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NS
수습 기간이 끝나면 회사는 사원을 평가한다.
기준에 따라 임원 하나가 서류를 보고 판단하는 과정이 그 첫 번째였다.
이번에 이 일을 맡은 건 김동철 이사였다.
그가 태블릿 안에 담긴 정보를 슬라이드로 넘기다가 멈췄다.
멈춘 화면에 애매하게 생긴 불멸자가 있었다.
외부 보안 3팀 유광익이다.
"사장님이 찍은 친구지?"
물으니, 비서 겸 보좌관이 답했다.
"네, 맞습니다."
"인사고과 파일 띄워 봐."
곧 광익을 객관적으로 본 사원 인사고과 평가표가 김동철 이사의 태블릿에 나타났다.
화림의 인사 평가 기준은 일반 회사와 같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들은 인베이더와 싸우고 테러 단체를 진압하기도 한다.
국가 공인 용병 부대 같은 곳이었다.
사격 능력 B
근접 전투 능력 B
- 종합 전투 능력 평가 B
"괜찮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신입의 전투 능력이 B클래스다. 보통은 훌쩍 넘어선 수치다.
난다긴다하는 순혈의 불멸도 잘해야 C클래스나 될까.
괜찮은 건 딱 여기까지였다.
감각 민감도 E
감각 컨트롤 B
- 불멸 능력 평가 D
"이 정도면 재능 없는 거 아니냐?"
"오리엔테이션 동안 가장 잘 자는 훈련생이라고 했습니다."
사원이 한 모든 행동과 태도는 기록에 남고 평가의 기준이 된다. 광익도 마찬가지였다.
잘 자는 건 일반인에게는 미덕이지만, 이제 막 각성한 불멸자에게는 부덕이다.
감각이 그만큼 둔하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외 평가도 비슷했다.
업무 적응 능력 B
업무 실적 C
"외부 보안 3팀이지? 용케 이 정도는 나오는구나."
"이전 작전 진행 중에 강희모 대리가 최고점에 가까운 평가를 줬습니다."
역시나 모든 신입 사원의 행동은 평가를 받는다. 강희모는 광익의 가치를 높게 쳤다.
업무 지식 - B
가혹하게 외운 지식이 빛을 발했다.
판단력 - E
징계 먹은 사수를 말리지 못했다.
행동력 - B
주저가 없으나, 이건 장점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김동철은 신중함이 행동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임감 - D
업무에 대한 책임감보다 중요한 건 불멸의 몸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역시나 블랙홀 사건 때문에 점수가 낮았다.
협동심 - D
강희모 대리는 높은 고과 점수를 줬지만, 역시나 블랙홀 사건 당시 상사의 명령을 어긴 게 영향을 줬다.
근무태도 - F
최악, 아침마다 자기 팀장과 사무실 내에서 격투 상황을 만드는 게 문제였다.
근무태도는 각 팀의 팀장 평가가 크다. 그리고 그 각 팀 팀장은 요란한 광익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팀 사람이라면 모를까.
타 팀의 그것도 트러블 메이커로 보이는 직원을 좋아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근면성 - A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
특이사항 - 주량 측정 불가.
직원의 평가는 바뀌기도 한다. 그걸 위해 수습 딱지를 뗄 때, 테스트를 시행했다.
그 테스트가 곧 이제까지의 평가를 뒤집을 마지막 기회다.
그래도 이건 좀.
"잘 싸우는 미친놈이네. 절제력 부족하고 감각 부족하고. 이 친구는 내보내야겠다. 술 잘 마시는 건 자랑이라고 써 놓은 거냐?"
"그건 3팀 팀장이 추가했습니다."
"후, 그 또라이 새끼."
김동철 이사는 광익의 슬라이드를 두 번 두드렸다.
곧 인사고과 파일 좌측 상단에 붉은 점이 생겼다.
그 뒤로 몇 명의 슬라이드를 더 뒤적거리는 거로 준비가 끝났다.
"그럼 가지."
수습이 끝나는 시점이다. 신입 사원 평가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 * *
사원은 자신의 인사고과 평가표를 볼 수 없다. 하지만 평가가 시작되기 전, 그걸 개인 인트라넷을 통해 개방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걸 깨닫고 채우라는 의미였다.
난 내 평가표를 음미했다.
한 번은 정독하고 두 번째는 속독, 세 번째는 다시 정독했다.
그렇게 세 번을 읽고 난 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었다.
"불멸 능력은 뭘 기준으로 하는 겁니까?"
정확히는 감각의 민감도를 말하는 거다.
내가 그 정기남이 놓친 테러범도 잡았는데, 점수가 짜다.
애미야, 여기 국이 짜구나.
"오티 때부터 지금까지 보인 태도."
팬더 대리가 답해 줬다. 서류 작업과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가장 빠삭한 양반이다.
실적은 그렇다고 치자.
"판단력은 왜 이럽니까?"
"징계 위원회에 서진 않았지만, 너도 간 거나 마찬가지다. 징계 먹을 일을 했으니까 판단력은 최악이지."
이것도 그렇다고 치자.
"책임감하고 협동심은 억울한데요."
내가 그 개나리 정기남과 우미호랑도 일한 몸이다.
"징계는 여러 곳에 영향을 미치지."
새삼 블랙홀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그럼 그때 그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뒀어야 한다고?
염병, 그걸 후회하고 싶진 않은데.
그때로 돌아가도 난 같은 판단을 할 거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그랬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인사고과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와, 근무태도 이건 진짜 억울하다."
"아침마다 옆집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해. 그걸 두 달 내내 들었어. 기분이 막 상쾌할까?"
팬더 대리는 비유를 잘했다.
"네?"
"아침마다 팀장님하고 신나게 치고받았잖아."
불멸자에게 소음은 곧 공해다.
처음에야 흥미진진하게 봤지만, 흥미가 사라진 뒤에야 공해일 뿐.
나는 공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지, 이게 아니다.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근면성이라도 높아서 다행이네요."
좋은 것만 보자.
어느 연예인이 그랬다. 자기는 좋은 글과 선플만 본다고.
악플은 보는 순간 종일 마음에 남는 낙인이 된다고.
인사고과 평가표가 내 낙인이 될 줄이야.
"주량 얘기는 왜 적혀 있나요?"
"팀장님이 강력하게 주장하셨지. 그거라도 내세워야 한다고."
그 말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팀장이 엄지를 치켜세운 게 보였다.
"우리 반푼이, 술 잘 먹는다."
저 입을 꿰매 버리고 싶다. 미친 양반아.
위에서 임원이 보기에 저 술 잘 마셔요! 이러면 좋아하겠냐?
아니, 이거 좋아하려나?
회사 생활의 반은 회식이라잖아.
좋아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응, 안 그래.
우수 신입 사원 뽑는데 잘도 주량을 평가 기준에 넣겠다.
하하하, 미친 팀장 새끼.
"반푼아, 낙담하지 마라. 인생은 본래 실패의 연속이야. 실패해, 마구잡이로 실패해."
"성공은 안 합니까?"
"응, 넌 하지 마."
신났네. 그래, 나 망했다 이거지.
그걸 보더니 팬더 대리가 피식 웃었다.
"왜요?"
"이게 끝이 아니잖아.
팬더 대리가 말했다.
그래. 평가가 남았지.
"식스센스 봤어?"
고개를 끄덕이자, 대리가 마저 묻는다.
"그게 왜 재밌을까?"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서?"
"그래, 반전."
나름 응원이었다.
"반전."
단어를 곱씹었다.
그렇네.
이 인사고과표를 보여 주는 이유는 하나다.
너에게 부족한 걸 찾아서 보여 봐라.
그걸 위한 평가의 시간이 도래했다.
[화림 내 신입 사원은 전부 지하 훈련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내 방송이 울렸다.
"다녀오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평가라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은 숫자와 랭크로 치환될 수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타인의 눈으로 평가하는 객관화된 내 점수다.
그래, 해 보자.
적어도 전투와 감각 활용도로 질 생각은 없다.
이 평가는 세 가지 기준을 둔다.
육체, 정신, 인상이다.
육체 능력과 정신 능력.
마지막은 직감과 육감의 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인상.
그렇게 터벅터벅 종합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첫 번째는 중력 제어 테스트였다.
내 장기였다.
걱정은 없다. 변신족은 각성 이후 3년이 성장기라고 했다.
이제 막바지이지만 내 몸은 아직 성장기라고.
매일 전보다 힘이 좋아지는 걸 새삼 느낀다. 그동안 운동도 미친 듯이 했다. 변신 과외 선생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훈련과 운동, 실전으로 단련된 몸이라 이 말이다.
"자, 김요한 사원. 들어가세요."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세 개로 나뉜 중력 제어 장치가 보였고.
그 뒤로 길게 선 줄이 보였다.
각 감독관이 한 명씩 붙었다.
신입 사원 평가라고 해서 어느 일본 닌자 만화처럼 시험의 연속은 아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지금은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다. 평가는 더없이 과학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들어갔던 요한이 침을 질질 흘리며 나오는 게 보였다.
* * *
동훈은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칙.
라이터에서 나온 불꽃이 담배 끝을 지졌다.
후우우우.
폐까지 훑고 간 유해물질 덩어리가 코와 입을 통해 연기가 되어 나왔다.
"놀라겠지?"
동훈이 연기를 뿜으며 물었다.
"누가요?"
김정아가 답했다. 말이 짧긴 해도 할 말은 다 한다. 김정아도 기본적인 소통에는 문제가 없는 팀원이었다.
"임원."
말하며 동훈이 킥킥 웃었다. 팬더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덩치가 큰 편이지만, 어깨를 좁히고 웃는 것도 퍽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김정아가 입술을 오물거리다 말했다. 말을 한참 고른 듯했다.
"광익이 잘합니다."
"주어 빼지 마, 이상해."
"네."
하여간 다들 놀랄 거라고 동훈은 생각했다.
"아, 구경 가고 싶다."
동훈이 말했다. 김정아의 심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대련 때는 얼마나 재밌겠나.
팀장의 팔을 부러뜨린 미친 신입이다.
혼혈, 불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진 불멸의 힘을 깨닫고.
노력으로 다른 재능까지 개화한 그런 이레귤러.
그게 동훈이 내린 광익의 평가였다.
* * *
"고장 아니지?"
감독관이 물었다.
중력 제어 담당 대리가 답했다.
"네, 아닙니다."
신입 사원 평균 중력 제어는 4G에서 끝났다.
거기가 한계점이다.
좀 하는 신입은 6G까지 견디긴 한다. 훈련과 단련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현 상황이 막 입사했을 때보다 몇 배는 좋아진 건데.
"얘는 밥 먹고 운동만 했대?"
감독관이 보는 화면, 그 안에서 광익이 입을 오므리며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중이었다.
"후욱! 훅!"
호흡과 함께 근육이 꿈틀거린다. 압력이 어깨를 짓누르는데 거뜬히 팔굽혀 펴기를 시도한다.
"……더 합니까?"
대리가 물었다.
감독관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더하면 고문이다.
12G.
일반 신입 사원의 세 배.
광익이 견딘 압력의 숫자였다.
감독관은 평가지에 글자를 적었다.
S.
그리고는 곧 두 줄로 직직 긋고 다시 글자를 썼다.
NS.
NON-STANDARD의 약자였다. 한국말로 하면 규격 외.
감독관의 판단은 그랬다.
"테스트 끝났다. 유광익 사원은 다음 코스로."
다음은 러닝 머신 달리기다. 불멸의 육체는 일반인과 동일하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혹한 훈련이 필요…….
"러닝 머신 속도 몇이야?"
지구력 테스트 감독관이 물었다.
"40km/h입니다."
최고 수준 마라토너의 속도가 시간당 30km다.
그걸 넘어선 수준이다. 물론 단거리라면 이럴 수도 있었다.
"몇 분째지?"
"25분째입니다."
감독관의 시선이 측정기에 머물렀다.
가슴과 관자놀이 등에 붙은 측정 센서가 그의 심박 수와 현 상태를 알려 줬다.
심박 수가 이제 뛰기 시작한 사람 같았다.
‘이거 뭔데?’
감독관은 당황했다. 하지만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기계에는 이상 없지?"
대신 중력 제어 훈련 감독관과 같은 걸 물었다.
"끝나고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저 속도로 달리며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다니.
뭐냐, 넌.
감독관은 속으로만 물었다.
테스트 중 감독관이 개별적으로 말을 거는 건 특혜다.
감독관은 칼같이 숫자와 결과로만 점수를 측정해야 했다.
테스트가 끝났고 기계에 이상은 없었다.
NS.
이전 감독관과 같은 평가다.
S클래스 수준이면, 마라토너 최상위 수준이다.
약 안 먹고 이런 육체 능력을 보이는 건 사기였다.
‘지가 무슨 변신족이야?’
감독관은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냈다.
자신은 할 일만 하면 됐다.
광익은 이후에도 육체 테스트를 진행했다.
육체 내구도, 심폐지구력, 근력, 순발력, 근지구력, 반사신경, 반응속도, 유연성.
그리고 모든 육체 테스트에 NS를 기록했다.
"약물 검사해."
그 결과를 받은 임원, 김동철 이사가 말했다.
약물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