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잘했다.
“전부 사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나.”
“이 미친 자식들이.”
마윤 상무와 김동철 이사가 말했다.
난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단발머리 팀장 누나는 테이블 앞, 입회인인 사장은 문 옆에 있는 의자, 그 뒤에는 비서 형아.
사장은 팔짱을 끼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보여 줘, 뭔데? 너 뭘 숨겼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비서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을 테니, 내가 숨겨 둔 한 수가 있다는 건 알 테지.
“박다람 팀장님.”
“말해.”
“감사합니다.”
고개를 까딱 숙여서 감사를 표한 뒤, 테이블 앞에 섰다.
“저거 뭐하냐?”
파견 본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옆에 있던 감사팀 과장이 한 걸음 나섰다.
“유광익 사원, 보안 3팀이 전부 연루됐다면 너도 포함이다.”
부하 직원이 나서는데도 박다람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소리 없이 몇 걸음 물러날 뿐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현 시간부로 2급 사원 유광익 또한 준범죄자로 규정하…….”
“잠시만요. 그게 끝이 아닙니다.”
더 말할 게 있었다.
난 모두의 시선을 모은 뒤 말을 번쩍 손을 들고 발표했다.
“어제 본사를 턴 것도 저였습니다.”
난 어릴 때부터 나서서 발표하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였지.
사장의 눈빛이 더 반짝이고.
“뺀질이 자식이.”
뒤에서 나지막이 흘리는 팀장의 혼잣말이 들렸다.
난 내 앞의 상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과연.
어지간한 간덩이가 아니다.
이리 말하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감정 변화가 없다.
정기남을 통해 배운 감각을 집중해서 살피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살피는 대상은 고요한 호수와 같았다.
난 늘어뜨린 오른손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본사 금고에서 재밌는 걸 주웠습니다.”
“너 지금 뭐 하냐?”
총괄본부장이 날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작전이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 진행됐다는 증거 제출이요.”
“이게 뭔 개소리야.”
총괄본부장의 눈이 내 뒤로 넘어갔다. 박다람 팀장을 보는 듯했다.
난 품에서 종이보다 두꺼운 가죽 용지를 꺼냈다.
인베이더의 가죽을 가공해 만든 용지다.
쉬이 훼손되지 않고 한 장에 최소 백만 원은 하는 그런 고가의 양피지.
“머니 & 세이브가 그냥 금융 업체일까요?”
양피지는 돌돌 말린 채로 내 손에 있고.
난 그걸 들고 마윤 상무를 눈에 담았다.
이런 앙큼한 양반.
연기력이 아주 할리우드 배우 뺨을 후리겠어.
모른 척한다. 당황한 기색도 안 내비친다.
그래, 이게 반출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나?
그럴 수도 있었다.
우리 중고 형은 턴 개인 금고를 얌전히 다시 잠갔고.
아다만티움 개인 금고는 본인이 아니면 확인 불가다. 본점 관리자는 금고가 다 타고 털렸지만, 개인 금고는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양피지의 주인이 금고 안을 확인해 볼 시간도 없었겠지.
“여기서 그 업체의 진실성을 따질 순 없다. 중요한 건 불멸특수대 요원이 가진 자격에 관한 이야기니까.”
뒤에서 박다람 팀장이 말했다.
물론 날 돕기 위해 한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게 프로메테우스 자식들이건 말건.
일단 혐의만 갖고 테러 단체를 테러한 거잖아.
그럼 안 되고 책임져야 해.
이 자리에 그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내규에 따르면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는 혐의만으로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다.”
내가 말했다.
“내규 12조 8항.”
사장이 읊조렸다.
“아주 특수한 사항은…….”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이다.
“사내에 큰 위험이 닥쳤을 때다.”
김동철 총괄본부장이다.
그는 날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분위기는 반전되라고 있는 거고.
드라마는 반전의 순간이 가장 재밌는 거다.
“직접 보시죠.”
양피지를 묶은 끈을 당겨 푼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돌돌 말아 두었던 양피지가 주르륵하고 펴졌다.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테러 단체가 하나만 있을 리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가져와 인류를 구원한다는 취지의 또라이 모임이라면.
또 다른 모임도 있었다.
불멸우월주의.
오롯이 불멸자의 피만이 이 땅에 합당하다는 자들의 집단.
테러 단체에 준하는 사이비 종교, 불멸교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광명의 불빛이 우리에게 있나니, 아둔한 이들에게 종의 우월함을 가르치겠노라.”
불멸교의 고위 신도는 그들을 증명하기 위해 계명서를 지녀야 한다.
난 솔직히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배신 방지? 소속감 장려?
이유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 계명서의 가치는 알았다.
계명서에는 소속된 불멸교도의 이름이 있다는 것.
그 이름은 절대로 거짓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인베이더 양피지를 쓰고 특별한 액체로 이름을 새긴다.
불멸교주의 기도로 만든 ‘성수’라는 이름의 액체, 사실은 조금 특이한 잉크일 뿐이다.
불멸자의 피에만 반응하는 그런 잉크.
이 액체 자체는 과학이 아닌 마법에 관련된 것이기에 쉬이 재현은 불가능했다.
오로지 불멸교주만이 만들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 같은 거였다.
물론 이 세부 내용은 전부 박다람 팀장에게 들었다.
이게 진짜라면 어떻게 반응한다는 것도.
내 눈은 오롯이 마윤 상무를 쫓았다.
그는 눈웃음을 보였다.
“재주가 용한 친구네.”
그사이, 고기 선물하기 좋아하는 김동철 총괄본부장이 양피지를 들고 외쳤다.
“나이프 줘 봐.”
사장 비서가 스로잉 나이프 한 자루를 던졌다.
그걸 받은 김동철이 손끝을 그었다.
슥, 주륵, 뚝뚝뚝.
피부가 베이고 피가 흘러 양피지 위로 떨어졌다.
뚝뚝 떨어진 피가 스며들었고.
계명서의 이름은 불멸의 빛, 검붉은 핏빛을 띄웠다.
적힌 이름도 보였다.
[마윤, 김태광]
그와 동시다. 퉁 하고 마윤이 테이블을 발로 밀었다.
테이블을 밀고 몸을 돌리며 주먹을 뻗는다. 노린 건 김동철이다.
하지만 마윤은 주먹을 끝까지 뻗지 못했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장의 비서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한 손으로 손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마윤의 목에 손가락 두 개 크기의 날을 가진 나이프를 들이민다.
마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목을 비틀었다.
스컥.
칼날이 목을 그었다. 피가 울컥하고 솟았다. 그는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날렸고 주먹을 휘둘렀다.
비서는 그 주먹을 받아 내고 품에서 막대기를 꺼냈다.
우미호가 말했던 레이저 강선이었다.
그걸 뽑기도 전에 마윤은 발바닥으로 비서 형아의 얼굴을 때렸다.
목에서 쏟아진 피가 사방에 튀었다.
정신을 팔 때가 아니었다.
목 뒤가 뜨끔했다.
아찔한 느낌이 드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슝 하고 내 목이 있던 자리에 칼날이 지나갔다.
칼날이 끝이 아니었다. 코앞에 총구가 보였다.
왼 팔꿈치를 올려쳤다.
총구가 아니라 그걸 든 손이 걸렸다.
툭, 탕!
총알이 천장에 꽂혔다. 난 왼발을 앞으로 뻗으며 오른 팔꿈치도 휘둘렀다.
상대가 그었던 칼날을 수직으로 세워 밑으로 찍었다.
공격을 멈추고 피하며 왼손으로 권총 쥔 손을 야무지게 쥐었다.
우드득.
악력으로 손가락뼈를 부러뜨리자, 권총이 밑으로 떨어졌다.
놈은 그사이에 칼날을 세워서 내 얼굴을 향해 찔렀다.
난 칼날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푹!
화끈한 열통이 손바닥을 시작으로 뇌를 짜릿하게 자극했다.
아프다.
이 새끼도 불멸자의 전투에 익숙했다.
이 정도로는 놈의 움직임을 1초도 멈출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거로 충분했다.
0.5초면 차고도 넘치지.
네 뒤에 박다람 있다.
놈은 날 밀쳐냈고, 밀쳐내는 그 잠깐의 틈에 위에서 밑으로 박다람의 내려찍기가 꽂혔다.
쾅, 우드득!
와우, 경쾌한 소리.
발뒤꿈치가 피부를 찢고 근육을 끊어 빗장뼈를 부쉈다.
“끄으윽.”
맞은 놈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절로 엄지손가락이 들렸다.
평소 훈련 강도를 봤을 때 예상은 했다.
이 작자, 겉보기와 달리 한 방 한 방에 실린 무게가 어지간한 헤비급 이상이다.
옷 안에 감춰진 근육의 힘이, 본래 상대적으로 약한 근력을 타고난 불멸자의 한계를 넘기게 했다.
그녀는 강했다.
“이 개새끼.”
그리고 욕도 잘했다. 나한테 덤빈 놈은 내부 감사팀 과장이자 그녀의 부하였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박다람 팀장은 손도 빨랐다.
뒤를 돌아보니, 자유를 찾은 외부 보안 3팀이 보였다.
내가 양피지로 시선을 끄는 사이, 단발머리 귀요미는 보안 3팀의 구속구를 풀었다.
“나 같이 연약한 사람한테 이런 걸 채우다니, 실례라고.”
팬더 대리가 일어서며 말했고.
사수는 묵묵히 제 손목을 쓰다듬었다.
불멸자가 아닌 사수의 손목에는 긁힌 상처가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 사람이다.
“후우.”
숨 한 번 내쉬는 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남자.
“나와, 새끼야.”
시발 팀장은 내 옆을 스치고 내달렸다.
눈을 돌렸다. 목에서 피를 콸콸 흘려야 할 마윤은 어느새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사장의 비서가 레이저 강선을 들고 뻗다가 손을 멈췄다.
시발 팀장은 몸을 날림과 동시에 위에서 밑으로 팔꿈치를 그었다.
저기에 맞으면 어지간한 호박도 반으로 쪼개질 것이다.
마윤은 피하는 대신 팔을 내줬다.
팀장은 팔꿈치를 긋다가 손을 뻗어 마윤의 손목을 잡았다.
우득, 퍽, 쩍.
“끅.”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손목을 잡아 뽑고 반대쪽 손을 수도로 바꿔 반격하는 상대의 팔뚝을 때리고.
발끝으로 정강이를 걷어찼다.
전부 한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시간차가 없는 공격이었다.
“더 할 거면 놔주고.”
팀장이 말했다.
그 한마디에 실린 무게가 가볍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 덤벼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전투에 관해서는 불멸특수대 최강 중 하나로 꼽는 불멸자의 한마디였다.
“된통 당했군.”
마윤이 말했다. 그의 눈이 내 쪽을 향했다.
“사원 나부랭이한테.”
절로 어깨를 움찔하게 만드는 시선이다.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날 샅샅이 훑는 그런 눈빛.
맹세코 살면서 처음 받아 보는 종류의 관심이었다.
“자네, 내 잊지 않겠어.”
“잊어 주세요. 전 다른 사람이 생겼어요.”
위트와 농담은 내 혈관에 각인된 재능이었다.
그 한마디에 사장은 또 풉 하고 웃었고.
팀장은 눈알을 부라렸다.
너, 이 미친 새끼.
말하지 않아도 들린다.
어디서 음성 지원이 됐다.
“잘했다.”
뒤에서 사수가 내 어깨에 손을 짚었다.
“오, 광익 짱.”
팬더도 다가와 궁둥이를 두들겼다.
썩 기분이 좋은 스킨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한 거였니?”
단발머리 귀요미 팀장님이 물었다.
뭘?
눈으로 되묻자.
“늦은 거.”
아니요. 진짜 늦잠 잔 겁니다.
“네. 그렇죠. 뭐.”
난 솔직한 남자지만. 때론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마윤, 불멸교도의 손과 발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졌다.
상황 역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지랄 맞은 일이었다.
시간으로 치면 고작 며칠 사이 있었던 일인데, 지난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지점을 털었던 일도 한 달은 지난 기분이었다.
“유광익.”
사장이 날 불렀다.
“네.”
“재밌었다.”
눈웃음과 함께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퇴장했다.
비서가 남아서 말을 끝맺었다.
“박다람 팀장님.”
“네.”
“전부 구속하고 이 일은 48시간 함구합니다.”
“네.”
당분간 외부에 이 일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동료에게도 말이다.
“외부 보안 3팀도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비서 형아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날 도와준 일 잊지 않았다고.
당장 이 일을 밝히면 반향이 클 것이다. 그걸 수습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외부 보안 3팀은 강제 휴가였다.
“유급 휴가겠죠?”
내가 물었다.
“당연하지.”
팬더 대리가 답했다.
그럼 진짜 푹 쉴 거다. 사옥에 박혀서 절대 나가지 않으리.
게임기와 한 몸이 되리라.
각오를 다지는 사이다.
“꼴통.”
팀장이 날 불렀다.
이 양반은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하나.
빤히 보자, 팀장이 머리에 손을 얹는다. 난 내가 한 일을 알았다.
고로 팀장이 할 말도 예상했다.
잘했다. 고생했다. 덕분이다.
팀장은 말을 이었다.
“머리 좀 감고 다녀라.”
말하며 머리카락도 한 줌 잡아당겼다.
윽.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고.
“팀장님.”
사수가 말했다.
“에헤이, 이번에는 광익이 덕분 맞습니다. 기대도 안 하셨잖아요.”
팬더 대리도 나섰다.
기대 안 했어? 그럼 숙제는 왜 시켰어.
“그래,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탈출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 재고 있었지.”
팀장이 말하더니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아주 작게 읊조렸다.
딱 가까이 있는 넷만 들릴 목소리였다.
“잘했다.”
생소한 일을 경험하면 사람은 당황하기 마련이었다.
나 또한 그랬기에.
“너 누구야, 누군데 그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냐?”
난 아무 말이나 뱉었다.
“시발.”
팀장은 그 한마디만 남기고 돌아섰다.
어쩐지 이 작자,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는 건 내 착각일까.
그런 걸까.
그게 맞는 걸까.
푸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