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두더지를 잡는 법.
회의실에 들어가서 테이블에 끝에 섰다.
앉으려고 하니.
“서서 해.”
팀장이 제지했다.
그리고 자기는 자리에 앉았다.
반대쪽에는 팬더 대리가 앉았고.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사수가 앉았다.
“그래서 결론은?”
성질 급한 양반을 상대하는 법, 원하는 걸 주면 된다.
이유, 원인 다 떠나서 나도 결론만 말했다.
“굴에 숨은 두더지를 끄집어내는 거죠.”
이 회사에서 벌써 6개월 가까이 근무했다.
불멸특수대가 정의의 집단도 아니고.
필요하면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걸 안다. 꾸준히 내 귀에 지저귀는 새, 김요한을 통해서도 알았고.
강희모 대리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들은 얘기로도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날 힘 좋은 돌쇠쯤으로 여기는 거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를 통해 내가 그 이면에 놓인 사실을 모를 거로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어 보이나.
“테러 단체가 양지에 꾸린 은행을 음지의 방법으로 후리자?”
팬더 대리가 내 생각을 정리했다.
맞다.
저축 은행, 대부 업체를 운영한다면 현금을 보유할 거다.
그걸 털자는 거다.
애초에 임포스터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돈을 위해 움직였다.
그럼 머리인 임포스터를 때릴 수 없다면 정강이쯤인 재정에 타격을 주자는 거다.
본래라면, 그러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일을 처리하자면.
돈의 출처를 밝혀서 유통 자금을 추적, 금융위원회를 움직여서 압류 따위를 해야겠지만.
언제 그걸 찾고 있나.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난 정공법 대신 편법을 생각했다.
굴에 숨은 두더지를 잡을 때, 놈들이 지나는 경로에 함정을 놓는 방법도 있지만.
아예 놈들이 다니는 길을 엎어 버리는 방법도 있다.
“제 땅이 다 뒤집히면 두더지가 알아서 나오지 않을까요?”
발상의 전환이다.
임포스터를 잡을 수 없다면 그걸 만든 환경을 엎어 보자는 거다.
다들 말이 없었다.
침묵이 회의실 안을 채웠다.
시발 팀장은 턱을 괴곤 날 빤히 보고, 팬더 대리는 눈만 깜빡였다.
사수도 마찬가지다. 말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분위기 왜 이래.
“왜요.”
물으니.
“시발, 의외다.”
팀장이 답했다.
“제 말이요.”
“유광익 안 멍청하네.”
팬더와 사수가 이어 말했다.
진짜 나 궁금해서 그러는데.
“제가 멍청해 보입니까?”
“평소 니 생활을 봐라.”
“뭐가요.”
“꾸깃꾸깃한 옷, 툭하면 멍 때리는 시선, 가끔 중얼거리는 혼잣말, 그거 알지? 난 산유국의 왕자다. 처맞을 걸 알면서 꾸준히 팀장님께 덤비는 태도. 자, 여기서 문제.”
팬더가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귀에 쏙쏙 박히네.
말을 끊은 그가 문제를 냈다.
“이런 친구가 과연 똑똑해 보일까요?”
난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돌이켜 봤다.
꾸깃꾸깃한 옷은 자취 생활은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않나.
세탁소에 맡기자니, 한평생 소시민으로 살아와서인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리미를 놀릴 시간도 없고.
그럴 시간에 차라리 게임을 한 판 더 하겠다.
훈련을 더 하거나.
하여간 다림질은 즐겁지 않다.
사수는 어떻게 매일 칼 같은 각을 잡고 옷을 다려 입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리다.
다음, 멍 때린다, 넋 놓고 생각에 잠긴다는 말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모르는가.
사유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킨다. 난 자주 다양한 생각을 하고 가정하며 결론을 내린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배운 거다.
머릿속에 시뮬레이션 돌리고 행동해라.
그럼 실수가 반으로 줄 것이다.
그 말 그대로 했을 뿐이다.
가끔 그 생각이 길어져 망상으로 이어지지만, 그게 무슨 문제라고.
산유국의 왕자는 내 멘탈 관리의 핵심이다. 포기할 수 없지.
팀장한테 덤빈 건 다 목적이 있었다.
무투를 배운 다음, 다양한 전투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객관적으로 내 태도를 살핀 뒤, 답했다.
“네, 매우 영민해 보이네요.”
“봐, 자기가 똑똑한 애들은 그런 말을 안 하거든.”
팬더가 그런 날 보고 말했다.
“왜 안 합니까?”
“그런 말을 하면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아니까.”
“너무 잘나서 재수 없게?”
“아니, 머리 나쁜 놈이 발악하는 거로 보이지. 난 안 멍청해, 이렇게 외치는 거 같거든.”
왜지, 왜 그러지.
내가 잘났음을 말하는 것이 왜 그리 보인단 말인가.
“겉과 속이 다른 건 좋은 거지. 그런데 팔푼아.”
팀장이 나와 팬더의 대화를 끝내고 끼어들었다.
“네.”
“왜냐?”
함축된 질문이었다.
난 그 질문에서 몇 가지 질문을 읽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왜 나서냐?
임포스터가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난 모든 질문을 답 하나로 끝낼 수 있었다.
“매일 욕하는 팀장님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우리 팀장님이 탈탈 털렸구나.”
빠득.
내 말에 팀장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래도 끝까지 들어보자는 심산인지, 태클은 없었다.
그래서 마저 말했다.
“그리고 동훈 대리님도 당하셨고. 본래 이 작전의 브리핑 담당이시자 사후 처리, 적의 침투 여부 규모 알아내는 일 담당이셨으니까. 분석팀 소관이라고 하진 마시죠. 팀장님과 대리님은 애초에 분석팀의 분석에 허점이 있다는 걸 감안하고 시작하신 일이라는 거 압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회사에서 6개월이다.
그동안 볼 걸 보고, 들을 걸 들었다.
작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대강은 파악했다.
거기에 자꾸 날 바보로 몰아가는 새끼가 있는데.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천재까진 아니더라도 인과를 보고 상황을 유추할 줄은 안다.
“호오.”
팬더 대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는 대신, 입을 동그랗게 모아 감탄을 터트렸다.
“맞아. 당했지.”
팬더는 겉보기와 달리 냉정하다. 이런 말에 쉽게 흥분할 것도 같은데, 그러는 법이 없지.
사수는 겉으로 보면 얼음덩이 같지만, 불같고.
참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다.
“제가 또 의리가 있으니, 우리 팀장님 탈탈 털린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톡톡.
난 내 머리를 검지로 치며 말을 이었다.
“생각 좀 한 겁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하고.”
“시발.”
말을 끝내자, 팀장이 날 똑바로 보고 말했다.
이 양반은 뭐 매사에 이렇게 불만인지.
“뭐? 탈탈 털려? 옥수수를 탈탈 털어 버리고 싶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진 않았다.
대신 팀장은 일을 시작했다.
“동훈아.”
“네.”
“작전 기안서 짜 봐.”
“허가는요?”
“내가 받는다.”
“네.”
“정아.”
“네.”
“나가서 이쪽 일하는 애들한테 소문 좀 긁어 와. 좋은 배우 있으면 몇 명 뽑고.”
“네.”
이 양반이 일할 때는 또 칼 같단 말이지.
“전 뭘 할까요?”
팀장은 날 빤히 보더니 말했다.
“몽타주가 딱 네가 주연이다.”
응?
적의 자금줄에 타격을 주는 거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터다.
난 그 방법에 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타격을 주면 된다는 전제에 집중했지.
무의식적으로는 영화 도둑들, 오션스 일레븐, 트웰브, 써틴, 이탈리안 잡을 떠올리긴 했지.
예술의 경지에 이른 도둑질.
불멸특수대지만, 편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는 그런 다이내믹한 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일.
그런데 나보고 주연이란다.
“제가 브래드 피트입니까?”
“……뭔 개소리야.”
“오션스 일레븐 안 보셨나요.”
소심하게 물으니.
“봤지.”
그럼 알아야지. 주연은 브래드 피트잖아. 아닌가, 조지 클루니인가.
하지만 이미지로 보면 내가 바로 브래드 피트 그 자체인데.
“복면이나 사.”
“……뭘 사요?”
“꼼꼼하게 잘 가려지는 거로.”
불길했다.
“……어마어마하게 불길하게 들리는데요. 이런 건 탈탈 털린 분이 주연이 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놀릴 의도는 없었지만.
“……난 가끔 네 머릿속이 궁금하다. 광익아.”
팬더가 아까보다 더 큰 감탄을 보였다.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간 죽만 처먹게 해 주마.”
그리고 회의실 안에 폭풍을 일으켰다.
이 양반이 갑자기 미쳤나.
왜 덤벼.
“찻.”
작은 기합과 함께 내가 가드를 올렸다.
흘깃 시선이 옆으로 흐른다.
아, 젠장.
회의하면서 블라인드를 안 내렸다.
회의실은 사무실에서 빤히 보이는 구조였다.
일부 직원이 이 상황을 바라봤다.
다들 한심한 눈이었다.
* * *
“쟤네는 왜 맨날 싸우냐?”
지나가던 분석팀 팀장이 회의실 안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이중봉 팀장과 유광익을 보고 물었다.
강희모 대리는 둘을 보고 답했다.
“글쎄요.”
자주 있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뜸했다.
“유광익은 저러면서 왜 저 팀에 있는 거냐?”
방음 시설이 완벽했기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방금 이중봉 팀장의 팔꿈치가 광익의 갈비뼈를 후렸다.
강희모 대리는 유광익의 입 모양을 읽었다.
“치사한 인간. 입 때린다며.”
반사적으로 팀장의 입 모양도 읽었다.
“속은 놈이 병신이지.”
“아, 그래서 탈탈 털리셨구나.”
“그래, 오늘 죽고 내일 새로 태어나자. 그럼 그 주둥이도 멀쩡해지겠지.”
“싫은데요.”
“시발.”
강희모는 거기서 눈을 돌렸다.
더 봐도 남는 게 없다.
분석하고 파악할 것도 없는 일이라는 거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팀장의 질문에 답하니, 분석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말하며 돌아섰다.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 * *
중봉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들어서자, 본부장 담당 비서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에 계시지?”
“네.”
중봉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사이, 비서가 수화기를 들어 말했다.
“코드 레드요.”
텅.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가자, 본부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기가 당신 집 안방이야? 조용히 못 들어와.”
“얘기 좀 합시다.”
“합시다?”
“어쩌라고.”
“여기 회사야. 공적인 공간이다.”
“아, 네. 본부장님, 아시죠? 제가 왜 왔는지?”
중봉이 짝다리를 짚고 말했다.
“모르겠는데, 이 팀장.”
“보고서.”
본부장은 두 번째 한숨을 쉬고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본부장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뻐끔, 한 모금 머금은 본부장이 말했다.
“조용한 회사 시끄럽게 하지 마라.”
“반려했잖습니까.”
“윗선 건들면 네 회사 생활은 편할 거 같냐?”
“내 알 바 아니고.”
“난? 네 보고서 그대로 승인해서 올리면 난?”
“이번에 수틀렸으면 저 포함해서 다 뒤졌습니다. 이번 일로 몇 달씩 정양하는 애들이 한둘입니까?”
선선한 바람에 습기가 섞여 사무실 안을 휘돌았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 여름 냄새를 풍기는 계절이 왔다.
“그래도 보고서 승인은 안 돼.”
“절대?”
“안 돼. 우길 걸 우겨.”
“그럼 이거라도 승인해 주시죠.”
중봉이 작전 기안서를 들이밀었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본부장이 기안서를 훑었다.
“어떤 미친 자식 생각이냐, 이건?”
“신입입니다.”
“그 친구?”
유광익은 유명했다. 여러모로.
중봉과의 관계도 그랬고.
평가 때도 그랬고.
이번에 초고속 승진도 그랬다.
본부장은 머리를 굴렸다.
이게 잘 되면 어떻게 될까.
작은 일로 끝날까, 아니면 일이 커질까.
하나는 확실했다.
이걸 승인 안 해 주면 눈앞에 있는 그 신입보다 배는 미친 팀장이란 새끼가 물고 늘어질 거라는 거.
거절하기에는 상황도 묘했다.
이번에 불멸특수대와 사이오닉 협회가 당했다.
당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다른 놈들도 이쪽을 얕보겠지.
적절한 보복은 필요하다. 그 방법을 찾으라는 사장의 지시도 있었다.
이 작전 기안서는 그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거기까지 계산하고 이걸 들이민 걸까.
‘당연하지.’
이중봉은 겉보기와 다르다.
할 일은 한다. 그것도 제대로.
무엇보다 그 팀에는 이동훈이 있었다.
머리 하나는 제대로 돌아가는 친구다.
“기안서는 이 대리가 썼겠고.”
말해서 뭐 하나.
중봉은 답하지 않았다.
“수틀리면 발 뺄 거야.”
본부장이 말했다.
비공식작전이란 거다.
중봉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안 걸리면 그만이라고.
‘걸려도.’
빠져나갈 방법이야 수없이 많다.
어디,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중봉은 진심을 담아 말하며 생각했다.
두더지를 엿 먹일 시간이 도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