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누나가 생겼다.
사수와 난 지하 6층 무기고로 향했다.
“여기에 표준 장비 말고 뭐가 더 있어요?”
“있지.”
사수가 말했다.
있긴 했다. 장비가 아니라 사람이 우리를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가면서 팬더 대리가 이미 연락을 넣은 듯했다.
뻐끔.
“너야?”
담배 연기 한 모금 머금은 불멸자가 말했다. 나이를 가늠하긴 쉽지 않지만, 말투나 태도, 그런 걸 봤을 때 최소 쉰은 넘었을 터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헐렁한 박스티를 입었는데 지금 밖에 나가도 어지간한 청년들 가슴에 불을 지를 법한 외모였다.
“네?”
“그 동대문 구원자인지 뭐시기인지.”
“네, 아, 2급 사원 유광익입니다.”
딱 봐도 나보다 직급이 높아 보였다.
군대식으로 인사하고 나니, 한 걸음 거리로 다가오더니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뿜는다.
변신족의 예민한 후각이 냄새를 구분했다.
알싸한 민트향, 담배 특유의 냄새와 구강구취제의 향까지.
거기에 반사적으로 숨어 있는 향까지 잡았다.
쇠 냄새와 탄내, 탄약의 향.
방금까지 기관총이라도 갈기고 온 그런 냄새다.
“너 변태니?”
“네?”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나 보다.
눈앞에 있는 불멸자와 옆에 선 사수까지도 눈빛이 묘했다.
“냄새에 좀 민감해서.”
되는대로 둘러댔다.
“맞춤 제작한 거 아니면 이 정도가 최상일 거다.”
말하며 웃는데, 정말 매력적인 미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날 보더니 큰 누님 불멸자가 말했다.
“반하지 말고.”
“전 이상형이 명확해서요.”
“너 재밌구나.”
“유머러스함이야말로 제 가장 큰 장점이죠.”
“고르기나 하셔.”
픽 웃은 큰 누님이 정글도 한 자루와 샷건 하나를 꺼냈다.
정확히는 칼은 들었고 샷 건은 카트에 실어 왔다.
“칼날 아다만티움이다. 알지? 아다만티움?”
들어도 봤고, 비공식적으로는 보기도 했다.
머니 & 세이브 비밀 금고를 이룬 금속이기도 했다.
더럽게 단단하고 무거운, 쉬이 닳지 않는 금속.
최소 강철의 3배에 달하는 무게.
그 이름은 신화에서 따와 그대로 붙인 광물이다.
따로 묵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무게를 줄이려고 칼날에만 접합했지. 나머지 부분은 크롬강이고.”
건네주기에 한번 들어 봤다.
묵직한 게 장난 아니었다.
일부러 정글도 모양으로 만들었구나.
앞으로 쏠린 무게 중심을 살리려면 일반 나이프 모양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나저나 이 무게, 꽤 손에 감긴다.
이대로 휘두르면 어지간한 나무라도 중간부터 싹둑 잘릴 것 같다.
좋다. 훌륭한 무기였다.
대신 무게 중심 잡기가 묘하게 어려웠다.
“주문 그대로 만들었는데, 정작 들어 보더니 들고 휘두르는 데 집중하느라 더 심력이 소모된다고 지랄하지 뭐냐.”
“그렇습니까?”
맞다. 어지간히 무게 중심이 흐린 물건이다. 칼날 무게 때문에 들고만 있어도 앞으로 중심이 쏠리는 기분이다.
잡는 순간, 어떻게 쓰는지 방법과 활용도가 머릿속을 스쳤다.
계속 들고 휘두르기에는 나빠도 다른 방도로 활용하면, 나쁘지 않다.
“이거 좋네요. 이거 할게요.”
“꽤 무거운데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하나 봐?”
불멸자는 온갖 훈련으로 근력을 기른다. 타고난 근력이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그걸 집어서 한 말이다.
“네.”
훈련도 열심히 하고 변신족이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덕분에 이 정도 무게는 상관없는 거고.
“그 총은 뭡니까?”
약간 반푼이 같긴 해도, 이 칼만 해도 표준 규격 장비보다 월등한 퀄리티다. 욕심이 나서 물었다.
“이건 구색이나 맞추려고 가져온 거야.”
말하며 뒤로 숨긴다. 뭔가 싶어서 보니, 사수가 내 팔을 잡았다.
“저건 못 쓸 거야.”
“뭔데요.”
거, 보기나 합시다.
큰 누님이 수줍게 웃었다.
“삼 년 전에 욱해서 만든 건데, 정작 불멸자가 쓸 물건은 아니더라고.”
말하며 카트를 내민다.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대체 뭔데.
“전부 다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산탄총이야. 그래서 어지간하면 닳질 않아. 내구도가 환상이거든. 아다만티움 칼날이 크롬강 칼날을 가를 수 없어도 깨 먹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 봤지? 그럼 금속을 써서 통짜로 무기를 만들면 어떨까? 탄까지 맞춤으로 만든다면?”
흥분했네. 난 반도 못 알아들었다.
“아, 미안. 쉽게 말해 줄게. 이거 개 무거워.”
손을 내밀어 손잡이를 쥐었다. 거뜬히 들어 올리려고 했는데, 묵직한 무게가 팔근육을 당겼다.
힘을 더 줬다.
그제야 총구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일반 산탄총의 모양에 위아래에 손잡이가 붙었다.
“너 힘 좋구나.”
말하며 눈을 반짝이는 큰 누님이다.
“손잡이는 왜 만든 거예요?”
“처음에는 총이었는데 아무도 총으로 못 쓰잖아. 한 손으로 쓰는 소드 오프 형태 샷건인데 들질 못하니. 조준은 택도 없잖니.”
“그래서요?”
“안 되면 몽둥이로라도 쓰라고.”
발상이 참신함을 넘어서 괴팍하다.
총이 안 되면 휘두르기라도 하란 거잖아.
변신족한테 몽둥이로라도 쓰라고 할 셈이었나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또 묘하게, 휘두르기 나쁘다.
“엄청 비싸겠네요.”
오면서 사수에게 들었다. 지금 받는 무기는 무료가 아니다.
화림은, 내 회사는 몹시 치사했다.
이런 무기쯤은 그냥 보급품으로 줘야 하는데, 회사 자산이란 거다.
사고 싶으면 돈을 내란다. 치사한 인간이 가득하다. 사회가 썩었다.
“그거 쓸 수 있어?”
큰 누님이 물었다.
대강 무게를 가늠해 보고 계산기를 돌려 봤다.
무겁긴 하다. 보통이라면 운동 조금 열심히 했다고 쓸 만한 무기는 아니다. 확실히 변태 같은 무기다.
“네, 뭐. 조금 무리하면.”
약한 척을 하며 말했다.
꽤 쓸 만한 물건이었다. 탄의 위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근데 이럴 거면 일반 총을 쓰지, 왜 굳이 이걸.
큰 누님이 눈을 반짝였다. 이 누님은 눈에 별을 담았나. 왜 자꾸 반짝거려.
“무기는 내 자식 같은 거야. 근데 태어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 보면 기분이 어떨 것 같니?”
“……네?”
의인화가 심하시네.
“근데 그 아이가 쓰인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다. 다 그냥 줄게.”
“네?”
이번에는 사수가 되물었다.
이런 일이 굉장히 드문가 보다.
“유광익, 너라면 이 아이를 쓸 수 있다는 거잖아. 혹시 창고에 처박아 두면 용서 안 한다.”
난 눈을 좌우로 굴렸다. 사수가 놀란 얼굴을 보였다.
눈썹이 조금 올라가고 미간이 슬며시 좁아졌다.
이건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이 친구 이름은 뭡니까?”
변신족 어머니와 불멸자 아버지 사이에서 영재 교육을 받아 길러진 눈치다.
내가 말하자, 큰 누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네가 정해야지.”
“네, 그럼 천천히 짓겠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도 될까요?”
“까짓거 해버려.”
기분파구나. 이 누나.
“누나.”
“동생.”
의기투합이란 이런 거다.
난 큰 누님과 손을 맞잡고, 이 친구를 반드시 쓰겠다고 약속하며 아다만티움 합금 정글도를 받아왔다.
“후련하다.”
큰 누님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돌아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수가 입을 열었다.
“최소 삼천은 굳었어.”
“삼천이요?”
“원자잿값이 더 비싼 무기야. 둘 다. 불량품이라 고작 이 정도지.”
실패작이라.
“그래도 그냥 준다니.”
사수가 말을 흐렸다.
그만큼 드문 일이란 거겠지.
양손이 묵직했다.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사무실로 돌아가니, 내 룸메이트가 와 있었다.
“왜 왔어? 친구?”
난 손을 들며 기남을 반겼다.
“알 거 없다.”
여전한 개나리다.
“너희 사이 안 좋냐?”
팀장이 툭 튀어나와 기남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말했다.
어깨동무다. 나한테는 한 번도 하지 않은 어깨동무.
“아니요. 죽마고우입니다.”
내가 말했다.
“누가, 니 친구야.”
“아니었어?”
순직한 척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기남은 말을 잃었다.
대신 어금니만 박박 갈았다.
자식아, 이빨 다 닳겠다.
“이쪽 1팀에서 이번 작전 지원 온 헬퍼.”
팬더 대리가 앉은 채로 의자만 팽 돌리고 말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너희 기남이를요?”
내가 물었다.
“우리 기남이다. 새끼야.”
팀장이 피식피식 웃으며 답했다.
난 그 웃음을 보고 확신했다.
분명 나 엿 먹이라고 데려온 거다.
그런데 어쩌나.
“뭐, 좋네요. 기남이가 또 실력은 좀 떨어져도 열심이니까.”
“죽여 버리겠다.”
기남이 살벌한 기세를 뿜어냈다.
이 친구, 인내심도 제로지.
기남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난 아다만티움 소드 오프 샷건 손잡이를 쥐었다.
순간, 큰 누님의 자식이자, 이제는 내 친구가 된 이 녀석의 이름이 떠올랐다.
4번 타자다. 총의 이름을 정했다.
손잡이를 쥐고 기남의 허벅지를 노렸다. 부러뜨릴 순 없으니, 적절한 힘 조절이 필요했다.
덕분에 팔근육에 힘줄이 바짝 올라왔다.
훙.
무게감 실린 4번 타자가 허공을 갈랐다.
텅.
“이 새끼, 뭘 들고 다니는 거야.”
기남은 맞지 않았다. 대신 팀장이 내 4번 타자를 손바닥으로 막았고.
그사이 기남이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건 내가 고개를 꺾어서 피했다.
“니 동기 죽일 일 있냐?”
팀장이 사납게 말했다.
“아뇨, 이건 어디까지나 반사적인 보호 본능인데요.”
이걸 막네, 굳이? 왜 기남이가 다치면 자기 마음이 아픈가? 팀장, 이 새끼 기남이를 이성으로 좋아하나?
이걸 왜 막아.
그동안 난 숱하게 때리면서 기남이 때리는 건 막네.
“웃기고 있네. 이거 뭐야?”
“선물 받았습니다.”
사수가 말했다. 아까 있었던 일이 꽤 충격이었는지, 사수가 꽤 길게 설명했다.
“그 양반도 참.”
팬더 대리가 말하고.
“너 얘 때리지 마라. 지켜본다.”
팀장이 나에게 경고했다.
“덤빈 건 제가 아닌데요.”
“말로도 때리지 마. 새끼야.”
“아니, 입이 달렸으면 말을 하고 살아야지. 마음대로 말도 못 합니까. 공산국가야 뭐야.”
“……주둥이 꿰매 버린다.”
살기다. 불멸자인 팀장에게 야성의 살기가 느껴졌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내가 발을 뺐다.
“하기 싫다.”
뒤에서 누군가 읊조리는 게 들렸다. 내가 물러나는 바람에 들린 거지. 본래라면 들리지 않을 혼잣말이었다.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 보였다.
“강 대리님.”
내가 인사하자, 강희모 대리가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 다 모였네. 브리핑 준비 끝났지?”
팀장이 강희모 대리에게 물었다.
“네. 끝났습니다.”
강 대리가 답했다.
왜 이렇게 수척해지셨어요. 대리님.
“정말 신입 사원을 지원으로 데려가는 겁니까?”
강희모 대리가 물었다.
“팀 구성에 불만 있으면 니가 팀장 해.”
팀장은 부드러운 설명으로 그 질문을 회피했다.
성격 참 못났다. 못났어.
“걱정하지 마세요. 대리님. 제가 있잖아요.”
나만이 대리님을 위로했다.
“그래. 가자.”
팬더 대리가 그걸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가자.”
팀장이 말했고, 우리는 곧 회의실에 모였다.
“현재 위치 파악은 끝났습니다. 다만, 아시다시피 강압적으로 데려올 입장이 아닙니다. 일이 좀 꼬이기도 했고요.”
“설명해.”
강희모 대리가 딸깔딸깍 리모컨을 눌렀다.
멀리서 촬영된 사진을 다시 입체적으로 구성한 홀로그램이 회의실 중앙에 떴다.
마당이 넓은 별장 같아 보였다.
거기에 사람으로 추정되는 덩어리가 대략 열 이상이다.
“칩거 생활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물었다. 칩거치고는 고용인이 좀 많네.
“칩거가 아니라 숨어 있는 거지. 저 사람 사고도 꽤 치고 다녔더군요. 불멸교랑도 사이가 안 좋고. 프로메테우스, 이시스랑도 일이 좀 있습니다.”
테런 단체랑 골고루 인연이 있는 양반이구나.
불멸교, 프로메테우스, 이시스.
전부 범국가적 테러 단체다.
“뒤가 더러운 일이네.”
팬더 대리가 말했다.
처음부터 깨끗할 거로는 기대도 안 했기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엑스큐라시나 사이오닉 협회가 끼어들진 않아?”
팬더 대리가 물었다.
“네, 대리님.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쪽은 박병준 박사 말고 다른 쪽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는 거로 압니다.”
강 대리는 분석팀에서 모든 정보를 통합해서 온 참이었다.
그나저나 팬더 대리가 더 위였구나.
“결론이 뭔데?”
팀장이 물었다.
“박병준 박사가 가진 재산으로 사람을 좀 썼습니다.”
“사람?”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지금 보시는 별장을 요새로 만들어 버린 거죠.”
구출이라 쓰고 납치라 부르는 작전에 용병이 출현했다.
“어디?”
“이름 있는 곳은 하나뿐입니다. 블루 트윈스입니다.”
용병, 다른 말로 하면 민간 군사 기업.
국내에도 몇 군데 있다.
그들은 전부 프리랜서이고 반쯤은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한국은 땅덩이도 좁아서 대규모 민간 군사 기업은 없었다.
하지만 외국으로 눈을 돌리면 달랐다.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애들이네요.”
팬더 대리가 말했다.
“그쪽에서 나온 인원은 셋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현지, 한국에서 고용한 병력입니다.”
강희모 대리가 말하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예상 인원은 스물, 그 별장을 지키는 인원입니다.”
팀장이 그걸 보고 킥킥 웃었다.
팀장 곁에 있던 기남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야, 그런 거로 놀라지 마. 원래 저런 사람이다.
“실패하라고 던진 일이구나. 이거.”
강희모 대리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버린 일, 실패할 게 뻔한 일에 투입되는 건, 진급에 큰 무리를 주는 일이니까.
왜 안색이 그렇게 안 좋나 했다.
“하여간 윗대가리 새끼들 생각하는 거 하고는. 이동훈.”
“네.”
“디테일한 건 가면서 짜. 정아.”
“네.”
“가면서 기남이 포지션 잡아 줘.”
“네.”
“뼝아리.”
누굴 부르는 걸까? 여기에 그런 사람은 없는데.
“시발.”
“네.”
이번에도 무시하면 때렸을 거다. 확신한다.
“강 대리랑 먼저 출발해서 거점 파악해.”
“먼저요?”
내가 되물었다.
“응. 너희는 지금 당장 출발. 우리는 내일 오전 출발.”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만, 급해도 너무 급한 거 아닌가.
“이게 그나마 확률이 높겠죠.”
강희모 대리가 말을 덧붙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보니.
“저 별장 겸 요새에 병력을 더 불러들이기 전에 먼저 치겠다는 거다.”
기남이 말했다.
“나도 알아.”
“웃기시네.”
때리고 싶다. 그런데 팀장 옆에 딱 달라붙는다. 이 개나리 새끼는 권력 지향적인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