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8화 (48/488)

48. 그걸 먹는 사람이 있다니

어디에서부터 놀라야 할까.

이계 진입 후 십몇 초 만에 감각 크랭크 조정이 끝난 것부터?

김정아는 자신이 맨 처음 화이트홀을 넘어 이계에 진입했을 때를 떠올렸다.

‘45분.’

이계 진입 후 제대로 걷고 서고 보고 듣고 느끼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전투 수행을 위해서는 반나절이 필요했다.

일반 불멸의 경우, 진입 후 정신 차리는 데 삼십 분, 감각 크랭크 조정은 3시간 이내다.

그런데 광익은 십 초도 안 걸렸다.

물론 처음만 그렇다. 이계를 두 자릿수가 넘게 오가면 절로 그 시간이 줄어든다.

‘5분.’

현기증을 털어 내고 일어나는 시간.

‘30분.’

전투 수행에 필요한 시간이다.

이게 현재 자신의 기록이었다.

[최대한 적은 자원을 활용해 화이트홀 상비군 지역을 이탈]

작전 브리핑 내용이었다.

김정아는 광익을 방패로 삼아, 최대한 적은 피해로 빠져나가려 했다.

추적도 이틀 이내에 따돌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광익은 그 모든 걸 연막탄 하나 뿌리고 내달려서 뛰는 거로 해결했다.

이게 끝도 아니었다.

인베이더 상어 지렁이.

"어지간한 탄환이 안 먹히는 두꺼운 가죽에 전신에 달린 촉각 센서, 에, 또 내열성이 높고 쉽게 얼지도 않는다. 약점은 성인 남성 기준 손바닥만 한 크기로 개체를 분해하는 것. 맞죠?"

광익이 인베이더 정보를 읊고 물었다.

김정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라면 자신의 무기를 꺼내 지원해야 할 시간이다.

"괜찮을 것 같아요. 시간 줄이죠."

광익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서 두 개의 보위 나이프를 꺼냈다.

하나는 티타늄 합금, 다른 하나는 크롬 합금이다.

소재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무게 중심과 절삭력 때문에 티타늄을 고집하거나 크롬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었다.

광익은 상관없다는 듯 대충 챙겼다.

그리고 내달렸고.

서걱, 서걱.

체고는 낮지만, 전체 부피로 보자면 성인 남성의 세 배는 훌쩍 넘어가는 괴물의 해체 쇼가 펼쳐졌다.

날카로운 이빨은 피하고, 묵직한 꼬리 치기는 팔뚝으로 막으며 흘려낸다.

‘흘리기.’

이중봉 팀장의 특기였다.

광익은 그걸 현장에서, 인베이더를 상대로 몸에 익히고 있었다.

빈틈에 나이프 끝을 쑤시고 도려내듯 판다.

퍽 하고 살점이 바닥에 떨어졌다.

핏물이 엉킨 살점은 곧 황무지 위를 가득 메우는 먼지 때문에 황갈색 덩어리가 됐다.

‘설마.’

김정아는 의심했다.

지금 광익은 자신이 익히고 배운 걸 실전에 쓰기 위해 연습하는 거로 보였다.

* * *

배운 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한테 맞으면 배운 것.

각종 격투기 운동,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괴로워도 참을 수 있었다.

다만,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기본기만 시키는 거에는 질려 버렸다.

그래도 했다.

내가 한다고 했으니까.

어릴 때 봤던 그 등, 날 지켜 주던 그 사람을 본 순간부터 내 꿈은 정해졌고.

그걸 위해서 단련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과외 선생을 통해 불멸과 변신의 육체를 다루는 법을 배우고.

팀장한테 맞으며 불멸의 전투법을 익혔다.

이후에는 다시 여러 격투기와 무술을 팠다.

그렇게 수없이 보고 익히며 깨달은 점 하나.

어머니도 그렇고 사수와 팀장까지 셋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동작 하나에도 경험이 묻어났다.

자신이 배우고 익힌 걸 제 몸에 맞게 붙인 거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배우고 익힌 걸, 나만의 방법으로 몸에 붙이기로.

인베이더는 좋은 실험 대상이었다.

그렇게 한참 스텝을 섞어 나이프 파이팅으로 인베이더 한 마리를 해체했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딱!

발성 기관이 없는 지렁이의 이빨이 눈앞에서 닫혔다.

딱 필요한 만큼 피했고 다시 필요한 만큼 팔을 휘둘렀다.

적절한 완력과 각도, 칼날의 절삭력.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가.

그 모든 게 머릿속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감각을 개방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것과는 달랐다.

누군가 자신에게 어떻게 했냐고 물으면 답할 말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그냥 됐다.

보였고 피했고 잘랐다. 벴다. 도려냈다.

그렇게 5분여 시간이 지난 뒤, 내 주변에는 황갈색 덩어리가 즐비했다.

"선배."

"말해."

"넘버링 22를 단신으로 잡는 불멸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셀 수도 없다."

냉정하시네.

칭찬 좀 해 주시지.

나이프에 묻은 피가 먼지와 엉켜 덩어리가 졌기에 그걸 대충 엄지와 검지로 닦아 내고 다시 수납했다.

"이거 챙깁니다."

인베이더의 사체 중 일부는 때론 좋은 자원이 된다.

내가 말하고 이빨을 힘주어 뽑았다.

이빨 하나가 새끼손가락만 했다.

두 겹으로 난 겹 이빨을 가졌기에 상어란 이름이 붙은 놈이다.

로마자 표기로는 샤크 웜이라고 했다.

발치 전문 치과의사로 빙의해 순식간에 이빨을 털고, 방탄복 옆에 붙은 주머니에 챙겼다.

다 들어가지 않았다.

"사수?"

나머지는 선배가 자신의 주머니에 챙겼다.

사수는 자신의 무기 케이스를 별도로 챙겨왔다. 거기에 공간 여유가 있을 것 같아 물었다.

"거기에 넣으면 더 편할 것 같은데요?"

"싫어."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날아왔다.

이 반응은 몹시 싫어할 때, 그걸 표현하고 싶을 때의 사수 특유의 버릇이기에, 더 따지지 않았다.

"알뜰하네."

사수가 말했다.

"네, 준비된 일등 신랑감이죠."

답하고 다시 움직였다.

혼수로 상어 이빨을 챙겨가는 미친놈은 없으니,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다.

그런데 웃음기 하나 없는 여자이자 회사 선배에게 말하니, 농담이 진담 같았다.

"가자."

사수의 말에 우리는 다시 움직였다.

할 일은 하나다. 계속 본대의 뒤를 쫓는 것.

어지간하면 본대가 닦은 루트를 벗어나지 않아야 했다.

이계가 괜히 이계인가.

수틀리면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인베이더를 만날 것이다.

본대도 그걸 방지하기 위해 총으로 발포하는 형태의 정찰 드론을 쏘고,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움직였다.

그래도 나오는 인베이더는 화력 또는 실력으로 제압했고.

덕분에 그 루트를 따라가는 우리 앞에 대규모 인베이더 무리가 나타날 일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본대의 속도는 그리 빠르진 않았다.

만 하루쯤 갔을 때, 선배와 나는 황무지 우측으로 둥글게 솟은 언덕을 발견했고 그 안에 작은 동굴도 찾았다.

"여기보다 좋은 데는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우리 작전은 트레이싱 이후 스탠바이다.

쫓아서 루트를 확인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대기하는 거다.

이 정도 쫓았으면 충분했다.

오면서 인베이더 무리를 해치우며 길을 열었으니, 다시 이 루트로 되돌아올 것이다.

갈 때보다는 올 때 더 몸집이 커져서 오겠지.

단순히 축능석을 가져오는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불멸특수대가 사이오닉 협회의 화이트홀을 쓰게 된 이유가 뭔가.

그들이 협조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는 올드포스에게 협조 요청을 했고, 일이 이쪽으로 넘어온 거겠지만.

그런 이유로 불멸특수대는 현재 이계에서 농성 중인 사이오닉 협회의 직원과 그들이 가진 축능석을 호위하기로 했다.

그게 팀장이 함께하는 미션의 목표고.

축능석의 일부를 얻어오는 건 협상과 외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 우리 팀이 다 빼돌리지만 않으면 말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동굴 안에서 불을 피우며 말했다.

바람은 통하지 않았고, 안은 꽤 깊고 넓어서 사람 다섯 명쯤 누울 수 있을 듯했다.

대답 없이 묵묵히 바닥에 우의를 까는 사수다.

난 리액션 없는 청자에게도 훌륭히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우리 팀장님은 살짝 미친 것 같다는."

아니라면 고작 셋이서 이번 건을 꿀꺽할 생각을 어떻게 할까.

"자주."

"네?"

"자주 그렇게 생각해."

팀장이 자주 미쳤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역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불을 피워 축축한 공기를 날리고 우의를 깔고 준비한 전투 식량을 꺼냈다.

특수종은 기본적으로 체내 칼로리 소모가 극심한 이들이다.

그래서 불별 전투조에는 이런 고열량 식량이 필수였다.

칼로리 바 다섯 개를 씹어 삼키고 진한 우유 냄새를 풍기는 음료를 마셨다.

속이 니글니글해졌다.

"느끼하네요."

미각이 예민하기에 가지는 불편함.

맛없는 음식이 더 맛없게 느껴진다는 거다.

칼로리 바는 나름 신경 쓴다고 곡물 맛, 누룽지 맛, 딸기 맛, 초콜릿 맛, 매콤한 맛을 가져왔는데.

그나마 초콜릿 맛이 제일 안정적이다.

다음에는 초콜릿 맛만 챙겨야지.

"먹어 둬야지."

사수도 말하고 칼로리 바를 뜯었다.

비약 인간은 특수종이 아니다. 그래도 적절한 칼로리 축적은 필요하다.

비약을 통해 인간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기에, 평소에 체중을 유지하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방심하면 순식간에 몇 킬로쯤은 훌쩍 빠져 버린다나.

전 세계 다이어터에게 욕먹을 소리지만, 이쪽은 생존의 문제다.

과격한 훈련량은 무식할 정도의 열량 소모를 가져온다.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훈련을 한다.

사수는 아마도 불멸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옆에서 본 사수는 그러했다.

내 훈련을 도와주면서도 자신의 훈련 시간을 챙겼다.

하루 4시간 이상의 근력, 순발력 운동과.

갖가지 체력 훈련, 사격 훈련까지 포함하면 하루 열 시간도 넘게 몸을 단련하는 데 쓴다.

그러니 당연히 고열량으로 먹는 건 이쪽도 일상인데.

"……그거 무슨 맛입니까?"

"왜?"

"그걸 먹는 사람이 있다니."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과 입맛이 존재한다.

오이를 못 먹는 사람도 있고.

고수를 즐겨 먹는 사람도 있다.

매운 걸 잘 먹는 사람도 있고 특유의 향신료 냄새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민트 초코라니."

화림은 입맛에 관대했고, 이런 맛의 칼로리 바도 제공했다.

"줘?"

사수가 여분의 칼로리 바를 보이며 물었다.

아니요. 전 아닙니다. 민트 초코만은 절대 못 먹겠습니다.

"아니요."

"맛있는데."

"취향 제대로 갈리네요."

난 반 민트 초코파다.

사수는 맛있다며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알싸한 느낌과 단맛의 조화라니.

치약을 먹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뭐, 나만 안 먹으면 된다.

억지로 먹이는 것도 아니고.

이후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일어나서 먹고 동굴 밖으로 나가 조립한 삽으로 구멍을 파서 간이 화장실을 만들었다.

싸고 다시 덮어야 해서 꽤 귀찮지만, 바지에 싸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탈취 스프레이도 필수였다.

가끔 후각이 예민한 인베이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먹고 마시고 싸고.

주변에 물이라도 있으면 좀 나았겠지만, 주변에는 황무지와 먼지 바람뿐이다.

고형 치약으로 양치하고, 수통에 담은 물로 얼굴만 닦으며 사흘을 버텼다.

마실 물을 포함해서 일주일은 버틸 수 있었다.

사흘 동안 사수는 근육이 풀어지지 않는 간단한 운동 외에 한 가지 일에 몰두했다.

"그거예요?"

드물게도 사수가 얼굴에 표정을 드러냈다.

"내 아이지."

아이까지야.

케이스 안에는 각 도구에 맞는 스펀지 구멍이 있었다.

스펀지 구멍에 꼭 끼워진 기구를 꺼내 하나하나 조립하면.

샤이텍 M200을 개조한 사수 전용 커스터마이징 저격 라이플이 된다.

볼트 액션 방식에 탄환도 자체 제작.

한 발 쏠 때마다 지폐를 뭉쳐서 쏘는 것과 같은 총이다.

더럽게 비싸다는 거다.

화이트홀에 진입할 때 탱크나 전투기도 가져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자신의 몸에 지닌 것만 갖고 들어올 수 있었다.

자동차를 가져오려고 타고 넘는 순간, 운전석과 몸에 닿은 일부만 넘어오고 나머지는 덜컥 남는 경우가 발생했다.

홀을 기준으로 깔끔하게 잘리듯 분해된 거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인간이 어떤 생물인가.

적응하는 동물 아닌가.

인간은 답을 찾았다. 늘 그랬듯이.

화이트홀을 넘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옷, 도구 등은 몸에 지닌 물건 한정이고.

일정 부피 이상은 들고 가지 못한다는 것.

법칙을 찾았으면 다음은 해답이다.

완제품을 가져갈 수 없다면, 조립식으로 개조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화이트홀 전용 무기가 생겨난 거고.

이제는 굳어졌다.

지금 사수의 총도 그거였다.

"캐쉬히포야. 인사해."

사수가 자신의 총과 날 인사시켰다.

"어, 만나서 반갑다."

캐쉬히포, 돈 먹는 하마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인데.

아기라고 한 것치고 작명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기름칠하고 닦고 조준경을 맞춰 보고 장전하지 않은 채, 빈 노리쇠를 튕기고.

사수가 제 무기를 점검할 때, 난 내 몸과 상태를 점검했다.

움직이고 근육을 풀고.

머릿속에 일의 진행을 그려 보고.

인베이더 상어 지렁이를 상대했을 때의 감각을 되새겨도 봤다.

그렇게 사흘.

올 시간이 됐는데 본대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선배와 난 자는 시간을 나눠 눈을 붙였다.

체력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도 일이다. 우린 그 일에 충실하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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