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아닌데, 기분 하나도 안 좋은데.
소고기를 먹었다.
난 먹기 전에 허리띠부터 풀었다.
오늘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치이이익.
붉은 살점을 화로에 올려 익힌다. 잘 익은 고기는 적당한 갈색으로 그을리고 그 위로 육즙을 흘렸다.
흡.
안 먹고는 못 배긴다.
한 점 입에 넣자.
몰캉, 고기가 녹아, 녹는다.
적당한 육질이 치아 사이를 노닐며 탭댄스를 췄다.
갈라진 고기 사이로 터진 육즙이 뇌를 녹였다.
하악, 이게 바로 마약?
맛이란 게 입안에서 폭발했다.
“크으.”
술도 안 마셨는데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처음 먹은 게 살치살이었다.
우리는 야무지게 먹었다.
치마살을 구웠고 등심도 구웠다.
안심도 구웠고 꽃등심도 먹었다.
사장님은 잘 먹는 우리를 보면서 입이 귀에 걸렸다.
“오늘 귀인이 온다더니.”
네, 저희가 바로 그 귀인이죠.
혹 팀장이 사게 되면 이 작자의 카드 한도를 구멍 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구멍이 날 일은 없었다.
은행을 불태우며 적당히 삥땅 친 돈으로 먹었으니까.
범죄로 번 돈을 쓰는데도 양심이 없냐고 물으니 팀장이 이리 답했다.
“웃기네. 지들은 정당하게 벌었대?”
이런 일에는 신경 다발이 콘크리트만큼 두꺼운 팀장이었다.
그래서 마음껏 먹었다.
차돌 된장찌개가 서비스로 나왔다.
팬더 대리가 그 안에 밥을 넣고 마늘 파, 청양고추를 넣어 화로 위에서 보골보골 익혔다.
“먹어 봐, 드셔 봐, 한 번 먹은 사람은 잊지 못하는 맛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알싸한 고추의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 차돌의 고소함.
모든 것이 조화되었다.
이건 특허를 내야 해. 당장 된장밥이란 이름으로 팔아야 해.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미각이 예민한 불멸자는 가끔 훌륭한 음식에 혀가 멋대로 반응하곤 했다.
오늘은 내가 그랬다.
“존경합니다. 대리님.”
이건 존경 안 할 수가 없다.
“네가 뭘 아는구나.”
동훈 대리가 동조했다.
제가 뭘 알죠.
우리 어머니는 내가 없을 때부터 예민한 아버지 입맛에 길들어 어지간한 요리사 뺨을 치시는 솜씨를 지니셨다.
그래서 언제나 엄마 집밥이 최고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팬더 대리를 내 요리사라 말하고 싶었다.
기가 막힌 맛이었다.
먹고 또 먹다 보니.
“서비스입니다.”
고기를 얼마나 먹으면 이렇게 될까.
사장이 서비스라고 물냉면 네 개, 비빔냉면 네 개를 놓고 갔다.
“이건 또 먹는 방법이 있지.”
내 요리사가 또 나섰다.
그는 깨끗한 가위를 주문하더니 냉면을 회쳤다.
물냉이고 비냉이고 잘게 회치더니.
스푼을 들어 냉면을 떠먹었다.
“아, 드셔 봐.”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 고깃집 사장님의 손맛도 훌륭하지만, 팬더 대리의 음식 먹는 방식이 그걸 배가시켰다.
숟가락으로 냉면을 떠먹다니.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지?
“당신은 혹시 천재?”
“이제 알았냐?”
내 말에 팬더 대리가 코끝을 세웠다.
그렇게 배를 가득 채우고.
“후우, 더는 못 먹어.”
손을 들었다.
“한 잔 더.”
사수가 옆에서 말했다.
이 양반은 점점 술이 느는 게 아니라 술주정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만 마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왜요?”
“그 새끼들 족쳐서.”
진짜 기뻐 보였다.
“네, 치어스.”
폭탄주를 말아 주니, 좋다고 마셨다.
먹고 마시는 시간을 끝내고 계산을 했다.
“한순간이네요.”
가져온 돈이 고깃값으로 나갔다.
주인은 우리가 불멸특수대인 걸 안다.
그러니까 이렇게 처먹어도 그러려니 하지.
보통이라면 이렇게까진 안 먹는다.
1인분에 평균 50,000원.
그걸 30인분 가까이 먹었다.
거기에 주류와 음료 포함 이것저것 해서 180만 원이 나왔다.
하하하, 한 끼에 180만 원이라니.
내가 사는 세상이 바로 이런 특수종의 세계로다.
나왔고 걸었다.
싸늘한 공기 대신 이제는 적당히 따뜻해진 날씨다.
그리 걷는데.
“신삥.”
팀장이 고개도 안 돌리고 날 불렀다.
음?
팔푼이가 아니네.
“한 건 더 남았다. 풀어지지 마라. 내일 보자.”
팀장이 말하고 툭툭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금세 거리를 벌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난 물었다.
“팔푼이가 아니네요?”
“그러게.”
이제 겨우 신삥이라니.
기분 좋을 게 하나도 없을 일이다.
저딴 팀장이 인정해 준 게 뭐 대단하다고.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드실 분.”
대신 아이스크림을 쏘고 싶었다.
“메로나.”
사수가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쿠앤크.”
팬더도 그러했다.
난 둘의 의견을 반영해서 사주고 나도 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정말 하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니다.”
팬더와 헤어지고.
“오늘 수고했다.”
사수와도 인사한 뒤.
하나도 좋지 않은 기분 때문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어머니의 수신 태도는 독특했다.
“저예요.”
“난 너 같은 아들 둔 적 없다.”
뚝.
끊었다.
삐졌네. 우리 어머니가 평소에는 엄하신데 이렇게 삐지면 한도 끝도 없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아들 맞고요. 저 같은 아들 둔 적 있고요. 전화를 일주일에 한 번도 안 해서 죄송합니다.”
아웃사이더보다 빨리 말했다.
“알면 됐지 뭐.”
좀 풀어졌네.
난 기분이 몹시 상해서 어머니께 말했다.
“선물 사 드리고 싶은데.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백화점.”
“네?”
“백화점을 갖고 싶어.”
“……아들은 사회초년생입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말씀하시죠.”
“네 아버지 월급으로는 백화점 못 사.”
그건 제 월급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저도 처음 알았네요.”
“그래, 아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
“제가요?”
아닌데, 팀장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했는데, 하나도 안 좋은데.
“안 좋은데요.”
“왜 안 좋은데?”
“아직도 절 신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거든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정받는 건 좋은 거지.”
“네?”
무슨 소리야. 난 그 양반한테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난 산유국의 왕자다. 소국의, 그것도 회사에서 도태된 진급도 못 하는 팀장의 인정 따위 바라지 않는다.
“선물은 구찌 빽으로 하자꾸나.”
“네?”
막 부인하려는 말을 하려는 참에 놀라서 또 되묻고 말았다.
“빨간 내복으로 때울 생각은 아니잖니?”
첫 월급으로 적당한 선물을 사 드려야 했는데 잊었다.
그때 일이 워낙 많았어야지.
외우고 익히고 훈련하고.
간신히 고기 세트 하나 산 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내가 말했었다.
“다음에, 좋은 선물 하나 해 드릴게요. 기대하세요.”
어머니는 그걸 잊지 않았다.
“중고로 사 오면 나한테 아들은 없는 거야.”
“중고라니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까짓거 사 드리면 된다.
사람이 언제 효도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나.
돈이 많을 때? 시간이 많을 때? 환갑잔치 때?
아니다. 항상 지금이다. 현재다. 지금 해야 할 일이다.
효도란 그런 것이다.
그게 고작 돈으로 가방을 사 주는 일이라도, 상대가 기뻐한다면 효도가 아닌가.
“그래도 엄마, 적당히 금액은 합의를…….”
“아들.”
“네.”
“나도 아들 통장에 구멍을 내고 싶진 않단다.”
다행이다.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아버지와도 전화했다.
“내가 2순위냐?”
“같이 계시는군요.”
“그럼.”
“아시잖아요. 우리 집 홍일점은 언제나 1순위.”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이다.
어머니가 첫 번째, 내가 두 번째.
불만은 없다.
당연하다고 살아온 세월이 21년이다.
“잘했다.”
아버지가 속삭이셨다.
이게 다 아버지의 교육 덕분입니다.
같은 얘기를 반복했고.
아버지는 선물로 정장 한 벌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방탄 정장.
그건 명품 가방만큼이나 비쌌다.
요새 명품은 다 방탄으로 뭘 만든다. 미친 특수종 세상에 적응한 의류 업체의 진보다.
“보너스를 많이 타야 할 것 같네요.”
진급해서 보너스를 타긴 했지만, 몽땅 다 아버지 어머니 선물로 쓰겠구나.
“아들, 세상에 돈이 중요하니? 마음이 중요하지.”
“그럼 마음만 받으시죠.”
“아빠는 돈이 중요해.”
……물질만능주의 같으니라고.
“네에, 알겠습니다.”
“아들, 기분 좋아 보여서 좋네.”
“……네? 제가요?”
“아니야?”
아닌데, 진짜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오해한다.
통화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는데 잠이 솔솔 왔다.
숙면이었다.
눈을 떴는데 머리가 맑고,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대로 시발 팀장과 한 판 붙으면 오늘은 절대 쉽게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침에 변을 봤는데 쾌변이었다. 단숨에 나왔다. 닦았는데 묻지도 않았다.
오늘은 정말 최고다.
그렇게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출근했다.
“좋은 아침. 기남이, 우리 3급 사원 기남이.”
가는 길에 개나리 기남이도 보고.
“미호야, 이제 귀태 형 마음을 그만…….”
우미호도 만났다. 물론 그녀는 말을 듣다 말고 그대로 사라졌다.
방귀태란 이름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구나.
룰루랄라.
“뭐 좋은 일 있냐?”
눈 밑이 퀭한 요한 형도 만났다.
“없는데.”
“얼굴에 신났다고 써 놨어.”
“아침에 세수했는데?”
“……됐다.”
지친 요한 형이 떠나고 승강기에서 내릴 때였다.
소리가 먼저 귀에 닿았다.
웅성거리는 소음.
“말도 안 됩니다.”
팬더 대리의 목소리.
“팀장님.”
사수의 목소리와.
“이중봉 팀장, 할 말 있나?”
발을 재게 놀렸다. 외부 보안 3팀의 사무실은 구석이다.
사람 수도 제일 적고 하는 일도 잔업이 대부분이었으니.
좋은 자리를 요구할 일도 없었다.
그 자리까지 당도하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내부 감사 팀장, 박다람과 그 주변을 둘러싼 세 명의 남자들.
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보는 순간 알았다.
불멸자의 감각이 상대의 존재를 인지한다.
전부 평균 이상의 능력을 지닌 순혈 불멸자다.
정기남을 잘 갈고 닦으면 저리되려나?
그런 생각과 함께다.
“무슨 일입니까?”
박다람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신입도 관계 있는 겁니까?”
완력 단련실에서 보던 그 사람이 아니다. 내부 감사팀장, 프로의 얼굴로 그녀가 물었다.
“이제 6개월 된 신입인데? 그게 말이 된다고 봅니까?”
시발 팀장이 그 말에 답했다.
뭔데.
뭐냐고, 이거.
“그럼 올라가서 말씀하시죠.”
내부감사팀은 그렇게 팀장과 팬더 대리, 사수를 전부 끌고 움직였다.
“뭔데요.”
“끼어들지 마라.”
박다람 팀장이 말했다. 더없이 차갑지만, 괜한 일에 끼지 말라는 온정이 베여 있었다.
팬더 대리가 수신호를 보냈다.
일단 대기.
사수도 조용히 고개를 저었고.
팀장은 지나치며 한마디만 던졌다.
“숙제나 하고 있어. 신삥.”
그렇게 운수 좋은 날 아침이 최악의 아침이 됐다.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자.
“담배 피우냐?”
보안 2팀장이 물었다.
“아니요.”
“그럼 커피 마셔”
“네.”
보안 2팀장을 따라갔다. 당장이라도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참았다.
옥상에 도착해서 문을 닫은 2팀장이 말했다.
“내부 비리 감사다.”
“갑자기요?”
“감사를 그럼 예고하고 들어오냐?”
“아니,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는…….”
“이 의견 자체가 상부에서 제기한 거라, 더 빠르긴 했지.”
“죄목이 뭔데요?”
2팀장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어 모금 빨고 말했다.
“이쪽에서 일하다 보면 선을 넘는 일이 많아. 그런 거 하나하나 털다 보면 안 털릴 놈 없다.”
“털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운 좋으면 정직, 또는 해고.”
“운 나쁘면요?”
“어디로 가겠냐?”
선을 넘었다는 건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거고.
곧 범죄를 뜻한다.
잘해야 해고, 나쁘면 감옥.
난 순간 생각했다.
이게 우연이라고?
마침 두더지를 잡으려고 일을 벌였는데, 그다음 날 바로 팀장과 팀 전체가 끌려가는 건 우연으로 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