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기쁨의 3단계
처음에는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어색했다.
툭.
“고마웠다.”
김주석 팀장.
순혈, R&D 본부 산하 연구원 경호팀장.
평소에 정장을 즐겨 입으며 상사와 부하 모두에게 존경받는 성공한 직장인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내 개인 감상을 덧붙이고 싶다.
그는 까치 같은 남자다.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어디 회사의 외부 보안 3팀에서 욕만 할 줄 아는 그런 남자와는 궤를 달리하는 상사. 호탕하고 자신의 주머니를 열 줄 아는 상사였다.
그는 나에게 발리스틱 나이프, 일명 스패츠나츠 나이프를 선물했다.
그것도 칼날이 튀어 나가는 게 아니라, 근접 거리에서 산탄이 나가는 커스터마이징 장비였다.
“슬러그 나이프네.”
옆에서 팬더 대리가 고개를 쭉 내밀고 말했다.
“……이걸 왜 저한테.”
다 알지만.
그래 왜 나한테 이런 선물을 주는지.
전생에 당신이 까치였는지도 다 알지만.
그래도 물었다.
“덕분이니까.”
김주석 팀장이 말하고 돌아섰다.
“그거 최소 천 단위는 넘는다. 저 양반이 무기에 돈 쓰는 거 보면 훨씬 비싸겠지만.”
팬더 대리의 말을 듣고 슬며시 칼을 쥐었다.
내 칼 같았다.
손에 쫙 달라붙었다.
“좋냐?”
저 멀리서 팀장이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깜빡이는 메신저 알림, 내 손 안에 놓인 칼 한 자루.
고맙다는 인사.
“난놈일세.”
외부 보안 2팀 팀장님의 평가.
어색함과 서먹함 사이에 있던 내 기분은 서서히 기쁨의 3단계에 들어섰다.
일 단계.
겸손과 겸양의 단계다.
“칠푼아, 좋냐고.”
팀장의 목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죠.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다 팀장님과 선배 덕분이죠.”
“……저 새끼 누가 약 먹였냐?”
날 향한 팀장의 평가는 무시다.
“난? 나도 서포트에 최선을 다했는데?”
팬더 대리가 물었다.
“물론 대리님 덕분이죠.”
“영혼이 가출했냐? 소울리스네.”
팬더의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일단 겸손하자.
누군가 그리 말하지 않았나.
아무리 잘난 놈이라고 해도 잘난 척을 하면 재수 없는 법이라고.
적당한 겸손과 겸양은 사회성을 증명하는 필수 도구 아닌가.
“하하,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아무도 안 물었지만, 대답했다.
“저 새끼 약 먹었는데.”
“야, 너무 들뜬 거 아니냐?”
“괜찮아?”
팀장, 팬더, 엘사 순으로 말했다.
“에이,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난 종류가 다른 세 질문에 합당한 답을 해 줬다.
“너 콧대가 솟아오르고 있어, 피노키오야?”
팬더 대리가 말했다.
“에이, 진짜 전 한 게 없는데.”
겸손의 바다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기쁨의 2단계다.
절로 어깨춤이 나오고 입꼬리가 주체가 안 된다.
내심 인정하는 단계다.
옆에서 누가 콕 찌르면 이유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는 그런 기쁨이 가득 찬 상태였다.
씰룩씰룩.
“저 새끼 입꼬리가 춤춘다.”
팀장이 말했다.
“아, 그런가요.”
제 입꼬리가 춤을 췄군요. 어쩔 수 없잖아요. 여기서 어깨춤을 출 순 없으니까.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아후, 요, 예.
“야, 차라리 나가서 좋다고 괴성을 질러.”
팬더가 말했다.
“아, 그래야 하나요? 이거 참.”
난 오늘 관대하다.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며 받아 줄 수 있었다.
그리 기쁨에 젖은 채로, 내 스스로 내가 한 일에 대견하다고 생각할 때다.
“공지 떴다.”
예전 드라마에는 인사 공고를 벽에 붙였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는 인트라넷으로 확인하는 거다.
특히나 이 회사, 화림 정보 통신은 대외적으로 평범한 탈을 쓰고 있으니, 대자보를 붙일 수도 없고.
틱, 틱.
인트라넷 공지를 확인하니.
[특별 진급 심사 대상자]
- 1급 사원 김정아
어, 사수가 있네.
그리고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익숙한, 한 이십몇 년 내 손으로 썼던 그 이름이다.
- 3급 사원 유광익
“익숙한 이름이 있군요.”
기쁨의 3단계, 절정이다.
겸손과 겸양의 바다를 지나 내심 인정하는 섬에 당도해, 잘난 척하지 않고 못 배기는 단계에 도달했다.
“크으, 뭘 얼마나 잘했길래 여기에 이름이 딱.”
“저거 미쳤어.”
내 말에 팀장이 반응했다.
“아니, 익숙한 이름이 있잖습니까.”
난 무시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고.
“그러네요.”
팬더가 팀장의 말에 동의했다.
“괜찮아?”
옆에서 사수가 진심을 담아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이 유광익.
이제 특별 진급 심상 대상자이자, R&D 본부 경호팀장에게 칼을 선물 받은 남자가 된 이 유광익.
언제나 괜찮았습니다.
“네, 뭐,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뭘 이렇게까지.”
“확실히 미쳤어. 칠푼아, 정신 차려.”
팀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난 그에게 윙크를 해 줬다.
“시발, 저거 죽인다.”
“아, 팀장님, 좋은 날입니다. 좋은 날.”
팀장이 못 참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쥐는 걸 보고 팬더 대리가 몸을 던져 막았다.
싱글벙글.
난 그 장면조차 웃으며 바라봤다.
하하하, 세상은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명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넓은 풀밭이 떠오르고 도레미파솔라시도 송이 절로 나왔다.
“쟤도 정상은 아니야.”
옆 팀 대다수가 이리 말했지만, 난 귀를 닫고 듣지 않았다.
이 기쁨, 이 행복 훼손하고 싶지 않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야, 이 미친 새끼야.”
팀장의 말조차 캐스터네츠의 울림 같으니.
오늘 나는 관대하다.
* * *
특별 진급 심사 대상자가 됐다고 해도 곧바로 진급한다는 건 아니었다.
신체 능력 평가, 정신 능력 평가, 평소 인성, 주변 동료의 인정 등 많은 걸 참조했다.
그래도 이게 왜 대단하냐고 묻는다면.
특별 진급 심사 대상자라는 건, 말 그대로 너 진급시켜 준다는 말과 동의어니까.
불멸특수대가 일반 회사도 아니고 이쪽은 철저히 능력 우선주의다.
물론 비약 인간, 불멸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손해는 보지만.
그래도 한 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이 말인즉슨, 나랑 사수가 한 단계씩 올라갈 때란 거다.
입사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기쁨의 3단계는 꽤 오래갔지만, 흥분 상태는 가라앉았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건지라.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그 펜은 뭐예요?”
나처럼 사수도 경호팀장에게 선물을 받았다.
만년필이었다.
보고 물으니.
“좋은 거.”
사수의 답변이다.
그래, 그게 뭐가 중요할까. 좋은 거 줬겠지. 비싼 거 줬겠지.
“회사 놀러 왔지?”
팀장은 벌써 열여덟 번째 내 기분을 망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끄떡없었다.
“아닙니다.”
“그럼 보고서나 써.”
이계에서 수행한 임무는 큼지막한 임무였다.
그래서다. 사수의 관점에서 하나, 내 관점에서 하나. 이렇게 두 개의 보고서가 필요했다.
대외적으로 팀장은 나서지 않았으므로 제외였고.
때문에, 내부 보고서 작성 시간이 되었다.
타닥, 타다다닥, 타다다다닥.
절로 악상이 떠오르는 작곡가의 기분이 이럴까.
손이 제멋대로 전개를 그려 내는 소설가의 마음이 이럴까.
보고서를 쓰는데 막힘이 없었다.
오늘의 나는 산유국의 왕자를 넘어 화림의 영웅이나니.
그래도 보고서 원칙에는 맞췄다.
적당히 내 활약을 넣고.
필요한 사실은 전부 차곡차곡 넣어서.
“프린트해서 가져와.”
마침 다 작성했을 때 팀장이 말했고.
“예썰.”
답한 난 오타만 검수하고 뽑아서 가져갔다.
“기다려.”
팀장은 책상에 발을 올리고 내 보고서를 읽었다.
이건 뭐라고 못할 거다.
그동안 내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이제까지 썼던 어떤 보고서보다 훌륭…….
찌이이익.
“너 아이큐 한 자리냐?”
……찢네. 잘 썼는데.
그래, 오늘 내가 기분이 좋다고 팀장을 너무 무시했지.
다시 써야겠다. 오늘의 나는 관대하니까.
“네, 제가 실수했네요.”
깔끔하게 인정하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작성.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정리하고, 내 활약 위주가 아니라 사실 위주로 작성했다.
그래, 아까 초안은 내 활약이 너무 주목받게 썼지.
이건 진짜 사실 위주니까.
“가져와.”
뒤에서 내 모니터만 쳐다보는 걸까.
팀장의 말에 다시 프린트해서 가져가니.
찌이이익.
“이유가?”
“넌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살지?”
이제 슬슬 일부러 엿 먹이나 싶다.
그래. 좋다.
다시 썼다.
찌이이이이익.
“니가 기자야? 무슨 사실만 쓰면 땡이야? 보고서에 들어갈 게 이게 전부냐?”
그래, 다시 써 주마.
찌이이이익.
기쁨이 3단계로 도핑됐던 기분은 금세 본래대로 돌아왔다.
이 새끼는 악마일까.
지옥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탄의 환생일까.
김주석 팀장, 나에게 칼을 선물해 준 사람과 비교하면 이건 인간도 아닌가 싶다.
또 썼다.
찌이이익.
사람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드는 대회가 있다면 이 작자가 바로 세계 챔피언이겠지.
그래, 다시 써야지.
이제는 이유도 말 안 한다. 손만 휘적대기에.
나도 보고서에 사심을 담았다.
“살해예고장이냐?”
오, 알아볼 눈은 있구나.
“아, 실수.”
“미친놈.”
“누가 할 말을.”
“뭐 이 새끼야?”
“아닙니다. 혼잣말인데.”
짜증 나는 양반 같으니라고.
난 잊지 않았다. 이 양반이 축능석 일부를 빼돌린걸.
확 찔러 버릴까.
그럼 이 작자 얼굴 안 보고 살 수 있을 텐데.
“뭘 봐? 다시 써 와.”
“아, 네.”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니, 팀장이 화장실이라도 가는지, 아니면 담배라도 한 대 물러가는지 일어나 걸었다.
그렇게 막 내 옆을 지나칠 때다.
“우리 회사가 일을 그렇게 못하냐? 분석팀이 그렇게 머저리만 모였어?”
“……분석팀장님께 전해 드려요?”
이 말 그대로 해 주면 참 좋아할 텐데.
“대가리를 굴리란 거다. 들떠서 흙이나 퍼먹을 새끼야.”
창의력이 돋보이는 욕이다.
팀장이 할 말만 하고 지나갔다.
좋다. 떠올랐다.
창의적인 내용을 덧붙여 새로운 결투장을 작성하리라.
살인 예고장을 만들어 저 작자의 속을 뒤집어줘야지.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 나니.
겁나 이상하네.
그러니까 그때의 상황.
나와 사수가 했던 일, 이번 사건을 쭉 훑고 불멸특수대의 특징을 고려하니.
아주, 매우, 몹시 이상한 일이란 말이지.
툭.
타자를 멈추고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까지 불멸특수대의 작전, 그러니까 특수대원, 에이전트가 나가는 일의 모토는 분명했다.
작전 상황 분석.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대비.
그걸 토대로 한 효율적인 전력의 투입.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분석팀은 작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서 부족하지 않게 전력을 투입한다는 거다.
이제까지는 그렇게 했는데.
이 일은 아니지 않나.
팀장이 나와 사수를 불러 우연히 저격 포인트를 다 뒤집어엎었지만.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저격수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했다면?
전황이 어떻게 됐을까?
전멸까진 아니지만, 뒤틀렸다.
그럼 이게 분석팀의 실수일까?
기초 소양 과정 중, 다른 팀의 업무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있었다.
그때 들은 내용이 떠올랐다.
“기본적으로 모든 작전에 투입하는 전력은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보냅니다. 필요한 게 다섯이라면 보내는 건 최소 일곱, 이게 기본이죠. 보통 일이 커지면 일곱이 아니라 그 배수로 보냅니다. 정확한 측정 후, 다섯이 필요한 일에 열을 보내는 거죠.”
그러므로 이 일에서 분석팀은 자신이 판단한 일에 일곱이 아닌 열을 보냈을 거다.
일의 규모가 클수록 가능한 모든 전력을 쓴다고 했으니.
그런데 결과를 보라.
이게 순수하게 분석팀의 잘못이라고?
일이 잘못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보통 사람이라면 답을 찾겠지만, 훈련받은 요원은 답보다 먼저 다른 걸 찾는다.
팀장이 내가 쓸 보고서에 요구한 건, 사실 나열이 아니라 문제였다.
문제는 왜 필요한가.
답을 구해야 하니까.
문제를 알아야 답을 알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찾은 문제다.
난 현 상황의 문제점을 찾았다.
정보가 샜다.
그리고 이 다섯 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임포스터가 있다는 것.
정확히는 아군 무리에 임포스터가 있다는 거다.
그게 불멸특수대 쪽인지, 초능 협회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첩자가 있었다.
이 일에 관여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 첩자가.
난 보고서를 다시 썼다.
팀장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게 맞다는 확신도 들었다.
다시 돌아온 팀장에게 보고서를 건넸다.
그 덕분에.
“이제 좀 읽을 만하네, 팔푼이 새끼.”
칠푼이에서 팔푼이가 됐다.
시이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