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페어
후속으로 온 시발 팀장은 험비를 몰고 왔고 한 차에 팬더 대리와 사수, 기남이가 함께였다.
“함정과 기관총, 특수종으로 추정되는 전투 가용 인원 사십, 그 외 전력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강희모 대리가 정찰 결과를 말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분석팀 에이스.”
이 작자는 나한테만 칭찬이 박하다.
“아니요. 광익이가 한 겁니다.”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시발, 뭐, 딱 보면 아는 건데 뭘 대단한 일 했다고.”
말이 변했다.
이중적인 인간이다.
“잘했어.”
사수가 뒤에서 다가와 톡톡 어깨를 두드려 줬다.
잘한 건가.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한 건데.
보였고 느꼈고 이해했다. 그래서 말했을 뿐이다.
“꽤 많네. 이 작자는 무슨 꿍꿍이야.”
팬더 대리가 손목 위로 홀로그램을 띄운 채로 중얼거렸다.
사수는 쌍안경을 들었고 팀장은 말없이 목표 지점을 바라봤다.
난 기남에게 다가갔다.
“장난 아니지?”
“말 걸지 마라.”
장족의 발전이다. 처음에는 대답도 안 하던 놈이 이제는 말도 곧잘 하니까.
역시 스킨십이 중요한 법이다.
걸핏하면 목 조르고 주먹과 얼굴을 맞닿게 하니, 이렇게 친해지는걸.
나중에 귀태 형한테 말해 줘야지.
미호를 꼬시려면 일단 싸움을 잘해야 한다고.
“우리 팀장님. 장난 아니잖아. 다 안다.”
난 동기끼리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타인을 욕하며 우리 서로 공감대를 쌓아 보지 않으련?
“재수 없는 새끼.”
내 제안을 기남이 거절했다. 그 표정에 떠오른 경멸과 혐오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새파란 새벽이다. 해가 뜨면 흰 구름으로 보이겠지만, 아직은 거뭇거뭇한 그림자로 보이는 구름 사이로 아버지의 잔상이 보였다.
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사람을 죽여도 될까요? 동기고 아는 얼굴이지만, 갑자기 살의가 끓어올라서요.
가상의 아버지가 답했다.
“안 돼.”
네, 알겠습니다.
“오래 살아라.”
그래, 죽일 순 없지.
난 아량이 넓은 사람이기에 덕담을 건넸다.
기남이 그런 날 노려봤다.
그런 기남에게 혀를 보여 줬다. 백태가 끼지 않도록 깨끗이 관리하는 게 장수의 비결임을 알려 줄 셈이었다.
그런데 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덤빌 거면 덤비든가.
“여기서 싸우면 둘 다 징계다.”
강희모 대리가 그걸 보고 말했다.
기남이 훽 하고 고개를 돌렸다. 토라진 여자친구 같았다.
시선을 돌리니, 팬더 대리는 홀로그램에 요새 지도와 주변 지형을 살피는 중이었고.
사수는 스코프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팀장은 그사이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알싸한 향이 일행 사이사이로 퍼졌다.
“뼝아리, 의견 말해 봐.”
팀장이 연기를 훅 내뿜으며 말했다.
“저요?”
“여기에 우물 안 뼝아리가 너 말고 또 있냐?”
이 작자는 사람 별명 붙이는 취미가 있나.
성격 개차반 시발 팀장, 줄여서 성개시발 팀장의 말에 난 생각했다.
보고 듣고 느낀 것.
이제까지 경험한 작전, 배운 것, 규칙과 판을 흔드는 법.
모든 걸 고려해 입을 열었다.
“정면 돌파합니다.”
말이 끝나고 침묵이 감돌았다.
그 침묵은 팬더 대리가 깼다.
“팀장님, 지형 파악했습니다. 작전 수립할까요?”
“괜찮아.”
이어서 사수가 말하고.
“미친놈.”
기남이 날 응원했으며.
“작전 수립은 팀장님께 맡기자.”
강희모 대리가 어깨를 두드렸다.
어째 무시당하는 기분인데.
이 양반들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지.
“후면 돌파, 잠입, 전부 다 대비했을 겁니다. 상대의 의도를 찌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난 말을 끊고 정찰하며 느꼈던 점을 정리했다.
“오합지졸입니다.”
훈련된 군인 열이면 오합지졸 백을 잡는다.
이쪽은 비전투 인원인 팬더 대리를 제외하면 시발 팀장, 사수, 강 대리, 나, 개나리까지 다섯이지만.
전력은 충분하다. 적어도 내 계산으로는 그랬다.
“미친 뼝아리.”
팀장의 말에 고개를 돌리는데 얼핏 미소를 지은 거로 보였다.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다.
팀장이 중앙에 서자, 자연스레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모였다.
“위협 저격 포인트 제거에 둘, 기관총 사수 견제에 하나. 둘만 간다.”
분업이다. 겨우 다섯인데 여기서 인원을 또 나눈다는 거다.
근데 그 둘은 누구입니까.
팀장이 말을 이었다.
“강 대리, 정기남 포인트 찾아서 털어.”
훌륭한 인선이다.
개나리가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가진 재능은 훌륭하다. 상대의 기척을 읽는 건 발군이란 거다.
강희모 대리는 다양한 작전 수행 경험이 있는 불멸특수대다.
베테랑이란 소리. 그라면 기남의 부족한 경험적인 면을 채울 수 있을 터.
“소리 없이.”
팀장이 추가 주문을 넣었다.
“알겠습니다.”
강 대리와 기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총은 정아.”
“네.”
캐쉬히포가 불을 뿜으면 위치를 들키는 건 금방일 텐데, 괜찮으려나.
“총 말고.”
팀장의 말에 사수가 캐쉬히포를 챙겨 넣고 다른 무장을 꺼냈다.
그녀가 허리 뒤에 긴 막대를 꺼내더니, 딸깍하고 조립하자, 곧 유선형의 긴 막대가 되었다.
그리고는 까맣고 두툼한 골무를 꼈다. 금속 재질로 보였다.
이후, 긴 막대 사이에 동그란 버튼을 끼워 조작하자, 곧 유선형 막대 사이로 지잉 하고 레이저 줄이 나타났다.
내가 빤히 보자, 사수가 말했다.
“양궁 국가 대표 출신.”
“누가요?”
“누구겠냐?”
팬더 대리가 핀잔을 줬다.
몰랐다. 우리 사수는 활도 쐈다.
특수 제작된 활은 총보다 효율성이 높을 때가 많다.
가령, 소리 없이 적을 암살할 때 같은 경우.
또는 기관총 사수 같은 걸 저격할 때.
“포인트 제거, 기관총 사수 제압과 동시에 정면 진입을 시도한다.”
홀로그램 타이머를 꺼낸 팀장이 말을 이었다.
“지금 시각 오전 4시 45분.”
여름의 해는 일찍 뜬다. 벌써 새파란 새벽을 지나 황금빛 태양이 뜨는 중이었다.
곧 환한 아침이 될 것이다.
“작전 시간 오전 6시.”
“네.”
나만 빼고 전부 대답하면서, 강 대리와 기남은 곧바로 움직였다.
다른 능선을 타고 포인트를 제압하려면 시간이 촉박할 것이다.
사수는 레이저 활줄에 화살 대용의 긴 막대를 끼우는 중이었다.
레이저 사출 무기는 낭비가 심하지만, 활로 쓰면 얘기가 다르다.
근력 비약을 먹고 장력을 한계치로 당겨 쏜다. 애초에 인간 이상, 특수종의 근력을 견디기 위해 만든 게 레이저 활 줄이다.
저거로 쏘는 화살은 어지간한 강철 따위는 시원하게 관통할 터.
팔뚝 반만 한 막대를 꺼내 비트니, 그 끝에 지잉 하고 레이저가 삐죽 솟는다. 상대를 때리는 순간, 화살촉이 솟아 뚫어 버리는 이중 타격 레이저 애로우다.
이름이 길긴 하네.
막대를 조작해 레이저 화살촉을 만들어 본 사수도 주변을 둘러보더니 발걸음을 뗐다. 기관총 사수를 저격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거로 보였다.
“잠시만요.”
그런 사수의 뒷모습을 보며 난 팀장을 불렀다.
“뭐?”
“저는요?”
난 할 일이 없는데.
“너 뭐?”
“전 뭐 해요?”
“네가 꺼낸 작전에 책임져야지.”
언제 꺼냈는지 노트북을 꺼내 뭘 두드리던 팬더 대리가 말했다.
책임?
“팀장님이랑 페어, 정면 돌파.”
아니, 시이발. 이건 아니지.
“사수, 저랑 바꿔요. 사실 제가 전생에 주몽이었습니다.”
급히 사수를 불렀다.
사수는 무시하고 쌩하니 사라졌다. 발이 무척 빨랐다.
사수를 뒤로한 채, 팀장에게 물었다.
“굳이 우리 둘이 해야 할까요?”
“그럼 귀한 기남이나 분석팀 에이스를 굴리리? 정아가 안 되는 이유는 알지?”
비약 인간은 불멸자가 아니다. 지뢰 하나 잘못 밟으면 곧바로 은퇴다.
“동훈 대리님, 숨겨 둔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응. 잘 가.”
쳇.
내 역할도 정해졌다.
팀장과 정면 돌파다. 몹시 싫지만, 어쩌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는걸.
“발목 잡으시면 안 됩니다.”
화림 내 최연소 진급자이자, 동대문의 구원자로서 말했다.
팀장은 그 말을 듣더니, 웃었다.
진짜 큭큭 대며 웃는데,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너 같은 놈이 똑 떨어졌을까? 적으로 만났어야 했는데.”
그 말에 등줄기에 벼락이 치듯 소름이 쫙 돋았다.
가시 돋치다 못해 가득한 말이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나도.”
아닌데, 팀장은 농담 아닌 것 같은데.
팀장과 난 능선에서 내려갔다. 툭툭 타고 내려가는데, 팀장은 나만큼이나 산을 잘 탔다.
내려가서 자리를 잡으며 도핑 약을 챙겼다.
이번에 챙긴 건, BB-8.
약칭 오딘의 축복, 흔히 말하길 전투 뽕.
팀장과 단둘이 있으니 꽤 어색했다. 팀장도 그렇게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감각을 갈고닦으면 불길함을 시각화할 수 있다.”
“…….”
뭐라는 거야.
움찔, 그 순간, 팀장의 발밑에서 뭔가 튀어 올랐다. 아니, 곧 올라와 내 턱을 갈길 것 같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내가 급히 고개를 젖히며 뒤로 굴렀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뭐냐? 변신족이 뿌리는 야생의 살기와는 다르다.
어느새 왼손은 슬러그 나이프 손잡이를 역수를 쥐고, 오른손은 정글도 손잡이에 올려 둔 채였다.
“앉아. 긴장 풀고.”
팀장이 말했다.
다시 본래대로 앉았다. 여름이 오는 계절이지만, 새벽의 땅바닥은 차가웠다.
“이너 피스, 내면의 평화를 유지한 채, 불길함만 느낀다. 감각을 깎고 깎아 날카롭게 만든다.”
팀장이 말했다.
“왜 이러는데요.”
내가 물었다.
팀장은 답 대신 왼손 검지를 까딱였고.
움찔.
내 직감이 다시 경고성을 발했다. 이번에는 왼쪽 정강이다.
발을 당기고 옆으로 굴렀다. 동시에 슬러그 나이프를 꺼내 정강이 앞을 대각선 방향으로 대고 막았다.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수법으로 두 번이다.
그리고 세 번, 네 번, 팀장은 기다리는 내내 날 괴롭혔고.
난 다섯 번째가 돼서야 팀장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다.
기척 흘리기였다.
정확히는 의지를 담고 손가락, 발가락을 까딱하는 거로 내 직감을 건드리는 거다.
겨우 다섯 번, 전신이 땀에 젖고 더없이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시간 됐네.”
팀장이 말했다.
어느새 5시 55분이다. 6시까지는 5분도 남지 않았다.
“가자.”
툭툭, 팀장이 앞으로 나아가며 말했다.
“왜 그런 겁니까?”
못내 궁금해 물었다.
“머리는 장식이냐? 정면으로 가면서 지뢰 찾기라도 하면서 가게? 시발, 밥을 씹어서 위장 속에 쑤셔 넣어 줘야 하나.”
아, 팀장의 욕설 섞인 조언이 머릿속을 섬광처럼 치고 지나갔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불멸자는 육감과 직감을 단련한다. 그 육감은 때론 피할 수 없는 걸 피하게 한다.
즉, 보이지 않는 칼과 탄환을 느낀다.
그것과 같았다.
둘은 정면으로 걸었다. 함정은 발동하지 않았다.
팀장이 나한테 한 짓, 내가 땀을 줄줄 흘리며 한 것.
단시간 육감을 더없이 예민하게 만든 거다.
전보다 날카롭게 달궈진 감각이 땅을 ‘읽었다’. 색이 다른 타일을 밟으면 안 되는 것처럼 직감으로 모든 걸 피한다. 클레이모어, 지뢰, 갖가지 함정이 준비된 길은 산책로가 됐다.
처음 느껴보는 고양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밟아야 할 곳, 피해야 할 곳, 전부가.
“누구냐.”
경계병, 용병 중 둘이 우리를 맞았다.
눈코입은 보이지 않아도 말소리가 닿고 서로의 체형은 볼 수 있는 거리다.
아직 오르막이 끝나지 않은 길 위에서 둘이 밑으로 총구를 겨눴다.
“……저 새끼들 왜 멀쩡히 걸어오냐?”
둘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밟으면 터지는 압력식 지뢰가 가득한 땅이긴 했지.
다 피해서 밟고 왔단다.
영화와 달리 대부분 지뢰는 밟는 즉시 터진다. 고로, 이렇게 멀쩡히 걸어오는 나와 팀장이 신기하긴 할 것이다.
나라도 유령 보는 눈으로 봤겠지.
지금 저 둘처럼 말이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친구가 외쳤다.
“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