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판을 부순다.
함정 진입로를 헤쳐 나갔을 때와 같았다.
상대를 보는 순간 알았다.
턱, 손, 발, 몸, 느껴지는 모든 것이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했다.
난 그걸 보고 시야의 사각, 소리의 사각, 냄새의 사각에 숨어 둘을 잡아챘다.
그 와중이다.
아까 우리를 쫓던 더블 능력자가 숲을 힐끗 보는 게 보였다.
보는 순간 알았다. 저 작자의 감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긴 어렵다.
저 용병은 지금 오감이 아닌, 또 다른 감각으로 이곳을 본다.
초능력자 특유의 기감이다. 그가 숲 안으로 들어왔다.
예민한 청각이 소리를 잡아챘다.
바스락, 나뭇잎 밟는 소리, 흙이 눌리는 소리, 자갈이 만나 부딪치는 소리.
“어디가?”
다른 용병의 목소리까지.
“물 빼러.”
초능 특수종을 직시했다. 보는 순간 정보가 정리돼 들어왔다.
왼쪽 어깨가 불편해 보였다. 그 부분 옷이 적당히 두툼하다.
붕대를 감았을 거다.
부스럭.
일부러 소리를 냈다. 의심이 가지만, 단숨에 적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저 예민한 기감에 걸리는 딱 그 정도.
타박타박 놈이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난 나무 위를 소리 없이 타고 위에서 밑으로 몸을 떨궜다.
공기의 파동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들었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내 손이 그의 목에 닿았다.
염동의 힘, 부유의 힘, 어떤 것도 발동하기 전에 변신족의 완력이 그의 목을 반쯤 꺾었다.
우득.
그거로 끝이었다.
난 그를 들쳐업고 돌아왔다.
적당히 뛰는 심장과 확장된 감각, 약에 취해 흥분한 어깨가 들썩였다.
지금이라면 저 밑에 있는 놈 모두를 잡아 올 수 있을 것이다. 죽일 수도 있었다.
팀장에게 그렇게 제안하자.
그렇게 작전을 끝내 버리자.
“반푼이 새끼야. 이너 피스, 내면은 평온해야 한다고. 이 새끼는 뭐 이렇게 손이 많이 가.”
팀장이 핀잔을 줬다. 아니, 그게 아닌데.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팀장이 성큼 다가와 손을 뻗었다.
앞일이 보였기에 반응했다. 손을 뻗어 막고 떨구려 하는데.
팀장의 내 손목을 잡아 꺾고 목울대를 때렸다.
젠장, 이건 또 어떻게 한 거야.
“컥.”
침을 토했다.
분명 다 보였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섞였다.
기척 속이기, 감추기를 섞은 기척 흩날리기인데.
그게 너무 깔끔해서 안 보였다.
“잡스러운 기운 흘리지 마, 새끼야.”
팀장이 말했다.
두근대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팀장 손이 약손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된 감각이 가라앉는다.
“유지력이 개판이네.”
“후, 아니, 뭘 처음부터 다 잘하래.”
정신 차리고 답하니.
“지랄한다.”
팀장이 욕설을 뱉었다. 근데 왜 은근히 저 눈에 놀람이 보이는 것 같지?
뭐, 알 게 뭐람.
문을 연다는 것, 불멸자의 감각 강화, 그 강화된 감각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 * *
이중봉은 문을 여는 것, 영역을 넘는 걸 가르치며 처음 알았다.
이걸 한 번에 하는 놈이 있구나.
소위 천재라고 하는 놈들이 이걸 배우는 데 얼마나 걸리더라?
타고난 감각, 순혈 그중에서도 직계 중의 직계.
그런 놈들이 문을 열고 그 틈을 보는 데만 석 달이다.
그런데 그걸 하루 만에 끝낸다고?
하물며 처음 시작은 문을 열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감각을 조금 열어 주려 했을 뿐인데.
비유하자면, 문이 아니라 벽 앞에 문을 두고 밖에 뭐가 있나 보라고 한 거였다.
그런데.
“그냥 문 열고 나가서 보죠. 뭐.”
라고 답하더니, 나가서 돌아오질 않는다.
아니, 폭주했다.
이중봉은 이 새끼가 참 신기한 놈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지만.
“저기, 팀장님.”
“가출 청소년 같은 새끼.”
나가면 돌아와야지. 번번이 손을 쓰게 만든다.
“……그 호칭은 예상 밖이네요.”
“아, 왜?”
“효율성을 위해 투명 감옥이란 작전을 하는 건 알겠어요.”
광익이 설명을 시작했다.
머리도 좋았다.
투명 감옥을 이루는 힘은 무엇인가.
무형의 창살, 공포다.
그럼 그 공포는 어떻게 만드는가.
네 놈의 용병을 때려잡고 더블 능력자를 납치했다.
이후, 도망가는 놈이 생겼다.
루트를 파악한 건 이동훈이다.
그는 일대 지형을 파악하고 도망자의 심리를 꿰뚫어 타이밍을 쟀다.
움직인 건 강희모와 정기남이지만, 팬더의 지시가 완벽했다고 할 일이었다.
유령처럼 나타나 때려눕히고 별장 진입로에 던져둔다.
“시발, 뭐야, 뭐냐고.”
“의뢰고 뭐고! 난 갈 거야!”
“전화가 안 돼, 통신이 안 터져, 이런 개 시발.”
용병 무리가 외쳤다.
통신 마비야, 기본 중의 기본이지.
김정아는 상시 저격수의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상 상황에 대비다.
그녀가 나설 일은 없었다.
그들은 공포에 잠식됐다.
이게 바로 투명 감옥이다. 이렇게 상황을 조형하고 하나씩 끌어내 때려눕힘으로 적의 전력을 깎는 건데.
상대 반응이 너무 훌륭했다.
전부 별장 안으로 숨은 거다. 적어도 내부를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어요?”
광익이 설명 끝에 투명 감옥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말하며 놈이 오른 어깨를 휙휙 돌렸다.
핸드 캐논을 쐈던 쪽 팔이 금세 회복됐다. 괴물 새끼였다.
“박병준 박사는 자신을 노리는 집단이 있다는 걸 예상했다. 그러니까 용병을 모았다.”
“네, 그렇죠.”
이 유광익이란 새끼는 대가리가 좋아 보이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머저리 같다.
“상대의 의도를 우린 모른다.”
“에이, 다른 사람 속을 어떻게 아나요. 독심술사도 아니고. 그 독심술도 상대의 동의가 있어야 마음이 읽히는 거잖아요.”
“얘기나 끝까지 들어, 새캬.”
“네네.”
고개를 수그리며 굽신거리는 척을 하는 모습이 참으로 능글맞았다.
꿀밤을 때려 주고 싶은 태도다.
참았다. 때린다고 쉽게 맞아 줄 놈도 아니고.
때리려면 심력 소모가 꽤 크다.
본래 수준 높은 불멸자의 결투는 까다로운 법이니까.
“상대가 깔아 놓은 판이다. 그 판을 흔들어야 해, 근데 이게 흔들리는 판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겠냐?”
“엎을까요?”
“아니, 부숴야지.”
상대의 의도를 모른다. 모르기에 끌려간다? 그건 악수다.
이중봉은 악수 대신 자신만의 스타일로 판을 바꿨다. 아니, 부쉈다.
준비한 게 있다면 다 무너뜨린다. 그 뒤에 박사를 마주한다. 그게 정답이다.
“팀장님, 이건 칭찬인데요. 의외로 머리 쓰는 타입이시네요.”
광익이 말했다.
겁 없는 신입의 말에 이중봉은 계산했다.
전 대원이 모이기까지는 삼십 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정확히는 드잡이질할 여유가.
까다롭지만, 그렇다고 못 할 건 아니니까.
팀장은 감각의 문을 열고 움직였다.
신입의 궁둥이를 걷어차기 전까지는 쉴 생각이 없었다.
* * *
아니, 왜 갑자기 사람 궁둥이를 걷어차냐고.
“팀장님은 칭찬받으면 부끄러워서 사람을 때리는 그런 타입인가요?”
사수에게 물었다.
사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고체 연료를 손으로 뭉쳐 불을 피웠다.
“흥.”
그런 날 보고 기남이 코웃음을 쳤다. 어째, 기분이 좋아 보여서 놈의 궁둥이를 걷어차고 싶었다.
내가 당한 게 그리 좋더냐?
막 맞을 때, 팀원이 전부 도착했다.
팀장은 다 모인 걸 보고 말했다.
“밥 먹자. 잠도 좀 자고.”
네? 지금요?
작전 중인데?
“투명 감옥은 우리가 푹 쉬는 것도 중요해.”
그래서다. 베이스캠프로 삼은 능선 뒤쪽에 적당히 땅을 헤집고 자리를 잡았다.
우의를 깔아 궁둥이를 붙이고 고체 연료를 태워 물을 끓였다.
“안 그래도 에너지 바가 지겹긴 했습니다.”
내가 말하고 전투 식량을 뜯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5분이면 고열량 식단이 된다. 단순히 새콤달콤한 양념이 섞인 밥이지만.
먹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먹은 뒤에.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다들 좀 자 둬.”
팬더 대리가 말했다.
사양하지 않고 적당히 눈을 감고 숙면을 취했다.
일어나니, 아직도 밝았다.
오후 6시인데, 해가 길어지긴 했네.
“별도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팬더 대리가 보고했고.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올 거 없겠지?”
팀장이 물었다. 팬더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옥 열쇠 돌리시죠.”
귀를 기울이고 있자, 사수가 옆에서 설명을 거들었다.
“투명 감옥은 이쪽이 약한 놈들에게 통해.”
말하며 자신의 심장 어림을 손가락을 눌렀다. 푹- 하고 손가락이 옷 위로 들어갔다.
“네.”
안다. 공포로 잠식되는 건, 정신력 부족이다. 제대로 훈련받은 불멸특수대라면 결코 이렇게 몰리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 안쪽 상황을 통제하는 건 블루 트윈스 용병이겠지.
놈들도 프로 수준이니까.
“감옥의 문을 열면 죄수는 어떻게 할까? 간수를 죽일까?”
사수가 설명을 이어 갔다.
“그걸 설명해야 아나. 흥.”
질투에 눈이 먼 기남이 말했다. 사수와 나의 정다운 투 샷이 보기 싫었나 보다.
그게 아니며 우리 기남이 내 손길이 그리운 거니? 그런 거니?
난 일어나며 기남의 무릎을 향해 태클을 걸었다.
“이 미친!”
기남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앵클락을 건다.
“야, 유광익.”
강희모 대리가 날 불렀다.
“네, 2급 사원 유광익. 대리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오후네요.”
밝게 대답하며 생긋 웃었다.
고개를 돌리니, 기남이 불길이 이는 눈으로 날 노려봤다.
아파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눈빛은 살았네.
증오가 느껴졌다. 이건 불호 수준이 아니다.
관절기를 풀었다.
이대로 두면 어디 한 군데 망가진다. 얘는 빨리 낫지도 않으니까.
풀고 물러나며 말했다.
“스트레칭시켜 준 거예요.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아서.”
“……퍽이나.”
팬더 대리가 말했다.
아니, 한 2%는 진심이었는데.
“작전 끝나고 보자, 개자식아.”
기남은 어른이었다. 일하는 와중에는 참을 줄 알았다.
난 아직 애였다.
“싫은데? 도망 다닐 건데, 가출할 거야. 너 때문이라고 편지 써야지.”
까드득.
자식이 어금니를 갈았다. 눈에서는 광선을 뿜어냈다. 광학무기 따위 개발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기남이 눈에 광학무기가 있었다.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저리 화내는 기남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럼.”
팀장이 입을 연다. 모두 그를 바라봤다.
“가자.”
우리는 움직였다.
산등성이를 타고 측면을 타고 올라가, 그 옆으로 썰매 타듯 내려왔다.
별장 앞에 선 팀장이 몸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고 말했다.
“파란 짝꿍 애들아, 얼굴 좀 보자.”
“영어로 해야죠.”
팬더 대리가 말했다.
팀장은 머더 퍼커로 시작하는 욕 몇 마디를 찰지게 꽂았다.
발음이 매우 훌륭했다.
저번 프로메테우스의 따란따도를 보고 느낀 건데.
외국어는 욕부터 배우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말에 흑인 남자가 먼저 나왔다. 정장 바지에 셔츠 차림이 인상적이었다.
전장에 정장을 입고 나선 셈이니까.
그 뒤에는 반대로 뚱뚱한 슈트 아머를 입은 놈이 나왔다.
슈트 아머는 흰색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드립이 떠올라 중얼거렸다.
“흑백쌍마.”
저런 구도 무협지에서 많이 봤다.
“좀 닥쳐라.”
강희모 대리가 드물게 화를 냈다.
“니들이었냐?”
슈트 아머 백인이 물었다. 물론 영어였다.
“다 나와.”
답하기도 전에 흑인 놈이 이어 외치자, 내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용병 무리가 쭈뼛쭈뼛 총 따위를 들고 우리를 겨누며 나왔다.
팀장은 그걸 쭉 둘러보고 말했다.
“경고한다. 난 불멸특수대 소속, 이중봉이다. 지금부터 이곳은 불멸특수대 작전 구역이다. 살고 싶다면 5분 내로 지역을 이탈해라. 이건 경고다. 다시 한번 말한다. 5분 내로 지역을 이탈해라.”
투명 감옥 작전의 핵심이다. 쓸데없는, 비효율적인 전투를 피하는 것.
감옥의 문을 여는 거다.
지금 팀장이 감옥의 문을 열었다.
고로, 저들에게 살길을 열어 줬다.
그동안 우리한테 당한 이들의 숫자는 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심은 공포는 달랐다.
“……그냥 가도 된다고?”
용병 하나가 중얼거리다가 슬쩍 발을 떼자, 흑인 놈이 칼에 손을 올렸다.
움직이면 저놈이 칼로 용병의 목을 벨 거다. 살기가 감돌았다. 움직이려던 용병도 반사적으로 발을 도로 붙였다.
그걸 본 팀장이 말했다.
“뼝아리.”
“남들이 듣습니다.”
이런 때는 제대로 좀 불러 주지.
“가서 저거 잡아 와.”
팀장이 명령했다. 작전 지휘자로서의 명령, 난 그 말에 따라야 했다.
툭툭 걸어 나가며 흑인 친구에게 친근하게 말했다.
“헤이, 난 인종차별을 하지 않아. 초콜릿같이 생긴 친구.”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니까.
싸울 상대라고 해서 꼭 미워하란 법은 없다.
난 부드러운 태도와 귀여운 별명을 붙이며 말을 걸었는데.
“뭐 이 새끼야? 이 애미 없는 새끼가.”
그런데 이 새끼가 대뜸 밑도 끝도 없이 패드립이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영어라 잘 못 알아들었나.
뒤를 돌아봤다.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사수가 말했다. 아니, 이 새끼가.
“뭐 이 새끼야?”
아무리 천사 같은 나라도 이건 참기 힘들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게임 하다 보면 패드립 치는 개자식들이 많았다.
그동안 난 수없이 다짐했다.
오프라인에서 그런 놈, 한 놈이라도 만나면 진짜 자근자근 조져 놓겠다고.
“덤벼, 깜둥아.”
내가 말했다.
깜둥이가 총을 들었다. 나도 총을 들었다.
기관단총의 총구와 소총의 총구가 엇갈려 서로를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