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따란따도
“끄으으으, 사수, 절 이 사람 손에 두고 가지 말아요. 남자 품에서 자는 건 최악입니이이다아아아.”
광익이 쓰러지며 말했다. 기절하면서도 이렇게 밉살맞게 말하는 걸 보면 이건 재능이다.
중봉은 광익을 안은 채로 생각했다.
버리고 갈까?
버리고 가도 죽지는 않을 거다. 살면서 이렇게 질긴 불멸자는 처음 본다.
이렇게 낭만에 젖은 채로 사는 불멸자도 처음이고.
“그 친구 이름이 뭡니까?”
협회 직원 중 하나였다.
절뚝거리는 다리, 왼쪽 이마부터 볼까지 굳은 피딱지, 이 전투에서 팔도 하나 잃은 거로 보였다.
왼쪽 팔꿈치 밑이 허전했다.
아무렴 어떨까.
살면 된다. 현대의 의술은 놀랍게 발전해서 사지 절단 따위, 재생 기술로 해결하면 그만이다.
비용이 들어서 문제지,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다.
협회는 이 직원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알아서 뭐 하게?”
삐딱한 자세로 선 채, 중봉이 물었다.
“이름은 알아야죠. 생명의 은인인데.”
“은인은 무슨.”
“유광익입니다.”
강희모가 다가와 말했다. 사지는 멀쩡하지만, 지친 얼굴이었다.
분석팀 일원으로 합류했기에 이 정도다.
전투원으로 달려든 외부 보안 1팀 팀원 중 반이 최소 한 달 휴직이었다.
“쉬벌, 갸가 갸여?”
모히칸 스타일의 변신족 남자가 다가왔다.
“네, 맞습니다.”
검은 도끼 정동찬이 말했다.
그는 눈두덩이가 깊게 찢어져서 피를 흘렸다.
김말원도 다가왔다. 그의 곁에 협회 직원 둘이 붙었다.
팔다리 중 하나씩 잃은 꼴을 보니 사지 절단 협회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했다.
목숨을 건진 경찰 간부 중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쿨럭, 쿨럭.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 태어날 딸 얼굴도 못 보고 갈 뻔했습니다.”
말하며 웃는 걸 보니 이쪽도 정상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나.
“직접 해. 나한테 하지 말고. 나 이 새끼 대변인 아니다.”
“그러죠.”
한둘이 아니다.
스물이 넘는 요원과 경찰이 광익을 바라봤다.
전부 광익이 살린 사람이었다.
누군가 고개를 숙였고, 그걸 시작으로 전부 묵묵히 인사를 건넸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다.
인사하고 돌아선다. 필요하다면 이들은 나중에 광익을 도울 것이다.
지금은 그거로 충분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중봉이 말했다.
“침 바르면 죽인다.”
“낭만에 물든 친구군요. 침 안 바릅니다. 로맨티스트가 살기에는 세상이 좀 팍팍하죠.”
정동찬은 그리 말하고 떠났다.
“애를 버려 놨다. 그따위 마음가짐으로 무슨 요원질을 한다고.”
협회 부대장이 말했다.
그도 떠났다. 다 떠난 뒤, 중봉은 한숨 돌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가르쳤나, 지가 지 마음대로 사는 거지.”
“아까 말하지 그랬어요.”
김정아가 옆에 섰다.
“잠깐 졸았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김정아는 따지지 않았다.
팀장도 지칠 만했다.
네임드, 인류의 악몽이라 불리는 존재였다.
이제까지 단 한 개체도 죽이지 못했기에 악몽 그 이상의 흉몽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가사리를 죽일 순 없었다.
다만, 지진 않았다.
죽일 순 없었지만, 도로 들여보내긴 했다.
죽은 사람도 없다. 그래도 성공이다.
팀장은 팔과 안구를 잃었다. 그도 일주일은 정양해야 할 부상이었다.
“돌아가자.”
중봉이 말했다. 그도 절뚝거렸다. 뼈마디 하나하나 전부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또라이 새끼.’
팀장은 광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전투에 돌입한 자기보다 몸이 더 망가진 놈이다.
재생력이 탁월해서 이 정도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걸레짝이 되어 버렸을 놈이다.
그런 상황에서 타인을 구한다.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몸을 던진다.
그게 쉬운 일인가?
동찬의 말대로 낭만주의자나 할 일이었다.
* * *
우적우적, 우걱, 쭈우우우웁.
왼손에 든 포크로 바싹하게 튀긴 꿔바로우 한 점.
씹을 때마다 육즙이 입안을 휘돌았다.
이거 맛집이다. 확실했다.
오른손에 든 젓가락은 곧바로 잘 구운 양 갈빗살을 집었다.
집는 순간 곧바로 입으로 직행이다. 들어오면 치아가 제 역할을 수행한다.
씹고 다져서 목구멍에 넘긴다. 혀로 느껴지는 예민한 미각이 이 집이 맛집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
목이 탔다. 바로 옆에 둔 맥주잔을 들었다.
꿀꺽꿀꺽!
“크아.”
죽인다. 죽여주는 맛이었다.
“말했지? 이 집 맛집이라고.”
요한 형이 말했다.
“인정, 쌉인정.”
귀태가 말하며 나와 같이 전투적으로 음식을 섭취했다.
요한 형이 적당히 배를 채우고 물었다.
“오버랩 동대문 어땠냐?”
“뭐가 알고 싶은데?”
기밀이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순순히 말해 줄 마음이었다.
그 일이 끝난 지도 나흘이다.
팀장은 아직 회복 중이고, 임무에 참여한 모든 요원에게는 상여금과 휴가가 나왔다.
매번 휴가 나올 때마다 집에 갈 수도 없어서 이번에는 기숙사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었다.
요한과 귀태가 멀쩡해졌으면 밥이나 한 끼 하자고, 맛집을 찾았다기에 나온 참이었다.
첫날에는 나도 꽤 아팠다. 피로가 쌓인 거였다.
정신적으로도 지쳤고.
나중에 사수한테 대강 상황을 전해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미친 짓을 했는지도 알았다.
사방에 휘몰아치는 불가사리의 공격 속을 뛰어다녔단다.
하핫.
“자살하고 싶다면 그 방법은 추천하지 않겠다.”
사수는 그리 말했지만, 자살이라니.
턱도 없는 소리다.
할 만하니까 한 거다.
그나저나 네임드란 새끼, 생각하는 순간 지금도 팔에 우수수하고 소름이 돋는다.
정신 조종과 압도적인 파괴력의 몸통 기술, 부식, 투사 무기까지.
이제까지 단 한 마리의 네임드도 잡히지 않았다더니, 왜 그런지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네임드 불가사리 직접 봤지?”
요한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봤지.”
“어땠냐?”
요한은 태생이 그런 듯했다.
호기심이 많고, 제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면 듣기라도 해야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겹문과 새로운 네임드의 출현.
뉴스에서 동대문 인베이더 사건으로 나흘 내내 정부의 관리 소홀을 탓했다.
그만큼 큰일이었다.
나라가 들썩였다.
무엇보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 새로운 네임드가 출현한 것에 주목했다.
이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지.
결과를 보고 원인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나도 듣기만 했다. 자세히는 모른다.
“진짜 개 음경 같은 새끼였지.”
왜 네임드인지.
이름이 붙은 인베이더란 무엇인지.
그걸 말했다. 진부한 설명이지만, 더 붙일 말도 없었다.
“근데 그거 알아?”
요한이 내 얘기를 다 듣고 말했다.
“뭘?”
“그거 새로운 네임드 아니란다.”
새로운 게 아니면 뭔데.
“미개봉 새 상품이었냐?”
내가 되물었다.
“비슷한 거지.”
요한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농담한 건데 뭐가 비슷해.
귀를 기울였다.
요한은 소문을 듣는 귀재였고.
말을 전하는 대는 천재였다.
축약한 내용을 전하는 재주가 용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서 겹문이 열렸는데 그걸 임의로 막았다던데?”
“홀을 임의로 막아?”
귀태가 되물었다.
그래, 그건 말이 안 되지.
그걸 임의로 막을 수 있다면 이 땅에 홀이 열리게 놔둘 필요가 있나.
“어디까지나 소문이야. 그 겹문을 막는 바람에 새로운 네임드가 이 땅 저 땅 헤매다가 여기에서 터졌다는 거지. 그 터진 이유가 바로 한국에 원한이 있는 홀 클로저 때문이라고 하고.”
“홀 클로저?”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라. 문을 제 마음대로 닫을 수 있다고.”
난 새삼 궁금해져 물었다.
“어디서 이런 걸 듣고 오는 거야?”
“능력이다.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이거 기밀 아니냐? 막 퍼트려도 돼?”
귀태가 옆에서 말했다.
“알 사람은 다 안다고 하더라. 우리는 신입이라 이게 좀 늦는 거고.”
요한이 말하며 손으로 새 모양을 만들어 날갯짓하는 시늉을 했다.
“갈까?”
“잘 먹었다.”
둘이 먼저 일어났다.
“계산은?”
내가 물었다.
“탱자탱자 놀면서 상여금까지 받은 동기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지?”
“방금 들은 내용을 암시장에 팔면 얼마짜리일까? 그 정보의 가치를 알면 나한테 계산서를 들이밀면 안 되지.”
아니, 무슨 손발이 이렇게 잘 맞냐.
둘이 같이 콩트 짜서 어디 개그맨 시험 봐도 되겠는데.
“동생한테 밥을 얻어먹고 싶냐?”
내가 물었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우리 사이에 형제애는 없지. 동기애만 있을 뿐.”
“난 이성애도 있어. 내 허리케인은 아직 열렬히 돌아가는 중이거든.”
요한과 귀태가 번갈아 말했다.
“그래. 이 씹새끼들아. 형이 밥 산다. 거지새끼들, 평생 고기 한 번 못 먹어 본 새끼들, 궁핍을 덕지덕지 달고 사는 가난뱅이들.”
속사포처럼 쏟아붓자, 요한이 말했다.
“좀 심한데, 이 새끼가 형한테.”
“동기라며? 난 친구한테 원래 이렇게 말한다.”
티격태격하며 계산대로 향했을 때다.
“저쪽 신사분이 계산하셨습니다.”
양꼬치 집이라지만, 불멸자나 특수종을 손님으로 받는 곳이다. 꽤 비싼 곳이고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란 거다.
우리가 먹은 것만 해도 삼십은 훌쩍 넘게 나왔다.
직원의 안내에 눈을 돌렸다.
알 듯 모를 듯한 얼굴이 보였다.
내가 기억력이 나쁜 건 아닌데, 스쳐 본 얼굴 전부를 기억할 순 없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뭔데, 네 새로운 남친이냐?”
귀태가 물었다. 이 양반은 이게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더 무섭다.
“나 여자 좋아해. 자꾸 그러면 우미호랑 사귄다.”
불가능하다. 내가 원한다고 해도 안 될 것이다. 원하지도 않지만.
“시발, 결투다. 이 새끼야.”
귀태 형이 반응했다. 농담으로 무마하고 다시 그 신사라는 양반을 바라봤다.
진짜 알 것 같은데.
그가 일어나서 터벅터벅 다가왔다.
“고마웠습니다.”
그가 말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뒷모습을 보는 순간, 기억이 났다.
동대문 겹문 사건 때의 경찰대원.
내가 구한 사람 중 하나다.
근데 여기는 특수종이 모이는 곳인데?
그때 거기 있던 경찰대원은 일반인이었다. 훈련받은 일반인, 그들은 특수종이 아니다.
고로 이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
저 작자가 특수종이라면, 일반 경찰대원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나 먼저 간다.”
말하고 그 뒤를 따라 달렸다.
2층에 있는 식당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밖이 어둑어둑했다.
늦은 저녁,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사방을 비추는 시간이었다.
오감을 열었다.
걸음 소리와 기척을 잃고 방향을 잡았다.
일부러 소리 내서 쫓아갔다.
고맙다고 한 거면 날 피하진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걸음이 빨랐다.
어느새 주변이 더 어두워졌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이다가 꺼졌다.
내 앞에 그 남자의 등이 보였다.
꽤 널찍한, 운동 꽤 한 그런 몸이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나가떨어진 작자, 몸뚱이가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맞죠? 그때 그 경찰?”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네, 맞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초대해서.”
“음?”
고개를 모로 꺾고 되물으니.
“오랜만이야.”
어둠이 가려 준 장막 뒤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작 스무 걸음 안쪽.
예민한 내 감각을 속일 정도의 실력자였다.
감각의 영역에 두 명의 인영이 잡힌다. 처음 보인 건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자였다.
머리에 캡모자를 쓰고 딱 달라붙는 청바지와 흰 반팔티를 입었다.
“초여름인데 일교차가 커, 감기 걸릴라.”
말을 걸었다.
“이죽거리는 건 원래 이런 거지?”
그녀가 말했다.
발음이 어설펐다. 한국 사람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기억의 궁전 안에서 멋대로 튀어나왔다.
기억이 그때의 상황을 재생한다.
축능석 탈취 사건.
사수와 둘이 난입한 화이트홀.
팀장과 대치한 여자.
무전기 너머에서 들렸던 목소리.
그와 함께 스코프로 확인했던 몸의 선.
여자라서 관찰한 게 아니었다.
자세히 볼 필요가 있었다. 혹시나 나중에 마주칠 일이 있을까 봐 그랬다.
봐라, 결국 여기서 만났잖아.
상당한 글래머에, 얼굴도 꽤 예쁜 여자였다.
이름은 몰랐다. 다만, 그때 나눴던 대화는 기억했다. 그녀가 날 향해 지칭했던 호칭도.
“따란따도?”
내가 물었다.
“……난 저 새끼 마음에 안 들어.”
동남아 여자, 테러 단체 프로메테우스의 일원이 말했다.
자기 나라말이어서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의미는 알 것 같기에 답했다.
“나도.”
적중했다. 의미가 통했다.
여자가 미간을 힘껏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