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판을 흔들 수 없다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
그 모든 걸 총합으로 기척을 읽고 의도를 파악한다.
이건 모든 불멸자가 가진 기초적인 전투법이었다.
그중에 격차가 있을 뿐.
강희모는 새삼 재능의 차이를 느꼈다.
예전 1세대 불멸자 무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감각은 단련할 수 있다.”
맞다. 강희모도 그렇게 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재생력의 향상을 위해 육체를 단련하고 감각을 갈고 닦았다.
그 노력의 시간.
그 각고(刻苦)의 노력.
‘의미 없었을까.’
강희모는 생각과 동시에 잊었다. 작전 중이었다. 그는 베테랑이었다.
지금은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정기남은 눈을 반개한 채로 홀로그램을 띄우며 말했다.
“여기, 여기, 여깁니다.”
반경 100m 이내에 모든 적을 감지한다. 볼수록 놀라운 재능이었다.
순혈, 그중에서도 혈통을 타고난 자의 감지력이다.
예민함을 타고난 가문의 피, 자신에게는 없는 혈통의 힘이다.
“기척 죽이기로 접근, 근접전으로 갈 테니, 후위를.”
“네.”
간단한 작전 수립 이후, 둘은 내달렸다.
첫 번째 포인트에 다가갔을 때, 혼탁한 피를 가진 불멸자 하나가 보였다.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다른 용병도.
둘이 어떤 특수종인지는 알 필요도 없었다. 강희모는 나이프 두 자루를 꺼내 엎드린 저격수 위를 덮치듯 엎드리며 목을 긋고, 반대쪽 나이프를 졸던 놈의 심장 어림을 노리고 던졌다.
서걱, 푹.
“……어?”
심장이 찔린 놈이 입을 열고 눈을 깜빡였다.
막 뭐라 외치려던 놈의 뒤에서 갈색 장갑이 나타나 입을 막았다.
기남의 손이었다.
그걸 보며 강희모는 생각했다.
‘어설프군.’
아무리 돈 몇 푼에 팔려 온 용병이라지만, 수준이 너무 낮았다.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다만, 상대의 의도가 궁금하긴 했다. 돈을 써서 머릿수를 늘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다. 가진 정보가 너무 적었다. 박병준 박사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세 군데, 저격 포인트를 처리한 뒤다.
둘 다 땀에 흠뻑 젖었다.
페이스 가드를 올린 기남이 숨을 몰아쉬었다.
강희모도 마찬가지였다.
체력에 딱히 자신이 없는 쪽은 아니지만, 어제부터 지금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꽤 무리했다.
불멸자의 육신은 기본적으로 일반종과 비슷하다고 봐야 했다.
재생력을 제외하면 특수전을 대비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게 보면 광익이 자식이 특이한 거지.’
지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물러서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을 향해 농담과 장난도 멈추지 않는다.
이 작전의 베이스캠프인 능선을 탈 때도 흙과 부러진 나무를 던진 것도 일종의 장난이었을 거다.
‘그런 것치고는 과하긴 했지.’
어지간한 불멸자였다면 굴러떨어졌을 것이다.
그 생각이 나니 픽 웃음이 나왔다.
웃음과 함께 눈앞에 등이 보였다.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예민해진 감각을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리는 광익의 동기다.
“정기남 씨.”
“네.”
“유광익은 왜 싫어해?”
호기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달아오른 긴장감을 풀기 위한 거였다.
겸사겸사, 적당히 궁금하기도 했고.
광익과 기남의 관계는 회사 내 모두가 안다.
철천지원수와도 같았다. 대부분 회사 동료는 기남이 지각하는 이유도 알았다.
정확히는 우미호가 둘의 대화와 기남의 출근 시간, 둘이 같은 집에서 산 이후 일어난 일이라는 정황을 갖고 알아낸 거지만.
이뿐 아니라, 테스트 대련 때도 기남이 호되게 당한 것도 알았다.
그 원한인가?
“태도가 마음에 안 듭니다.”
“태도?”
“너무 가볍습니다. 진지하지 않습니다. 혼혈 주제에…… 운이 좋은 놈이니까요.”
실력은 자기보다 뛰어나다. 순혈의 혈통을 이은 자신보다, 라는 말이 중간에 빠졌다.
강희모는 기남이 광익을 싫어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았다.
자신이 기남을 멀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질투, 질시, 그리고 동경.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봤을 때 드는 감정이다.
순혈의 혈통임에도 그렇다. 그걸 인지한 순간, 강희모는 기남과 자신을 겹쳐 봤다.
‘노력 없는 대가는 없다.’
순혈을 타고났다고 놀고먹지는 않았을 거다.
기남도 각고의 노력을 했다.
자신과 같다. 그러하기에 혼혈인데도 불멸자의 특성을 짙게 타고난 광익을 질시한다.
기남도 알 것이다. 유광익이란 놈이 그냥 운만 타고난 놈은 아니란 걸.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리 쉽게 움직이던가.
“그리고 저 유광익 싫어하지 않습니다.”
기남이 말했다.
겉으로만 그런 거고, 속으로는 우정 비슷한 게 있는 걸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자, 기남이 말했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증오합니다.”
증오, 사무치게 미워하는 마음.
국어사전에 그리 쓰인 단어다.
* * *
“프로의 솜씨다.”
자이언이 말했다.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 셔츠 한 장에 슬랙스 팬츠, 로퍼를 신고 허리춤에는 두툼한 칼날의 칼을 차고 어깨에는 소총을 걸었다.
전체적으로 언밸런스한 차림이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이언은 블루 트윈스 용병 중 하나이자, 박병준 박사가 모은 핵심 전력이었다.
“둘이다. 치고 빠졌고.”
다른 용병이 입을 열었다.
한쪽 눈에 금속 안대를 차고 몸에는 두툼한 아머 슈트를 입었다.
불편해 보이는 차림이지만, 본인한테는 익숙해 보였다.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였고.
이름은 에이저, 블루 트윈스 소속이었다.
이곳에 온 블루 트윈스 용병은 총 셋이었다.
한 명은 박병준 박사의 밀착 경호 중이었기에 둘만 이곳에 나왔다.
“여섯이나 당했네.”
자이언이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저격 포인트는 총 세 곳이었다. 여섯이 전부 죽었다. 깔끔한 솜씨였다.
“경계 서던 셋도, 진입로 함정도 부서졌고.”
“그 애미 없는 포탄도 있었지.”
자이언이 씹어뱉듯 말했다.
갑자기 벽을 부수는 포탄이라니.
보통 무식한 놈들이 아니지 않나.
박격포 종류는 아니었다.
가끔 그런 무기를 쓰는 놈들이 있었다.
흔히 분류하길 핸드 캐논, 손 대포라는 물건이다.
“무식한 무기지.”
에이저가 말하며 생각했다.
분명 변신족이리라.
“한국 최고의 용병이란 새끼가 화살 한 대 맞고 튀어? 병신 새끼, 나가 뒈져 버리지.”
사고 과정이 정면을 침입한 놈들을 쫓는 곳까지 흘러갔는지, 자이언이 불만을 토했다.
“넌 다른 용병 앞에서는 입 다물어라. 사기 떨어진다.”
에이저가 말했다. 자이언의 입은 재앙이었다.
“떨어질 사기가 있어? 어제 그 일로 다들 엄마 찾아 난리잖아.”
말하며 자이언이 죽은 용병의 몸을 발로 걷어찼다.
퍽, 우둑. 시신의 갈비뼈가 부러져 튀어나왔다. 이미 죽어 굳어 버린 시신이지만, 발길질 한 방에 뼈가 부러져 피부를 뚫고 나왔다.
완력이 보통 이상이었다.
“언제까지 우리 둘 눈을 피할 순 없을 거다.”
에이저가 말했다.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고민할 건 아니었다.
모르면 잡아서 족치면 된다. 이런 짓을 했다는 건 다시 덤빈다는 거다.
그럼 기다렸다가 잡으면 그만이었다.
“잡히면 엄마 찾아서 울게 해 줄 거다.”
자이언이 슬랭을 섞은 욕을 뱉었다. 에이저는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그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릴 생각도 없었다.
한 방 먹었다. 이런 짓을 한 놈들의 낯짝을 보고 싶었다.
“돌아가자.”
저격 포인트는 포기였다. 할 수 있다면 기관총 사수를 노린 활쟁이 놈도 잡고 싶었지만.
‘함정이겠지.’
쫓으려면 숫자를 나눠야 한다. 그럼 역으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에이저는 냉정했다.
그렇게 다시 별장이자, 요새로 돌아오자.
“……이런 애미 없는 새끼가.”
자이언이 진심을 담아 분노를 표출했다.
에이저의 눈썹도 파르르 떨렸다.
“당했습니다.”
남은 한국 용병이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총알 한 발 없이, 팔다리가 잘린 부상자 넷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용병 넷이 잘린 부위를 잡고 끙끙거리며 신음을 삼킨다. 자이언과 에이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경계심이 가득한 용병 넷을 빈사 상태로 만든 거다.
그래놓고 죽이진 않았다.
마음이 약해서? 아니다.
일부러 짐 덩이로 놔둔 거다.
그렇다고 죽여? 그러기에는 보는 눈이 많다. 능력이 없다고 해도 이들은 훌륭한 고기 방패가 될 것이다.
“그 더블은?”
더블은 초능 특수종 중에서 드물게 두 개의 능력을 타고난 이들을 말함이다. 그 작자가 바로 부유와 염동을 갖춘, 자칭 한국 최고의 용병이란 놈이었는데.
“저, 그게…….”
어이쿠, 지랄하네.
설명을 들은 에이저는 속으로 욕설을 뱉고 말았다.
당한 건 넷이 아니라 다섯이었다. 한 놈은 아예 잡혀갔다.
“시발, 뭐야 이 새끼.”
자이언이 말했다. 그걸 들으며 에이저는 생각했다.
프로 수준의 일 처리 솜씨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 타이밍은 프로 수준이 아니라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냥 무작정 시간차로 공격한 게 아니다. 빈틈을 제대로 쑤셨다.
어설픈 명령 체계, 개별 전투력의 빈약함.
거기에 자신 둘이 자리를 비운 것도 노렸다.
에이저는 주변을 돌아봤다. 겁에 질린 용병 무리가 보였다. 놔두면 오늘 밤에 당장 제 무장만 챙기고 도망갈 것이다.
지금도 눈치를 힐끔힐끔 보는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에이저는 최악의 상황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안으로 들어간다. 지금부터 요새 안에서 방어를 굳힌다. 아무도 나가지 마.”
“또 오면?”
“그때는 우리가 나선다.”
안심하라고 한 말이다. 한국 용병 중 그나마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 말을 전했다.
용병 무리가 둘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갔다.
듣지 않으면 자이언을 시켜서 몇 놈 목이라도 부러뜨릴 참이었다. 공포는 더 큰 공포로 눌러야 하는 법이었다.
‘뭐 하는 새끼인지 얼굴이나 보자.’
에이저는 이 개자식들을 마주하길 고대했다.
* * *
난 부목을 대고 부상을 살폈다.
움직이는 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부목도 몇 시간 뒤에 떼면 그만이었다.
그것보다는 이런 무식한 무기를 소드 오프 형태로 만든 것에 감탄할 뿐이다.
“좀 과했죠?”
물으며 팀장을 바라봤다.
그는 정면 돌파를 하지 않았다.
시늉만 했다.
대신 잠입 액션을 택했다.
정면에 시선을 끌고 시간을 투자해 하나씩 하나씩 각개격파한다는 거다.
그게 작전 개요였다.
“뭔가 되게, 얍삽하네요.”
감상을 전하자.
“효율성은 모든 작전의 기초다. 뼝아리, 새끼야.”
팀장이 내 부목을 고쳐서 고정해 줬다. 기분이 묘했다. 근데 어째 너무 단단히 묶는 것 같은데.
지금은 한숨 돌릴 타이밍이고, 어차피 쉴 건데, 당장 전투에 뛰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고정했다.
“그럼 출발.”
팀장이 말했다.
“어딜요?”
“다시 가야지.”
“그러니까 어딜요?”
“어디겠냐, 시발.”
어디긴 어디겠나, 다시 적진 침투였다.
“야, 뼝아리. 그 총 쓰고 싶으면 자세 똑바로 잡아. 아니면 팔 다 작살난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욱신거리는 중입니다.
“네.”
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까와는 반대였다. 기척 죽이기로 잠입한다. 모습을 감추고 기척을 숨기고 측면을 파고들었다.
용병 무리는 한바탕 난리가 난 뒤라 경계심이 높아, 다들 무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팀장의 기척 죽이기는 일품이었다.
그는 아침 햇살이 주는 그림자를 이용해 하나씩 목을 조르고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도 부스럭거리는 소리 외에는 소음이 없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소리를 내는 정도, 상대의 사각을 이용해 움직이는 경로, 고개를 돌리는 용병을 따라 움직임으로 생기는 사각을 이용, 자연히 팀장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어떻게 저게 되지?
아무리 기척 죽이기가 훌륭해도 시야에 보이면 인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팀장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팀장은 두 놈을 잡았고 죽이는 대신 기절시키고 팔다리를 잘랐다.
지혈도 해 줬다.
두 놈을 제압하고 돌아온 팀장이 말했다.
“약 빨아.”
“네?”
“모든 게 다 손에 잡히듯 보이는 감각, 그걸 보통 문을 열었다고 한다.”
“네?”
“이번에는 약 빨고 문 연다.”
아까의 경험, 쉬이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스포츠 선수가 한순간 존에 들어가는 것.
악기 연주자 심취해 일어나는 일.
그런 감각의 일종이라고 느꼈다.
“마음은 평온하게.”
팀장이 말했다.
그게 마음처럼 되는 거였나.
“그걸 여는 건 기초야. 그것도 못 하면 넌 평생 내 얼굴에 손가락 하나 못 댄다.”
도발에 약한 건 내 약점이었다.
난 전투 뽕을 팔뚝에 꽂았다.
전용 인젝션을 통해 약물이 혈관을 타고 들어가 치달렸다.
오딘의 축복이라는 전투 뽕은 불멸자의 평균 능력치를 올려준다. 마인드와 피지컬 칵테일 양면을 전부 커버하는 약이다.
심장이 뛰고 감각이 평소보다 예민해진다. 근육 하나하나가 몸 안에서 느껴졌다.
감각의 확장, 그와 동시에 아까의 경험을 끌어낸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
그 햇볕에도 소리가 있다.
공기에도 색깔이 있다.
오감이 서로의 영역을 넘어선다. 아까의 상태다.
“그걸 문을 연다고 말하는 거다.”
팀장이 말을 이었다.
“두 놈, 내가 한 일 그대로 해 봐.”
아까 팀장이 한 일, 두 명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그걸 해냈다.
이건 일종의 트레이닝이었다. 그리고 지금 난 팀장의 가르침을 몸에 때려 박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