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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52화 (52/488)

52. 두루미보다 못한 새끼

난 상대적으로 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적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그러니까 너무 당연한 것들.

자연스레 연상되는 적의 대응 태도 같은 거 말이다.

이동하는 저격 포대, 비약을 먹은 사수의 특기였다.

다만, 움직인다고 해서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곳이 도시의 빌딩 숲이라면 그 누가 쉽게 이런 사수를 잡겠나.

하지만 여긴 이계다.

인베이더랑 만나서 하이파이브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 주변 일대를 벗어날 수가 없다.

결론, 사수와 내가 갈 곳은 정해진 저격 포인트뿐이었고, 적이 세상 다시 없는 바보가 아니라면.

위치가 특정된 저격수를 노리는 건 당연했다.

“일등 신랑감 얼굴 좀 보자.”

무전에서 마지막 통신이 들렸고.

곧 지지직거리며 통신이 두절됨을 알렸다.

열 받아서 무전기를 부순 거로 보였다.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여자다.

어머니, 이 여자는 안 되겠습니다. 신붓감으로는 영 아닙니다.

그렇게 세 번째 포인트에 자리 잡은 직후다.

“옵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는 우직한 놈 하나가 다가오는 게 들렸고 곧 보였다.

예상되는 루트, 상대는 저격 포인트에서 역순으로 우리를 쫓았다.

잡히는 건 시간의 문제였다. 적어도 우리가 여기서 지원 사격을 계속한다면 말이다.

문제라면 사수의 저격 능력 덕분에 전장 상황이 팽팽하다는 거였다.

팽팽하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에서 저격수가 잡히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말이다.

그럼 어쩐다.

상대를 빨리 처리해서 다시 하던 일 하면 된다.

“너희 너무 빨라.”

상대를 바라봤다. 내 예상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헐떡이는 호흡, 축 늘어진 어깨와 빈약한 팔다리가 보였다.

난 그의 뒤와 주변을 살폈다.

멀리서 다가오는 두 개의 기척이 느껴지다가 멈췄다.

뭐야, 왜 안 와.

이쪽은 둘이고, 저들이 준비한 저격 포인트의 전력을 전부 제압했다.

그럼 이쪽을 처리하려면 병력 일부가 움직여야 하지 않나.

그러니까 최소 다섯에서 열은 와야지.

그럼 본대 쪽 사정도 좀 나아졌을 텐데.

그런데 고작 셋? 그것도 둘은 덤빌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이냐.

눈앞에 못생긴 해골을 닮은 친구 하나로 이쪽 일은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

혹 기척을 숨긴 놈들이 있을까.

“혼자야?”

내가 물으니.

“아, 혼자야. 그렇지. 난 혼자다. 싱글이기도 하고.”

뭐냐, 이 맥빠진 대답은.

“그, 저기 옆에 여자랑 무슨 사이야?”

산뜻하게 미친놈이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사수의 전신을 훑고 나에게 묻는다.

너 지금 볼 빨개진 거 진짜냐?

반사적으로 내가 답했다.

“다리로 허리를 끌어안은 사이.”

거짓말은 아니다. 이계에 막 진입했을 때, 사수가 내 허리를 다리로 안았다.

까득.

“감히.”

놈이 말했다.

여기서 ‘감히’가 나오는 이유가 뭐냐.

나 진짜 진지하게 궁금한데.

“사실 일 때문에 한 번 업었어.”

솔직하게 고백하자.

“……별일은 없었고?”

“응. 신께 맹세코.”

“진짜?”

“아니, 사실은 그렇고 그런 사이야.”

놀려 봤다.

“방금 신께 맹세한다고…….”

어눌하다. 말투가 몹시 어눌했다. 이거 상태가 왜 이래.

“나 무신론자야.”

답하자, 놈이 눈알을 굴렸고 곧 흰자가 번뜩였다.

희번덕거린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살기가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온다.

분노 조절 장애냐?

슬쩍 고개를 돌려 사수를 봤다.

비약의 효과 때문에 사수의 얼굴에는 적당한 활기가 느껴졌다.

그 덕분에 평소의 사수와 비교하면 요염함이 더해져 더없이 매력적이긴 하다만.

처음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할 정도란 말인가.

에이, 그건 아니지.

일단 내 이상형도 아니지만, 순수하게 외모와 풍기는 기색만 본다고 해도 사수보다 더한 마력을 지닌 애들이 널렸다.

물론 불멸자 한정이지만.

날고 기는 순혈 중에는 보는 순간 사람을 매혹하게 하는 그런 외모 자체가 무기인 불멸자도 꽤 된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난 사수의 과거를 모르니.

“전남친인가요?”

“처음 봐.”

“혹시 첫눈에 서로 반했다거나.”

“미친 거야?”

숨도 안 쉬고 답이 나왔다. 캐쉬히포를 겨누고 스코프에는 눈을 뗀 채다. 완벽한 전투태세다.

네, 되지도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야, 음. 이런 말 건네서 미안한데, 자기 타입이 아니라 하신다.”

“넌 끼어들지 마라.”

놈이 혀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저거 내가 먹을 거니까.”

와, 시발,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야, 표현이 좀.”

내가 중재에 나섰지만, 턱도 없었다.

“비키라고.”

놈은 말하면서 내달렸다. 팍 하고 땅을 박찬 순간, 몸이 흐릿해졌다.

이렇다 할 준비 자세도 없이 달려든 거다.

주먹, 무릎, 팔꿈치.

놈의 몸짓에서 의도를 읽었다.

오른 주먹이 처음이었다.

난 왼손을 들어 놈의 주먹을 밖으로 쳐 내고, 무릎을 세우기에 발등을 밟아 원천 봉쇄했다.

마지막은 반대쪽 팔꿈치.

이건 손바닥으로 받으려 했는데 이게 노림수였다.

우드득!

날아오는 팔꿈치 끝에서 뼈가 자랐다.

비유가 아니라, 뼈가 삐뚤빼뚤한 모양으로 튀어나와 칼날이 되어 내 목을 그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뒤집어 오른 팔뚝으로 막았다.

까드드득!

방검복의 반이 잘렸다. 난 초인적인 반사신경으로 잘리는 순간, 뒤로 몸을 날렸고.

덕분에 방검방탄복만 너덜너덜해졌다.

“야, 여자한테 고백을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내가 말했다. 놈은 더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알은 어느새 흰자만 보이더니.

“크르르르르!”

짐승처럼 울었다. 그러더니 전신에서 우두둑, 우두둑. 뼈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나와.”

사수가 뒤에서 말하고 캐쉬히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퉁!

코앞에서 50구경 철갑탄이 놈을 노렸다.

놈의 대응은 단순했다.

“끄으아아아!”

비명과 함께 온몸을 비틀면서도 총구 방향을 슬쩍 보고 옆으로 뛰는 거로 피했다.

놀라운 반응 속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불멸특수대 중에서 몸 좀 쓴다는 놈들 사이에 넣어 놔도 한 손에 꼽힐 정도다.

태어나서 이런 새끼는 또 처음 보네.

“나와요.”

사수의 근접 격투 능력으로는 무리다.

회사에서 보는 사수의 격투 능력은 A급, 그리고 사격 능력은 B급.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비약은 그녀의 능력을 가변하는 열쇠.

지금 상태로는 이런 괴물을 상대할 순 없다.

탄을 피하자마자 놈이 달려들었다.

코끝에 노린내가 확 풍겼다.

달려드는 놈이 위에서 밑으로 손을 긋는다. 난 품으로 파고들며 놈의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꽝!

나도 어지간히 힘을 썼다.

맞은 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놈이 사수만 노리며 달려들기에 빈틈을 파고 때렸는데.

뒤로 날아가는가 싶더니 넘어지기는커녕, 퉁퉁 바닥을 몇 번 발로 차고 몸의 균형을 회복하고 두 발로 섰다.

“크르.”

배 한 번 쓰다듬고 그 기분 나쁘다고 으르렁거리는 거로 끝?

이걸 맞고 멀쩡하다고?

완력 강화 특수종도 원 펀치 케이오였는데?

“……크르, 나와, 넌, 후우시이.”

반쯤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완전 미친놈이었다.

“왜 갑자기 혼자 슬로비디오야.”

알아듣기 더럽게 어렵게.

우두둑거리던 뼈의 맞물리는 소리가 사라지자, 놈의 체구가 어느새 나보다 커졌다.

전신에 실시간으로 털이 자라는 것도 보였다.

난 상대의 정체를 알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어지간한 불멸자보다 뛰어난 운동 신경에 순발력이라면 누구겠나.

변신족이다.

털이 숭숭 자라다 말고 밑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털갈이하냐? 속으로만 물었다.

변한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주둥이가 길어지더니 개의 그것처럼 변했다.

다만, 치열이 맞지 않아서 뒤틀렸고, 그 사이로 침이 줄줄 흘렀다.

전신을 덮은 흑갈색 털은 곳곳에 원형 탈모가 생긴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다.

덕분에 피부가 훤히 드러나 보였고, 그 피부는 얼룩덜룩한 게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였다.

배는 쏙 들어갔고, 갈비뼈는 툭 튀어나와 흉부가 두 배는 커졌다.

눈알은 흰자가 갈색으로 변하고 중앙은 까만 눈알이 됐다.

전체적으로 눈만 봐줄 만하고 나머지는 병든 개 같았다.

아니, 병들었다기보다는 미친개.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살던 집 뒤에 작은 동산이 있었는데.

거기에 꽤 유명한 미친 들개가 살았다.

어머니는 그놈도 살아 있는 거라고 안타까워했었지.

어느 날 그 개가 배가 고팠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동산에서 내려와 나한테 덤빈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개가 떠올랐다. 곳곳에 털이 빠진 눈깔이 돌아 버린 미친개.

그때 어떻게 했었더라.

난 겁먹은 대신 그렇게 말했던 거로 기억한다.

“야, 덤비면 나도 싸운다.”

변신족도 아니고 불멸자도 아니었을 때다.

그래도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았고.

그때는 몰랐었다. 왜 무섭지 않았는지.

“불쌍한 개 때리지 마라. 그리고 너. 그만 가렴.”

어머니가 나타나 딱 한 번 노려보는 거로 상황이 끝났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왜 무섭지 않았는지 알고 있다.

어머니는 변신족, 그것도 추측하기로는 꽤 살벌한 혈통이신 듯하다.

그런 어머니의 훈육을 온몸으로 받으며 자란 나다.

아무리 사랑의 매라고 해도 매는 매인 법 아니겠나.

자잘하게 섞인 살기를 견디며 살아온 세월이 이십일 년 되시겠다.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둑, 우둑.

나도 목에서 뼈 맞물리는 소리를 들려줬다.

“나아와아, 아.”

말은 왜 느리게 하나 했더니, 구강 구조가 바뀌어서 발음이 어려운 것 같았다.

모든 변신족이 이럴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건 왜 이러나.

혼혈, 실험,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동안 배운 갖가지 특수종 세계의 상식과 단어가 떠올랐다.

“빌어먹을 프로메테우스.”

사수가 뒤에서 드물게 감정을 보였다. 분노가 섞인 그 한마디.

테러 집단 프로메테우스.

당연히 놈들은 준법정신이 투철하진 않을 것이다.

불법으로 자행되는 실험도 곧잘 했겠지.

그 결과가 눈앞에 있는 놈이다.

“크르르륵.”

“이름이 뭐냐?”

물었는데 답이 없다. 침만 미친 듯이 흘릴 뿐.

홀쭉 들어간 놈의 배를 보며 내가 물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저 녀어언, 내애애 바바아.”

놈이 길게 자란 손톱으로 사수를 가리켰다.

먹겠다는 게 음, 그런 의미였냐?

진짜 고기로 먹겠다고?

아니, 섞였다.

불멸자의 예민한 감각이 놈이 멋대로 뿌리는 감정의 일부를 읽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놈이 말하지 않은 정보를 전했다.

식욕이 점철된 그런 괴물.

혼혈 변신족이자, 실패한 실험의 산물.

이성을 잃은 괴물.

“크아아앙!”

놈이 울음을 터트렸다.

괴물, 인베이더를 부르는 말과 뭐가 다를까.

놈은 인간이 만든 인베이더였다.

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다.

나도 허벅지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이성을 잃은 괴물의 움직임에 내가 반응했다.

사수를 노리며 내달린다. 난 그 틈을 다시 파고들었다.

위에서 밑으로 손톱을 내리친다.

어느새 길쭉하게 자란 손톱은 하나하나가 날카롭기 짝이 없어 보였다.

손톱이 아니라 팔뚝을 쳐 내자.

생각하는 걸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머릿속에 잡음이 끼는 기분이 들었다.

전투에 들어서자 난 집중했고 상대를 관찰했다.

손짓, 발짓, 호흡, 감정의 파편 모든 걸 정보로 판단.

그 모든 걸 종합한 순간, 팀장에게서 훔쳐 배운 불멸자의 비전이 나에게 미래의 일부를 보여 줬다.

이런 시발.

그걸 보자마자 난 자세를 바꾸려 했다.

놈의 손톱이 허공에서 방향을 튼다. 사수가 아니라 내 심장을 노린다.

시간을 쪼갠 틈에 발로 놈의 정강이를 때리고 오른팔로 가슴을 막았다.

스걱!

팔꿈치에서 뼈가 자라듯, 놈의 손톱도 길이가 변했다.

정강이를 얻어맞는 바람에 힘이 분산됐고 팔을 드는 바람에 놈의 노림수가 빗나갔다.

그런데도 놈은 히쭉 웃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저렇게 웃을 수도 있구나.

“너어어도오오 냐암냐암.”

누굴 한 끼 식사로 보는 거냐.

너덜너덜한 방검복을 찢은 손톱은 팔뚝을 갈랐다.

뼈와 신경, 근육이 잘렸다. 반이 잘려 매달려 있다.

끔찍한 통증이 뒤따라왔다.

“후우.”

아파 뒈지겠네. 적당히 통증이 나오는 감각을 유리시키고 놈을 바라봤다.

이 새끼가 머리를 쓰네.

놈의 삐죽 솟은 주둥이를 보다가 내가 물었다.

“개 아니냐?”

보통 제일 잘 알려지고 개체 수가 많은 게 웨어 울프였으니.

당연히 늑대 인간이겠거니 했는데.

조금 달랐다. 적갈색의 털과 까만 동공을 번뜩인 놈이 말했다.

“여어어우우우.”

응, 그래, 여우네.

더럽게 영악한 여우였다.

그래도 뭐.

“광익.”

사수가 날 부른다. 걱정이 느껴져서 괜히 뿌듯했다.

저 감정 없는 얼음덩어리 공주가, 아무리 비약을 먹었다지만, 날 걱정하지 않나.

“너보다는 내가 낫지, 암.”

괜히 여우한테 말하고 반쯤 잘린 팔을 왼손으로 들고 붙였다.

저쪽이 변신이라면 이쪽은 불멸.

거기에 변신의 체력을 가진 불멸이다.

불멸의 회복력은 가진 체력에 비례한다.

고로 난.

“다시 해 봐, 이 두루미보다 못한 새끼야.”

여우에게 이 정도면 심한 욕일까?

의심하면서 말한 순간.

내 오른 손가락은 이미 까닥거리며 움직이는 중이었다.

피부 위로 핑크빛 근육이 보이지만, 신경 접착 완료.

“두루우미이! 시러어!”

어, 음, 이게 먹히네?

흥분한 놈이 허공에 괴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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