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66화 (66/488)

66. 안 아파

육감과 직감 이전에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건 촉각의 문제였다.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 들었고.

우미호는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옆으로 구르고 삼연사, 그 뒤 연막탄을 던지고 튄다.’

그녀는 생각했고 움직였다. 옆으로 구르려고 몸을 튼 순간, 누군가 자신의 발뒤축을 걷어찼다.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자세가 흐트러진다. 그래도 반응하려 했는데.

쩍.

뭔가가 복부를 후려쳤다. 정확히 폐부를 때렸다.

숨이 턱 하니 막혔다.

절로 새우처럼 허리가 굽었다. 통증이 전신을 지나쳤다.

눈을 밑으로 돌렸다. 털이 숭숭 난 주먹이 보였다.

크르.

전신을 옥죄는 끔찍한 살의가 느껴졌다. 노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왜 이 거리까지 허용했지?’

적나라한 살기와 노린내다.

놓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크후룩, 크르후.

숨을 몰아쉬는 놈을 본 순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했다.

트랜스 상태의 변신족, 들썩이는 어깨, 거친 호흡.

‘감각의 범위 밖에서 돌진.’

놀라운 신체 능력을 활용한 기습이다.

위기감을 느낀 순간, 그러니까 감각의 범위 안에 들어온 순간 이미 가속한 상태였고, 거리를 좁히는 건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가속했고 이곳까지 도달한 거다.

그게 가능한 이유.

‘실력자.’

전투력 기준으로 최소 화림의 대리급 이상이다.

우미호는 당황하거나 겁을 집어먹는 대신 생각했다.

‘제압이 목적.’

죽일 목적이라면 첫 일격에 죽었을 거다.

반항할까? 덤비면 변수를 만들 수 있나?

없다.

그만큼 상대와 자신의 실력 차는 명확했다.

전투는 포기한다. 손을 늘어뜨린 채, 허리를 반쯤 들고 상대를 바라봤다.

긴 주둥이, 노란 동공, 침을 흘리는 머저리 같은 변신족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자신의 육체를 컨트롤하는 신장 2m의 이성을 가진 괴물이 눈앞에 있었다.

이 작자가 발톱을 세워 위에서 밑으로 휘두르기만 해도 자신의 머리통에는 오선지가 그려질 터였다.

“너, 불특대지?”

그르렁거리는 목울음 소리와 함께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보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해 주자.

“넌 비싸게 팔아먹을 거다.”

불멸자는, 그것도 불멸특수대에 들어갈 만큼 재능을 갖춘 인재는 좋은 실험체다.

실험체로 못 쓰더라도 불멸특수대 쪽에서 몸값 제의를 할 수도 있었다.

‘날 안 죽인 이유.’

팔아먹으려고 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당장 죽지 않아도 된다. 그건 다행이었다.

‘효율성은 떨어지네.’

광익을 돕다가 목숨이 간당간당해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빚은 졌고 그 빚을 갚아야 했으니.

‘5분 전에 빠져야 했어.’

판단이 늦었다. 진즉에 몸을 뺐어야 했다.

변신족이 툭툭 걸으며 다가왔다.

걷어차인 발목은 부러졌고, 맞은 복부에선 내장 출혈이 있는 것 같았다.

반항하리란 엄두를 못 냈고 그건 상대도 알았다.

상대가 손을 뻗는다. 날카로운 늑대의 발톱이 보였다.

경동맥 따위를 긋고 데려가면 진짜 꼼짝도 못 하고 끌려갈 것이다.

그게 당연했다.

조력자가 없다면 말이다.

“바쁘다.”

짧은 읊조림과 함께다.

놀라울 정도로 단련된 기척 죽이기는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어떤 인기척도 내지 않았다.

변신족 남자는 반사적으로 손톱을 옆으로 그었고.

그 손톱은 훙하고 허공을 갈랐다.

꽝-! 펑!

근거리에서 터진 폭음은 고막을 흔들었다. 삐이이하는 이명이 귀를 울렸다.

미호는 뒤로 굴렀다.

배가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발목이 부러진 건 상관할 때가 아니었다.

“구석으로.”

툭 던지듯 말한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우미호는 기억력이 뛰어났다.

한 번 본 사람을 잊지 않는 편이었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 남명진 사장의 비서였다.

“너 뭐냐?”

늑대인간은 당황하는 대신 손톱을 바짝 세웠다. 얼굴 앞에 손톱을 교차하고 상대를 의식한다.

“알려 줄 수도 없고, 여기서 일어난 일을 알리게 하지도 않을 사람.”

“……뭔 개소리야.”

“못 알아들어도 상관은 없지.”

소위 특수종 세계에서 근접거리 최강을 논하는 종족은 변신족이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은 상대보다 빠른 민첩성과 우월한 완력을 선사했고.

단련된 육체는 몸뚱이가 강철과도 같았으니까.

다만, 상대와 동급의 실력을 갖췄을 때 얘기였다.

옥상은 어두웠다. 둘 다 그게 문제가 될 사람은 아니었다.

늑대가 뛴다.

비서는 간결하게 움직였다.

공격을 피했고 피하며 품에서 짧은 막대 두 개를 꺼냈다.

한 쌍으로 보이는 둥근 펜 형태의 막대기.

그 끝이 반짝하고 빨간 빛을 뿌렸고.

용도는 다음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비서는 말없이 막대를 쥔 채로 당겼다.

승, 승.

작은 소음과 함께 늑대의 왼 손목과 팔꿈치가 잘렸다.

카스테라를 가르듯, 변신족의 단련된 육체가 썰렸다.

“……레이저 와이어?”

화약만 갖고 싸우는 시대는 지났다.

이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블랙홀의 규모가 클 때는 당연하게도 신무기를 썼다.

다만, 그 무기를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무기였고 각 단체가 가진 과학력의 집결이니, 당연했다.

“너, 너, 누구야.”

늑대는 당황했다. 우미호가 상대와의 실력 차를 느끼고 포기했듯.

상대도 눈앞의 불멸자와 자신의 차이를 가늠했다.

차이라면 그는 곧바로 도주를 택한 거다.

묻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찬다.

꽝!

폭음이 울리며 건물 옥상 바닥이 충격으로 파이고 깨졌다.

몸을 날린 변신족은 우미호를 습격했던 것만큼이나 빨리 움직였지만.

“알리게 하지도 않을 거라니까.”

빠른 만큼 그 몸이 쪼개지는 것도 빨랐다.

머리 위 빨간 레이저 강선이 지지직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우미호는 비서가 한 일을 알았다.

기척 죽이기의 변형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집중하게 함으로 무기를 숨겼다.

머리 위에 레이저 와이어로 덫을 치고 상대가 달아나게 했다.

늑대인간은 뭣도 모르고 레이저 와이어에 몸을 던졌다.

쪼개진 몸의 절단면이 불에 그을린 듯했다. 완전히 탄 건 아니었기에, 사선으로 잘린 몸뚱이에서 내장과 피가 쏟아졌다.

바닥이 엉망이 됐다.

그걸 본 순간, 우미호는 사실 여부를 떠나 한 가지 가능성 높은 가설을 떠올렸고 확신하며 말했다.

“사장님의 안배였군요.”

이 모든 작전은 사장이 짠 거다. 유광익은 칼이 됐을 뿐.

비서가 이곳에 있다는 건 그걸 의미한다. 가설이지만, 확신이다.

우미호의 말을 들은 비서는 그녀의 오해를 풀어 줬다.

“아닌데.”

“아니라고요?”

“부탁했고, 받아 줬다.”

비서는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말했다.

“……누가요?”

“유광익.”

부탁한다고 들어줘? 우미호는 통증을 잊고 고개를 모로 꺾었다.

이 신박한 이야기가 머리에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가.

사장의 비서다. 부탁한다고 들어주는 게 정상인가.

그럼 자기가 말하면?

저 차가운 무테안경의 불멸자가 자신의 요청을 들어줄 것 같진 않았다.

* * *

전투에 돌입한 순간, 그러니까 이곳을 전장으로 만든 순간, 우미호는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앞을 보는 사람이 뒤를 볼 순 없다.

그리고 이 작전의 커맨더, 명령권자이자 지휘자는 나였고.

그래서 생각했다.

최악의 상황은 뭘까.

나, 우미호, 중고 아재.

셋 다 걸리는 거다.

그럼 그 상황이 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대의 시선을 나에게 집중하게 한다. 제대로 날뛰는 거다.

그래도 우미호는 걸릴 것이다.

전장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지휘관이라면 우미호의 존재를 눈치챌 것이다.

그럼 그걸 미끼로 쓴다.

대신 우미호가 당해서는 의미가 없다.

현 상황에서 난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패를 썼다.

사장은 지원이 없다고 했지만, 부탁하지 말라고는 안 했다.

그래서 했다.

비서를 움직였고 우미호에게 보냈다.

우리 셜록 홈스 개나리의 안전에 문제는 없을 거다.

여기서 뭔 일이 터지면 귀태 형이 나한테 지랄하는 걸 넘어서 내가 날 싫어하게 될 것 같다.

내 일에 끌어들여 놓고 테러 단체에 잡혀가게 둘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계획대로라면 금고 뒷문에 예쁜 구멍이 뚫렸을 거다.

그럼 남은 건 하나였다.

나다.

나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되는 거였다.

PWAT팀 대장과 사설 경비대장, 둘 다 나보다 서로 알력에 관해 신경 쓸 때.

나라는 인기 스타를 누가 차지하느냐고 사납게 뿔을 세울 때.

난 혀 밑에 숨겨 둔 알약을 삼켰다.

불멸자의 삼대 무기는 감각, 회복력, 마약이다.

칵테일 드럭, 마약이 재생력, 예민한 감각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거다.

많은 불멸자가 다양한 약을 먹고 싸운다.

우미호가 이번 작전에서 먹은 건 SE-8이었을 거다.

감각 확장을 돕는 여덟 번째 형태의 약이다.

소위 말하길 뻥튀기라 하고 그건 이계의 약초와 암페타민을 섞어 만들었다.

내가 지금 먹은 약의 정식 명칭은 HKS-3.

High Calorie Superrevival.

대부분 약의 명칭은 직관성에 그 의도를 뒀다.

직역이 쉽다는 거다.

고칼로리 초재생 버전 3.

이계의 생물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코어를 잘게 쪼갠 다음, 신진대사를 자극하는 열두 가지 화합물과 섞는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약의 효과는 단순했다.

약의 별명은 ‘흰 나비’.

평소보다 세 배는 더 활발한 초재생력, 그걸 뒷받침하게 해 주는 하이 칼로리 폭탄.

거기에 모르핀이 섞인다.

재생은 아프다. 끔찍한 통증이 수반된다. 그걸 잊게 해 주기 위한 마약성 진통제가 필수였다.

내가 먹은 게 그거였다.

삼키고 약이 위장 안으로 들어가 녹아 퍼지는 순간.

싸한 차가운 공기가 전신을 감싼다. 둔통처럼 전신을 짓누르던 통증이 사라진다. 눈앞에 작고 흰 나비가 보였다.

환각 증세다.

화이트 버터플라이, 약의 별명이 붙은 이유다.

부르르르르. 전신이 떨렸다.

세포 하나하나가 걸음마를 뗀 아기에서 갑자기 스포츠카를 모는 레이싱 선수가 됐다.

잘린 다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자라나라 다리다리.

왼팔도, 안구도 재생한다. 곧 오른쪽 눈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몸 안에 에너지가 넘친다.

“너.”

짧은 한마디가 들린 순간, 눈앞에 훅하고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반쯤 재생된 왼손과 오른손을 얼굴 앞에서 엑스자로 교차했다.

퍽!

피가 후드득 얼굴에 튀었다.

왼팔이 다시 너덜너덜해졌다.

하지만 금세 또 신경 다발이 생기고 뼈를 잇고, 근육을 만든다. 안 아파.

안 아프다고.

날 때린 걸 확인했다.

녹색 대가리의 발이다. 신발, 좋은 거 신었다.

테두리를 쇠로 감싼 신발이다.

“후우우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지, 도핑은 처음이다.

즐기기 위한 약이 아니라 전투를 위한 약은 처음이란 거다.

약에 섞인 환각의 효과가 날 살짝 들뜨게 했다.

전신에 흐르는 활력, 먹은 칼로리가 재생력으로 환원되는 게 느껴졌다.

탁탁 바닥을 왼발로 몇 번 밟아 봤다. 멀쩡했다. 튼튼한 내 왼 다리가 돌아왔다.

눈앞이 뿌연 것도 사라졌다.

안구 회복 완료.

폭심지에 있는 바람에 옷가지가 날아가 반은 벌거벗은 채지만.

그게 무슨 대수라고.

“야, 녹변 대가리.”

대답은 총성이 대신했다.

탕탕탕!

총격이 숨 쉴 틈도 없이 내 머리를 노린다. 피하는 대신 근육에 힘을 주고 주먹으로 막았다.

퍽퍽퍽!

피가 튀고 뼈가 깎인다. 그래도 탄이 내 머리를 노릴 순 없다.

부서지고 깎인 근육과 뼈는 실시간으로 재생하고.

난 그사이 총을 쏜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이 텐션 타임, 약을 먹은 후로 약 십 분간, 불멸자는 냉정함보다 희열에 물든다.

“어흐으응!”

호랑이 울음을 토하며 녹변 대가리에게 대쉬하자.

놈이 뒤로 몸을 눕히더니 무릎을 위로 올려 찼다.

꽝!

무릎이 턱을 찍었다.

얼굴이 위로 들렸고 정신이 한순간 날아갔다.

하지만 금세 돌아왔다.

안 아파. 안 아프다고.

키히히힛, 안 아파!

눈을 뜨니, 암청색 하늘과 모락모락 피는 회색 연기가 보였다.

키히힛,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꼬리가 휘어진다.

아, 세상은 아름다워, 신나. 그리고 안 아파.

몸을 앞으로 굽히며 놈의 양팔을 잡았다.

“키히힛.”

웃자.

“시발!”

양 손목이 잡힌 놈이 땅을 박차더니, 두 발로 내 배를 때렸다.

뻥!

가죽공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내장이 찢어지고 터졌다. 갈비뼈가 부러져 옆으로 튀어나왔다.

“안 아파.”

키히히히히힛! 안 아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키힛!

우드드득.

난 놈의 양팔을 뽑았다.

“끄아아아아아!”

녹변 대가리가 비명을 내질렀다.

“아우, 시끄러, 불멸자는 조용히 말하는 거야.”

의젓하게 조언을 던지고 뽑은 팔을 뒤로 휙 던졌다.

그리고 머리를 사커킥으로 걷어찼다.

뻥!

한쪽이 뭉개진 토마토처럼 머리 일부가 부서졌다.

“다음?”

반쯤 미친 내 눈에 사냥감 무리가 보였다.

PWAT 대원 무리와 사설 경비대의 나머지다.

타다다당!

PWAT 대장이 나에게 소총 다발을 갈겼다.

몸에 구멍이 푹푹 뚫렸다.

키히힛, 안 아파.

난 다시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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