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74화 (74/488)

74. 겹문

“김말원이다.”

말하며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맞잡았다.

“네. 불특대 유광익입니다.”

스윽 하고 제 머리를 쓸어올린 김말원이 날 빤히 바라봤다.

뜨거운 시선이다. 발화 능력자인 걸 알아서 그런지 새삼 눈빛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협회에는 협회장 직속의 부대가 있다.”

말원 아저씨가 말을 이으려는 데 동찬이 나섰다.

“말원이 형, 상도덕이 없네. 나랑 대화 중이잖아. 매너 지킵시다.”

“누가 당신 형이야?”

“말원이 동생, 나랑 먼저 얘기 중이었다니까.”

화륵.

김말원의 손에 불꽃이 타올랐다.

“주둥이를 지져 줄까?”

김말원이 말했다.

“우리 형이 이승에 너무 오래 머물렀네. 갈 때가 됐나 봐.”

스릉.

말하며 동찬이 허리춤에 찬 손도끼에 손을 얹는다.

도끼날이 새카맣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 마주쳤다.

스파크가 튀었다.

나 하나 두고 이렇게 싸우다니.

한쪽은 덥수룩한 변신족.

다른 쪽은 눈매가 사나운 초능력자.

기분이 좋은 듯하면서도 찝찝하고 그러네.

기왕 보낼 거면 미모의 여성으로 보내 주면 보기도 좋고 얼마나 좋아.

왜 하필 털이 숭숭한 남자 둘이냐고.

“싸우시게요?”

내가 물었다.

“협회에는!”

김말원이 말했다.

“엑스큐라시로 와라!”

정동찬도 뒤지지 않았다.

“원하는 게 돈이냐?”

김말원이 물었다.

“돈?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어디인지 물어봐라. 옆집 똥강아지도 알걸?”

정동찬도 쉬지 않았다.

“인류를 위한 협회는 드높은 명예가 함께한다!”

“펜트하우스에서 살며 필요한 순간에만 나서면 된다!”

“네가 가진 재능을 쓸 가장 적합한 곳이다! 물론 연봉도! 갖고 싶은 것도 전부 갖게 될 거고!”

“몸을 함부로 굴리고 싶나? 설마. 특수종은 몸이 재산이지. 그걸 지키며 너에게 맞는 최적의 인프라. 능력만큼 인정받는 대우!”

크르릉!

일촉즉발,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난 둘의 대화를 들으며 읊조렸다.

“듀엣인 줄.”

휙!

둘의 고개가 동시에 꺾였다.

불꽃 남자와 변신 남자, 두 쌍의 눈이 날 후벼 팠다.

“흠흠, 잘 들었습니다.”

말 한마디로 둘의 적의를 멈춰 세웠다.

슬쩍 사수를 봤다. 사수는 블랙홀만 주시하고 있었다.

경찰 지원 인력이 화염방사기를 가져와 김말원의 빈자리를 채우는 중이었다.

화학 공장에서나 날 법한 불쾌한 냄새가 났다.

슬라임은 잘 타 죽고 있다.

그런데 사수는 왜, 들은 척도 안 하는 거냐.

사람 참 곤란하게 말이야.

난 둘이 듀엣으로 랩을 하는 걸 들었고, 나에게 제안한 걸 캐치했다.

협회는 나에게 명예를 말했다.

물론 그만한 일을 하기에 그에 합당한 대가도 주겠다고 한다.

엑스큐라시의 제안은 고액 연봉의 스포츠 스타를 연상케 했다.

‘일한 만큼 벌어라’가 아니라.

넌 능력이 있으니까, 특별 대우다.

이런 거다.

근데 정말 이걸 다 해 준다고?

펜트하우스?

미심쩍다. 매우 미심쩍다.

“펜트하우스를 준다고요?”

정동찬을 바라봤다.

“지금 말고. 나중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동찬이 말했다.

이 양반이.

“협회에서 고액 연봉이요?”

이번에는 김말원을 향해 말했다.

특수종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단체 중 하나 아닌가.

불멸특수대와 엑스큐라시는 신입부터 고액 연봉이지만, 초능 협회는 아니다.

“협회장 직속 부대가 되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김말원이 일으켰던 불을 없애고 말했다.

이 양반들이 진짜, 뭐라는 거야.

지금 당장 약속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거잖아.

“연봉은 높여 줄게.”

다시 동찬이 말하고.

“직속 부대 면접을 봐라.”

말원이 말했다.

둘을 보며 알았다. 날 향한 욕심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상한선은 정해져 있다는 거다.

사람을 꼬드길 때, 중요한 건 기대감을 심어 주는 거다. 그러기에 둘이 듀엣으로 노래하듯 외친 거겠지.

하도 둘이 소리를 질러서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둘 다 지금보다 나은 대우를 약속하긴 한다. 근데 이게 고민할 거리가 되나.

“과장님!”

막 뭐라 입을 열려 할 때다.

화염방사기를 쥐고 있던 협회원이 외쳤다.

“젠장! 물러나! 뒤로! 뒤로!”

경찰 쪽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불멸의 감각이 몸을 깨운다. 보고 듣고 느낀다. 육감과 직감의 영역이 열렸다.

눈이 향한 곳이다.

잘 타죽고 있는 슬라임.

그 뒤에 열린 검은 구멍, 직감이 말했다.

블랙홀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터질 것 같더라니.”

정동찬이 옆에서 말하며 움직였다.

그때까지도 내 모든 감각은 그 홀 안을 주시했다.

이건 뭐지?

홀 안에 또 다른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에서 뭔가 튀어나온다.

“사수.”

말과 동시에 앞으로 뛰었다.

땅을 박찬 순간, 내 몸이 공기를 찢었다.

쾅.

발 구르기 한 번에 지하철 바닥이 터지듯 부서진다. 그 반탄력이 내 몸을 몇 배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쭝!

눈앞에 흐릿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회색빛은 물컹하고 긴 젤리처럼 보였다.

젤리의 목표는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경찰대원 중 하나였다.

“사람만 챙겨.”

시간을 쪼개 내달린 내 귀로 목소리가 꽂혔다. 곧바로 대원의 팔을 쥐고 당겼다.

우두둑!

힘 조절을 못 해서 어깨가 빠지겠지만, 죽은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꽝!

사람을 당겨 안고 구르는 사이, 터진 폭음이었다.

널브러진 대원의 상태를 확인했다.

“으으.”

그가 신음을 흘렸다.

어깨 관절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챙기세요.”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뒤로 경찰 동료 몇이 다가왔다.

눈을 앞으로 돌렸다.

검은 강화 슈트를 입은 등이 보였다.

변신족 노안, 정동찬의 등이었다.

위로 넉넉한 셔츠를 걸친 것처럼 보였는데, 안에 저런 걸 입었었구나.

정동찬이 양손에 손도끼 두 자루를 들고 교차해서 젤리를 막았다.

교차한 도끼 중앙, 회색빛 젤리 덩어리가 보였다.

“힘라임이다.”

그가 말하며 세차게 도끼를 밀어 내쳤다.

회색 젤리 몽둥이가 퉁 하고 튕기더니 뒤로 슈르륵하고 돌아갔다.

개구리 혀가 떠오르는 움직임이었다.

그제야 검은 구멍 너머로 나온 놈이 보였다. 회색빛 젤리다. 아까와는 형태가 달랐다.

회색 돌덩이에 누군가 덧칠을 한 것처럼 반투명한 젤리의 슬라임이다.

“말원이 형. 놀 거야?”

동찬이 외쳤다.

“짐승 따위가 왜 내 동생이냐.”

화르르륵!

젤리 위로 불꽃의 비가 쏟아진다. 불꽃의 비는 놈의 머리 위에서 제멋대로 합쳐지더니 창이 되어 내리꽂혔다.

화륵! 꽈-앙!

폭음이 터졌다.

푸드드득.

페이스 가드 위로 젤리 잔해가 튀었다.

“최근에 홀 안에 새로운 구멍이 생기는 일이 생겼다. 현재 정한 명칭은 겹문, 오버랩 블랙홀이다.”

내 뒤로 다가온 사수가 말했다.

“놀랐네요.”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다. 아니, 내가 하나 구한 거다.

저 회색 젤리 펀치 범위 안에 있던 경찰 친구 하나를 빼냈으니까.

나와 같은 속도로 반응한 정동찬이라는 양반도 대단했고.

김말원 씨의 불꽃 창도 나쁘지 않았다.

블랙홀 앞에 꽂힌 화염의 창이 그대로 슬라임 한 마리를 폭사시켰다.

“판독.”

사수가 입을 열었다.

외치는 소리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들릴 만한 크기의 목소리였다.

“아, 네.”

협회 직원이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판독 전문 초능 특수종이였다.

그가 곧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넘버링 3 형태입니다. 겹문, 오버랩 홀, 슬라임 전 형태 출현 예상!”

넘버링 3은 슬라임.

아까 처음에 본 게 일형 부식이라면.

갑자기 튀어나온 길쭉한 놈은 젤리의 몸으로 사람을 옥죄고 때리는 놈이다.

별명은 힘라임, 그게 두 번째 형태다.

불꽃 창에 타닥타닥 슬라임이 타는 소리 뒤로, 세 번째 형태의 슬라임이 고개를 내밀었다.

몽글몽글한 녹색 반투명 괴물이다. 녹조가 잔뜩 낀 썩은 물이 허공에 고인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투사 형태 확인.”

김말원이 그렇게 말하고 손을 펼쳤다.

화륵, 다시 한번 불꽃 조형의 시간이 도래한다. 허공에 불꽃을 뿌리자, 곧 다섯 개의 화살 형태로 변했다.

그 화살이 떨어지기 전에 삼형 슬라임이 제 특기를 발휘했다.

투사 형태, 그러니까 뭘 쏘아 내는 놈이다.

푸푸푸푸풍!

놈이 젤리 덩어리를 쐈다. 전부 부식탄이었다.

맞으면 맞은 부위를 녹이고 뚫어 버리는 관통력을 지닌 슬라임탄이다.

정동찬이 움직였다. 투사가 퍼지기 전, 앞으로 나간다.

“훕.”

짧게 호흡을 들이켠 그가 양손에 든 도끼를 사납게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도끼 그림자가 허공에 수없이 새겨지고.

풍압이 사방으로 몰아친다.

날아오는 부식탄을 일일이 도끼로 쳐서 막았다.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어디서 총질이야.”

그가 중얼거린 사이, 녹색 덩어리 위로 불꽃 화살이 꽂혔다.

퍼버버벅!

비명은 없다. 슬라임은 발성 기관이 없었다.

그저 트드드득 하고 타는 소리만 남겼다.

“형태 더블 라인.”

판독 전문 초능력자가 죽은 슬라임을 보며 말했다.

더블 라인, 두 줄로 줄줄이 나오는 놈이다. 그럼 속도는?

라인이라도 다 같은 라인이 아니다.

웨이브 형태가 아닌 건 다행인데.

“초 단위입니다. 다섯에 하나.”

5초에 한 마리가 튀어나온다. 그것도 두 줄에서 각각.

“쏴!”

경찰대원도 나섰다.

투다다다다!

총기와 화염방사기, 지하철 내에서 쓸 수 있는 소형 화기가 불을 뿜었다.

적을 가늠할 것도 없었다.

블랙홀은 입구, 그 입구에 화력을 쏟아부으면 그만이었다.

“불특, 놓친 거 잡아 줘.”

동찬이 말했다.

“확인.”

사수가 말하며 허리춤에서 약을 한 알 꺼내 삼켰다.

“무슨 약이에요?”

사수와 난 페어다. 그녀의 상태를 아는 건 기본이었다.

“피지컬 칵테일. 동체시력과 운동 능력.”

두 가지 능력을 펌핑한다는 소리다.

사수가 토카레프를 꺼냈다.

철컥.

장전하고 겨눈다.

나도 감각을 집중했다.

슬라임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기에, 화력을 뚫고 살아남은 놈도 있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놈이 검은 그을음, 슬라임 사체 밑으로 주르륵 흐르듯 다가왔다.

“사형!”

판독 초능력자가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그도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퉁.

내가 나섰다.

전면은 정동찬과 김말원이.

우측 측면은 사수와 내가.

순식간에 전장의 형태가 정립된다.

“조심.”

사수가 말했다.

4형은 위험하다. 순식간에 불멸자도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일형이 닿은 걸 부식시키고.

이형이 물리적인 힘을 쓰는 쪽이라면.

삼형은 부식탄을 쏘고.

사형은 자폭한다.

폭발 슬라임이다.

내달리며 슬라임에게 다가간다. 정기남을 통해 배운 집중의 감각을 일으킨다. 시간을 쪼개고 쪼갠다. 그 틈으로 놈을 봤다.

처음 보는 놈이지만, 그 형태, 놈이 발화하는 방식, 폭발하는 순서.

모든 걸 인식한다. 직감이 말하고 오감이 체크한다.

모든 걸 감지하고 파악한다.

슬라임의 몸이 부풀었다.

약 2초, 다 부풀면 터질 거다.

왼발로 땅을 디뎠다.

놈이 제 몸을 늘려 뻗어 냈다. 내 발목을 잡아채려 했다.

난 왼발을 축으로 허리를 틀며 오른발을 뻗었다.

받아라, 중거리 슛.

펑!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4형의 슬라임이 튀어나온 것보다 열 배는 빠른 속도로 도로 홀 앞으로 날아갔다.

꽝!

폭음이 들렸다.

“일단 한 마리.”

말하고 통통 제자리에서 점프하며 몸을 풀었다.

“다시.”

사수가 말했다. 그녀가 총구를 겨눴다.

탕탕탕!

세 발의 탄이 젤리에게 꽂힌다.

이번에 흘러나온 놈은 두 번째 형태, 에너자이저 슬라임이었다.

근데 탄환의 물리력으로는 놈에게 타격을…….

화륵. 탄이 박힌 곳에서 흰 불꽃이 타올랐다.

“조져.”

사수가 말했다.

그녀가 쏜 탄은 일반탄이 아니다. 백린탄이다.

몸통에 박힌 순간, 탄이 맞은 부위에서 타오르는 고가의 탄환이다.

“아니, 그건 언제 챙겼대요.”

말하며 달렸다.

놈이 제 몸을 길쭉한 다섯 개의 막대기처럼 만들었다.

피하고 달려든다. 손가락을 뻗어 물컹한 몸통에 박고 왼발을 축으로 던졌다.

이번에는 투포환이다.

훙!

놈이 날아간 곳은 막 김말원 아저씨가 뿌리는 불꽃의 축제 속이었다.

화륵.

다시 슬라임이 탄다.

그래도 이쪽은 버틸 만은 한 것 같은데.

“반대쪽 지원은 안 가도 돼요?”

사수에게 물었다.

“필요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이이잉.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지잉!

퍼버버버벙!

반대쪽 측면이었다. 그 앞에 정동찬의 뒤를 지키던 변신족이 서 있었다.

손에 총기를 들고 있었는데, 그냥 소형 화기가 아니었다.

사출구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총이 보였다.

뭐냐, 저건.

그걸 빤히 보고 있자니.

“……엑스큐라시는 세계 제일의 부자다.”

사수가 말했다.

인정이다.

만드는 것도 문제고 난사하면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은 거뜬히 나오는 총을 저리 들고 있는 걸 보니, 인정할 수밖에.

변신족 친구가 든 건, 레이저 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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