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정강이
인트라넷 공지 일주일 뒤.
인사 평가서가 윗사람에게 공유됐고, 2급 사원이 됐다.
사원 나부랭이 진급이니 취임식은 없었고.
연봉 계약서만 다시 작성했다.
그거로 끝이었다.
“얼떨떨해.”
식당에 앉은 채로 말하니, 요한과 귀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능력 우선주의라고는 해도 벌써 2급 사원이다.
평균적으로 실적이 있다면 3급 사원이 2급 사원이 되기까지는 2년이 걸린다.
대리까지 대강 5년에서 6년쯤 소요된다고 보니까.
3급에서 2급, 2급에서 1급은 대강 2년쯤 걸리는 게 맞았다.
“얼떨떨하긴, 부럽기만 하네.”
요한이 말하고.
“오늘 나 괜찮냐?”
귀태가 물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적당히 애매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혼혈, 피가 섞이다 만 불멸자는 본래 그렇다.
“후.”
숨을 고른 귀태가 몸을 일으켰다.
드륵.
의자를 밀어내고 몸을 180도 돌렸다.
“커피는 내가 사지.”
오늘 컨셉은 어디 재벌 집 막내아들인가.
귀태가 지나는 미호의 앞을 막고 당당히 말했다.
미호는 귀태가 앞을 막는 타이밍에 맞춰 한 발자국 옆으로 옮겼고, 그대로 지나쳤다.
기가 막힌 스텝이다.
무시하는 것도 저 정도면 비기다. 우미호 비기, 귀태 피하기.
“우미호.”
내가 귀태를 대신해 불렀다. 그녀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불필요한 대화는 사절이야.”
“그게 2급 사원을 대하는 태도인가.”
꾸짖자.
“미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도와주려고 한 거 아니었냐?”
요한이 물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이 나오네.”
진짜다. 조건 반사였다.
저 개나리와 대화하다 보면 항상 이렇지.
우미호의 뒷모습을 보는데 그 옆으로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반가움에 절로 목소리를 높이게 만드는 친구였다.
“기남아, 우리 동기 기남이, 3급 사원 기남이.”
부르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옆에 있던 기남이 팀 선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그놈 상대하기 쉽지 않겠지.
나같이 사회적인 사람을 보고 저런 표정을 지을 일은 없을 것이다.
“광익아.”
“왜?”
귀태가 부르기에 고개를 돌리니.
“넌 좀 미친 것 같아.”
미치게 멋지다고 들렸기에 칭찬이라 생각했다.
“내가 좀 그렇지.”
“……가자.”
2급 사원이 됐고, 임포스터의 존재를 알린 보고서를 올린 지 1주가 지났다.
팀장은 그 보고서를 올렸고.
반려됐으며, 소설은 그만 쓰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렇다고 회사 내에서 이걸 공론화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임포스터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서.
이곳은 정의구현을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닙니까!
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장 이 일을 낱낱이 밝혀서 비리를 걷어내야 합니다!
따위의 말을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가니.
“아주 개새끼야. 시방새지.”
팀장이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평소에도 자주 저러니 다들 그러려니 했다.
“왜? 신입이 결투장이라도 보냈냐?”
외부 보안 2팀장이 물었지만.
“알 거 없어.”
우리 시발 팀장은 평소와 같은 답을 했다.
기대도 안 한 외부 보안 2팀장이 돌아섰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 팀은 안다.
자신이 짠 계획에 거름을 뿌린 작자 때문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올려도 무시다.
내가 알아챈 걸, 분석팀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들쑤시진 않는다.
그걸 난 내 진급 턱에서 들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친 팀장이 말했다.
“시이발, 하여간 돈 받아 처먹은 새끼 따로 있고 밑에서 구르는 새끼 따로 있지.”
다소 거친 표현이었지만, 답은 분명했다.
고위 관리직이 연루된 일이므로.
당장 밑선에서, 현장에서 뛰는 우리가 할 일은 없다는 거.
“총대 메고 뛰어들면 우리만 벌집 돼요.”
팬더 대리는 이렇게 말했고.
“한 잔 더.”
사수는 나에게 술잔을 요구했다.
참으로 단란한 가정을 보는 것 같은 회식이었다.
“시방새, 다 죽여 버리고 싶네.”
살의를 보이는 시발 아버지와.
“아이고, 그래요. 다 죽입시다. 대신 우리부터 좀 살고요.”
가정을 걱정하는 어머니 팬더.
“한 잔 더.”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의심되는 얼음덩이 장녀까지.
유일하게 멀쩡한 초고속 승진 막내인 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말했었다.
“이제 그만 드시죠.”
“싫어.”
“이제 시작인데.”
“한 잔 더.”
팀장, 팬더, 사수 순으로 내 말에 답했다.
미친 양반들.
그날 삼겹살만 24만 원어치를 먹었다.
이십 인분이다. 이십 인분.
거기에 술값과 이것저것 더하니 허허, 진급 턱 두 번 내면 허리가 휠 판이다.
“이렇게 될 줄 모른 것도 아니잖아요.”
끄덕.
엄마 팬더의 말에 알코올 의존증 장녀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더 조오오오카튼 거다.”
시발 아버지는 일단 자식이 저 주둥이를 보고 배운다는 걸 깨달아야겠다.
입만 열면 욕이지, 아주.
이 대화를 들으며 난 알았다.
이들이 보통 불멸자보다도 더 잘 먹는다는 것과.
비약 인간인 사수도 불멸자만큼 잘 먹는다는 걸.
거기에 팀장은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자기 이름으로 냈다는 것도.
처음에는 내 공을 가로채려고 그런 줄 알았다.
설마 하긴 했지.
입만 열면 욕이고 인간성을 의심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치사한 인간일까 싶었다.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이제까지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게 열두 번도 넘는데, 말하면 윗선에 찍힐 게 뻔했다.
그걸 알기에 내 이름을 쏙 뺐다.
이게 고맙냐고?
아니지.
그럴 바에는 아예 말을 안 꺼내면 된다.
그런데 몸속에 흐르는 피에 반골 적혈구가 흐르는지, 팀장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번번이 보고서를 올린 거다.
“아, 시발, 여기 임포스터가 있다고. 좀 잡자!”
짧게 표현하면 이런 말인데.
화림 윗선에서는 이걸 이렇게 받았다.
“아는데, 그 임포스터가 좀 그래. 잡기가 좀 그렇다니까? 물론 가끔 그런 실수도 하긴 하겠지. 근데 되게 중요한 사람이야. 놔두면 큰일에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다 알지만, 넘어가자고.”
팀장은 이런 비리를 내가 알길 바란 걸까.
굳이 왜 나한테 이런 걸 알린 거지.
“야, 팔푼이.”
“네.”
“어떻게 생각하냐?”
팀장의 물음에 난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리 답하면 회사 내부도 아닌, 외부 고깃집에서 한바탕 주먹다짐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럼 경찰이 출동할 거고 우리는 불멸특수대 역사상 유치장에서 눈을 뜨는 치욕을 당하거나.
도주한 뒤, 회사 동료에게 ‘어떻게 이런 새끼들이 불특대지?’라는 눈빛을 받겠지.
그래서 멀쩡한 답을 말했다.
“나쁜 놈이네요.”
“그게 끝이냐?”
“아주 나쁜 놈이네요.”
“……나가, 이 새끼야.”
그럼 뭘 어쩌라고.
솔직히 나도 이걸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해.
그런데 봐봐.
썩은 사과나무가 있다고 치자.
열매 하나가 썩었으면 그거만 똑 따면 돼.
가지 하나가 상했으면 그 가지만 자르면 돼.
그런데 뿌리가 상했어.
그럼 어쩌자는 거냐. 나무를 통째로 베어 낼까.
그게 지금 6개월 된 신입, 그것도 막 진급한 신입이 사는 고깃집에서 할 말이냐.
양심이 없다. 양심이.
술자리는 그렇게 끝났고.
난 돌아가는 중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평온하시죠?”
“한 달에 두어 번 전화하는 아들의 무관심만 아니면 아버지는 행복하고 평온하지.”
어머니가 주먹이라면, 아버지는 혀로 날 때리셨다.
“죄송해요.”
“엄마한테는 전화 좀 하자. 너 없으니 요새 부쩍 외로움 탄다.”
최근에 아버지 출장도 잦고요.
남자 둘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어머니라니.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우라고 해야 하나.”
“어머니가요? 안 어울려요.”
“너희 엄마가 너라는 놈을 키워 낸 분이시다.”
“네, 저도 그 부분은 존중합니다.”
제가 마냥 키우기 편한 놈은 아니었죠.
“아바마마.”
“말해라.”
“고여서 썩은 부위가 보이는 데 도려낼 수가 없어요.”
“아들.”
“네.”
“알아듣게 말해야지?”
아버지는 언제나 말씀하셨다.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전후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라고.
하지만 지금 그럴 순 없지 않나.
불멸특수대의 일은 기밀이고, 특히나 이 일은 밝히기가 어렵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나쁜 자식이 있는데요. 건드리면 안 된다네요.”
“재벌 3세랑 시비 붙은 거냐? 그럼 잠깐 호적에서 나가 있으려무나.”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더 물으면 얼버무리려 했다.
아버지는 묻는 대신 조언을 해 주셨다.
“머리를 때리지 말라고 하면 정강이를 때리면 되지.”
가끔 난 생각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원앙처럼 잘 어울리는 천생연분이라고.
왜냐고?
추구하는 가치가 비슷하니까.
생각하는 것도 그와 같고.
팰 놈은 패야 하고.
혼낼 놈은 혼내야 한다.
그게 아버지가 공무원이 된 이유다.
어머니가 날 향해 주먹을 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랑의 매를 드는 어머니를 보고 아버지가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일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
이런 꼴 안 보려고 이 일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이 꼴을 코앞에서 보니 속이 배배 꼬이는 심정이었다.
그래, 인정한다.
난 팀장만큼이나 임포스터가 개 음경 같은 새끼라고 생각한다.
“정강이요?”
“그래. 정강이를 때려.”
아버지가 파이팅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본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럴 정신이 없었다.
진급 회식을 한 뒤.
난 종일 머리를 굴렸고, 지금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내 메신저를 켜서 이중봉을 검색했다.
그리고 적었다.
[유광익] 팀장님, 임포스터가 왜 그랬을까요?
가설 하나, 임포스터가 있다.
가설 둘, 임포스터가 테러 단체의 요직은 아니다.
진짜 프로메테우스의 첩자라면 아무리 고위 공직자라도 정부에서 이걸 가만 놔둘 리가 없다.
그러므로.
가설 셋, 임포스터는 비리 고위 공직자다.
[이중봉 팀장] ?
시발 팀장답다. 답변으로 물음표 하나만 던졌다.
그래도 육성으로 날 부르지 않은 게 다행이지.
주변 귀가 다 듣는 판에 대놓고 할 말은 아니니까.
[유광익] 그 임포스터 찾으면 어떻게 될까요?
알면서도 쉬쉬하는 일이다.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건들지 않는 폐해다.
[이중봉 팀장] ?
……팀장, 이 새끼는 타자를 칠 줄 모르나.
그래, 부하 직원으로 태어난 내 죄다.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려 내 가설을 완성했다.
임포스터가 바라는 건 무엇인가.
가설 넷, 임포스터는 놀부다.
놀부는 욕심쟁이고.
그 놀부가 임포스터가 된 이유는 돈 때문이다.
머리가 고위 비리 공직자라면.
그 머리를 바로 칠 순 없다.
하지만 정강이는 후릴 수 있다.
놈이 바라는 게 돈이라면, 비자금이라면, 그걸 조질 순 있지 않을까?
[유광익] 그 작자 창고를 터는 건 어떻습니까?
이전에 팀장이 한 일에서 배운 게 있다.
우린 경찰도 검찰도 아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
팀장은 나와 사수를 몰래 이계에 잠입시켰고.
축능석을 훔칠 계획도 세웠다.
일이 꼬여서 조력자가 됐지만, 팀장은 결국 몇 개의 신기한 돌을 훔쳤고, 난 그걸 봤다.
같은 문제다.
우리 목적이 임포스터를 엿 먹이는 거라면.
그 새끼 때문에 짜증이 나서 반대로 놈의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싶다면.
놈이 가진 패를 흔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머리를 칠 수 없으니 정강이를 후리겠다는 거다.
[이중봉 팀장] ?
전과 같은 답변이 왔다.
난 이 모든 가설을 정리해 장문의 메신저를 쓰는 중이었다.
스윽,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 보니, 팬더가 내 뒤에 섰다.
“마저 해.”
은근히 등으로 내 화면을 가리는 위치였다.
타닥타닥타닥.
외부 보안 3팀 사무실 내에 타자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임포스터는 돈을 원한다.
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게 아닐 것이다.
팬더 대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요즘 테러 단체는 옛날 같지 않아. 저축 회사 같은 거 차리기도 한다고. 거기를 운영하는 방식? 기가 막힌 수법을 쓴다. 지들 돈을 넣는 게 아니라 외부의 비리 자금을 넣어. 그럼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올드 포스고 엑스큐라시고, 사이오닉 협회, 숨어 버린 마법사건 간에 그 회사는 놔두겠지.
제 돈이 들어 있으니까.
공생 관계다.
흔히 비유하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그런 관계.
악어가 입을 벌리는 사이, 악어새가 다가와 이빨 사이에 낀 먹이를 먹어 주는 것과 같다는 거다.
제 돈을 숨겨 두고 싶은 놈들이 있고.
그 돈을 숨겨 두는 대신, 테러 단체는 양지에서 당당히 사업체를 꾸리게 된다.
그럼 그 양지의 사업체에 타격을 주면 어떨까.
우리는 불멸특수대다. 필요하면 공권력도 동원할 수 있었다.
다 쓰고 엔터를 치려 했다.
탁.
팬더가 내 손을 잡았고.
어느새 일어난 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전부 회의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