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59화 (59/488)

59. 오늘 소고기 회식이다.

머니 & 세이브.

제2금융권이다.

대부업체이자, 사채업자이자, 은행이다.

그리고 테러 단체 프로메테우스가 설립한 양지의 금융업체이기도 했다.

서울에 지점은 총 세 곳.

그중 하나가 합정역과 망원역 사이에 있었다.

탁 트인 유리로 벽을 만들어서 안이 훤히 보였다.

[우리는 숨기지 않습니다.]

그게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였던가.

그래서 모든 머니 & 세이브 지점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무엇도 안 숨긴다는 그런 의미를 담은…….

개소리지 뭐.

손에 쥔 두툼한 천을 바라봤다.

구멍 두 개가 뚫린 얼굴에 쓰면 숨쉬기 불편하게 생긴 도구다.

다른 말로 하면 복면이고.

요새는 뭐, 마법으로 만든 가면도 있다고 하고.

광학 위장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대단한 게 아니다.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고.

추적이 불가능한 게 중요하다.

즉, 표준 규격 장비.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장비와 옷차림만으로 상대의 소속을 추측할 수 없다는 거다.

거기에 속성 과외까지 합쳐진다면.

짜잔.

완벽한 범죄자의 탄생이다.

스윽.

복면을 썼다.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익명으로 바꿔 주기에, 무슨 짓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무엇이든 해 보자.

“코드 로버, 작전 시작합니다.”

입을 열어 말하자.

“수고.”

귀 안에 넣어 둔 인이어로 팬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척을 죽이고 밴에서 내렸다.

주변 사람이 주시하지 않는다면 굳이 날 주목할 일은 없을 터다.

그렇게 은행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허리춤에는 글록 17.

손에 든 긴 백에는 펌프 샷건을 숨겼다.

위이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고객은 열하나.

창구에 일하는 직원은 넷.

안쪽에 인기척을 읽었다.

셋이 더 있다.

총인원 열일곱.

“전원 동작 그만.”

말과 동시에 백에서 산탄총을 꺼냈다.

“일단 기선 제압부터 하십쇼.”

사수는 뒷골목의 인간들을 잘 알았다. 아주 잘.

그중에는 나에게 강도 과외를 시켜 줄 위인도 있었고.

난 그 과외를 받았다.

“……아.”

창구에 있는 직원 하나가 놀라서 입을 떡 벌린 순간, 난 단숨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멱살을 잡고 밭에서 무 뽑듯, 창구에서 뽑아 올렸다.

퍽.

“악!”

짧은 비명과 동시에.

산탄총 총구를 머리에 들이댄 뒤, 다시 입을 연다.

“모두 동작 그만,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내 목소리에 경비원이 반응한다.

주변 사람 모두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상행동을 놓칠 턱이 없었다.

철컥.

왼손을 내려 권총 쥐고 뽑아 쏜다. 1초의 틈도 없이 한 동작처럼 이뤄진 사격이다.

단숨에 정확한 타격점에 총알을 박아 넣는 건 불멸자의 감각을 가진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퉁! 퉁!

소음기를 달아 둔 권총이 두 발의 탄을 뿜었고.

두 개의 탄은 경비원 허벅지를 뚫었다.

보고, 듣고, 감지하는 거로 상대를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상대는 변신족.

그러므로 변신하기 전에 제압하면 된다.

“미친 새끼가.”

변신족이 고통을 참고 몸을 일으키려 하기에 땅을 박찼다.

공기를 찢으며 달려가는 사이, 놈의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지려 했다.

놈의 머리통을 권총 손잡이로 후렸다.

빡!

놈의 동공이 풀리며 그대로 흰자위를 보인다.

한 놈 끝.

뒤로 몸을 돌리고 다시 조준하자, 다른 경비가 나한테 총을 쐈다.

퉁퉁퉁! 권총 세 발.

세 발 중 두 발이 내 옆구리를 뚫었다.

아프지만, 참을 만하다.

동시에 무형의 압력이 날 누른다. 염동력자다.

탕.

“악!”

초능력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은행 경비 따위가 대단한 능력자일 확률은 낮겠지.

고로 피격당한 뒤에 염동력을 유지할 수 없다. 날 누르는 압력이 사라졌다.

예상 이내였다. 대신 이 뒤에 출동할 사설 경비대는 다른 수준이겠지.

고로 난 그들이 오기 전에 일을 마치고 튀어야 한다는 거다.

경비원을 제압한 뒤.

“버튼 누를 필요 없어.”

말과 함께 내 눈이 창구 뒤로 향했다.

지점장이다. 그의 손이 테이블 밑으로 향해 있었다. 내 한마디에 비상 버튼으로 향하던 손이 멈췄다.

“내가 대신 눌러 줄게.”

난 천장을 향해 총구를 들어 올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꽝!

권총 소리보다 몇 배는 큰 소음이 사위를 울렸다.

꺄악! 아악!

당황과 공포에 남녀를 따질쏘냐.

놀란 비명이 늦은 오후의 무료함을 날렸다.

손을 달달 떠는 아주머니 한 분과 이제 막 스물이나 됐을 법한 동년배의 남자.

갖가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부서진 석회질 가루가 흩날려 내렸다.

“전부 모여.”

이건 팀장과 팬더가 짠 시나리오.

그리고 주연은 나다.

덜덜 떠는 사람을 모아 놓고 말했다.

“폰은 전부 여기로 던진다. 실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던진다.

모인 핸드폰의 숫자와 사람 숫자를 맞춰서 세고.

“전원 무릎 사이에 머리 박고 숨만 쉽니다. 비명, 고함, 속삭임, 들리면 머리에 구멍을 뚫겠습니다.”

말할 때는 감정을 절제하고.

행동은 신속하고 주저 없게.

철컥.

펌프 샷건의 슬라이드를 당기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냥 이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기도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지점장이 보였다.

“가자고.”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이런 일을 수없이 해 본 사람 같았다.

너도 한 나흘 정도 과외 빡세게 받아 봐.

아주 범죄에 빠삭하게 된다니까.

그것도 이쪽 방면으로는 초일류라는 작자였다.

금고털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고 했나.

입을 터는 순간, 사수가 주둥이를 때리긴 했지만.

어쨌든 유명한 작자였다.

감옥에 갇혀도 열두 번은 더 갇혔어야 할 양반이란 생각에, 어떻게 지금까지 햇살을 받으며 걸어 다니는지 물었더니.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서 고문으로 활동한단다.

말이 고문이지, 곧 불멸특수대의 정보원이란 얘기였고.

그는 사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즉, 나를 성실히 가르쳤다.

“4분 남았다.”

통신기를 통해 팬더 대리가 말했다.

팀장이 전체 그림을 그리고 자칭 금고털이 예술가가 작전의 현실성을 따지고.

거기에 팬더가 붙었다.

우리는 시간, 장소 모든 걸 계산했고.

“안내해.”

그렇게 난 강도가 됐다.

거참, 살다 보니 별걸 다 하게 된단 말이지.

“열어.”

압도적 위협 앞에 일반인인 지점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금고를 열었다.

이쪽 지점은 그리 큰 지점이 아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돈 합치면 수십억 단위겠지?

겨우 둘이서 5분 이내에 돈을 갖고 튈 순 없다.

5분 뒤에는 사설 경비대가 오고 그럼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타격은 줘야 했다.

제한 시간 내에 타격은 주면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이 은행 강도지. 내가 진짜 강도는 아니지 않나.

고로, 목적을 바꾸면 된다.

돈을 훔치는 게 아니라 돈을 부수는 거로.

“나와.”

지점장을 뒤로 물리고 안에 수류탄 두 개를 까서 넣고 문을 닫았다.

금고는 튼튼했다.

꽈꽝!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진동이 짜르르 울리는 폭탄이 터져도, 수류탄 파편이 금고문과 벽을 뚫고 나올 일은 없었다.

금고문을 열고 보니 안쪽은 가관이었다.

거기에 라이터 기름통 두 개에 뚜껑을 비틀어 깨서 던지고.

칙, 퐁.

싸구려 지포 라이터에 불을 붙여서 던졌다.

화르르륵.

금고 안이 금세 불길이 일었다.

타닥타닥하고 지폐 타는 소리가 그 어떤 캠프파이어 때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이 모든 게 단숨에 이뤄졌다.

수류탄 터지는 몇 초를 제외하면 손이 쉬지 않았다.

폭음이 터지고 비명 따위가 울렸지만.

전부 무시하고 프로답게 일을 처리했다.

“……미친 거요?”

지점장이 물었다.

훔칠 것도 아니고 박살 낼 거면 굳이 왜 이런 짓을 하냐는 거다.

난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챙겼던, 신사임당이 그려진 돈다발 두 개만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난 딴 돈의 백 분의 일만 가져가.”

시발, 사실 반쯤 가져가고 싶다.

이 많은 돈을 불태우다니, 나도 미친놈 같다고.

하지만 어쩌겠나.

아무리 비공식 작전이라지만 강도질 자체를 승인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민간인을 해칠 수도 없다.

그게 본부장이 작전을 승인한 조건이란다.

강도질이지만, 민간인 피해가 전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물질에 집중했다.

돈을 박살 내고 태우기로 한 거다.

“아디오스.”

그 한마디를 남기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맨몸으로 달렸다.

CCTV 사각지대는 이미 파악 끝이고.

주변 차량 블랙박스만 피하면 그만이었다.

호흡을 조절하고 달렸다.

사람의 모습이 잔상처럼 흐려지며 뒤로 밀려 나간다. 그 속도 그대로 옆 동네로 넘어갔다.

골목길에 들어간 다음,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에서 옷을 벗었다.

접이식 장바구니를 꺼내서 벗은 옷을 전부 집어넣었다.

그 뒤 장바구니를 들고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형마트로 향하면 끝이다.

“이제 좀 덥네.”

말하며 마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닭갈비 타임세일! 딱 십 분! 딱 십 분만 이 가격!”

바로 옆 동네에서 은행이 털리든 말든, 오늘도 마트는 평화로웠다.

장 보는 척 음료수 하나만 달랑 사는 중이다.

“5분 뒤 접선.”

팬더 대리의 말이 들렸다.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니 곧 부르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일을 하면서 처음 알았는데.

“타.”

사수는 바이크를 탔다.

그것도 BMW에서 나온 삼천이 훌쩍 넘는 걸.

“네.”

얌전히 뒤에 타서 허리를 안았다.

사수가 바이크 엑셀을 당겼다.

부르르르르릉.

차도 위를 달리는 현대의 야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개인적으로 차를 선호하지만, 바이크는 남자의 로망 아닌가.

여유가 있으면 나도 한 대 마련하고 말 것이다.

곧 바이크가 주차장을 나가 초여름 태양을 뚫고 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는 사이, 인이어를 낀 반대쪽 귀에 이어폰을 끼워 라디오를 켰다.

“속보입니다. 머니 & 캐쉬 합정 지점이 테러를 당했습니다.”

풉. 아 속 시원하다.

테러 단체가 테러를 당했단다.

“현재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원은 둘이지만, 규모로 볼 때 특수종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

나머지 개소리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 친구들, 지금쯤 정신이 반쯤 나간 기분일 거다.

새삼 이 작전을 짠 팀장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하루에 꼭 한 건만 하란 법은 없지.”

복수를 마음먹은 팀장이 얼마나 미친 또라이인지 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사수의 바이크는 내부순환로를 지나 수유로 향했다.

여기에 다음 목표가 있었다.

머니 & 세이브의 본점은 강남이었고.

지점은 수유와 합정 두 곳이었다.

그중 합정을 털고.

아직 해가 지기도 전에 잽싸게 이곳으로 온 거다.

난 은행을 털 생각만 했다.

다 불태울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루에 두 곳이나 작업할 줄은 몰랐다.

팀장은 진정 미친 사람이지만.

더럽게 효율적이긴 했다.

그 누가 한 지점이 털린 날 다른 지점이 털린다고 상상이나 할까.

차가 없는 골목길에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접이식 장바구니는 태워 버렸다.

이번에도 속전속결이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달려, 단숨에 문을 발로 걷어찼다.

꽝!

자동문이 겨우 1cm 열리고 우그러지며 부서졌다.

탕탕탕!

들어서며 권총 세 발을 허공에 쏘고.

“전원 동작 그만.”

아까와 같은 일의 반복이다.

이번에는 경비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목을 후려쳐 기절시켰다.

혼혈과 불멸, 둘이었다.

둘 다 몸을 아끼지 않고 덤빌 생각이었겠지만.

내가 누군가.

화림 오티 때 수없이 꿈나라를 보내 준 불멸계의 성시경이다.

혼혈 불멸 둘의 목 뒤를 잘 자라고 후려친 뒤.

으아악. 꺄아아악. 살려 주세요.

갖가지 비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 살벌하다는, 이 은행의 수호신이라는 사설 경비대는 합정 쪽으로 출동했을 거고.

이쪽을 동시에 칠 거라 생각은 못 했을 테니, 아까보다는 여유가 있을 터다.

그래도 잡생각 할 틈은 없었다.

“열어.”

금고 열고 수류탄 대신 이번에는 화염병을 준비했다.

같은 방식으로 털면 서운할 것 같았다.

펑, 펑.

화르륵!

라이터 기름 투척은 매너다.

화라라락!

제대로 태우자, 옆에서 그걸 본 지점장이 입을 떡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 미친 거요?”

“반쯤은.”

솔직히 인정했다.

나도 저 돈이 아깝다고.

“여기가 어딘 줄은 알고?”

어라, 이것 봐라.

이 새끼는 여기가 프로메테우스가 뒷배인 걸 아네?

“수유 아닌가?”

눈을 깜빡이며 묻자.

“단단히 미친놈 같은데, 후회할 거다. 넌 이틀도 되지 않아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살려 달라고 할 테니까.”

이 양반아, 금고를 순순히 열 때는 언제고 이렇게 독기를 뿜어내나.

“지금 눈앞에 있는 총은 안 무서운가 봅니다.”

순진하게 물으며 권총을 이마에 댔다.

“……무섭긴 하지.”

뭐, 이렇게 솔직한 새끼가 다 있나.

“그럼 입을 좀.”

“조심해야겠지.”

태세 전환이 빠른 친구다. 반항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일 수 없었다.

“그럼.”

쩍.

로우킥으로 정강이만 부러뜨려 줬다.

“악!”

비명이 아이돌 음악만큼이나 신명 났다.

자, 그럼.

밖으로 나와 아까 일의 반복이다.

옆 동네로 뛰고 이번에는 옷을 태웠다.

이미 봐 둔 장소였다.

공사장인 그곳에, 드럼통 하나에 불을 피운 흔적이 있어서 거기다 태웠다.

그 뒤는 유유히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회사로 복귀했다.

“외근 다녀왔습니다.”

“빨리빨리 다녀라.”

팀장이 말하고.

“고생했다.”

팬더 대리가 어깨를 툭 치고 말하고 지나갔다.

난 인이어를 꺼내서 잘게 부순 다음 쓰레기통에 넣고, 사내 휴게실에 가서 샤워 한 판 때렸다.

변신족이 아니라면 몸에 묻은 냄새로 날 추적할 수 없겠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닌가.

그래서 깨끗하게 전신 구석구석 탈취제를 써 가며 씻었다.

그 뒤에 코코아 한 잔을 타서 자리에 앉아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

실시간 검색어가 볼 만했다.

머니 & 세이브 테러

머니 & 세이브 합정 테러

머니 & 세이브 수유 테러

2개 지점 동시 테러

특수종 범죄

한국 테러 집단

테러 단체 비상

특수종 범죄

등등이다.

“오늘 소고기 회식이다.”

팀장이 마우스 휠을 굴리며 말했다.

난 확신했다. 지금 팀장은 나와 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고.

그리고 나와 같이 속으로 웃고 있겠지.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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