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69화 (69/488)

69. 사실이었다.

“당분간 알죠?”

“또 보자. 동생.”

기남이 머리통을 반쯤 쪼개 놓고 튀면서 중고 형을 챙겼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다.

한몫 잡은 전직 금고 털이범은 한동안 숨어 지낼 거고.

그사이에 난 이 일을 해결할 것이다.

사수가 다시 나오면 이 작자도 정보원으로 소일거리를 시작할 수 있겠지.

그렇게 헤어지고 골목 사이를 오가며 준비해 둔 배달 오토바이를 찾았다.

탑 박스를 열어서 배달원 옷으로 갈아입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과 호랑이 가면을 대충 여며서 안에 넣어 둔 후 바이크를 타고 달렸다.

사옥으로 갈 순 없기에 미리 봐둔 무인텔로 향했다.

적당히 욕조 있는 방을 결제하고 올라갔다.

오면서 주변을 주시했지만, 쫓는 사람은커녕 그런 기미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뒤를 잡혔다면 어쩔 수 없다.

다시 한바탕하고 밤새 도망 다녀야지.

다행히 내가 예상하지 못한 습격은 없었다.

탑 박스에 있던 폰을 들어 우미호한테 연락했다.

대뜸 전화하면 내 위치가 발각될까 싶어 문자를 택했다.

[제수씨 잘 들어갔지?]

[죽어 버려]

잘 들어갔군.

누구한테 잡혔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간단하게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번에 새로 사귄 비서 형아가 다녀갔다.

우리 형아, 안 올 것처럼 해서 나 막 마음 졸였잖아.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 하자.

“뭐 찾았어?”

우미호가 물었다.

눈치는 귀신이다.

“뭘?”

오리발을 내밀자, 우미호는 그 오리발을 통째로 씹어서 소화했다.

“단순히 본사에 타격을 주는 건 복수의 개념이지만, 이 상황에서 그건 비효율적이지. 네 목적은 보안 3팀을 대상으로 열리는 징계 위원회고, 그걸 위해서는 증명할 게 필요했겠지? 그걸 노리고 간 거잖아.”

소름 돋네.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간 건 아니지만, 중간에 그런 생각은 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걸 숨겼길래, 이런 짓을 했을까 하는.

“임원 중 한 명이.”

“한 명이?”

“도장을 잘못 찍었더라고.”

정확히 말하면 혈서를 잘못 썼다.

“무슨 소리야?”

“더는 말 못 해.”

이제 우미호의 일은 끝이다. 더 나설 수도 없고 나설 이유도 없다.

만약 알려줬다가 일이 잘못되면 위험하기도 하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라고 할 수도 없다.

우미호는 내 친구가 아니고 이 일은 그저 거래였다.

“효율적이네. 그래. 내가 알 필요는 없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바로 포기라니.

사람이 정이 없다.

한 두어 번 물어보면 마지못해 답할 수도 있으니까 더 조르기도 하고 그래야지.

우미호가 조르는 걸 상상했는데 아쉽다. 물론 알려 줄 듯하다가 끝내 안 알려 줬을 것이다.

“안 궁금하냐?”

혹시 몰라 찔러 보니.

“빚은 갚았다.”

뚝.

칼같이 통화를 끊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 개나리 동기 자식아.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틀어 씻었다. 불멸자의 육신이 이래서 좋다.

타박상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을음과 화약 냄새만 날리면 그만이었다.

욕실에 나와 TV를 켰다.

“속보입니다! 머니 & 세이브에 또다시 테러 행위가 일어났습니다. 불멸특수대와 초능 경찰특공대가 나섰음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된 것에 대해 당국에서는…….”

떠드는 기자 뒤로 불티가 휘날렸다.

내가 지른 불이 아직 다 잡히지 않은 듯했다.

소방서의 사이렌과 경찰차의 사이렌, 구급차의 사이렌까지.

사이렌 삼중주가 뉴스의 배경 음악이었다.

곧 불감가학에 걸린 미친 불멸자의 얘기가 나왔다.

“제대로 미친놈입니다. 그 새끼가 이 거리를 활보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초능 경찰 특공대 관계자의 말이었다.

나는 기사를 보며 이번에 얻은 물건을 펼쳤다.

인베이더의 가죽으로 만든 이 한 장의 문서가 가져올 여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런데 이거 그냥 터트려도 되는 건가?

보통이라면 사수나, 팬더, 하다못해 시발 팀장한테라도 물었을 것이다.

“이런 거 주웠는데 어떻게 할까요?”

근데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증인으로 참석해 빵 터트리면 이거 믿을까?

역지사지.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봤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확신한다. 네가 범인이다.”

회의실 문을 박차고 이리 말하면.

“지랄한다. 미친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임원쯤 되면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건 일도 아니다. 난 2급 사원일 뿐이다.

그럼?

내가 구한 건 증거다. 그런데 이게 진짜라는 걸 입증해야 할 문제가 남은 거다.

난 고민했고, 곧 결론을 내렸다.

모르겠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모르는 일은 백날 붙잡아 봐야 답이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묻자.

“아는 놈한테 물어.”

라고 하셨다. 그 심플한 대답은 당시 내 심장을 후렸고 난 그렇게 했다.

“엄마가 화났어요.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아, 그건 아빠가 삼 주 동안 출장을 가는데 그사이에 결혼기념일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걸 뭐 그리 한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말씀하십니까.

부모 싸움에 자식 등이 터지는 법.

난 한동안 어머니 눈치를 봐야 했다.

그것도 정작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말이다.

난 아버지가 내려주신 교훈을 떠올렸고, 그렇게 했다.

폰을 열고 알 만한 사람에게 물었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일단 인사부터.

[난 연하 별로야.]

답장이 왔다.

[팀장님, 저도 연상은 별로입니다.]

[왜?]

[뭐 하나 물어보고 싶어서요.]

완력 단련장, 훈련실에서 자주 보다 보니 자연스레 친분이 생겼고, 서로 운동을 돕다가 연락처도 교환했다.

이게 바로 인맥이지.

내가 연락한 사람은 내부 감사팀장 박다람이었다.

또한, 그녀는 이번에 외부 보안 3팀 징계를 담당하기도 했고.

[공과 사는 지키자.]

부탁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말이기에.

난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불멸특수대 팀장, 그것도 내부감사팀의 팀장쯤 되면 한눈에 알아보겠지.

사진을 보내자마자 폰이 부르르 떨렸다. 전화가 왔다.

액정에 발신자 이름이 떴다.

[단발머리 귀요미 팀장님]

* * *

화림의 징계 위원회는 보통 그 대상에 따라 평가위원을 구성한다.

사원이 그 대상이라면 팀장급에서 끝내고 대리나 과장이라면 본부장이 나선다.

팀장이 대상이라면 얘기가 좀 복잡해졌다.

화림 정보 통신은 곧 불멸특수대.

불멸특수대의 팀장이라면 곧 본부장 바로 밑이다. 그럼 본부장보다 높은 사람이 나서야 한다.

총괄본부장 또는 임원급이 나서야 한다는 거다.

거기에 이중봉은 그냥 팀장도 아니었다.

광익이라면 성격을 문제로 삼겠지만, 지금 문제는 성격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출세욕이 없고 눈치도 더럽게 없고 라인도 없지만, 실력만큼은 불멸특수대 화림 지부 첫 손에 꼽히는 작자.

그래서였다.

내부감사팀장인 박다람은 사장에게 입회를 요청했다.

“가지.”

사장이 나섰고.

“상무님께서 주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공식적으로 다른 임원에게 주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관은 마윤 상무가 맡았다.

마윤 상무.

올해로 예순이 넘어간 미노년이다.

미소년, 미청년, 미중년 테크트리를 타고 이제는 곱게 늙어 주변 할머니의 애간장을 태우는 노년의 불멸자.

드물게도 존경과 존중이란 두 글자가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살아온 세월만큼 인정을 받는 임원이었다.

화림 내 정치 구도로 따지면 임원 쪽의 한 축이지만, 남명진 사장이 쉬이 대할 수 없는 그런 위인이기도 했다.

“시작합시다.”

마윤이 말했다.

그를 중심으로 김동철 총괄 본부장이 우측에 자리했고, 좌측에는 인사본부장인 대머리 이장모가 앉았다.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셋의 맞은편에 유광익을 뺀 외부 보안 3팀 전원이 앉아 있었다.

손에는 수갑을, 발에는 족쇄를 찼다.

보고를 맡은 내부감사팀장 박다람이 중앙에 섰다.

“이거 본부장은 책임 없는 거 맞아?”

김동철이 물었다.

입회인이자, 증인으로 참석한 파견 본부장이 답했다.

“전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비공식 작전을 지원해 달라기에…….”

“됐어. 안 했으면 됐지.”

김동철이 파견 본부장의 말을 끊었다.

“안건은?”

마윤이 물었다.

“본사의 요원이 벌인 테러에 대한 징계 위원회입니다.”

박다람이 말했다.

그녀는 알아낸 내용,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보고 받은 내용을 읊었다.

“지점 두 곳을 노린 이유는 모르지만, 애초에 전부 계획된 작전이었습니다.”

박다람이 말했다.

“어제는 본사 습격 사건도 있었네. 하지만 저 친구들은 밤새 회사에 있었고.”

마윤이 물었다.

“네, 맞습니다.”

박다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금 상태이니 본사 테러는 저들이 관계됐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럼, 지금 자네가 말한 혐의가 맞는 건가?”

마윤이 물었다.

“네, 증인이 있습니다.”

“부당합니다. 이의를 제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뒤에서 이동훈 대리가 말했다.

박다람은 몸을 뒤로 돌렸고, 답했다.

“그건 증인의 대답 이후로 미루죠.”

“증인은 누구인가?”

“외부 보안 3팀의 2급 사원 유광익입니다.”

박다람이 말했고, 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하고 있던 팀원이 밖으로 나갔다.

“이 새끼들,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김동철 총괄본부장이 말했다.

다소 흥분했지만, 불멸자 특유의 작고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일했습니다.”

중봉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답하며 그의 눈이 창문을 훑었다.

고층 빌딩이기에 반만 열리는 창문, 손잡이와 잠금장치가 일체화된 구조였다.

두껍고 단단하지만, 몸을 내던지면 부술 수 있을 것이다.

그사이에 감사 팀원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증인은?”

박다람이 물었다.

팀원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과연 이걸 말해도 될까 하는 몹시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답을 지체할 수도 없기에 그는 말했다.

“아직 안 왔습니다.”

짧은 침묵이 회의실 안을 감돌았다.

“음?”

김동철 이사가 고개를 모로 꺾고.

“무슨 말인가?”

마윤이 물었다.

“알아듣게 말해.”

박다람이 말했다.

“그게, 아직 출근 전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부 제 귀를 의심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누구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은 누구에게나 생소한 법이었다.

“풉.”

결국, 참지 못한 남명진 사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라는 건 알았지만, 자신의 팀과 자신의 앞날이 걸린 징계 회의에 지각이라니.

어떻게 안 웃고 배기겠나.

“사장님.”

비서가 한마디 했다.

“알았어.”

남명진 사장은 다시 웃음을 참았고.

“하, 미친 새끼.”

이중봉이 중얼거린 한마디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다행히도 이 생소한 풍경은 금세 끝났다.

적어도 삼십 분을 넘진 않았다.

“2급 사원 유광익 도착했습니다.”

본래라면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와 있어야 했고.

아무리 늦어도 진행 중에는 자리하고 있어야 할 놈이 이제 왔다.

“들여보내.”

박다람이 말했고, 문을 열고 들어온 광익은 눌린 머리를 손으로 털다가 문이 열리자,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들어왔다.

한쪽에 새집을 지은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누가 봐도 자고 일어난 몰골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광익은 씩씩하게 인사했다. 첫인사로 인상을 좋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늦은 이유는?”

마윤 상무가 물었다.

적절한 핑계라도 대리라 생각했다.

광익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늦잠 잤습니다. 어제 밤잠을 좀 설쳐서.”

그걸 본 이중봉 팀장은 생각했다.

오늘 만약 이 자리를 무사히 벗어나면 저 새끼 대가리 털을 몽땅 뽑아 버리겠다고.

이동훈은 그리 험악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김정아는 둘과는 생각이 달랐다.

광익을 보며 그저 ‘늦잠 잤구나’라고 생각했다.

김정아가 정답이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박다람과 화상 회의에 가까운 통화를 했고.

잠든 시간은 동이 터올 때쯤이었다.

험난한 전투의 여파가 몸에 상처는 만들지 않았어도 체력의 손실은 가져왔다.

더욱이 도핑까지 했었다.

여러모로 지쳤었다. 정말 잠깐 눈만 붙이고 갈 참이었는데 눈 떠 보니 이 시간이었다.

“증인, 묻겠습니다.”

박다람은 나무라는 대신 일을 했다. 그녀 자신이 할 일이자, 해 왔던 일을.

“네.”

뻗친 머리의 광익이 답했다.

“외부 보안 3팀 전원이 머니 & 세이브 습격 사건에 연루되었습니까?”

“네.”

광익은 숨도 안 쉬고 답했다.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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