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81화 (81/488)

81. 너 진짜 분석팀 안 올래?

“거, 뭐 한다고 이렇게 사람을 모은 거요?”

돈 몇 푼에 사람 머리에 총알을 박는 놈들.

용병이란 그런 이들이었다.

인베이더와 블랙홀, 특수종이 판치는 세상의 하이에나들.

박병준 박사는 용병을 딱 그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자기 속내를 이야기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왜? 일하기 싫어? 싫으면 가고.”

박사의 말에 머리를 바짝 자르고 얼굴에 알록달록한 불꽃 문신을 새긴 용병이 입술을 내밀었다.

“사람 참 까칠하시네.”

“헤이.”

블루 트윈스 직원이 박사 옆에 서며 용병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알겠수다.”

용병이 픽 하고 바람 새는 웃음을 보이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블루 트윈스 직원은 고작 셋이었지만, 확실히 강자의 반열에 속한 이들이었다.

문신을 새긴 용병은 저 셋이 어떤 특수종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럼 어떻게 하나.

얌전히 말을 따라야지.

어차피 자기는 돈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계약 기간은 한 달, 그 기간까지 요새가 된 별장을 지키면 그만이었다.

박병준 박사는 그런 용병을 보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당신은 참 쓸모없는 데 돈을 쓴다.”

블루 트윈스 직원이 말했다.

“네 알 바 아니다.”

그럭저럭 인연이 닿아 고용한 이들이었다.

일반 용병이 하이에나라면 블루 트윈스는 무리를 이룬 사자 집단 같은 거다.

그리고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놈들이지.

가령 사람을 산 채로 해부하거나 연구하는 일도 한다.

특이한 혼혈이 있으면 잡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블루 트윈스는 그런 놈들의 집합체였다.

“전부 아는 사람 아니었나?”

딱딱한 영어 발음은 그 출생지가 영국이라는 걸 알려 줬다.

‘난 알지.’

하지만 저 새끼들은 자신을 모르겠지.

박병준 박사는 대답 대신 싱크대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막잔에 콸콸 쏟아 한 모금 마셨다.

그걸 본 트윈스 직원은 입을 다물었다.

* * *

부르르.

“저 전화 좀.”

“지금?”

강희모 대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쩌겠나.

어머니 전화다.

요즘 어머니의 히스테리가 늘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내가 나가고 나서 허전함을 느껴서 그런다는 데.

내가 볼 때는 요새 부쩍 늘어난 아버지 출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부자는 그렇게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하나의 결론은 공유했다.

어머니의 허전함을 채워 줄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

고양이라도 한 마리 기르라고 해 볼까.

어머니는 애견 샵 유리창 앞을 지나면 눈을 떼지 못했었다.

“한 마리 길러 보세요.”

다만, 이렇게 권해도.

“툭 치면 죽을 것 같아서.”

이리 말씀하시곤 거절했기에 키울 기회는 없었다.

그 말이 물리적인 현실감으로 다가오기에 나도 더 권하지 않았고.

귀여워한다고 반려동물을 기르라는 것도 우습고.

키우는 것과 보는 건 다르니까.

“급한 전화라서요.”

휴게소를 지나, 산길이 굽이쳐 이어진 길이었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타고 가자니, 무슨 비밀 기지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가평에 있는 펜션은 전부 이따위 구간을 지나야 나오긴 하지만, 여긴 그 정도가 심했다.

박병준 박사가 요새로 삼은 별장은 가평에서도 골짜기 안쪽이었다.

펜션 몇 개를 지나쳐 들어서니, 그제야 목적지가 보여서 거리를 두고 차를 세운 참이었다.

난 적당히 강희모 대리가 들리지 않을 거리까지 움직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어머니.”

“바쁘니?”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 전화는 받아야죠. 동대문구 제일 미녀, 세상이 사랑하는 미녀, 아직도 나가면 처녀 소리 듣는 미모의 어머니이신데요.”

“미모 찬양을 하려면 성경 두께만큼 책을 써 오렴.”

“그건 좀.”

“주말에 한 번 들를래?”

“네? 주말에요?”

이번 주말이라. 이 일은 며칠 걸릴까.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이틀이면 끝나려나.

“무슨 일 있으세요?”

“그냥.”

어머니와 무기력이란 단어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어머니는 지금도 무기력하지 않았다.

다만, 몹시 불편한 기분이라는 건 알았다.

“반드시 가겠습니다.”

이건 가야 한다. 가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일이 모두 끝나면 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다.

진짜 고양이나 강아지 한 마리 입양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떻냐고.

통화를 끝내고 돌아오니, 강 대리가 쌍안경 스코프를 들고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어때요?”

“여기선 안 되겠다.”

굽이쳐 올라가는 길이었다.

별장은 산 중턱에 있는 형태였기에, 아래에서 위를 보며 정찰하는 건 무리였다.

난 좌우로 시선을 돌렸다. 왼쪽에 꽤 높은 능선이 보였다.

저기라면 위에서 밑을 볼 수 있겠지.

“갈까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말에 강 대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산을 타야 한다니.”

“그렇게 싫어요?”

“너 군대 안 갔다 왔지?”

“물론입죠.”

“난 군대 전역하고 입사한 케이스다.”

내가 얼굴로 의문을 표하자, 강 대리가 말했다.

“미필은 모르는 세계다.”

거, 사람 되게 무시하네.

군대 한 번 안 갔다 왔다고 이러기 있나.

“네, 미필은 모르렵니다.”

“농담이야.”

“알죠. 근데 산은 탈 줄 아시죠?”

“산악구보는 지겨울 정도로 했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차를 으슥한 갓길에 대고 대충 옆에 나뭇가지 수십 개를 부러뜨려 덮어 놨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공터였다.

이 정도면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기도 힘들 터였다.

“가죠.”

난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고 산을 탄 몸이다.

그놈의 변신족은 본능 때문에 극기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 때려 박아야 했지.

아마 시간이 됐으면 히말라야도 올랐을 거다.

아버지 몰래 그럴 시간은 없었기에, 난 한국의 산만 탐방했다.

솔직히 말하지.

그래서 난 한국의 산이 익숙했다.

몇 번 걸음을 옮긴 것만으로 난 짐승이 다니는 길을 찾았다.

품에서 에너지 바를 하나 꺼내 씹어 삼켰다.

“길이 험하네요.”

“내가 산악구보 중대 출신이라니까.”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여유가 느껴졌다.

군필은 다 나처럼 이 정도 산은 타는구나.

그럼 좀 빨리 가 볼까나.

반쯤 기울어진 경사로에 발을 딛고 두꺼운 가지를 쥐고 몸을 위로 당겼다.

걷는 게 아니라 반쯤은 매달려 오르는 기분이었다.

길은 험해도, 이게 시간은 짧다. 그리고 이 정도는 갈 만하다.

더구나 그 산악구보 뭐시기 출신이라니까.

강희모 대리도 알아서 쫓아올 테고.

산을 오르며 챙겨온 무장을 점검했다.

겸사겸사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멀티테스킹,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서 생각을 많이 해. 그럼 본능을 제어하기 쉬워.”

변신족 과외 선생이 시킨 일과 유사한 방식이다.

본능을 제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도 그렇게 했다.

올라가면서 할 일은 딱히 없으니 무장 점검이다.

왼쪽 허리춤에 슬러그 나이프.

이전에 축능석 사건 이후 경호팀장에게 선물 받은 물건이었다.

칼로도 쓸 수 있고 근거리 폭발 산탄을 쏘는 괴물 같은 무기다.

꽤 비싸기도 하고.

슬러그 나이프 앞쪽에 아다만티움 칼날 정글도, 이 친구는 아직 이름을 못 붙였다.

오른쪽 허리에는 4번 타자.

통짜 아다만티움 덕분에 무장 무게가 확 늘었다.

나머지는 표준 규격 장비다.

방검방탄복과 기관단총 MP5 한 자루는 허리 뒤로 돌려 맸다. 탄창 여덟 개는 방검방탄복 곳곳에 박아 넣고 수류탄 네 개, 연막탄 두 개, 섬광탄 하나.

든든하고 무겁다.

큰 누님에게 4번 타자의 탄도 받았는데 이것도 무거웠다.

진짜 변신족 아니면 쓰지도 못할 무기다.

거기다 통짜 아다만티움으로 만드는 덕분에 조준하는 가늠쇠가 개판이었다.

고로 불멸자의 감각이 아니면 누굴 쏘아 맞히기 힘든 그런 총이자, 무식하기 짝이 없는 무기다.

턱턱, 오른발로 삐죽 솟은 돌을 밟자, 우직하고 돌이 밑으로 쑥 빠졌다.

아다만티움의 무게 덕분이었다.

그 탄력을 이용해 왼쪽으로 뛰어서 가지를 잡고 위로 몸을 뽑아 올렸다.

경사로가 점점 험해지는 기분이었다.

우직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럼 다시 오른쪽으로 가면 되지.

가지를 던져 버리고 우측에 있는 두툼한, 경사로 중간에 쑥 솟은 소나무에 걸터앉았다.

드드득.

무게 때문에 이 나무도 부러질 것 같았다. 이쪽 지반은 그리 튼튼하지 못한 것 같았다.

우드득.

나무가 부러져 밑으로 쏠렸다.

흙무더기와 내 몸통만 한 나무가 부러져 밑으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나무가 퉁 하고 길바닥을 때렸다.

정확히는 경사가 진 벽과 같은 길바닥에 통통 부딪혔다.

그 위에 더 두툼한 나무가 있길래 올라섰다. 흙 사이에 솟은 돌로 된 단단한 발받침도 있었다.

이번에는 꽤 큰 바위였는지 쑥 뽑히는 불상사가 없었다.

그렇게 밑을 보는데.

“야.”

강희모 대리가 흙투성이가 되어서 눈을 빛내는 게 보였다.

“……산사태라도 맞으셨습니까?”

정중하게 물었다.

“나와. 내가 먼저 간다.”

에헷, 이건 생각 못 했네.

내가 던진 나뭇가지며 흙무더기에 반쯤 산사람이 됐다.

강희모 대리는 거미처럼 경사로를 타고 올랐다.

발과 손을 이용해서 쑥쑥 오르더니 나보다 위로 갔다.

강대리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우적.

난 에너지 바를 하나 더 꺼내 씹으며 물었다.

“힘드세요?”

“말, 후아, 걸지 마.”

네.

그때부터는 말 없는 등산이었다.

이게 영화였다면 참 지루했을, 그런 순간이다.

그렇게 능선 위로 다다른 뒤다.

난 좌우로 돌아보며 강 대리에게 말했다.

“이 산이 아닌가 본데요?”

번뜩.

살기가 느껴졌다.

강 대리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뭐?”

“농담입니다.”

아니, 하도 산악구보, 산악구보 하길래 등산의 전문가인 줄 알았지.

우리 어머니랑 산 탔으면 중간에 실족사했겠다.

불멸자니까 죽진 않겠지만, 하여간 고생 좀 했을 건데, 나니까 좀 편하게 온 건데.

“나 왜 이중봉 팀장님이 이해가 가려고 그러냐.”

“네?”

“아니다.”

지쳐서 앉은 강희모 대리를 두고 난 쌍안경 스코프를 들었다.

위에서 밑으로 보이는 각도를 잡았기에, 박병준 박사가 용병을 고용해 만든 요새도 보였다.

“스물이라면서요.”

스코프에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늘었네.”

바로 옆에 강희모 대리가 섰다.

쌩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 시작됐지만, 아직 산 위는 추웠다.

난 눈으로 사람 숫자를 셌다.

대략 서른아홉.

예상했던 것보다 숫자가 배는 많았다

“위성 사진이 집 안까지 찍어 주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많긴 한데.”

강희모 대리가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더 모은 거다.”

말과 함께 대리님이 설명했다.

이 정도면 한국에 있는 어지간한 용병 회사 규모를 넘었다는 것.

잘나간다는 한국 PMC도 잘해야 쉰 명 내외라고 했다.

제일 큰 곳이 백 명이 조금 넘고.

나머지 고만고만한 곳은 열 명이 안 되는 곳도 많았다고 하니.

“박사라는 작자가 부자인가 봅니다.”

내가 말했다.

용병 마흔 명.

적지 않은 숫자였다.

“세 시간, 지속 관찰한다.”

정찰의 기본은 목표의 패턴을 파악하는 거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에너지 바만 먹으니 물리긴 하지만, 그래도 배고픈 것보다는 나았다.

젤리형 단백질 음료수를 삼키며 딱 세 시간이 지났을 때다.

“골치 아프네.”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그러게요.”

나도 동의했다.

통행로가 하나다.

좌우로는 산이 가로막은 형태인데, 저 요새 안에 숨으면 저격이고 나발이고 소용없을 터였다.

“유광익.”

“네.”

“저기 봐라.”

강희모 대리가 가리킨 곳을 육안으로 보고, 다시 스코프로 바라봤다.

넓게 쭉 뻗은 통행로다. 경사로는 있지만, 승용차 세 대쯤은 올라갈 넓이다.

“저쪽으로 생필품이나 무기를 보급했겠죠. 보급로입니다. 저 뒤에 M60 세 정은 보셨죠?”

“길만 보지 말고 넓게 봐라.”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큰 기대가 어린 목소리는 아니었다.

“잘 보면…….”

막 강 대리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난 스코프에 어린 사람들의 움직임을 읽었다.

단 몇 초지만, 모인 무리의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집중된 감각?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1 더하기 1이 2라는 게 뻔한 것처럼.

넓은 통행로.

거치된 기관총의 위치.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뭘 구워 먹는 용병 무리.

저들의 목소리가 귀에 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저 통행로와 용병 무리의 움직임이.”

“함정이네요.”

강 대리의 말을 잘랐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 들어온 내용을 풀어서 말했다.

“통행로요. 보니까 대부분 용병이 저곳과 거리를 둡니다. 특히나 드럼통에 불을 피운 놈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요. 저 구석은 풀이 높고 나무가 많습니다. 불을 보고 꼬이는 벌레도 많겠죠. 용병이라면 서바이벌에도 능숙할 텐데, 위치 선정이 너무 개판입니다. 거기다 저 기관총 위치, 사수가 경계하는 곳은 진입로가 아니라 오히려 산등성이 쪽이에요. 지금 보니까 저 뒤쪽 능선 쪽에 저격수도 있을 수 있겠네요. 저격수, 기관총, 거기에 특수종 용병까지, 전부 통행로와 거리를 두고 거기에 신경을 덜 쓰고…….”

다다다다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뭘 떠들었는지 알았다.

강희모 대리가 날 빤히 바라봤다.

“에, 제 생각은 그렇다는 겁니다.”

말을 끝맺으니, 내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잠깐의 침묵과 함께 분위기가 묘해지는 가운데,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너 진짜 분석팀 안 올래?”

이 양반 왜 이래.

첫눈에 반한 여자를 보는 듯한 그런 눈, 몹시 강렬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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