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양손이 하는 일은 서로 알아야 맛이다.
자동 소총과 마체테로 무장한 놈 하나.
다른 하나는 스코프를 달고 개조한 소총 한 자루만 달랑 들고 있다.
“내가 후위.”
개조 소총을 든 놈이 말했다.
전위를 맡은 놈이 소총 총구로 날 가리켰다.
난 여전히 지친 척 사기를 쳤다.
“후우, 미친, 저건 뭐냐? 변신족도 아니고 초능 특수종도 아니고.”
“알려 줄 수 없다.”
서로 아는 걸 물어봤는데 뭐 이렇게 방어적이야. 또 한 번 슬쩍 떠봤다.
“혼혈이라니, 이런 실험은 금기인데.”
“우리가 그런 걸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나?”
그래, 입 무거워서 좋겠다. 새끼야.
조심스럽게 거리를 좁히는 놈이다. 곧바로 총알을 갈길 법도 한데, 아주 신중했다.
완벽히 자신이 사격할 거리까지 근접하는 걸 보니.
아닌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하여간 덕분에 입을 털 시간이 있으니.
그리 서로 긴장감을 세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퉁!
뒤에서 격발음이 들렸다.
둔중하지만, 묵직한.
캐쉬히포의 울음이다. 그걸 들은 두 놈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저격수가 어지간히 신경 쓰일 터다.
사수는 나와 꽤 거리를 두고 이동했기에 이쪽 상황까진 알 수 없겠지.
아니, 날 철석같이 믿는 건가.
아무리 내가 말했다지만, 이 여우를 그냥 놔두고 간 것도 그렇고.
믿음이라.
꽤 상큼한 기분이다. 상대방이 날 그리 믿어 준다니.
이 둘에게도 상큼한 건 마찬가지다.
지친 척 사기를 치는데, 이리 쉽게 걸려들어 주니.
지나가다가 도를 아냐고 물으면, 모르지만 알아가고 싶다고 할 놈들이 아닌가.
“어디서 온 거냐?”
눈을 내리깔고 어떻게든 호흡을 조절하려는 것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 와중에 물으니, 안심한 놈이 입을 열었다.
“프로메테우스…….”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퉁-
캐쉬히포의 격발음이 아까보다 훨씬 가깝게 들렸고.
펑! 하고 후위에 있던 놈의 머리가 터졌다.
뇌수와 피, 뼈가 사방에 흩뿌려진다. 목 일부가 찢겨 터지고 그 아래만 남았다.
터진 턱 일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턱에 붙은 치아는 피와 먼지에 절여져 금세 갈색의 덩어리로 변했다.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치솟았지만.
내 타고난 육체는 그 모든 거부 반응을 단숨에 잠재웠다.
“……미친!”
말과 동시에 전위를 맡은 놈이 오른 옆구리에 소총 개머리판을 끼워 겨누고, 왼손바닥을 뻗었다.
사격 자세치고는 엉망이지만.
상대가 초능 특수종, 그것도 염동력자라면 훌륭한 스탠스였다.
왜 거리를 좁히나 했더니.
오른 옆구리에 소총을 끼고도 맞출 사거리가 필요했고.
동시에 염동력이 최대한으로 발휘할 거리도 필요했으니.
놈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으리라.
묵직한 압력이 어깨를 눌렀다.
누군가가 양팔과 다리를 잡은 것 같았다.
다만, 이게 의미가 있으려면 이 무형의 염동력이 최소한 아까 여우만큼은 돼야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염동력자가 얼마나 될까.
적어도 눈앞의 이 친구는 아니었다.
투두두두!
소총의 총구가 불을 뿜는 순간, 난 피격 범위를 벗어나 놈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아까 여우가 땅을 차고 들이대는 걸 몇 번이고 봤다.
그걸 따라 하지 못하면 내가 유광익이 아니다.
허벅지 근육과 종아리 근육에 힘을 응축.
동시에 무릎 관절에 힘을 부하한다. 보통 변신족이라면 관절을 박살 내는 무식한 짓이지만.
아까 여우 놈은 뼈 성형 능력을 이용, 여기서 관절을 강화했고.
난 불멸자의 육신을 가졌으니, 무릎 인대에 이 정도 충격은 무시해도 좋다.
뭐, 한두 번에 무릎 인대가 작살나는 기술도 아니고.
주변 시야가 흐릿해질 정도로 몸이 앞으로 날아가는 경험과 함께.
상대의 목을 한 손으로 쥐고 비틀어 내쳤다.
빡.
머리를 바닥에 찧은 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하기에 발로 놈의 머리를 눌렀다.
“수작 부리면 터트린다.”
실제로 사람 머리를 발로 밟아 터트리라고 하면, 그걸 시킨 사람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겠지만.
지금 막 후위의 동료가 죽고.
믿었던 혼혈 실험체가 바닥에 널브러진 판이다.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 이제 상황은 정리됐고.
어느새 사수가 뒤에서 저벅저벅 걸으며 다가오는 중이었다.
뭐라 말을 하려는데.
“발, 라두, 히나…….”
내 발바닥 팩을 받던 놈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음?”
내 발이 너무 포근해서 잠든 거니? 그래서 잠꼬대를 하는 거야?
무슨 상황인가 싶은 순간, 사수가 토카레프를 꺼내 놈의 머리를 겨눴다.
정확히는 내 발등을.
“잠!”
말을 끝맺을 틈도 없었다.
사수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나도 거침없이 발을 뺐다.
발을 빼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발등에 구멍이 날 뻔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놈의 머리에 구멍을 확인한 사수가 말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자폭 주문이다.”
내 머릿속에 테러 집단 프로테우스의 정보가 떠올랐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온 신이 되리라.
일반종을 전부 특수종으로 개조시켜,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해 주겠다는 미친 테러 단체다.
근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일반종을 특수종으로 만드는 것 자체도 무리일뿐더러.
된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를 어떻게 감당한다는 건가.
과학의 발달은 테러로 앞당길 순 없다.
그러므로 일반종을 특수종으로 만드는 실험은 그들의 염원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염원을 이루길 기다리며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더 쾌적한 사회가 될 거라는 취지 아래, 현 인류 숫자를 십 분의 일로 줄이겠다는 거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미친 과학자를 옹호하는 테러 집단이니 멀쩡한 놈들일 리 없지만.
이건 미쳐도 제대로 미쳤다.
거기에 자살 테러도 곧잘 하니, 이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발등을 쏠 뻔했잖습니까.”
그래, 급한 건 알겠지만.
사수가 쏘지 않았어도 목을 밟아 줄 생각이었다.
말을 하는 거로 수작을 부리는 거면 말을 못 하게 하면 되니까.
그런데 대뜸 총질해서 발등에 구멍이 날 뻔하지 않았나.
사수가 지나치며 말했다.
“믿었다.”
“……제가 발등을 잽싸게 피한다는 걸요?”
믿었다기보다는 못 피해도 그만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도, 이것도.”
말하며 사수가 여우 변신족을 가리켰다.
그래. 안 그래도, 나한테 이 상황을 맡기고 움직이는 걸 보고 그리 생각하긴 했지.
어느새 자신의 등 뒤를 맡길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 건가.
아까도 그랬지만, 새삼 상큼한 기분이다.
이 상황을 쭉 지켜본 여우 변신족은 어느새 본래 인간으로 변해 헐떡이고 있었다.
무리한 변신, 본능에 충실했기에 조절하지 못한 식욕.
칼로리 소모로 인해 볼이 홀쭉해져 기아가 된 놈이다.
“괜찮니?”
내가 물으며 다가가자.
“먹을 걸 좀 줘. 안 되면 네 종아리라도. 냄새나도 꾹 참고 먹을게.”
이 새끼는 진짜 누가 뇌에 못질이라도 했나.
말하는 게 왜 이 모양인가.
“아, 그럼 내가 너한테 ‘옜다, 맛은 없겠지만 내 종아리 살을 잘라 주마’ 이럴 것 같아?”
“배고파, 배고프단 말이야.”
뇌에 못 질을 한 상태로 자폭 주문 따위를 읊을 순 없을 것이다.
난 놈의 머리에 못질 대신 주먹질을 해 줬다.
꽝.
두개골을 부수는 괴력을 낮춰 적절하게 안배한 힘은 놈을 꿈나라로 떠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기절시킨 뒤 물었다.
“전장은요?”
“끝.”
적군이 놓고 간 총을 들어 스코프로 전장을 확인했다.
쌍안경은 싸우다가 부서졌다.
이걸 나보고 변상하라고는 안 하겠지.
어디까지나 업무 중 손실이니.
스코프로 전장을 보니, 어느새 적군은 물러났고.
휙휙 둘러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안 보였다.
혹시나 해 기대를 품고 물었다.
“설마 팀장님이 당했습니까?”
“아니.”
역시는 역시다. 다시 스코프를 들고 보니, 한창 난리 난 전장 한쪽에서 꾸물거리는 게 보였다.
우리의 타깃이자, 본대의 경호로 보이는 은빛 박스 사이였다.
“어?”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다행이었다.
만약 본대 사이에서 놀란 티를 냈다면 당장 팀장이 하는 짓을 모두에게 알리는 꼴이었을 테니.
저 양반, 상자 하나 뜯더니 뭔가를 잽싸게 챙겨 주머니에 넣는다.
“저래도 돼요?”
그걸 보고 물으니.
“안 될 건 뭐야.”
사수가 답했다. 퍽 어울리지 않는 답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사수도 그리 준법정신이 투철한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뜸 상대 머리를 터트리는 취미가 정상 범주에 들어갈 리도 없고.
어쨌든 우리 일은 끝났다.
여기서 본래 계획대로 축능석을 훔칠 생각으로 다가가면 예민한 불멸특수대 인간들이 아군이고 뭐고 간에 머리에 총질해대겠지.
내 판단이 옳았다.
“우리는 이대로 이탈한다.”
사수가 그에 맞는 명령을 내렸다.
“네.”
답하고 고개를 돌렸다.
본대는 지금 당장은 자신들을 누가 도왔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된다면 나에게 감사해야 할 거다.
“가죠.”
본래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으니.
아니,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던가.
어쨌든 갈 시간이다.
우리는 그대로 다시 게이트로 향했고.
여우도 챙기고 가는 길에 숨겨 둔 물건도 챙겼다.
그리고 묶어 둔 놈들을 확인하러 갔더니, 전부 튀었다.
“능력도 좋네.”
다리 힘줄도 자르고 꽁꽁 묶어 놨는데 어떻게 튀었을까.
“용병들은 재주가 좋아.”
사수가 말했다.
용병, 프리랜서, 돈 받고 일하는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회사에 소속되기도 하지만, 현 세상에서는 작은 사무실이나 회사도 보통 용병 취급을 한다.
PMC, 민간 군사 기업도 마찬가지고.
화림처럼 국가의 비호를 받는 자회사가 아닌 이상은, 전부 용병인 셈이다.
그렇게 게이트로 들어서니.
“너! 불멸 새끼 너!”
발화 초능 특수종을 자랑으로 삼는 빨간 대가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타깃 확보 후 복귀 중, 협회의 요청대로 즉각 복귀하겠음.”
귀찮아서 앞뒤 다 자르고 말하자.
“뭐? 요청대로 복귀? 시발. 이게 장난하나.”
놈이 콧김을 푹푹 뿜었다.
우겨서 게이트 들어온 지 나흘 만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요청이 나흘 전이었다는 말이다.
게이트도 개판이었다.
본대를 습격한 놈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잠입으로 넘어올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그들은 게이트를 습격했다.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거 꽤 큰일 아닌가.
본래 화이트홀 쪽은 암묵적으로 안 건드리는 거 아니었나.
“시이발, 다 죽여 버린다.”
불꽃돌이가 흥분했다.
“아서라.”
난 놈을 위해 말렸다. 형이 딱 보니까 사이즈 나오는데.
넌 지금 내가 기절시킨 놈 깨워서 풀어도 5초 컷이다.
여우의 위장으로 들어가 영양분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냥 있는 거다.
“정식 업무로 온 겁니다. 막으시면 무력행사하겠습니다.”
사수가 나섰다.
난 타깃과 짐을 실은 수레를 끌고 있으니, 나서기 뭐하기도 했고.
“말도…….”
“우리는 불멸특수대 요원입니다. 항의하고 싶다면 정식 절차를 밟으십시오.”
와, 씨. 칼 같다.
적당히 어울려 주는 나와는 달랐다.
불꽃돌이는 무력행사를 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사수는 놈을 제압하겠지.
그다음에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가 불리할 일은 없다.
왜냐고?
축능석이 털릴 뻔한 걸, 불멸특수대가 막았으니까.
그 본대가 뒤에서 오는 중이니.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 봤자, 그들과 마주하는 게 전부일 텐데.
“거기까지.”
다른 작자가 나서서 막았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머리를 깔끔하게 8:2 가르마로 빗어넘긴 남자였다.
“가시죠. 이 건은 나중에 정식으로 문제 삼겠습니다.”
지금 상황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눈 밑이 검다.
피로한 기색을 보니, 현 상황이 일어나고 수습하기 위해 온 사이오닉 협회 직원이겠거니 했다.
“네, 그럼.”
난 수레를 끌고 걸었다.
“그 수레는 뭡니까?”
책임자가 물었다.
사수를 볼 필요도 없이 답했다.
시발 팀장이 미리 넣어 둔 거다. 본래는 축능석을 담아갈 용도지만.
지금은 전리품을 담았다.
적당히 얇은 철판으로 안이 보이지 않는 이동 수레, 짐 옮기는 용도의 카트다.
“증거물입니다.”
핑계는 출발하기 전에 준비했기에 거침없이 답했다.
본래는 여길 나오는 것도 몇 가지 작전이 안배되어 있는데.
이건 습격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오히려 나오는 일이 수월해져 버렸다.
그렇게 나와 사수는 게이트를 도로 빠져나왔다.
* * *
중봉은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싸움이든 뭐든 말이다.
“다음에 보자.”
“저 친구도 다음에는 소개해 주고.”
노필두가 꼬랑지를 말기에 답해 주고.
“그래.”
까득.
인간벌목꾼이 도끼를 세차게 후리고 튄다. 중봉은 마지막 일격에 당한 것처럼 몸을 날려 축능석 상자로 몸을 던졌다.
난장판인 상황을 이용해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모든 상황을 정리한 뒤 돌아가는 길이었다.
“누구였습니까?”
경호팀장이 물었다.
그도 불멸자다. 육감이 있다.
무전을 들었다면 그들이 중봉과 아는 사이였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타이밍은 중요하다.
중봉은 그래서 답했다.
“김정아, 유광익.”
본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칭찬도 하는 법이다.
더구나 본대 미션을 구원했으니.
‘실적은 챙겨야지.’
우연이라고 해도 그 우연이 일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면 그건 곧 이로운 일이다.
더구나 경호팀장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럴 위인이다.
지친 얼굴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고로, 보고서에 김정아와 유광익 이름 두 개가 올라가는 건 당연했다.
중봉은 생각했다.
역시 양손은 서로 하는 일을 알아야 맛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