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투명 감옥
“쏴, 쏴!”
타다다당!
총알이 쏟아졌다.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총구를 보고 좌우로 뛴다. 위에서 본다면 마구잡이로 뛰는 것 같지만, 정확히 총구 방향의 사각으로 움직였다.
“터트려!”
용병 하나가 외쳤다.
그 말과 동시에 땅 밑에 삐죽 솟은 쇳덩이가 보였다. 둥근 부분이 배불뚝이처럼 솟은 폭발물이자, 지뢰다.
진입로가 끝나는 시점에 만든 마지막 함정, 클레이모어다.
수백 개의 쇠 구슬이 몸을 걸레로 만드는 무기, 지향성 산탄 지뢰.
C4 폭약을 수동으로 터트리는 구조다.
그러므로 경계조 저 둘 위에도 진입로의 정면 돌파도 어느 정도 대비했다는 말이다.
앞에서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무자비한 파편, 쇠 구슬이 덮칠 것이다.
그런데도 난 걱정되지 않았다.
동이 터 등을 따스하게 만드는 적당한 기온.
산속 특유의 풋풋하고 상쾌한 공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너무 잘 보이고.
코를 통해 갖가지 냄새가 뇌를 즐겁게 한다.
혀를 통해 공기의 맛이 느껴졌고.
방검방탄복과 방탄 헬멧의 감촉이 생생하게 날 감쌌다.
워밍업이 잘된 근육이 적당히 꿈틀거리고, 신경 다발 하나하나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움직였다.
땀 한 방울 한 방울, 등을 타고 흐르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적당한 긴장과 고양된 정신이 불가능의 영역을 엿봤다.
난 미래를 봤다.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걸 눈으로 보고 피할 순 없었다.
더없이 예민한 오감이 육감의 영역으로 나아가 번개 치듯 상황을 미리 보여 줬다.
정면에서 약간 사선으로 쏟아지는 폭발의 여파, 그로 인해 예상되는 쇠 구슬이 날아드는 각도.
모든 정보가 한순간에 머릿속을 휘저었다.
난 터지기 직전, 가장 합리적인 행동을 취했다.
4번 타자를 뽑으며 엎드리듯 자세를 낮췄다.
아다만티움은 C4 폭심지 한가운데 던져 놔도 그을음만 생길 뿐이다.
고로, 최고의 방패다.
오른손에 비스듬히 4번 타자를 들어 기울이고 방탄 헬멧을 벗어 왼손에 들었다.
양손을 앞으로 내밀고 엎드린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당! 꽈과광!
쇠 구슬이 내가 만든 방패를 때렸다. 몸이 뒤로 밀린다. 충격이 전신을 뒤흔든다. 그와 함께 지뢰 몇 개가 발동해 터지며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지뢰 몇 개는 압력식이 아니라 충격식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폭연이 날 감쌌다.
* * *
“별 미친 새끼들 다 보겠네.”
격발 장치를 누른 용병이 다가오며 말했다. 턱이 삐죽 솟아 주걱턱을 가진 놈이었다.
그 용병이 경계를 서는 두 놈을 보고 물었다.
“몇 명이나 왔는데? 분대급이야? 시발, 여기에 왜 이런 걸 심나 했더니, 쳐들어오는 놈이 있긴 하네.”
의뢰인의 요구로 만든 함정이었다.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미쳤다고 용병한테 헛돈 쓰겠냐? 둘.”
경계하는 용병 중 하나가 말했다.
“둘?”
주걱턱이 되물었다.
“둘.”
“미쳤나, 이 새끼들이. 겨우 두 명이면 걍 쏴 죽여야지.”
그러려고 했다. 근데 쏴도 안 맞는다. 아니, 몇 발은 맞추기도 한 것 같은데, 모르겠다.
엉겁결에 총알을 갈겼다.
“넌 못 봐서 그래.”
경계 서던 다른 용병 하나가 말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헬멧 밖으로 삐져나온 놈이었다.
말한 놈이 쓱 하고 목덜미를 닦았다. 끈적한 땀이 묻어나왔다.
보는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오밤중에 유령을 마주친 기분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섬뜩하다. 칼날이 목에 닿거나, 총구가 머리를 겨누고 있을 때나 느낄 법한 위협, 그런 걸 느꼈다.
“염병, 됐어. 그게 니들 돈이냐?”
“대장한테 보고는 해야지.”
투덕투덕 말을 나누다 말고 주걱턱 용병이 뒤로 돌아섰을 때다.
“야, 야, 야!”
덥수룩한 머리카락의 용병이 손가락 대신 총구로 폭연이 가득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폭발과 함께 회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 그 사이로 그림자 두 개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확 하고 연기를 뚫고 나온 둘이 셋과 마주했다.
클레이모어와 지뢰의 폭발 속에서 사지 멀쩡히 걸어 나온 둘이었다.
“그걸…… 살았네?”
주걱턱 용병 하나가 혼잣말을 뱉었다.
“그럼 죽을 줄 알았냐?”
그리고 둘 중, 불멸자가 분명한 외모의 남자가 말했다.
* * *
팀장은 보통 얌생이가 아니었다. 클레이모어가 터지는 순간, 내 뒤로 쏙 숨었다.
경사로였으니, 내 뒤에 숨는 것만으로 그는 폭격 범위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내 팔뚝에는 쇠 구슬이 몇 개 구멍을 만들었는데, 팀장은 멀쩡했다.
“지혈 잘해라. 피 흘려서 쟤들한테 잡히면 안 구할 거다.”
안 그래도 팔뚝을 눌러 피를 멎게 했다. 불멸자의 재생력은 체력과 비례한다. 거기에 넓은 상처가 아니라 좁은 상처는 회복에 더 유리할 뿐.
여전히 적당한 긴장감이 전신을 감쌌다.
팀장이 얌생이든, 잔소리를 퍼붓든.
상관없었다.
고양된 감정, 평온을 가장한 흥분.
모든 것을 담아 눈앞에 있는 적을 바라봤다.
“가라, 뼝아리.”
얌생이 팀장이 말했다.
툭툭, 가볍게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었다.
세 명의 총구가 날 향했다. 노리쇠가 전진 후퇴를 거듭하고 공이가 뇌관을 때린다. 화약이 담긴 탄에서 총알만이 불꽃과 함께 뿜어져 나와 날아온다.
총알은 어떻게 피하는가.
사선에 서 있지 않으면 된다.
그 사선은 어떻게 보는가.
총구에서 일직선이다.
무수히 많은 선이, 허공에 그려지고 그 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선다.
총기 격발음이 시끄럽게 귓가를 때렸다.
난 총알을 피하며 들고 있는 기관단총을 들어 단발로 쐈다.
탕, 탕, 탕.
내가 쏜 세 발의 탄은 상대의 오른쪽 어깨 위를 때렸다.
방탄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충격은 남는다. 그 충격을 견디려면 최소 변신족 정도의 튼튼한 몸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용병.
이 사회에서 도태된 하이에나.
혼혈 그중에서도 반을 이으면 하프라고 하고 그보다 더 옅게 피를 이으면 쿼터라고 한다.
하프나 쿼터라고 무조건 도태되진 않는다. 일반인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가진 바 재능이 남달라 혈통의 힘을 뛰어넘는 일도 있다.
사수 또한 특수종이 아닌 비약 인간의 힘으로 불멸특수대의 일원이 됐으니까.
그래도 이들은 아니다.
셋 중 둘의 눈이 흐릿하게 변한다.
용병 중에는 어설픈 변신족 혼혈이 많다고 했다.
과거, 본능을 추스르지 못한 변신족의 사회 문제가 대두됐을 때 태어난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불쌍한가? 동정해야 할까?
아니, 꼭 그렇진 않았다.
약강강약,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습성으로 이제까지 살아남았겠지.
그럼 이들에게 내릴 벌은 무엇인가.
인베이더가 판치는 세상에서 미약한 힘이라도 제대로 쓰지 못한 이들에게 내릴 벌.
어깨를 맞은 놈 중 하나는 다시 총을 들지 못했지만, 나머지 둘은 총구를 들었다.
혼혈 불멸 하나에 변신 둘.
셋 다 쿼터 이하.
머리는 자연히 정보를 취합하고 합리적인 방식의 전투 형태를 그렸다.
아니, 저 뒤에 용병 무리가 더 있다.
이왕 정면 돌파, 싸울 거라면.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 줌이 옳을 것이다.
기관단총을 손에서 놓고 4번 타자를 뽑았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소드 오프 샷건.
하지만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만들고, 탄피도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괴물 같은 완력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총.
꺼내고 툭툭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보다 정확도가 떨어진 사격이다. 피하는 건 더 쉬웠다.
대략 열 걸음 안쪽까지 자리 잡은 뒤, 4번 타자를 겨눴다.
산탄총이라고 했으니 피격 범위는 더 넓을 것이다.
쏘자, 저 세 명의 전신에 피 구멍을 만들자. 방아쇠를 당겼다.
꽈-앙.
얼굴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진 줄 알았다.
방아쇠를 당긴 것과 동시에 오른쪽 고막이 찢어진 것 같았고.
어깨가 뒤로 빠지며 팔뚝 뼈에 금이 갔다. 무리한 반탄력을 잡은 대가로 오른팔 전완근이 찢어졌다. 인대도 박살 난 것 같았다.
발도 바닥에서 떠서 뒤로 날아갔고.
내가 쏜 탄환이, 산탄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날아간 탄이 뒤쪽 요새 건물을 때렸다. 아니. 때려 부쉈다.
벽 한가운데에 주먹 두 개만 한 구멍이 생겼고, 충격파가 터지며 벽에 짜르르 금이 갔다.
쩌적, 쩌적.
금이 간 벽이 우르르 무너졌다.
안쪽이 훤히 보였다. 무장을 준비하던 용병 병력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탄은 피했는지, 피떡이 된 사람은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용병 하나의 오른쪽 옆구리를 누가 한 움큼 뜯어갔다.
이 누나가 진짜.
“여기서 사격하면 안 된다. 쏴 보면 정말 재밌을걸? 어지간하면 양손으로 쥐고 쏘고.”
실험실의 큰 누님이 했던 말이다.
총구가 좀 넓고 크다 싶긴 했다.
이건 산탄이 아니라 포탄이지.
내 완력을 믿고 한쪽 팔로 쐈다가 팔도 작살났다.
“어, 나 소리가 안 들려.”
바닥에 널브러진 용병 한 명이 양쪽 귀에서 피를 흘리며 말했다.
나도 순간적으로 감각을 차단하긴 했는데, 오른쪽으로 소리가 안 들린다.
“이런 무식한 새끼가.”
팀장이 뒤에서 말했다.
아니, 나도 몰랐다고.
고양된 감각이 가라앉았다.
“이거, 처음 쏴 보거든요.”
수줍어서 핑계를 댔다.
어쨌든 선전포고는 한 거 아닌가.
자, 그럼 이제부터는 팀장의 실력을 볼 차례다.
나도 멀쩡한 왼팔로 총을 수납하고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내가 상정한 전장은 우리 쪽 전투 가용 인원이 전부 모이는 거였다.
하지만 팀장은 나와 단둘만 왔다.
계획은 다 있을 터였다.
인간성은 좀 그래도 난 팀장의 능력을 믿었다.
그 팀장이 말했다.
“튄다.”
“……네?”
“튄다고.”
막 용병 무리가 정신을 차리고 도로 나오는 게 보였다.
그중에 허공을 나는 놈도 있었다.
초능 특수종이네
“튀어. 새캬.”
팀장이 내 목덜미를 끌었다.
끌리며 몸을 반전, 나도 내 발로 뛰었다.
“뭐 하는 겁니까? 정면 돌파하자면서요.”
“내가 언제?”
“아니, 시……베리안 허스키.”
욕할 뻔했다. 내가 급히 말을 이었다.
“나보고 의견 말하라면서요.”
“의견 말하랬지, 누가 네 말대로 한데?”
“그럼 여긴 왜 왔는데요?”
굳이 작전 시간까지 정해서 정면으로 짓쳐들어간 이유는?
“자물쇠를 채웠지.”
이게 무슨 개소리야.
멍멍이라고 짖어 볼까? 지금 그런 도발을 해도 될까?
“내 밑에 있는 어떤 미친 또라이가 포탄을 날리지만 않았으면 그게 전부였지. 대가리.”
팀장이 말함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머리 위로 슝 하고 단창이 날아갔다.
뭐야? 뒤를 슬쩍 보니 허공을 부유하는 초능 특수종 뒤에서 같은 모양의 단창 여러 개가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부유 능력자가 아니고 염동력자네요.”
내가 말했다.
“아니, 더블이다. 이 새끼 감각 안 세워? 이런 것도 알려 주랴? 시발, 요즘 신입은 빠져가지고.”
이 양반아. 아까의 고양감이 사라지니까 오히려 적응이 안 된단 말이다.
“팀장님, 이런 상황에서 물을 말은 아닌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서 숨도 안 쉬고 말을 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발 하면서 태어났어요?”
“이 새끼가 돌았나.”
팀장에게 말하고 다리에 힘을 줬다.
불멸자의 힘이 아니라 변신족의 대퇴부다.
아잣.
힘을 줘 땅을 박차니, 주변 풍광이 빠르게 뒤로 스쳤다.
“계속, 쫓을 것 같은데요?”
뛰어가며 말하니.
“그러다 뒈진다.”
아니, 사람이야, 밴댕이야, 과거의 일은 이제 묻어 둬야지.
1분 전도 과거는 과거잖아.
퍽.
머리 뒤에서 들린 소리였다. 정확히는 오감으로 파악하고 있던 적의 위치에서 들린 소리.
뒤를 돌아보니, 허공에 뜬 놈의 어깨에 화살이 박힌 게 보였다.
“끄윽, 쫓지 마! 그만! 저격수가 있다.”
화살이었다.
그러니까, 사수의 화살이었다.
시선을 밑으로 돌렸다.
“그러다 뒈진다니까.”
팀장의 목소리와 함께 악귀나찰로 변한 얼굴이 보였다.
“네, 저 친구는 그래서 그만 쫓아오려나 봐요.”
난 말하면서 발을 더 재게 놀렸다.
그렇게 적의 추격을 뿌리친 뒤였다.
“후, 이제 어떻게 해요?”
내가 물었다.
“널 죽이고 생각해 볼 참이다.”
팀장이 농담을 건넸다.
“에이, 참 농담도.”
“농담?”
진담 같이 말하지 마쇼. 사람 쫄리게.
묵묵히 몇 걸음 물러나자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의 이름은 인비저블 재일, 투명 감옥이다.”
“그렇게 말하고 유인하려는 겁니까? 안 잡힐 겁니다.”
흥미롭지만, 속지 않겠다.
귀만 쫑긋 세웠다. 팀장이 세상 제일가는 병신을 본 표정을 지었다.
한심한 새끼.
모자란 놈.
공사 구분 못 하는 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
단숨에 몇 가지 말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네, 투명 감옥. 귀를 활짝 열겠습니다.”
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성격 나쁜 우리 팀장님은 드물게 용서와 같은 제스처를 보였다.
별말 없이 설명을 시작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