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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75화 (75/488)

75. 나 때문에 온 게 아니었어

레이저 무기의 위력은 위대했다.

나와 사수가 하나씩 나오는 놈을 도로 던지거나, 화염방사기 쪽으로 들이미는 것과 달리.

변신족 친구는 모아서 한 번에 조졌다.

대신 경찰 부대가 특수 제작된 방패를 들고 버텨야 했고.

방패를 든 경찰이 부대끼며 버티면 한쪽에서 방아쇠만 당기면 그만이었다.

어째 균형은 맞는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네.

불멸은 땀 흘리고 변신은 방아쇠만 당기다니, 뭔가 반대로 된 것 같잖아.

하여간 막긴 했다.

그럼 남은 건 뭐냐.

“얼마나 막아요?”

판독하는 초능력자에게 물었다.

그는 이제 쌍코피를 흘렸다.

끝나고 나면 삼계탕이라도 하나 먹어야겠다.

아주 골로 가겠네.

후드득.

그가 바닥에 코피를 흘리며 말했다.

“2시간.”

어? 2시간?

사수를 돌아봤다. 사수는 무표정했다.

이거 위기 아닌가.

눈을 돌렸다.

현재 여기를 막는 중심축은 김말원이었다.

그 양반의 상태가 짱짱하면 괜찮겠지만.

“후우욱.”

이마에 핏대가 서고 눈은 실핏줄이 터져 빨갛다.

저쪽도 무리인데.

“물러나쇼.”

그 대신 정동찬이 더 열을 냈다.

티디딩!

검은 도끼 두 자루를 교차해 맞대더니 긋는다. 그러자 그 위로 불꽃이 터진다.

“불꽃 도끼 나가신다.”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거 좋다만.

그가 나서서 도끼를 휘둘렀다. 후아앙!

풍압과 바람, 불꽃이 어린 도끼가 슬라임을 썰고 찢고 쨌다.

순식간에 전면에 튀어나온 타다만 다섯 마리의 슬라임이 검은 재가 됐다.

난 상황을 판단했다.

보고 듣고 느낀다.

지친 발화 능력자.

날뛰는 노안 변신족.

레이저 사출 무기.

사수와 나, 거기에 경찰력.

2시간이라면 PWAT도 올 거다.

아니, 이미 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런데 거기에 김말원 만한 발화 능력자가 몇이나 있을까?

오늘 이런 블랙홀이 터진 곳이 여기뿐일까?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내가 말했다.

“이거 못 버팁니다.”

사수가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음. 사수.”

그녀를 불렀다.

이건 소모전이고, 이쪽 자원이 부족한데.

이러면 다 죽자는 건가?

아니면 내가 불멸의 몸으로 틀어막아야 하나?

“아까 말했다. 최근에 겹문이 꽤 생겼다고.”

사수가 말했다. 머리가 돌아갔다.

뜨끈한 열기에 잠깐 뇌가 익었나 보다.

사수는 이걸 예상했다.

그럼 당연히 저 양반 둘도 알고 있었겠지.

알고 왔다는 거다.

잠깐만, 그러니까 정동찬 씨랑 김말원 씨.

나 보러 왔다고 해 놓고.

“에이 씨.”

나 보러 온 거 아니네.

김말원 씨가 물러나며 호흡을 골랐다. 그가 물러남으로 힘의 균형이 넘어가려 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지하철 위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예상했다면 대비한다. 그건 모든 작전의 기본이었다.

작전 나오기 전에 사수가 계속 보던 게, 아마도 이 작전의 브리핑이겠지.

“왜 미리 말 안 해 줬어요.”

사수에게 말했다.

“……재미?”

재미? 지금 이 여자가 재미라고 한 건가.

김정아, 사수이자 얼음덩이 또는 엘사.

그런 사람이 재미라는 말을 쓴다.

“놀린 겁니까?”

“그러네.”

아니, 이 사람 좀 변한 것 같은데.

아닌가, 원래 이랬나.

모르겠다.

어쨌든 예상은 맞았다. 지하철 역사 위에서 열둘의 사람이 내려왔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초능 협회의 특전대다.

선두에 있는 남자가 말했다.

“넷이 하나로 세 조로 움직인다. 김말원 후방으로.”

“네.”

김말원 씨가 뒤로 물러났다. 그가 물러나며 날 향해 입을 열었다.

“유광익, 내 제안을…….”

“누구세요?”

누구신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을 겁니까.

나 보러 왔다면서, 난 거짓말쟁이랑은 안 놀아.

“구라는.”

다 들리게 읊조렸다.

김말원이 뭐라 말하기도 전이다.

“동생.”

그사이, 전선에서 물러난 정동찬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형씨, 누가 당신 동생이야.”

내가 반갑게 답했다.

그 말에 김말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건 다 이유가…….”

동찬이 말을 돌렸다.

“그만합시다. 오가다 얻어걸린 유광익에게 왜 이러십니까.”

내가 말했다.

“너 보러 온 거 맞아. 겸사겸사 일도 한 거지.”

아닌데, 그 반대 같은데.

곧 엑스큐라시에서 지원 부대도 왔다.

변신 셋과 불멸 둘, 초능 하나다.

예전과 달리 정부 쪽에도 변신족이 있고 엑스큐라시에도 불멸자가 있다.

적절한 혼성 그룹이었다.

고작 여섯, 아니 고작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전부 레이저 사출 무기로 무장하고 왔다.

“빈부격차가 느껴지는데요.”

그걸 보고 사수에게 말하자, 귀를 쫑긋 세운 동찬이 껴들었다.

“세상은 돈이 최고지.”

“아저씨, 자꾸 누구신데 말을 거세요.”

외면했다.

동찬은 하하 웃고는 참 재밌다며 다가오려 했다.

난 사수의 뒤로 물러났고 사수는 평소와 똑같은 태도로 사람을 대했다.

사수가 토가레프를 동찬에게 겨눴다.

“요원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생각이면 쏘겠다.”

“……너희 원래 이러고 노냐?”

아닌데, 아닌데,

그쪽이 먼저 잘못한 건데.

정동찬이 혀를 차고 물러났다.

“근데 사수.”

“말해.”

“협회도 기업도 다 지원이 오는데, 우리는요?”

대비했으면 누군가 올 거 아닌가.

아까는 초능 협회가 메인이었다면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레이저 사출 무기로 무장한 엑스큐라시가 중심이다.

그들은 효율성을 따졌다.

초능 부대는 염력과 발화를 주로 썼고, 홀에서 나오는 슬라임을 일렬로 몰아세웠다.

그럼 엑스큐라시 갑부 부대가 나서서 레이저를 쐈다.

지-잉!

정면으로 보면 잔상이 남는 광선이 쭉 뻗어 나간다. 레이저 사출 무기는 닿는 모든 걸 태웠다.

태우는 걸 넘어 완벽 연소시키기에.

불로 태우는 것보다 효율은 높았다. 인베이더, 정확히는 슬라임 무리는 나오자마자 녹았다.

아무것도 못 한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멍하니 레이저 쇼를 감상하는데 사수가 대답했다.

“온다.”

누가 오긴 오는구나.

하긴 구색을 이렇게 갖추고 불멸특수대만 달랑 둘이면 그림이 좀 그렇잖아.

“겹문은 최근에 새로 생긴 이상 현상이다.”

사수가 말했다.

네, 아까 말했죠.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지? 이상 현상이 가져오는 파장은?”

이상 현상은 변화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건 주기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일이잖아.

주기적인 현상 발생이 먼저다.

겹문이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나도 벌써 알았어야 했다.

아직은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가 모른 거다.

물론 머니 & 세이브와 한창 드잡이질 중이어서 모르는 것도 있었겠지만.

대답했다.

“이상 현상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주로 일어나는 변화는 새로운 네임드의 출현입니다.”

“그것보다 먼저 머리에 박아 둘 것 하나.”

사수가 말했다.

눈을 마주하자, 그녀가 마저 말을 이었다.

“아더 사이드, 블랙홀과 관계된 일에는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다.”

그 무엇도 예상하면 안 된다.

사수가 말한 의미를 이해했다.

그와 함께다.

“양심이 없어, 양심이. 힘들게 키워 놨더니 죄다 훔쳐 가려고 침을 바르네. 남의 개를 왜 탐내, 탐내긴!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평생 죽만 처먹는 거야!”

“팀장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먼저, 그리고 그걸 말리는 사람이 하나.

둘이 선두였다.

“……팀장님이 오는 거였어요?”

“응.”

팀장이 터벅터벅 내려온다. 담배 하나 꼬나물고 연기를 푹 내뿜었다. 흰 연기가 그의 얼굴에 머물렀다가 뒤로 사라졌다.

지하철 전등이 깜빡이다가 팀장이 내려오니 후광처럼 빛났다.

시발 팀장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눈이 두 번 멈췄다.

정동찬과 김말원 앞에서다.

“아주 도둑놈 새끼 천지네, 천지야.”

“……너 이중봉 팀장님 소속이었냐?”

동찬이 슬그머니 물었다.

“몰랐어요?”

몰랐나 보다. 그는 뒤로 몇 발 물러나더니 나한테 속삭였다.

불멸자라고 해도 엿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제안은 없던 일로 하자.”

김말원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거로 뜻은 통했다.

“도둑놈은 다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야 해.”

“팀장님, 오버랩 블랙홀입니다.”

옆에서 말리는 사람도 눈에 익었다.

강희모 대리다.

이전에 같이 일한 적도 있고 그 이후로도 꽤 가깝게 지냈다.

“대리님.”

인사하자.

팀장이 성큼 내려와 날 보고 말했다.

“팀장 보고는 인사도 안 하냐?”

“어, 아까 잠깐 눈으로 인사했는데 못 보셨어요? 불멸자가 그렇게 둔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되레 말하니.

“상또라이 새끼.”

팀장이 말하고 날 스쳐 간다. 팀장과 강희모 대리만 온 게 아니었다.

불멸특수대의 외부 보안 1팀이 함께다. 열이 넘는 숫자였다.

무장이 화려했다.

산탄총, 화염방사기, 백린탄 등등, 화기부터 칼과 나이프를 지녔다.

레이저는 없나? 없다.

행정안전부도 부자지만, 효율로 따지면 레이저는 사치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몸으로 때우는 게 불멸자의 전투 컨셉이기도 하고.

괜히 서럽냐.

“야, 시바아아알!”

난 태어나 팀장이 외치는 걸 처음 들었다.

그가 외치자, 슬라임을 조지던 이들도 시선을 돌렸다.

“죽겠네. 진짜.”

강희모 대리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그 마음 알죠.

저 사람이랑 같이 일하면 없던 울화병도 생길 겁니다. 강 대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요. 괜찮을 겁니다. 잘 될 겁니다.

모두의 시선을 끌어낸 팀장이 말했다.

“우리 집 개 건들지 마라, 경고했다. 한 번 더 내가 키운 개새끼 건드리면 나 돌아 버릴 거야. 나 불특대 이중봉이야.”

강 대리는 말을 잃었다. 사수는 드물게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난 한 걸음 나섰다.

지금 팀장 나 때문에 저러는 건가.

설마 내가 다른 곳에 갈까 봐?

혹시나 해서 저러는 거야?

“누가 개라는 겁니까.”

그래서 나도 외치듯 말했다.

“너 아니야. 착각하지 마.”

오리발은 팀장의 특기인가.

“아니, 개는 아니잖아. 개는.”

투덜거렸다.

말해 뭐하랴. 저 양반은 말이 안 통한다.

“미친 새끼.”

“저 또라이는 아직도 안 죽었나?”

각각, 협회와 엑스큐라시 책임자가 말하는 게 들렸다.

네, 왜 안 죽나요. 저 양반.

“일이나 하시죠.”

강희모 대리가 교통정리에 나섰다.

“흥.”

팀장은 콧김을 한 번 뿜더니 기어코 말을 덧붙였다.

“나 진짜 경고했다.”

“알았다. 이 미친 새끼야!”

협회 책임자가 버럭 외쳤다.

아니, 이 정도 지원 병력이 온 거면 이제 안정적인데, 다들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예민하다.

몇 가지 사실, 사수가 한 말, 현재 상황이 머리를 스쳤다.

이상 현상은 예상하지 말 것.

겹문은 이상 현상.

과도한 지원 병력.

인간은 예상하지 말라고 해도 모든 상황을 예측하려 한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다.

그 미래를 조정하려 하는 것도.

이제까지 이상 현상은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가장 일반적인 변화는?

“잘 봐둬. 흔히 할 수 없는 경험이니까.”

사수가 말했다.

꽝!

폭음이 터진다.

한 번이 아니었다.

꽝꽝꽝꽝!

연신 터진 굉음이 귀를 울렸다. 몸이 덜덜 울릴 정도였다.

집중해서 한 곳을 바라봤다.

블랙홀, 겹문이 생긴 곳이다.

“예상 지점 알파 셋, 알파 셋. 알파 셋. 여깁니다.”

강희모 대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만 들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예상 지점이란 것.

알파 셋이라는 건 최소 세 군데를 예측했고.

그중 하나가 여기라는 거다.

불길한 예감은 잘 맞는다.

“전원 전투 준비.”

팀장이 알싸한 담배 냄새를 풍기며 내 옆에 섰다.

“정아야, 병아리 데리고 빠져.”

그 병아리가 접니까?

쿠르르르.

땅이 울었다. 천장에 먼지가 일어나 떨어졌다.

먼지 비를 맞으며 앞을 봤다.

블랙홀이 찢어지는 게 보였다. 말 그대로였다.

겹친 문이 좌우로 찌지직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균열이 일어난다. 그 균열 사이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블랙홀이 열릴 때와 똑같았다.

“염병.”

강희모 대리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네임드 출현, 반복, 새로운 네임드 출현, 새로운 네임드는 넘버링 3에서 파생, 형태를 보고 명칭을 정합니다. 타입 슬라임, 타입 슬라임.”

강 대리의 말이 멀어졌다.

쩌저저정.

물리적으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불멸자의 감각은 그런 소리를 들은 것처럼 착각했다.

균열이 찢어지고, 열린다. 그 안에서 인베이더, 넘버링이 아닌 이름을 붙이는 괴물이 튀어나왔다.

펑.

나온 놈의 발이 바닥을 때렸다. 쿵 하고 땅이 울렸다. 곧 찢어진 홀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난 시선을 뺏겼다. 태어나 처음 보는 건 아니다.

휴즈 게이트 사건 때 그 한복판에서도 봤다.

그래서, 이 분위기, 이 공기를 알았다.

네임드, 인류가 지닌 최악의 악몽이었다.

두드드드.

흔들리는 땅이 멈춘다.

찢어진 블랙홀 밖으로 빨간 발판을 지닌 몸체가 보였다. 불그스름한 젤리인 건 슬라임과 같았다.

모양이 눈에 익었다.

“새로운 네임드 출현. 임시 명칭 불가사리, 불가사리로 정합니다.”

강희모 대리가 말했다.

“광익.”

옆에서 사수가 손을 잡았다.

몰랐다.

난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빠진다.”

사수가 말했다.

“왜요?”

내가 되물었다. 굳이? 이제까지 내가 증명한 전투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이 사람들은 왜 모였나?

저런 걸 죽이려고 모인 게 아닌가?

그럼 나도 그러겠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 서 있는 모든 이유가 머리를 스쳤고 사라졌다.

보는 순간 알았다.

저건 죽여야 한다.

인류의 적이다. 이유 없는 악의와 살의의 덩어리.

인베이더란 그런 것이었고.

네임드는 그 극치에 다다른 놈이었다.

“팀장님.”

이중봉을 불렀다.

“빠져.”

그는 단호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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