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51화 (51/488)

51. 작전명 미들 픽 도그 베이비

중봉은 앞을 막은 자를 바라봤다.

아는 얼굴이었다.

“안녕? 바퀴벌레랑 돌연변이 새끼들아?”

전신에 특수 제작된 방호복을 입고 양쪽 허리에는 도끼 두 자루를 찼다.

꽤, 아니 많이 유명한 놈이었다.

인간 벌목꾼.

변신족이었고, 테러 집단 프로메테우스의 간부 중 하나였다.

“뒤에 있는 물건 놓고 물러가면 반만 죽이고 끝낼 테니까. 알아서 반은 남고, 물건 놓고 꺼져.”

자신이 대장이었다면, 그 말에 지랄이라고 답해 줬을 것이다.

반을 먼저 죽이고 나면, 나머지 반을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

상대도 진짜 일이 그렇게 진행되리라 기대도 안 할 것이다.

이건 일종의 도발이자, 현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표현의 일종이었다.

“……프로메테우스?”

자신이 알아봤다면 이 부대를 이끄는 친구도 알아봐야 정상이다.

화림에서 팀장이란 직위는 손바닥만 비빈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문제라면.

‘저 새끼는 좀.’

상대가 조금 나쁘다는 거다.

화림의 팀장이면 어지간한 곳에서도 인정받지만, 전투력만 비교하자면 S급으로 추정되는 놈이다.

물론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죽일 수는 있다.

‘고생이겠지만.’

냉정히 말하면 시간과 타이밍도 도와줘야 하고.

시간, 타이밍.

지금은 둘 다 상대에게 뺏겼다.

기세도 상대가 더 좋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이유가 뭐겠나.

소란이 일 걸 예상했지만, 저런 거물이 오는 건 예상 못 했다는 거다.

“미친놈이군.”

딱딱한 말투로 부대 책임자가 말했다.

R&D 산하 경호팀장은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포위, 전력의 열세, 머릿수의 부족.

거기에 이 미션은 처음부터 불리함을 안고 시작했다.

불멸의 특기는 누가 뭐래도 저격이다.

그런데 그 포인트를 확인하고 선점할 시간도 없이, 급히 축능석을 호위하는 임무를 시작한 거다.

회사의 판단은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빠른 임무 수행으로 습격자의 의표를 찌르자는 거였다.

경호팀장은 시간을 두자고 했으나.

분석팀은 작전 방향을 이쪽으로 잡고 책임을 위해 팀원을 배치했다.

거기에 사이오닉 협회에서도 최소한의 인원을 동원하여 빠르게 일이 처리되길 바랐다.

그들로서도 축능석에 관한 소문이 더 퍼지길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축능석이 아무리 대단해도 인간 벌목꾼이 나설 정도인가?”

현대 사회와 특수종의 세계에 영향을 줄 물건이긴 하다만.

지휘 책임자가 말하며 뒤로 손을 돌려 손가락 몇 개를 폈다.

간단한 수신호였다.

“요즘 한가한가 보지?”

경호팀장의 의도를 파악한 중봉도 말을 거들었다.

“미친 중봉이, 잘 있었나?”

인간 벌목꾼, 노필두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필두, 형 보러 왔니?”

“시발 새끼야, 내가 너보다 두 살 많아.”

“똥구멍으로 처먹은 나이는 안 쳐준다. 시방새야.”

욕설이 반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는 충분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상황 파악이 안 되지?”

“아니, 잘 되는데?”

둘의 눈이 마주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노필두와 이중봉 사이에 살벌한 기세가 오갔다.

소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작은 소란, 경호팀장에게 필요한 거였다.

“필두야, 요즘 필리핀에서 숨어 지낸다며? 한국에 용케 들어왔다?”

중봉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내가 뭐가 무서워서 숨어?”

노필두는 그런 중봉을 보고 픽 웃었다.

“형이 말했잖아. 다음에 보이면 그 대가리 따 버리겠다고.”

“이 개새끼가. 내가 두 살 많다니까?”

노필두는 가진 실력에 비해 저평가받는다. 전투력은 뛰어나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니까.

중봉은 그 점을 찔렀다.

“개새끼는 너고. 인간이랑 호형호제하는 거로 만족하고 동생 해, 새끼야.”

“크르르릉!”

흥분한 노필두가 눈을 부라린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그때, 대비하고 있는 중봉의 귀에 이질적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중봉은 적의 기습에 대비했다.

그러니까 저 참을성 없고 대가리 안 좋은 노필두가 달려들 거로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한마디에 노필두가 흥분을 가라앉혔다.

“끙.”

신음 한 번 내고 기세를 거뒀다.

“실수하시네요.”

까만 피부의 동남아 여자였다. 머리는 길게 길렀고 딱 달라붙는 방호복에 허리춤에는 마체테를 찼다.

뉴페이스였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끅!”

“끄악.”

퍽! 서걱! 쩍!

뒤쪽에서 소음이 터졌다.

“왜요? 몇 명 빠져나가면 상황이 달라질 것 같나요?”

발음 좋네, 중봉은 뉴페이스의 한국어 발음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발음뿐 아니라 능력도 좋았다.

작은 소란을 통해 경호팀장은 불멸 몇을 후방에서 돌렸다.

화림 생활 3년이면 완벽하진 않아도, 기척 죽이기 정도는 쓴다. 몰린 상황이니 일부 인원을 퍼트려 저격 포인트를 잡게 하려 했는데 완벽하게 간파당했다.

“포기하세요.”

그녀가 말하고 뒤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뒤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무전기를 들었다.

중봉은 그걸 보며 상대가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걸 알았고 이쪽 전력을 파악하고 움직이는 동선도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로, 정보가 샜다.

거기에 조력자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저것들이 여기까지 올 수도 없겠지.’

이곳은 사이오닉 협회가 관리하는 곳이다. 저들도 이곳에 오려면 화이트홀을 통과해야 했을 테니.

조력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이 제대로 꼬였다.

“코드 제이크 송신, 시작해.”

뒤에 있는 놈이 무전기에 말하고.

그걸 듣는 순간, 중봉은 이 일대 저격 포인트도 전부 뺏겼다는 걸 알았다.

상대는 제대로 준비했고 경호팀장도 그걸 알았다.

‘힘으로.’

잘해야 여기 있는 인원 중 반의반이라도 살까?

혼자 도망가는 거라면 문제없겠지만.

그렇다고 동료를 버리고 갈 순 없지 않겠나.

이계의 햇볕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중이었다. 호흡을 고른 중봉은 꽤 사나운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인간 벌목꾼을 상대하며 저격도 주의해야 할 테니.

그 순간이다. 무전기에서 답이 왔다.

예민한 불멸자의 청각은 상대 무전기에서 울리는 소리를 잡아챘다.

“코드 라이팅, 시야 확보 완료. 작전명 미들 픽 도그 베이비 시작합니다.”

무전기를 든 놈이 미간을 찡그렸다.

없던 작전명이 생겼다.

그렇다고 지금 무슨 소리냐고 따질 때가 아니니.

“쏴.”

무전기에 대고 명령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전기의 답을 듣는 순간.

……이것 봐라.

‘이 새끼가.’

중봉은 하극상을 또 경험했다.

툭하면 기어오르는 새끼, 요즘 화림에서는 ‘광익했다’라고 하면 팀장에게 덤비는 걸 말했다.

광익이 또 광익했다.

미들 픽(Middle Pick)은 중봉.

도그 베이비(Dog Baby)는 개새끼.

되지도 않는 말장난인데, 이게 또 귀에는 쏙쏙 박혔다.

“야, 너희 저격수 좀 잘 치냐?”

중봉이 피식 웃고는 물었다.

그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중요한가요?”

“싸움 못 하면 뒈지게 처맞았을 거다.”

유광익은 하극상을 즐겨 하는 또라이지만, 화림의 모든 시험에서 NS를 기록한 규격 외 또라이니까.

중봉의 말이 끝난 직후다. 근처 저격 포인트에서 탄이 날아왔다.

퍽!

살이 터지는 소음이 들렸다.

아군의 어깨가 움찔했다.

“전원―”

불멸특수대 경호팀장이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피해를 확인하고 저격에 대비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음?”

이리 황당함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저격수의 탄환이 무전기를 든 놈의 허벅지를 터트렸다.

그러니까 아군 말고 적군의 허벅지를 쐈다.

대물 저격으로도 쓰이는 탄이다.

방탄복 따위야, 창호지나 다름없었다.

허벅지가 터지고 뼈와 피가 터진 토마토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먼지와 피가 만나 갈색 덩어리를 만들었다.

“……이게 무슨.”

여자는 당황했다.

중봉은 당황하지 않고 경호팀장에게 말했다.

“지금.”

“전투 대형.”

경호팀장이 말했다.

불멸자는 소리치지 않는다. 그리고 불멸특수대로 활동하면 고통 감내 훈련은 필수 코스였다.

통증을 몸으로 견뎌 내는 훈련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멸자에게 침착함을 선물했다.

그게 빛을 발했다.

경호팀장의 말에 전원이 자신의 무기를 꺼내 갈겼다.

“방패 세워.”

초능 협회 직원 앞에 두꺼운 방패 세 개를 나란히 세워 벽을 만들고.

몸이 날랜 불멸자 다섯이 왼쪽으로 뛰었다.

교전 발생 시, 피격당하는 각을 벌리고 자신들도 사격할 각을 만드는 전술 기동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코드 랄프!”

그리고 동남아 여자는 그사이 무전기를 뺏어 들고 외쳤다.

“예쓰! 여기 있습니다!”

미친놈, 중봉은 이런 순간임에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제는 들렸다. 아는 목소리다.

“너, 누구야.”

여자가 살벌하게 물었다.

“키 185cm에 섹시함과 귀여움, 스마트하고 직장 빵빵한 일등 신랑감이자, 이 시대 최고의 섹시가이입니다.”

“……따란따도.”

필리핀 말이었다. 어감만 들어도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중봉은 내심 동의했다. 저 새끼랑 말하다 보면 자기도 가끔 혈압이 오른다. 적이지만 동감한다.

그래도 지금은 나름대로 뿌듯했다.

우리 집 또라이는 밖에서도 또라이다.

한결같은 또라이란 거다.

“다 죽여.”

여자가 말하고 몸을 뒤로 물린다.

“크레이지 봉을 맡으세요. 통신기 위치 파악해서 비비 7호를 보내세요.”

물러나며 뱉는 말에 중봉의 앞에 노필두가 나타났다.

“형이 좀 바쁜데, 나중에 얘기할까?”

중봉이 말했다.

“개새끼가, 진짜 자꾸 형형거릴래?”

“개는 너고.”

변신족은 짐승의 피가 섞인 특수종.

“짖어 봐. 월월.”

거기에 노필두는 인내심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죽여 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의지를 발산하자, 변신족의 비전, 야생의 살기가 중봉을 압박했다.

그저 의지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놀라운 기예다.

중봉은 감각을 확장하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타다당! 티디딩!

삼점사로 날아간 총알이다.

노필두는 총 대신 허리춤에서 꺼낸 도끼로 총구 방향만 보고 탄환을 도끼날로 막았다.

황토색 먼지 사이로 불똥이 튀었고 노필두는 총알을 막으며 짓쳐들어갔다.

* * *

시작은 비약부터다.

선배는 알약 두 개를 물 없이 삼키고 주사기 바늘을 허벅지에 꽂더니 실린더를 밀어 넣었다.

“하아.”

얼음 공주에게서 이런 목소리를 들은 줄은 몰랐다.

그와 동시에, 내 감각에 잡힌 선배의 기운이 달라지는 게 느꼈다.

이건 뭐냐.

눈빛부터 달랐다. 평소의 무덤덤한 눈이 아니라 불꽃이 타오르는 그런 눈이었다.

이곳이 전장이 아니라 술집에 단둘이 있는 자리라면 눈빛으로 유혹의 소나타를 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달뜬 눈.

엎드린 그녀의 방호복은 달라붙는 편이었다. 얇지만 튼튼한 비싼 커스터마이징 장비다.

덕분에 몸매가 다 드러났다. 곡선을 이루는 허리가 둔부와 이어지며 S자를 그린다.

평소에도 단련된 육체임을 알지만, 비약을 먹은 뒤에는 그 단련된 육체 위로 활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생기, 탄탄함 등이 느껴지는 그런 육체 에너지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비약을 먹은 사수를 보는 순간, 그녀의 변화가 느껴지는 그런 경험.

“한다.”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철컥.

볼트 액션 타입의 저격총의 장전되는 맑은소리가 울리고.

지지직.

통신기의 노이즈와 함께 내가 말했다.

“코드 라이팅, 시야 확보 완료.”

통신기 저편에서 자기편이라 믿는 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코드 제이크 송신, 시작해.”

네이, 시작합죠.

“선배.”

내 말과 함께 선배가 방아쇠를 당겼다.

퉁-!

반동으로 선배의 어깨가 뒤로 밀렸다.

묵직한 소음과 함께 불멸의 감각이 발사된 탄환의 궤적을 쫓았다.

먼지구름 사이를 뚫고 날아가는 아름다운 궤적이 곧 목표물을 맞혔다.

퍽.

멀다. 스코프 없이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무엇보다 먼지 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그런데도 총격 피탄음이 들리는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잘 쏘기도 했다.

어지간한 총탄을 막아 내는 가죽을 지닌 인베이더도 죽일 50구경 탄이다.

캐쉬히포의 철갑탄이 상대의 허벅지를 부쉈다. 아니, 터트렸다.

첫 목표는 무전기를 든 놈이었다. 적중이었다.

“휘유.”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후.”

선배가 숨을 뱉고 다시 노리쇠를 당겼다.

철컥, 팅!

맑고 고운 탄피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지지직.

다시 통신기가 울리고.

“너, 누구야.”

어딘지 어눌한 한국말이 들렸다.

아까는 남자였는데 지금은 여자다.

처음 보는 여자가 자기소개하라 하니, 해 줄 수밖에 없지 않나.

흠흠, 목을 가다듬고 난 쉬지 않고 한 번에 말했다.

“키 185cm에 섹시함과 귀여움, 스마트하고 직장 빵빵한 일등 신랑감이자, 이 시대 최고의 섹시가이입니다.”

“……따란따도.”

상대가 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요?”

선배는 아는 게 많았다. 필리핀 말도 조금은 알았다.

“미친놈.”

적절하군.

그 말과 함께 다시 집중한 선배가 방아쇠를 당긴다.

퉁!

다시 날아간 탄환이 누군가의 어깨를 부쉈다. 두 번째 사격 직후 선배는 캐쉬히포를 챙겼다.

거치대조차 없이 팔의 근력과 힘으로 장거리 저격 성공이라니.

특수종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습격 대비.”

선배가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은 들뜬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냉정함 그 자체다.

특수종의 세계에서 저격 위치가 발각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선배는 비약을 먹고 그 힘을 최대한 이용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두 발 사격 후 위치 조정이다.

집중과 감각 강화, 허벅지 근력 증대.

선배가 먹은 비약의 효과였다.

그래서 완성한 선배의 특기는, 움직이는 저격 포대.

선배가 뛰었다. 바닥을 박차고 다음 포인트로 이동이다.

나도 그 곁을 따랐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