나?”
나도 모르게 되물으니.
“반말 팍.”
팀장이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 혼잣말이잖아요.”
“……기절?”
겁 많은 초능 특수종이 되물었다.
“기절이 좀 무리면, 호되게 때려서 항복 소리 들어도 되고.”
이게 무슨 짓인지.
“시작.”
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척을 느꼈다. 정확히는 허공에서 무형의 힘이 물리력을 갖춰 날 때리는 아우라다.
즉, 초능력, 염동력이다.
고개를 젖혔다.
팡 하고 얼굴 바로 앞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 팝콘 없냐?”
팀장이 뒤로 물러나 적당한 나무 밑동을 찾아 앉으며 물었다.
이 양반 취미가 진짜 고상하다니까.
팀원 고생 시키고 팝콘을 찾아.
일부러 몸을 그쪽으로 틀었다. 피하면 염동력이 여파가 미치도록.
“아이쿠.”
실수라는 듯 소리도 내주니.
“염병하네, 내 옷깃이라도 건드리면 손톱 하나씩.”
팀장이 말했다.
염동력자가 물끄러미 날 보더니, 능력을 거뒀다.
그걸 보며 팀장이 말했다.
“불멸자의 강점이 뭐냐, 동훈아.”
“세밀한 감각이지요.”
“세밀함을 다른 말로 하면 뭘까? 정아야.”
“정밀함이죠.”
신박한 개소리군.
“넌 쟤 옷깃도 건들지 마.”
막 염동력의 파도를 피해 짓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사격을 멈추려면 그걸 쏘아 내는 무기를 부수면 된다. 간단한 원리였다.
그래서 놈을 때리려고 했는데.
“아, 왜.”
“저 새끼, 또 반말하네.”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지랄. 정밀한 감각은 볼 수 없는 걸 보게 하고,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게 하며 찰나를 반추하게 한다.”
팀장이 말이 끝났다.
멍멍, 월월, 컹컹.
개가 짖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소리 없는 압력, 허공에서 생겨나는 무형의 물리적 공격.
염동력의 탄환이 다시 날 노렸다.
자기 직전까지 난 이 염동력과 어울렸고.
여덟 대쯤 맞고 나서야 대충 멍멍, 월월, 컹컹이 개가 아닌 사람 말로 이해됐다.
찰나를 반추하는 것.
즉, 찰나를 직시하게 한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은 무형의 힘이 작동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직시하고 느낀 순간, 곧 몸에 체화다. 기남의 능력을 보고 익혔을 때와 같았다. 지금은 팀장의 조언이 몇 마디 더 붙었을 뿐.
그 뒤에 팀장은 더블 능력자를 풀어줬고, 우리는 먹고 자고 쉰 뒤, 별장에 진입했다.
그리고 난 배운 걸 정글도 발도에 섞어 썼다. 찰나를 직시해 그 틈을 베는 기술에 엮었다.
* * *
나한테 그 정밀함을 가르친 팀장이 움직였다.
레이저 눈깔이 움직이는 팀장을 눈으로 좇았다.
보이는 동시에 쏜다. 그게 그가 가진 초능이었으며.
팀장은 놈의 눈이 향하는 곳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