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우물 안 병아리
“첩자로?”
팬더 대리가 물었다. 어째 웃음을 참는 얼굴이네.
“네? 아뇨. 정식으로 제안하는 거라…….”
“풉.”
옆 팀 대리가 웃었다. 사수도 은근히 고개를 돌린다. 저건 분명 웃긴 거다.
팀장을 바라봤다.
“여기 그 시방새한테 제안 안 받아 본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 시발.
상황 파악은 빨랐다. 프로메테우스 이 개나리 새끼들.
나한테만 제안한 게 아니잖아.
여기저기 다 찔러 본 거였냐?
“새끼야, 병아리 새끼야, 노란 병아리 새끼야. 우물 안 병아리 새끼야.”
팀장이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는 더럽게 못 하면서 목소리는 쓸데없이 고운 미성이다.
“아니, 전 몰랐죠.”
낯부끄럽네.
“회의나 참석해, 외부 보안 3팀 오전 미팅이다.”
팬더 대리가 말했다.
“어서 가시죠.”
무안했다. 이 자리를 떠날 필요가 있었다.
“여, 프로메테우스가 탐낸 동대문의 구원자.”
누군가 풀로 내 부끄러움을 들춰냈다.
“1절만 합시다.”
말하고 발을 재게 놀렸다. 팀장이 얄밉게 천천히 걸었다.
“빨리 가죠. 본부장님 화내십니다.”
점잖게 타이르자, 그제야 팀장도 제 속도로 움직였다.
승강기로 향하는 길에 출근하는 기남과 마주쳤다.
이 자식 얼굴을 보니, 그제야 속이 좀 편했다.
“일찍 일찍 좀 다녀라.”
내가 말했다.
사옥에 온 뒤로 기남은 지각 대장이 됐다.
까드득.
기남이 어금니를 갈았다.
“야, 정기남, 지금 몇 시야?”
사수가 그를 갈구는 소리가 들렸다. 정겨웠다. 내 덕분이다.
“근데 무슨 회의예요?”
승강기에 타서 물으니.
“임무.”
“무슨 임무요?”
“구출 작전.”
팬더 대리가 말했다.
“누구요?”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한 팬더 대리 대신 팀장을 봤다.
“뭐, 시발.”
널 본 내 잘못이지.
“사수, 저 그 자식 봤어요.”
“누구?”
“그, 사수 방에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기피 삼 남매요.”
웃으라고 한 말에 얼음장이 내려앉았다.
승강기 안이 싸늘하게 식었다. 역대급 한파였다.
“분위기 왜 이럽니까.”
아니, 사람이 농담하면 좀 받아 줘야지.
“셋 중 누구?”
팀장이 물었다.
“동남아 근육 괴물이요.”
직접 상대해 보니 알겠더라. 그 자식, 맨손으로 사람을 찢어발길 놈이었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여건이 되면 그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단숨에 해내는 것과 젖먹던 힘을 쥐어짜서 해내는 건 상당히 다른 종류였다.
“용케 살아왔네.”
팬더 대리가 “허” 하고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네?”
죽일 생각도 없던데.
“진짜 스카웃 제의를 했다고?”
팬더 대리가 되물었다.
“네.”
사수는 말없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날 쏘아보고.
팀장은 피식피식 웃었다.
“따란따도 그 여자도 있었고요.”
“그때 그 아더 사이드에서 봤던 애?”
팀장이 되물었다. 드물게 욕설이 없는 정상적인 물음이다.
“네.”
“그 여자 꽤 거물이었죠?”
팬더 대리가 물었다. 난 몰라서 어깨를 으쓱했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광익이 탐내는 곳이 많네요.”
팬더 대리가 말하며 사수의 어깨를 툭 쳤다.
전투 모드 직전에 돌입한 사수가 눈에 힘을 풀었다. 눈에서 광선을 뿜는 줄 알았다.
“아주 재밌는 개새끼들이야. 프로메테우스.”
팀장이 말했다.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말했는데 특이점은 없었다.
대신 팬더 대리는 회의실 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급히 메신저로 몇 군데 연락을 돌렸다.
“아직 국내에 있으면 꼬리가 잡힐 겁니다.”
“잡히면 말해 주세요.”
사수의 말에 팬더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일단 날 찾아온 미친 남매는 뒤로하고, 지금은 일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복귀하자마자 임무라니.
이 회사 사람을 너무 막 굴리는 거 아닌가.
동대문의 구원자니, 뭐니 해서 이제까지 한 일도 예삿일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어쩌겠는가.
봉급을 받는 직장인이나, 대가를 받고 싸우는 군인이나.
명령에 복종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을.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자리 잡은 본부장이 보였다.
“나흘 쉬었으면 푹 쉬었지?”
말투에 가시가 돋았다.
하얀 머리의 파견 본부장은 이런저런 일로 우리 팀을 싫어할 만했다.
특히나 머니 & 세이브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기도 하고.
그 일로 정치적 입지를 꽤 잃었다고 들었다.
“적당히 쉬었죠.”
“근데 어떻게 니들은 나보다 늦게 오냐?”
“네, 죄송합니다.”
팀장이 귀를 후비며 답했다.
하나도 안 미안해 보였다.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앉아.”
외부 보안 팀 대리가 홀로그램 영사기 버튼을 켰다.
“이번 작전의 타깃입니다.”
영사기가 허공에 빛을 방사해 입체적인 형태를 그렸다.
안경 쓴 사십 대 초반쯤의 남자였다.
특수종은 아닌 것 같은데.
“이름 박병준.”
본부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가평 어디쯤 숨어 있는 과학자를 찾아서 데려오라는 말이었다.
“홀 클로저라는 이름은 들어봤지? 그 클로저라는 작자가 유럽 등지에서 활동할 때, 보조를 맡은 과학자가 바로 이 사람이다. 이번 이상 현상에 관한 단서이기도 하니, 구출한다. 이상.”
난 내용을 머릿속에 쑤셔 박고 작전에 필요한 사항을 암기하며 사수에게 물었다.
“구출 맞아요? 납치 아니고?”
“쉿.”
열 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회의실이다.
내 목소리는 본부장의 귀에도 들렸다. 한때는 흰 머리 악마라고 불렸다는데, 지금은 회사 내 정치적 입지를 잃은 고약한 중년 남성이 된 작자가 입을 열었다.
“너희는 신입 교육을 어떻게 하냐?”
“동대문의 구원자가 되게끔 합니다.”
팬더 대리가 말했다.
“야, 이동훈.”
“네, 대리 이동훈. 귀 잘 열고 듣고 있습니다. 브리핑 숙지했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이중봉.”
“네, 팀장 이중봉, 귀 잘 열고 듣고 있습니다. 브리핑은 얘가 잘 숙지했습니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팀장과 팬더 대리는 불만을 표했다. 시키는 대로는 하는데 화는 난다는 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 일을 굳이 보안 3팀에 맡긴 것부터가 문제고.
이 작전이 사실은 구출이 아니라 납치라는 것도 문제다.
거기에.
“소수 정예로 해결할 일이다. 위에서 주시하는 일이고. 실적에 도움 되는 거 챙겨 준 건데, 왜 지랄들이야.”
그 말에 난 시발 팀장을 훔쳐봤다.
이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
실제로는 실적에 도움이 된다기보다 악명을 얻는 일이고, 수틀리면 사 측에서는 입을 닦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겹문, 이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긴 해야지만,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데려오는 건 문제가 있는 거니까.
애초에 박병준 박사라는 양반이 어디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호출했는데 거절했으니까 이런 작전이 나온 거겠지.
회사 생활 7개월째에 접어드는 나도 앞뒤 상황만 보고 아는 일이다.
팀장과 대리 둘이 이걸 모를 리 없었다.
사수는 아깐 한 말에 아직도 눈에 불을 켜는 중이었고.
팀장과 대리는 대놓고 본부장을 비아냥거리는 중이었다.
에휴,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세 사람 내가 아니면 누가 챙기리.
본부장 또는 팀장이 욕설을 뱉기 전,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날 바라봤다.
난 모범생 출신이다.
맨 처음 불멸자 작대기 과외 선생에게 훈련받을 때도 눈을 반짝이며 훌륭한 수강생의 자세를 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
회사 생활 별거 없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시키는 일 잘하면 된다.
난 그렇게 했다.
이 브리핑의 목적은 작전 목표를 인지하는 것.
그걸 인지했음을 말하고.
그대로 행동하겠다고 말하면 될 뿐.
“네, 본부장님. 귀 잘 열고 듣고 작전 숙지했습니다. 구출이라 이름 붙인 작전이고, 가서 박사 생포해 올 것. 인지 완료.”
“이 개자식들이 단체로 돌았어? 왜, 사장이 빽이라 눈에 뵈는 게 없냐? 너희 팀장이 너 그렇게 가르치디?”
본부장이 빡쳤다. 화가 났다. 분노를 표출했다. 헐크다.
우드득.
실제로 입고 있는 셔츠를 우악스럽게 찢고 날 향해 달려들려 했다.
“앗, 왜 이러십니까, 분노조절장애 있으십니까.”
차분하게 뒤로 뛰며 말했다.
아니,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데 왜 성질이야.
“아니, 저게 왜 내가 가르친 거야. 난 저런 시발 같은 거 안 가르쳤다고.”
팀장도 덩달아 흥분했다.
“이런 개새끼들이.”
왜 흰 머리 악마라고 불렀는지 알겠다. 흥분하니까 머리가 삐쳐 올라가더니, 왼쪽 오른쪽 위로 뿔처럼 솟았다.
“개 신기.”
감탄했다.
“그만해, 이 미친놈아.”
팬더 대리가 날 당기며 말했다.
“가요. 좀.”
1팀 대리가 말했다.
“지원은? 진짜 달랑 넷이 가?”
팀장이 물었다.
“1팀에서 한 명 차출해 가면 됩니다. 대리급 이하로요. 분석팀에서도 한 명 붙고요. 강 대리가 갑니다.”
와, 1팀 대리 쇼 미더 머니 나가도 되겠는데, 말이 굉장히 빠르다.
그럴 만했다.
“다 죽어, 시발, 다 죽여 버린다.”
활화산이 폭발한 본부장이 달려들기 직전이었다.
“뭘 죽인데, 자꾸. 계급장 떼고 떠 보든가.”
팀장이 활화산 위에 헬기를 띄워 기름을 쏟았다.
아주 분화하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나.
“팀장님, 약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난 말리기 위해 말했고.
“미친놈아, 그만해.”
정신 차린 사수가 날 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방음 시설 완벽한 회의실은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조용히 흥분한 외침을 토해 내는 본부장의 하울링이 지속됐다.
불멸자로 살다 보니, 특히 화림 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저런 노스탤지어의 외침을 자주 듣게 된다. 소리 없는 아우성까진 아니지만, 조용한 아우성쯤은 된다.
“너는 팀장님보다 한 수 더 뜨냐?”
팬더 대리가 날 나무랐다.
“제가요?”
살면서 제일 불쾌한 말을 들은 기분인데.
“시발, 표정 안 풀어?”
팀장이 그걸 보고 시비를 걸었다.
“제 표정이요?”
모른 척 되물었다.
“말을 말자.”
팀장은 고개를 팩 돌리고 턱턱 걸어갔다.
곤란한 작전이긴 하다. 이걸 맡게 된 이유도 뭔가 불합리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여기저기서 꽤 활약하고 있는데 이런 건 사장 선에서 막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병아리, 무기 좀 챙겨라. 시이발, 존나 챙겨 주기 싫네.”
팀장이 떠나며 말했다.
참, 말 한마디 한마디 예쁘게 하는 사람이다.
뒤에서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싸 위로 올렸다.
이거나 처먹어라
“다 보인다. 뼝아리 새끼야.”
된 발음이 찰진 팀장은 뒤에도 눈이 달렸나 보다.
사실 불멸의 감각이라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지. 나도 안다.
“아, 오른 주먹이 간지러워서요.”
대충 핑계 대고 돌아섰다.
팬더 대리와 사수가 날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난놈이야.”
팬더 대리가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
“근데 무슨 무기요?”
표준 규격 장비 챙기는 건 일도 아니다. 그걸 굳이 누가 챙겨 줘야 하나?
나도 어디서 챙기는지 아는데.
“스탠다드 말고.”
“커마요?”
“꿈이 크다. 그건 네 돈 주고 하고.”
그럼? 눈으로 묻자.
“직접 봐.”
사수가 말하고 앞장섰다. 무기는 좋을수록 좋다. 특히 변신족이 쏘는 레이저 사출 무기를 보는 순간, 난 반해 버렸다.
하다못해 레이저 강선이라도 있으면 어딘가.
난 성큼성큼 걷는 사수의 뒤를 부리나케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