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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53화 (53/488)

53. 사기네

상대는 저격 포인트를 없애기 위해 달랑 요 새끼 하나만 보냈다.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고.

그만큼 살벌한 칼날이란 의미겠지.

수박을 자르는데, 플라스틱 칼을 쓰는 머저리는 없다.

상대는 이 순간을 위해 많은 걸 준비했고.

이 정도로 철저한 작자가 일을 허투루 진행할 리 없었다.

하릴없이 농담하는 거에 목숨을 걸진 않는다. 아무리 내가 위트에 진심을 담아도 이 순간에 그러진 않지.

그런데도 난 여우와 농담 따먹기 비슷한 걸 했다.

왜겠나.

시간 끌기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달려드는 지금까지.

난 놈이 가진 무기를 파악했다.

훅.

두루미를 증오하는 여우의 몸이 푹 꺼지듯 사라진다. 외치고 달려드는 순간, 잔상이 흐릿하게 남았다.

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카가각!

강화 플라스틱과 합성 유리로 만들어진 페이스 가드에 세 줄기 긴 파인 자국이 남았다.

기형적으로 자란 세 줄기 손톱이 만든 작품이었다.

오른손 검지, 중지, 약지.

땅과 수평으로 휘두른 손이 이번에는 위에서 밑으로 내리꽂혔다.

숨 좀 쉬자, 새끼야.

땅을 박차며 아예 뒤로 굴렀다.

콱!

땅을 찍는 소리가 들렸다.

뒤로 구르고 앞을 보니.

쑥하고 황무지 바닥에서 손톱을 뽑아내는 놈이 보였다.

“크르르릉.”

이성을 달나라 로켓에 태워 보낸 새끼의 팔꿈치에서 뼈가 뿌직 솟더니 칼날이 되고.

왼손에도 손톱이 쑥- 하고 자랐다.

오른손에는 손톱이 세 개, 왼손에는 손톱이 두 개, 엄지랑 검지다.

“좌우 균형은 맞냐?”

정중하게 물었다.

“크르으”

흐르는 침이 답을 대신하고.

그 뒤, 피부를 찌릿찌릿 찌르는 살기가 놈의 의지를 보여 줬다.

감각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넘어, 몸을 옥죄는 살기다.

쥐가 고양이를 보고 옴짝달싹 못 하듯.

야생의 사자를 본 토끼의 몸이 굳는 것처럼.

그런 본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살기다.

다만 사납고, 포악하며, 거칠다.

정제되진 않았다는 거다.

변신족의 살기는 곧 상대의 의지를 갉아먹는 무형의 그물이자, 무기다.

변신족 비전 ‘야생의 살기’가 바로 그 기운을 정제해서 쓰는 건데.

이 새끼는 이걸 마구잡이로 뿌렸다.

그러니까, 그물치고는 성기고 칼치고는 무디다.

난 이미 이런 종류의 압박에 익숙했다. 그것도 정제되고 압축된 걸 듬뿍 받아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여우 새끼가 뿌리는 살기가 치명적일 리 없었다.

펑!

놈이 다시 땅을 박찼다.

막강한 근력이 만들어 낸 돌진은 직선 운동이다.

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사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더없이 매끄럽다. 저기에 걸렸으면 팔 한쪽은 날아갔을 것 같다.

방검복 따위로 막을 수준이 아닌데.

“같이 한다.”

어느새 옆으로 붙은 사수가 말했다.

“아니요.”

난 거절했다.

선배는 비약 인간이고, 지금 먹은 비약으로는 여우를 상대하기 나쁘다.

고로, 이건 나 혼자 막는 게 맞다.

“사수는 전장 유지.”

팀장이 고군분투하는 전장 상황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상황은 분업이 필요했다.

사수는 전장 지원을 책임지고.

“크르.”

난 저 두루미 싫어하는 여우를 책임지고.

농담 몇 마디 섞인 대화, 좌우 대칭을 이루지 못하는 손톱, 볼품없는 털갈이까지.

그런데도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했다.

그 모든 게 상대의 상태를 알게 했다.

변신족과 초능 특수종의 혼혈.

금기된 방법으로 만든 실험체.

고로, 적의 지휘관이 이놈 하나만 보낼 만도 하다.

단연코 말하는데 이 정도 상대라면 어지간한 분대 병력도 어쩌지 못할 테니까.

탕! 탕!

잠깐 멈춘 틈에 권총을 꺼내 머리에 한 발, 몸통에 한 발을 쐈다.

여우는 총구를 보자마자 몸을 날려 총탄의 궤적을 예상하고 피했다.

그걸 예상해서 세 번째 탄환은 놈의 이동 경로에 쐈다.

팅.

세 번째 탄환은 놈의 팔꿈치 칼날에 맞고 튕겼다.

“크르으!”

이 새끼, 화가 나면 침을 더 흘리는 스타일인가 보다.

아까보다 흐르는 침이 더 걸쭉해졌다.

아니면 변신하면 더 허기를 느끼는 걸까.

그게 확률이 높겠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변신하면 평소에 쓰는 칼로리보다 몇 배는 더 소모하게 된다고.

고로 그건 급격한 허기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므로 변신하기 전에는 꼭 고칼로리 에너지를 응축하는 게 중요하다.

놈에게는 비축 과정이 없었다.

변신하고 잡아먹을 생각이었나?

흐르는 침과 더불어 놈의 다리가 길게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고속 이동이다.

침이 길게 이어지며 후드득 뒤로 날아갔다. 인지한 순간 권총을 든 팔 위아래로 예기가 느껴졌고.

난 급히 팔을 뒤로 당겼다.

스컥.

반응이 조금 늦었다.

권총 슬라이더 부분부터 앞까지 반이 잘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손가락도 날아갔겠는데.

“혼자서…….”

“합니다.”

사수가 끼어드는 걸 차단했다. 한가로이 얘기할 틈도 없었다.

“막는 동안 전장이나 맡아 줘요. 여기 신경 쓰지 말고.”

말과 동시에 놈이 주먹을 다시 뻗었다.

팡!

고개를 꺾어 피하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귀 아파, 새캬.

난 처음으로 반격했다.

발로 놈의 정강이를 걷어차서 균형을 흔들려 했는데.

딱.

딱?

발끝에 걸리는 둔중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 피하고.

뒤로 훌쩍 뛰었다.

내가 있던 자리로 여우가 왼 손톱을 아래에서 위로 긋는 모습이 보였다.

야, 그 각도로 맞았으면 순간 고자 될 뻔했다.

물론 재생했겠지만, 잠깐이라도 고자가 되긴 싫다고.

“손버릇 보소.”

버릇처럼 말하고 내가 때린 정강이를 보자, 어느새 하얀 키틴질 같은 게 다리 위를 덮은 게 보였다.

곤충의 외골격 같았다.

손톱 위를 덮은 물집처럼 생긴 하얀 키틴질도 보인다. 현무암의 구멍 부분을 하얗게 칠해서 손톱 위에 붙여 둔 것 같다.

너 인마, 네일 아트 센스가 최악이야.

하얀 키틴질이 실시간으로 자라서 전신을 덮는다. 얼굴을 제외한 부분이 곧 갑옷처럼 놈의 전신을 채웠다.

초능력 중에 ‘쉐입’이라는 기술이 있다.

뼈는 무기질인 칼슘의 인, 비타민과 단백질, 수분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 뼈 성형자 놈들은 그 구성 요소의 일부가 부족하다. 대신, 그 부족한 구성 요소를 마음대로 조정해서 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염동력자가 능력을 깨우칠 때부터 곧바로 10kg짜리 아령을 들 수 없는 것처럼.

이들도 재능과 훈련을 통해 쓸 수 있는 능력의 용량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사기네.”

내 한마디는 충분히 수용될 말이었다.

꾸드드득.

하얀 키틴질 형태가 그대로 전신을 덮어.

곧 외골격 여우 괴물이 탄생했다.

사수는 아까 내 말에 거리를 벌렸다.

아예 작정하고 전장 지원을 하기로 마음먹은 거로 보였다.

저기 사수, 아무리 내가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더 물어볼 수 있지 않나요.

삼세 번이란 말도 있는데.

어떻게 두 번만 물어보냐고.

서운합니다.

하여간 서운한 건 서운한 거고.

내 판단이 옳았기에 사수도 따른 거다.

저격수 옆에 통신병은 호위의 역할도 겸한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외골격 여우 괴물을 조지는 게 맞다.

“크으.”

여우의 주둥이에서 흐르는 침이 뼈 갑옷 위로 흘렀다.

참으로 걸쭉했다.

“턱에 빵꾸가 났나.”

이번에는 내 쪽에서 달렸다.

허벅지 근육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변신족은 변하는 순간, 평소에 몇 배는 넘는 근력을 보인다.

아까의 빈약한 육체가 지금 말도 안 되는 괴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달려들자, 놈이 손톱을 세웠다.

엉망진창 네일 아트 찌르기다.

아래에서 위로 찔리면 내장 몇 개쯤에 구멍이 생길 터.

뻗는 왼발로 바닥을 박차고 몸을 틀었다.

슉 하고 날아든 손톱이 내 배가 있던 자리를 찔렀다.

방검방탄복 옆구리가 걸려 찢겨 터졌다.

무시한 채, 왼손으로 놈의 오른 팔꿈치에 솟은 뼈 칼을 잡아 밀었다.

본 쉐입 특수종은 특유의 뼈 구성물질 덕분에 몸이 가볍다.

체중이 낮다는 거다.

고로 이놈도 덩치에 비해서는 가벼웠다.

미니까 밀린다.

균형을 잃은 놈의 측면을 잡은 뒤다.

“흡.”

호흡을 짧게 끊어 삼키고.

놈의 어깨를 잡고 당긴다.

그와 동시에 오른 무릎을 세웠다.

꽝!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그만큼 강력한 무릎 찍기였다.

“일단 한 방.”

말하며 물러나자, 놈의 옆구리에 훤히 뚫린 구멍이 보였다.

뼈 갑옷이 참 튼튼해 보이긴 한다만.

나도 힘 좀 쓰거든.

다시 달려들기에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불멸자의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하고.

그 놀라운 감각은 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난 그걸 팀장에게서 훔쳐 배웠다.

하나, 기척 죽이기.

기습에 특화된 기술이지만, 능숙해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 존재감이 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난 측면에 돌아서는 순간, 내 모든 기척을 죽였다.

여우의 반응이 느린 건 당연했다.

언어 능력조차 상실한 채, 침만 질질 흘리는 짐승.

본능이 우선해서 움직인다는 게 뻔히 보였다.

둘, 기척 속이기.

주먹을 뻗는 몸짓으로 상대의 모든 걸 집중하게 한 뒤, 발을 건다.

쉽게 말하면 페인팅 기술이지만.

팀장은 이걸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난 그걸 봤고 겪었고 맞으면서 배웠기에 재현했다.

“크앙!”

여우가 사납게 울고 뼈로 만든 팔꿈치 칼날을 좌우로 그었다.

승! 승!

저기 걸리면 회 떠지는 건 순식간이겠다.

난 오른쪽으로 향할 것처럼 무게 중심을 옮기고 기척을 뿌렸다.

본능만 남은 여우가 몸을 튕긴다. 그리고 허공에 손톱을 찌른다.

퍽.

그걸 본 내 왼손 잽이 놈의 어깨를 쳤다.

원 다음에는 투.

왼손을 당기고, 뒤로 뻗은 오른 발목을 꺾으며 종아리, 허리, 어깨까지 힘을 전달.

힘은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그 효율성은 달라진다.

곧 기술이 실린 완력이란 이런 것이었다.

꽝!

두 번째 폭음.

내 스트레이트 펀치가 놈의 옆구리를 때렸고.

주먹 끝에 선연한 감각이 남았다.

우직, 뼈 부러지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먹혔고, 부쉈다.

불멸자의 세밀한 감각이 내가 한 일의 결과를 알게 한다. 갈비뼈 세 개, 주먹 한 방으로 만든 일이다.

“우!”

외마디 비명, 본능만 남은 여우의 외침이었다.

맞은 자리를 부여잡고 옆으로 구른다.

“후.”

숨을 고른 내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몸을 웅크린 놈이 꿈틀대더니 머리를 숙이고 꼼지락댔다.

거리를 좁혔다.

놈이 머리를 치켜들고 손톱을 위로 뻗는다.

난 팀장에게 배운 세 번째 기술을 발현했다.

감각 집중.

오롯이 하나의 개체에 집중함으로써, 그 개체의 손짓, 발짓, 눈짓만으로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거다.

고로 난 놈이 뻗는 손톱을 예측했고.

뻗은 손톱에 맞는 대신 스웨이로 피한 다음, 곧바로 좌우 훅을 날렸다.

꽝! 꽝!

체중이 실린 펀치 두 방이 놈의 팔을 두른 뼈 갑옷을 가루로 만들었다.

황무지의 노란 먼지 사이로 흰 가루가 섞여 흩어졌다.

난 곧바로 발바닥으로 놈의 팔꿈치 칼날을 밟고 왼발로 팔뚝을 후렸다.

콰드득!

뼈 칼날도 부수고.

이어서 놈의 전신에 있는 뼈 갑옷에 주먹질했다.

부수고 또 부순다.

쾅! 쾅! 쾅!

부러지고 깨지고 박살 난다.

조금 전까지 뼈 갑옷이었던 무언가는 하얀 조각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크르으!”

지치지도 않고 침을 흘리던 놈이 발을 휘둘렀다.

난 그걸 제자리에서 잡아챘다.

턱!

“문제 하나.”

“크르!”

“하나가 세 배가 된다고 해서 넷을 이길 수 있을까?”

대화와 전투의 도중에 알아낸 것 하나.

변신족은 변신하면 근력과 순발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그럼, 본래 근력이 우월한 개체와 변신해서 근력이 늘어난 개체가 붙는다는 가정하에.

꼭 변신한 개체가 더 우월한 근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가.

난 놈의 팔을 잡아 꺾었다.

우드득.

관절이 역으로 뒤틀리자, 여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꾸우우우우!”

공포와 고통이 뒤섞인 울음이다.

놈의 팔을 꺾으며 새삼 어머니에게 감사했다.

이 타고난 몸뚱이를 보라.

물론 그동안 근력 훈련을 정말 끊임없이 해서 만든 결과지만.

변신족 과외 선생이 말했듯.

하드웨어 자체가 사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이 맞았다.

난 혼혈 변신족의 변신체보다 힘이 더 셌다.

고로, 큰 기대를 받고 온 우리 금기로 만든 실험체 변신족을 조질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속사정이고, 겉으로는 손톱에 적절하게 베여서 피가 흘렀다.

페이스 가드 앞부분의 파인 자국 때문에 보이지 않아, 헬멧도 벗은 상태였다.

방검방탄복 부분 부분이 찢겨 간신히 이긴 모습이리라.

객관적인 내 모습을 인지한 순간이다. 여우는 행동불능이고.

본능에 가까운 반응으로 난 행동에 나섰다.

“후, 지쳤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척, 주저앉으니.

곧 인기척이 느껴졌고.

“저 새끼 지쳤다.”

“처리한다.”

지켜보던 두 놈이 나섰다.

오냐, 그냥 튀면 어쩌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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