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불감가학
푹!
허벅지에 뭔가 박혔지만, 이 정도 통증으로는 날 멈춰 세울 순 없었다.
지금 난 무통 주사 오십 개를 달고 싸우는 불멸자와 같았다.
안 아파! 히힛!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무시하고 뛴다. 그대로 달려나가려는 몸 중심이 흐트러졌다.
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허벅지를 뚫은 쇠막대가 보였다.
빨갛게 물든 쇠막대 양쪽 끝이 세 갈래로 펴진 뒤, 막대 길이가 줄며 허벅지에 푹 박혔다.
이게 뭐더라, 아는 건데.
아, 그거네.
‘훅’, 불멸자 사냥 도구.
예전, 아주 오래전 ‘특수종전’이라 이름 붙은 전쟁은 각 특수종의 약점을 후벼 파게 했다.
그중 하나다.
구조는 낚싯바늘, 정확히는 그중 트레블 훅에서 따왔다.
살을 관통하고 대가리를 펴는 훅은 그대로 뽑으면 화살촉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허벅지 살을 순식간에 세꼬시로 만든다는 거다.
뽑지 않아도 문제다.
근육을 관통한 훅은 제대로 뛸 수 없게 할 테니까.
허벅지를 베서 다리를 자르면 된다. 다만, 이 방법은 빈틈을 만든다.
다리 재생에는 시간이 소모되니까.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하이 텐션 타임, 약에 취한 상태지만,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이성이 아니라 훈련의 효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라고 배웠고 익혔으며, 단련했다.
난 나이프 끝으로 허벅지를 후벼 팠다.
꾸드드득.
살과 뼈와 근육이 찢기는 소리가 퍼진다. 난 세 갈래 훅 중 하나를 잡아 꺾었다.
하나하나 잡아서 반대 방향으로 휘게 꺾으면 그만이었다.
한쪽 훅을 전부 편 뒤에 손바닥으로 탁 때리니, 반대쪽으로 막대가 튀어 나갔다.
“완전 또라이 아니야.”
훅을 맞춘 PWAT 대장이 말했다.
질려 버린 어투다.
그사이에도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날 노리는 무형의 압력이 어깨를 짓누르는 중이었고 바닥에는 빙판이 생겼다.
그걸 피해서 몸을 트니, 머리 위로 화염구가 날아왔다.
빙결, 염동. 발화.
세 가지 종류의 초능이 날 노렸다.
염동력은 힘으로 떨쳐 내고 빙판이 된 땅에는 발을 굴렀다.
쾅!
발바닥이 몇 센티쯤 박히는 순간, 빙판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 상태에서 머리 위로 날아오는 화염구에 나이프를 던졌다.
꽝!
폭발로 생기는 후폭풍이 불었다.
난 그 여파가 도달하기 전에 땅을 박찼다.
몸이 뒤로 쭉 날아갔다. 그곳에는 사설 경비대장이 부릅뜬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몸을 날리며 몸을 틀고 래리어트 어택으로 놈의 목을 후려쳤다.
퍽!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막기에 힘으로 짓누르고,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왼발로 상대의 발목을 걷어찼다.
몸을 숙이며 나이프를 역수로 잡고 놈의 몸에 지도를 그려 줬다.
한반도, 호랑이 모양으로.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총 다섯 군데, 서울부터 시작해서 부산까지 긋고 제주도로 추정되는 곳, 아킬레스건은 십자로 쨌다.
“끄아아아!”
통증을 수반한 비명이 귓가에 울렸다.
휘릭. 크롬 합금 보위 나이프를 손에서 한 번 돌렸다.
칼 쓰는 법을 배우며 생긴 버릇이었고 이 버릇과 함께 하이 텐션 상태가 풀렸다.
여전히 통증에는 무감하지만, 약 자체가 주는 쾌락 상태가 사라졌다.
머리가 식는다.
“……음.”
내가 좀 너무했나.
끄으으, 끅끅.
신음을 흘리며 누운 친구.
너무 아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부러진 다리를 쥔 친구.
불멸자로 추정되는 머리에 구멍 난 친구.
변신하다 말고 양다리가 잘린 채, 눈물, 콧물, 침을 흘리는 친구까지.
다양한 참상이었다.
누구냐, 누가 여기에 투견을 풀었나.
난장판이다.
난 내 옆에서 끄르륵거리며 피거품을 문 사설 경비대장을 바라봤다.
요즘 시대에 이 정도 상처로 불구가 되진 않는다. 돈만 있으면 된다. 흔히 이계라 부르는 아더 사이드의 출현은 과학뿐 아니라 의학도 확연하게 발전시켰으니까.
당연히 다리가 잘린 변신족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죽지 않을 정도만 괴롭힌 셈이다.
불멸자를 제외하고는 손에 사정도 뒀다.
사정을 둔 게 사지를 자르고 분지른 거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으니까.
난 상황을 전부 살핀 뒤, 본래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새로운 계획을 수립했고, 행동을 시작했다.
“우히히히히.”
특수종은 자주 미친다. 변신족은 본능에 이성을 잃고 ‘여자!’나 ‘고기!’ 따위를 외치며 날뛰곤 한다.
불멸자는 좀 다른 방식으로 미친다. 제 몸에 통각을 잃으며 불감가학병이란 질병을 앓곤 했다.
불감가학, 불멸자에게만 나타나는 이 특수한 병은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잃고 타인의 아픔을 보며 그 감각을 되새김질하는 정신병의 일종이었다.
“아파?”
웃고 물으니.
“미친놈이.”
“키히히히히힛.”
미친 웃음소리를 아무리 연기해도 어설플 것이다. 평소의 내 명료한 목소리와 멋진 중저음 톤은 미친 사람처럼 들리지 않을 테니.
그래도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아파? 난 안 아픈데.”
난 불감각학병에 걸린 미친 불멸자를 연기했다.
물론 쉬이 속진 않겠지.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너무도 멋지고 명료한 내 목소리 톤이 문제였다.
“내가 말했지, 저 새끼 미친놈이라고. 목소리만 들어도 딱 안다고.”
PWAT 대장이 말했다.
응?
“확실히 그렇네요.”
“불특대에서 나온 놈일까? 아니면 어디서 굴러온 놈일까.”
“지원 요청할까요? 제대로 미친놈 같은데.”
“이 도시는 우리 담당이야. 새끼야. 지원은 무슨.”
대장과 대원의 대화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사이에도 혹시나 의심받을까 하여 우히힛 따위의 웃음소리와 난 안 아파 따위의 대사를 읊어 줬는데.
“처음부터 알아봤지, 미친 불멸자다! 불감가학이니까, 기동력 봉쇄를 최우선으로 해.”
아무리 그래도 대뜸 미친놈 취급이라니.
“……사실 나 안 미쳤어.”
말해 봤다.
“정상인인 척한다! 시발, 제대로 미친놈이다!”
말하며 소총 총구를 들이대기에 피했다.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너무하다. 아니, 그렇게 대뜸 확실히 미친놈이라고 단정 지어? 내 연기가 그렇게 좋았다고?
“물러나면 더 안 싸우겠다. 난 싸우고 싶지 않아.”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저 새끼 말에 귀 기울이지 마. 방심을 유도한다.”
“난 미치지 않았다. 다만, 테러 단체에 볼일이 있을 뿐이다.”
계속 말해 봤다.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라!”
“우리 집 강아지는 복실 강아지.”
“무시해!”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월월월.”
진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미친 불멸자 새끼!”
이 양반아, 이 정도면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당신이 미친 거 아니냐?
그래, 오해는 뼈아프지만, 내가 바라는 상황이긴 했다.
이제까지 듣던 미친놈, 또라이와는 내포한 뜻이 다르기에 속은 상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효과는 없었기에.
난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며 기척을 죽였고 말을 남겼다.
“아파? 나도 느끼고 싶다. 그 아픔, 아흑.”
실제로 불감가학병에 걸린 불멸자를 본 적은 없지만, 미친놈에게 무슨 기준이 있겠나.
적당한 연기면 충분하겠지.
“완벽하게! 확실히! 제대로! 미쳤다!”
그걸 그렇게 강조할 필요가 있냐?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저 대장 새끼 성격에 문제 있다.
난 그 말을 남기고 기척을 숨기고 몸을 빼냈다.
부서진 벽 안쪽, 머니 & 세이브 건물 안은 숨을 곳이 많았다.
숨을 곳이 많다는 건.
“포위한다!”
바로 진입하기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거였다.
이미 몸을 숨겨서 한바탕 난리를 친 판이다. 거기에 도핑으로 난장을 만들었으니.
아무리 간덩이가 부은 대원이라고 해도 이 안에 들어오는 건 꺼려지는 게 당연했다.
주저할 거고,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럼 시간이 소모될 테고.
난 그 시간이면 충분했다.
몸을 돌렸고, 상대에게 감지되지 않는 범위라 판단한 동시에 몸을 날렸다.
가로막는 장애물 대부분은 그냥 넘었고, 잠긴 문을 걸쇠를 비틀어 부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밖에서 울렸다. 벽이 부서지면서부터 건물 내 경보장치가 발정 난 고양이처럼 신나게 울어대고 있었다.
이 모든 소음은 내 몸을 숨겨 주는 방패와 다름없었다.
몸을 빼내고 가까스로 금고 쪽에 도달하자, 화약의 매캐한 탄 내와는 다른 알싸한 향이 코를 찔렀다.
지글지글 녹아 버린 벽과 그 뒤에 선 남자가 보였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예민한 불멸자의 감각은 체형을 확인했고 변신족의 후각은 상대의 냄새를 맡았다.
“일은요?”
“5분만 더 늦었으면 그냥 갈 참이었다.”
김중고가 말했다.
뚫린 금고 뒷문이 보였다.
시원하게도 뚫어 놨다.
쏙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손댄 흔적이 보였다. 중고 형이 적당히 챙긴 흔적이다.
한쪽에는 현물과 금 따위가 보였고.
다른 한쪽 벽면에는 진회색의 개인 금고가 보였다.
그걸 빤히 보자, 중고 형이 말했다.
“여기 프로메테우스 거라며. 자식들, 돈 많구나.”
“저게 뭔데요?”
난 중고 형에게 방화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발화 장치인, 헬 캔들을 받으며 물었다.
검고 둥근 심지가 있는 이 초는 어지간하면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들어 내는 물건이었다.
아더 사이드의 소재와 인류의 과학이 결합해 만든 거다.
그 지옥 초에 불을 붙이기 직전이었다.
“아다만티움이야. 저거.”
인류는 아더 사이드의 물건에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중에는 신화에서 따온 걸 그대로 쓴 것도 있었다.
더럽게 무겁지만, 더럽게 단단한 금속, 아다만티움도 그런 거였다.
국내에서는 묵철 따위로 불리는데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하면 구경할 수도 없을 만큼 고가의 금속이었다.
그거로 개인 금고를 만들어?
눈앞에 있는 금고는 잘해야 서류와 작은 귀금속 따위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헬스장에 가 보면 흔히 있는 사물함과 같은 구조란 거다.
물론 열려면 어지간한 힘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이건 아무리 나라도 손으로 뜯어낼 수 없으니까.
“안 가?”
본래라면 그렇다. 저건 뜯어낼 수 없다.
그런데 쉬이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끔 그런 감이 올 때가 있다.
오감을 넘어 육감과 직감이 발달했기에 느끼는 예감 같은 것 말이다.
저 금고를 그냥 두고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생각은 짧았다. 여기에 머물 시간은 길어야 십 분 내외다.
난 손으로 아다만티움 개인 금고를 잡아 뜯으려 했다.
“흡.”
근육에 힘을 주고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젖을 빨던 힘을 끌어올렸다.
“후읍.”
숨을 참고 뜯어내려 하니.
톡톡하고 뒤에서 중고형이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거 핵폭탄이 터져도 안 부서져.”
염병, 이 안에 뭔가 있다. 그런 예감이 드는데 놔두고 가야 한다고?
“열어 줘?”
“……네?”
“아다만티움은 단단하지, 하지만 그만큼 다루기가 힘들어. 이 말은, 복잡한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거고.”
처음이었다. 배 통통하니 튀어나온 아재의 뒤로 후광이 보인 건.
그가 집게손가락으로 아다만티움 개인 금고 열쇠 구멍을 콕 찍으며 말을 이었다.
“헬스장 자물쇠만도 못한 거라고, 이거.”
그 아재는 손에서 가느다란 쇠톱과 긴 철사를 꺼내더니 자물쇠 안에 욱여넣었고.
두어 번 흔들었다.
통.
그리고 금고가 열렸다.
“와 씨, 최고.”
나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이 올라갔다.
“동생, 형이 말했지.”
“소싯적에는 당해 낼 사람이 없는 대도였습죠.”
“암.”
말하면서도 통통통 금고를 열었고.
그중 일부는 중고 형이 챙기도록 놔뒀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오, 헬다의 눈물, 이건 아쉽다. 장물 뜨면 바로 걸릴 테니 챙기는 건 무리지. 아우, 이걸 두고 돌아서야 한다니. 이건 인류의 보물이다. 태울 수 없어. 이 금고는 다시 잠근다.”
뭔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비싼 보석임은 확실했다.
그는 입을 털며 금고를 열었고.
난 툭툭 금고 안을 살피다가 우뚝 멈췄다.
프로메테우스는 테러 집단이다.
그들은 머니 & 세이브가 양지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비자금과 기타 비리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꼭 비자금만 보관하란 법만 있을까.
계명과 수칙이 적힌 양피지였다.
인베이더 가죽을 이용한 양피지는 태우거나, 젖지 않는다. 훼손이 어렵다는 말이며 그건 곧 긴 시간 보존된다는 거다.
아주 중요한 게 아니라면 이런 양피지를 쓸 이유가 없었다.
더럽게 비싼 거니까.
양피지 위를 눈으로 훑었다.
꼼꼼히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맨 위에 적힌 이름은 보였다.
난 화림 내 인사 명부 대부분을 외웠기에 이 이름이 누굴 지칭하는지도 알았다.
종이를 돌돌 말고 품에 넣으며 말했다.
“가죠.”
이제 갈 시간이었다.
“몇 개 더 남았는데?”
“시간 됐어요.”
이제 빠져나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당장 이거로 뭘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볼 문제…….
“거기까지.”
생각을 끝까지 이어 갈 수 없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날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