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칭찬 세례
화림 내에는 감옥도 있었다.
전문 감옥까진 아니고 구금 시설 정도지만.
내가 잡아 온 친구를 넣을 정도는 됐다.
놈을 넘기고.
“이번 임무 보고서는 별도로 제출하겠습니다.”
부서진 물건과 기타 일어난 일에 대해 간이 보고를 올렸다.
범죄자 하나 쫓아 떠난 일이, 화이트홀 너머 이계 탐방으로 이어졌으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그래? 아니, 그 자식이 발이 엄청 빨랐구나. 홀 너머로 튀고.”
시발 팀장의 부재로, 사수와 난 우리 팀의 상급자인 팬더 대리에게 보고했고.
알 거 다 아는 팬더는 능구렁이로 변신해서 적당히 받아 줬다.
“보고서는 이틀 내로 작성하자.”
야근이 생활인 남자는 근래 부쩍 밝아 보였다.
그런데, 사실 작전은 실패라는 걸 말해 줘야 하는데.
본래 작전은 축능석 상자 몇 개 들고 튈 생각이었다.
그럼 사이오닉 협회에서 도둑을 찾느니 난리를 쳤을 테고.
겉으로야 화림도 같은 스탠스를 취하겠지만.
협회가 하는 도둑 잡기에는 절대 협력하지 않겠지.
대신 물건을 빼돌린 중봉 팀장의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다.
그만큼 민감한 물건이니까.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하니까.
그렇다고 회사에서 대놓고 나설 순 없다. 그러다가 협회에 걸리면 요원 하나둘 직위 해제하는 거로 안 끝난다.
그런데 만약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짓을 한다면?
그것도 안 걸리고 잘 끝내면?
그게 팀장의 노림수였는데.
‘망했어요.’
난 차마 겉으로 하지 못한 말을 눈에 담아 팬더 대리에게 말했고.
“알아, 고생했다. 쉬어.”
팬더 대리는 찡긋 윙크했다.
아니요, 그거 아닙니다.
넌 몰라. 하나도 모른다고.
당신의 야근은 이제 시작일지도 몰라.
“나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지. 니코니코니.”
뒤에 붙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묻고 싶지도 않았다.
보는 눈이 많고, 듣는 귀도 많다.
괜히 이번 일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알리는 것보다야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나으리라.
어차피 팀장이 오면 다 알게 될 일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쨌든 팀장이 짠 작전은 실패다.
그렇게 생각하고 퇴근했다.
어쩌다 보니 사수랑 매일 붙어 다니는 모양새다.
숙소도 같은 방향이니까.
“고생하셨습니다.”
대충 인사할 타이밍이 돼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사수는 왼쪽, 난 오른쪽이다.
화림에서 혼숙을 막는다거나, 남자가 사는 곳, 여자가 사는 곳을 따로 두진 않지만.
사수와 내가 사는 숙소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걸어서 한 5분쯤?
“오늘.”
인사하고 몸을 돌리는데 사수가 말했다.
오늘 뭐?
말을 기다리는데, 비약의 효과가 끝났기에 지쳐 버린 사수는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네, 오늘, 영어로는 투데이.”
되지도 않은 드립을 쳐도 조용하다.
“이게 지금은 안 웃기죠? 이따 집에서 자기 전에 떠올리면 배꼽 잡습니다.”
그리 말하니, 그제야 사수가 말했다.
“믿었다.”
끔뻑.
눈을 깜빡이는 사이, 사수가 몸을 돌려 척척 걸어갔다.
분명 지친 게 보였는데 걸음이 빨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믿었다고? 뭘?
아까 한 말의 반복인가?
“발등을 잘 피해서?”
혼잣말을 뱉어 봤다.
아니, 이건 아니겠지.
여우 놈을 상대한 거 때문에?
그건가?
믿었으니까 갔지. 근데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인가.
모르겠다. 진짜 다른 사람 속은 얼추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우리 팀 사람 속은 알 수 없었다.
시발, 팬더, 얼음.
삼총사의 마음은 정말 모르겠다.
피곤한 하루다. 꽤 끔찍한 장면도 봤고.
그래도 내 육신은 충실하게 구역질 한 번 안 나오게 했지만.
정신은 별도로 지쳤다는 걸 호소했다.
지랄 맞긴 하네.
이 세상에서 살려면 그런 걸 계속 보고 살아야겠지.
뇌수와 피, 박살 난 육신의 조각.
이번에 출정 나간 불멸특수대 중에는 몸이 반만 남아서 앞으로 반년간 집중치료실에서 지내야 할 요원도 있었다.
불멸이라고 해서 불사는 아니다.
불사였다면 불멸자가 아니라, 불사신이라 불렸겠지.
자박자박 걸어서 숙소에 들어가 불을 켰다.
아직 합류하지 않은 룸메이트 대신 차가운 공기가 날 반겼다.
오늘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몸이나 푹 녹이고.
자기 전에 웹툰이나 잔뜩 보다가 잠들어야지.
어서 집에 있는 게임기며, 컴퓨터도 가져와야겠다.
나중에 룸메이트가 오면 같이 NBA를 즐기며 살 수 있겠지.
이런 날에는 소주도 한잔하고 말이야.
* * *
부르르.
퉁.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 안에 담긴 물이 주방 바닥에 쏟아졌다.
김정아는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다가.
곧 전신이 떨린다는 걸 깨닫고 바닥에 웅크려 무릎을 안고 등을 수납장 문에 기댔다.
“으으.”
턱이 떨리며 신음이 흘렀다.
들을 사람은 없었다.
비약 인간과 한집에서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어서, 혼자 지낸 지 오래였다.
“후우.”
심호흡을 거듭했다.
비약을 쓴 뒤의 부작용은 언제나 폐부를 쑤시는 차가운 칼날과 같았다.
따갑고 아프다.
처음에는 울었다. 두 번째에도 눈물이 났다. 세 번째부터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점점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부작용 때문에 오한으로 떨고.
전신 근육통과 극심한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는다.
정아는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팀장이다.
자신을 지켜 준 사람이다.
다음은 동훈 대리.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는 돈독해지는 법이다.
그다음.
최근에 팀에 합류한 막내가 떠올랐다.
‘말도 안 돼.’
이계에 적응하는 속도도.
변신족을 상대한 것도.
믿는다고 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믿는다고 한 게 언제였더라.
그때 상황은 그 막내의 판단이 옳았다.
‘나는 전장을 지원.’
광익은 자신을 호위.
하지만 안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왜 믿었다고, 믿는다고 했을까.
왜 그랬을까?
‘미안해서?’
만약 광익이 평범한 불멸자였다면, 그 변신족의 위장에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정아는 이제까지 봐온 유광익을 떠올렸다.
“네, 오늘, 영어로는 투데이.”
“풉.”
확실한 건 정상적인 범주의 인간은 아니라는 거다.
거기서 저딴 말을 하다니.
비약의 부작용만 아니었다면 오늘 자신은 광익을 데리고 술이라도 한잔했을 거다.
‘내가?’
어울리진 않지만, 그랬을 것 같았다.
자신이 처음으로 살인했을 때도 쉽지 않았다.
오늘 광익이 직접 죽인 사람은 없지만.
그 여파가 남을 테니까.
‘믿는다.’
속으로 되뇌었다.
횟수로는 세 번째다.
전장에서 한 번, 헤어질 때 두 번, 그리고 지금 세 번.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겠지.
어느새 비약의 부작용이 가시고.
‘밥이라도 한 끼 해야겠어.’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는 건 중요하다.
그런 거라도 한번 챙겨줘 보자.
정아는 그리 생각했다.
* * *
머리를 비우고 자는 건 어릴 때부터 특기였다.
꿈도 꾸지 않고 아주 푹 자고 출근했다.
팀장도 어젯밤 늦게 복귀했다고 했다.
“내부감사팀입니다. 어제 일어난 일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무슨 사람을 출근하자마자 바로 끌고 가나.
딱딱하게 굳은 인상의 금테 안경을 쓴 여자였다.
“네.”
따라가자, 이미 사수가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응.”
간단히 인사하고 앉자, 네모난 원목 테이블을 마주한 채로 금테 안경 여자가 물었다.
“협회에서 항의가 왔습니다.”
“네.”
당연한 순서였다.
불멸특수대라는 간판과 임무 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냥 사이오닉 협회의 영역을 침범한 거였다.
“인정하시나요?”
“네.”
인정하지 못할 건 뭔가.
“이동훈 대리의 보고서에 따르면…….”
팬더 대리는 이미 간이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건 보고 받은 상급자의 의무였다.
약속한 핑계, 약속한 변명이 달린 내용이었다.
여기서 내가 할 말도 정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범죄자를 쫓아 집중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이계에서 일어난 일은 함구하는 게 낫겠지?
아무도 말을 안 했을 테니까.
“됐습니다. 그럼 협회의 항의는 합당했지만, 우리 쪽 일도 합당했네요.”
“네, 쫓아야 하고 잡아야 하다 보니 어쩔…… 네?”
아니, 대사 그대로 읊는 중에 갑자기 약속된 말을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눈으로 금테 안경에게 따지자.
“문제없습니다. 돌아가셔도 좋아요.”
……어?
“네.”
“알겠습니다.”
사수와 답하고 감사팀 직원을 뒤로한 채로 나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
사내 메신저 알림이 깜빡였다.
뭐 이렇게 많아.
뭐가 잘못된 거냐?
이번에 수작 부린 일이 걸린 건가?
아니면 팀장이 주머니에 챙긴 게 문제인 거냐?
딸깍.
요한 형부터 클릭했다.
길지만, 내용은 짧았다.
[김요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냐? 너 진급 심사 대상자가 됐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사장의 숨겨 둔 애인이라도 되기로 한 거?
응?
다음은 순정남 귀태형이었다.
[방귀태] 너, 나중에 잘 나가면 나랑 미호 한팀으로 엮어 줘야 한다? 축하.
이모티콘 표시가 깜찍했다.
우미호도 말을 걸었다.
[우미호] 합리적인 일 처리 방식은 아니지만, 축하한다.
뭘 축하해.
그 외에 다른 동기에게도 메시지가 와 있었고, 이전에 공항에서 작전을 함께한 강희모 대리도 말을 남겼다.
[강희모 대리] 잘 나가는구나.
짧지만 강렬하다.
난 이 모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선배.”
물으려고 고개를 돌리자, 회사 통로 끝에서 유유히 걸어오는 작자가 보였다.
옆에는 팬더 대리가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평소와 같이 미간을 찌푸리고 언제든 욕을 할 준비가 된, 얇지만 예쁜 입술을 가진 남자.
시발 팀장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반사적으로 사수에게 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 안다.”
“뭘요?”
“우리가 한 일.”
어? 그거 막, 말해도 되는 건가?
어쨌든 우리는 본래 그 일에 끼어들면 안 되는 거잖아.
그래서 원리원칙에 근거해서…….
“결과가 좋으면 어지간한 과정은 무시해도 좋지. 칠푼아, 잘 잤냐?”
남의 속을 들여다보는 말이었다.
다가온 팀장의 말에 그렇다고 하니.
“시발, 난 아니다. 어제 졸라 늦게 끝났거든.”
근데 왜 입꼬리는 올리십니까.
욕이 아니라 만족감이 느껴지는 표정이다.
입사한 이후로 저런 표정 처음 봤다.
그렇게만 말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 팀장과.
그 옆에서 실실대는 팬더.
뭐냐, 그래, 우리가 한 일.
그러니까 사수가 내가 이계에서 한 일을 알았다고 치고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광익아.”
팬더 대리가 날 불렀다.
그래, 친절한 대리님이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강렬한 눈빛으로 물었다.
사내 진급 대상자부터 시작해서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 알고 싶다.
“사이오닉 협회에서 비율을 조정했다. 사실상 본대를 지원한 두 명의 협력자가 없었다면 작전은 실패였으니까.”
아.
난 바보가 아니다.
이 한마디로 대부분의 상황을 이해했다.
협회에 본래 약속보다 더한 걸 받아 낼 수 있으니 회사로서는 큰 이익이다.
거기에.
“숨겨 둔 한 수를 이용해서 프로메테우스의 야욕을 꺾은 건, 경호팀장의 머리에서 나온 거로 했고.”
고로 그건 화림이 준비한 작전이란 것.
이 일로, 이번 일로.
화림의 작전 수행 능력이 재평가됐다.
위에서도 칭찬이 즐비하단다.
그만큼 이번 일이 중차대한 사안이기도 했고.
얻어낸 이득이 적지 않다는 거다.
“대외적으로 너와 정아의 이름을 밝힐 순 없지만.”
팬더 대리가 말했다.
이건 당연하지. 이중봉 팀장 개인이 꾸민 일이라면, 이건 본대 미션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전부 우연이 겹친 일이 돼야 했다.
그런데 상대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처음부터 책임자가 준비한 안배가 된 거다.
“그래도 사내에서 충분한 대가를 줄 정도는 되지.”
팬더 대리가 이어서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화림이 한 일.
실제로는 팀장이 꾸민 일.
사내에서는 우연히 두 명의 사원이 끼어들어 본대 미션을 성공시킨 일이 됐다.
더럽게 복잡해 보이지만.
단순히 말하면.
나랑 사수가 한 일로 사방에서 칭찬 세례가 쏟아지는 중이고.
그게 칭찬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거였다.
“유광익.”
그리고 이 일의 정점을 찍을 사람이 날 찾았다.
R&D 부서 소속 경호 3팀.
팀장 김주석.
본대 미션의 책임자였던 남자.
그 남자가 칼을 들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