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41화 (41/488)

41. 한계 너머

"돼지는 바짝 구워야 제맛이지."

팬더 대리의 철학은 훌륭했다.

그가 구운 고기를 한 점 들어서 소금만 콕 찍어서 입에 넣었다.

쩍.

어금니에 씹힌 삼겹살의 지방이 훅하고 입안을 휘돌았다.

살코기와 지방이 어우러진 하모니가 내 뇌를 자극했다.

"맛있어."

나도 모르게 입이 트였다.

"우리 광익이 뭘 좀 아는구나."

진심 어린 리액션에 팬더 대리가 반응했다.

난 폭탄주를 말아서 팀원에게 돌렸다.

회식 자리는 조용했다.

모인 이들은 불멸의 피를 지닌 이들.

작게 말해도 알아서 잘 듣는다.

그러다 보니 단체 회식이 아니라, 무슨 단체 기도회 같은 분위기였다.

꿀꺽.

육즙이 남은 입안에 소맥 한 모금.

크, 바로 이 맛 아닙니까.

그걸 본 팀장이 시발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자기도 한 잔 마셨다.

툭.

사수가 내 팔을 쳤다.

그녀에게 폭탄을 하나 말아 주고.

다시 나도 말아서 한잔.

그걸 본 팀장도 다시 한잔.

"방어회 먹을래?"

옆에서 팬더 대리가 말했다.

"좋죠."

삼겹살만 있는 건 아니었다.

늦여름에 입사해서 가을을 보내고 12월, 한 해의 끝을 달리는 중이다. 그러니까 방어회는 지금이 제철이다. 우리 사장 어르신이 방어회와 각종 회도 제공했다.

"여기요."

팬더 대리가 안쪽에 자리한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곧 우리 식탁에 손가락 한 마디 두께로 썰린 회 접시가 놓였다.

난 방어회 두 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상추 위로 올리고 막장 조금, 편 마늘 하나를 올려 싸 먹었다.

생선 특유의 기름기와 막장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탭댄스를 췄다.

먹고 마시고.

불멸자에게 민감한 감각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예민한 미각은 대부분의 불멸자를 미식가로 만든다. 고로, 이들은 맛없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고 맛있는 음식에 영혼을 팔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 연유로 불멸자 구내식당은 인근 맛집이 어벤져스 멤버를 구성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그 구내식당 직원 전부가 회식이라고 제대로 나섰다.

쌈장 하나까지도 완벽했다.

전부 손수 만든 거다.

거기에 내가 만든 황금 비율 폭탄주를 마시면.

이게 바로 천상의 맛이다.

"반푼아, 적당히 마셔라."

팀장이 잔을 꺾으며 말했다.

몇 잔이나 마셨다고, 벌써 잔을 꺾으시나.

"네."

답하니.

"너 여덟 잔 마셨다. 반푼아."

벌써 그렇게 됐나.

근데 나 왜 괜찮냐.

이렇게까지 많이 마셔 본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변신의 피가 제대로 이어졌다면 약 따위는 몸이 거부한다고 했다.

고로 변신족이 약보다 약한 술에 취할 일은 없다.

본능에 취해 실수는 해도 음주로 심신미약 따윈 없는 이들이라 이거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 때 이미 나는 약에 취했었다.

혼혈이라 그런 거로 생각했는데.

또 술은 안 취하네.

알딸딸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씁쓸한, 고기와 방어회에 잘 어울리는 음료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아니, 기분은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취기가 아예 없다면 무슨 재미로 술을 마시겠나.

"술 처먹고 실수하면 죽일 거다."

팀장이 말했다.

대충 답하고 더 마셨다.

서너 잔을 더 마신 팀장은 멈췄고.

"한 잔 더."

나라는 바텐더가 만든 황금 비율 소맥에 반한 사수는 몇 잔을 더 마시더니,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더니 중얼거렸다.

"다 죽일 거야."

아이 씨 깜짝이야. 뭘 죽여.

놀라서 사수를 보니.

"술버릇이야."

고기 굽는 일에 여념이 없는 팬더 대리가 말했다.

"술 마시면 이럽니까?

"입에서 나오는 건 잠꼬대고 술버릇은 자는 거, 갈 때 되면 일어나니까 놔둬."

그렇게 말하며 팬더 대리도 방어회 다섯 점을 한 번에 집어 먹었다.

잘 먹네.

술은 입가심 정도로만 마시는 걸 보니 음주를 즐기는 편은 아닌가 보다.

팬더 대리가 팀장의 접시에 고기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팀장님, 내년에는 제가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내가 점쟁이냐?"

팀장이 나한테만 까칠한 게 아니구나.

"그냥 좋은 말해 주시면 안 됩니까?"

"아무나 만나."

"성의 없으시네요."

"뭘 바란 거냐?"

우적우적.

이번에 구운 건 항정살이었다.

세 점을 한 번에 입에 넣고 씹으니 이 또한 맛이 훌륭하다.

어디서 떼 온 건지 몰라도 고기 질이 아주 훌륭했다.

팬더 대리는 이후에도 시답잖은 질문을 던졌고.

다이어트를 할까 말까.

내년에는 선을 볼까 말까.

주식을 살까 말까.

뭐, 이렇게 고민이 많은지.

그사이 외부 보안 2팀장이 잠깐 자리에 왔다 갔다.

"한잔하자."

"싫다."

대뜸 와서 저리 묻고 시발 팀장의 싫다는 말에 쿨하게 자기만 잔을 채워 마셨다.

내가 만든 폭탄주를 먹은 2팀장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맛있네."

이 양반은 왜 좋다는 말도 미간을 찌푸리고 하는 걸까.

계속 마시다 보니 나도 적당히 취기가 올라왔다.

볼때기가 화끈화끈한걸.

그래도 숙취는 없을 테니까.

불멸자에게 숙취란 단어는 없다.

알코올, 정확히 에탄올은 독소의 일종이다.

위에서 흡수되어 간으로 간 술은 독소로 분류되어 배출된다.

우리 몸은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하고, 아세트알데히드를 또 다른 효소가 아세트산으로 분해한다.

이렇게 분해된 아세트산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과정이 있는데.

그게 소변이나 땀 같은 거다.

이 배출 과정이 원활하면 숙취가 없는 거고.

그 반대로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에 남아 있으면 그게 곧 숙취가 되는 거다.

불멸의 몸은 이 분해 과정이 빠르다.

고로 취하는 기분은 만끽하되 숙취는 없다.

전 세계에 있는 애주가가 부러워할 몸이란 거다.

근데 과외 선생은 별걸 다 가르쳤구나.

이건 회사에서 배운 게 아니라, 자연인 과외 선생에게 배웠다.

"네 몸을 잘 아는 게 첫 번째다."

과외 선생은 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오자 심장이 콩콩 뛰었다. 지금까지 마신 성인의 음료가 피를 데웠다.

처음보다는 커진 소음이 구내식당 안을 채웠다.

모인 인원이 인원인지라, 취기에 젖어 한마디씩만 해도 이리 시장바닥이 되는 거다.

다들 술 마시고 둔해진 신경 덕분인지 불만 없이 행복하게 떠들었다.

"그건 아니지, 새끼야."

"올해는 다르다. 쌍둥이가 우승이야."

몇몇은 취한 김에 헛된 소망을 말하기도 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불멸자도 프로 야구 얘기를 한다.

"그때 너 없으면 난 개먹이가 됐겠지?"

"그 얘기 그만 좀 해라. 나도 지겹다."

인베이더와 있었던 추억을 곱씹기도 했다.

난 집중해서 저들의 말을 들었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웅성거리는 소음으로만 들린다.

이런 게 백색소음일까.

멍하니 듣다 보니 뛰는 심장과 함께 몇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반푼아, 눈깔아."

새삼 궁금해졌다.

팀장과 처음 붙었을 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빤히 팀장을 보니 그가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미운 오리 새끼 3팀이 살아남은 이유는 하나.

팀장의 실력이 독보적이니까.

두근.

심장 박동이 귓가를 울리고.

난 나에게 물었다.

처음 뭣 모르고 덤빌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시험해 보고 싶다.

욕구와 본능이 쌍두마차가 되어 내 피를 달궜다.

달궈진 피와 뛰는 심장, 멋모르고 마신 소맥은 내 입을 멋대로 움직였다.

그 내용은 내가 듣기에도 파격적이지만, 팀장은 놀라지 않았다.

"저랑 진지하게 한판 뜨실래요? 계급장 떼고."

집중하지 않으면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어렵다.

어느새 그 정도로 시끄러웠다.

일반인에게는 도서관 정도의 소음도 불멸자에게는 소음 공해다.

그러니 아무도 내 말을 못 들었을 거다.

바로 옆의 팬더 대리만 빼고.

"취했냐?"

대리가 물었다.

"에, 아뇨."

그렇게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싶은 거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뭐가 나빠.

대답하니, 팀장이 입꼬리를 올린다.

"5분 뒤에 훈련장으로."

더없이 즐거운 장난감을 본 눈빛이다. 잠깐 나타난 그 눈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고 움직였다.

"미쳤냐?"

팬더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정신은 명료합니다."

혀가 꼬이지 않은 게 그 증거다.

미친 건 아니다. 확실하다. 그렇다고 취한 것도 아니다.

그 정도로 만취는 아니다.

이 정도 술로 내 머리가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저 확인하고 싶을 뿐.

처음 팀장과 겨룰 때는 주먹 몇 번으로 끝이었다.

그럼 그다음에는?

내가 강해져서 버틴 건가, 아니면 팀장이 날 봐준 건가.

지금 나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

어릴 때 내가 봤던 그 등은 홀로 인베이더 수백의 앞에 섰었다.

그럼 난?

나도 그렇게 되고자 했는데 지금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고작 눈먼 개 무리에 전신이 물어뜯기는 수준으로?

물론 그때는 변신의 힘을 쓸 순 없었다.

난 날 감췄다. 어느새 그게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그럼 이걸 다 쓰면 뭐가 달라질까?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불멸자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 있다. 그에게 날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너 무슨 투쟁의 본능 같은 게 있냐?"

대리는 고기 굽던 집게를 든 채로 탁탁 불판을 때려 기름을 털어 내며 말했다.

아, 음. 그렇네.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네."

명랑하게 답해 주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난 변신족의 충동과 본능이 이쪽에 편향되어 있나 보다.

팀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기 짝이 없었다.

식당은 지상 1층, 훈련장은 지하 1층이다.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팀장이 보였다. 벽에 등을 기대고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액정 화면의 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잘 생겼네.

"불 켜 주랴?"

팀장이 물었다.

"필요 없습니다."

어쩌다가 나한테 이런 행운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난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피를 온전히 이은 듯하니.

아버지는 불멸의 피, 나에게 이 정도 어둠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팀장이 폰을 챙겨 옆에 내려놨다.

"이전 대련은 심심했지?"

그때는 상대도 안 됐죠.

"들어와."

팀장이 말했고, 나는 바닥을 찼다.

평소에 신고 다니는 단화 바닥이 땅과 마찰을 일으키며 내 몸을 밀어냈다.

순식간에 팀장의 얼굴이 확대됐다.

왼 주먹을 뻗었다.

팡!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끊어 친 내 잽을 피한 팀장의 기척이 사라졌다.

어둠을 꿰뚫는 불멸의 시력이 상대를 놓쳤다.

감각에도 안 걸렸다.

기척 죽이기, 한두 번 당해 보는 게 아니었다.

전신의 감각을 북돋웠다.

정기남과 함께 나갔던 작전에서 익힌 ‘집중’이다.

감각이 확장되며 상대를 찾는다.

오른발을 뒤로 빼며 왼발을 채찍처럼 감아 찼다.

틱.

로우킥이 팀장의 옷깃을 스쳤다.

콤비네이션을 이어갔다.

잽, 스트레이트, 훅.

어릴 때부터 배운 것과 그동안 익힌 것이 팀장을 향해 꽂혔다.

팀장은 피했다.

고개를 젖히고 꺾는다. 그와 동시에, 불현듯 불길함이 느껴져 내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틱.

염병.

팀장의 주먹이 어느새 내 턱을 노렸다.

아래에서 위로 뻗은 주먹을 피한 덕에 자세가 무너졌다.

난 아예 뒤로 넘어지며 땅을 박차고 여름 소금 차기를 날렸다.

후앙!

반달 모양의 차기도 빗나갔다.

다시 앉아서 자세를 잡는데 팀장으로부터 공격이 없었다.

어둠 너머, 팀장을 찾았다.

없다.

뒤다. 난 반사적으로 변신의 힘을 썼다. 육체가 내 의지에 따라 폭발적인 괴력을 보인다.

난 팔꿈치를 뒤로 휘둘렀다.

살을 주고 살을 친다.

꽝! 우득.

머리에 벼락이 쳤다.

등을 얻어맞고 굴렀다. 대신 팔꿈치에도 충실한 감각이 따라왔다.

팀장의 왼팔이 부러졌을 거다.

느낌이 왔다. 다시 자세를 추스르자.

그다음 거리를 두고…….

생각이 끝나기도 전이다.

"방심이다. 그거."

팀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언제 왔지?

바로 옆, 반사적으로 무릎을 치켜세우자 그가 공격을 흘린다.

난 디딤발에 힘을 주며 버텼고.

팀장은 멀쩡한 오른 주먹을 뻗었다.

그걸 왼팔을 뻗어 잡아챘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다른 공격이 날아온다.

시발, 그거 왼팔이잖아, 부러진 팔이잖아!

생각은 잠깐이었다.

난 머리로 팀장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꽝! 쩡!

이마로 들이받았는데 뒤통수부터 강렬한 충격이 왔다.

머릿속에 벼락이 치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곧 어둠이 몰려왔다.

기절이었다.

의식이 끊기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어째 팀장이랑만 싸우면 기절일까 하는.

* * *

"후, 이 새끼."

쓰러진 광익을 보며 중봉은 부러진 팔을 다시 손봤다.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오래된 불멸자라고 해서 통증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을 더 세밀하고 민감하게 만들지, 더 둔하게 만들진 않는다.

이게 곧 한계 너머의 땅을 밟는 과정이니.

"팀장님. 쟤도 ‘그거’ 씁니까?"

어느새 내려온 동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중봉은 싸움을 복기하고 답했다.

"아니."

"근데 팔이 부러져요?"

일반 불멸 수준으로 이중봉 팀장의 팔을 부러뜨린다. 동훈은 그게 가능한 일인지 가늠해 봤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너 이후로는 처음이지."

"저랑은 경우가 다르죠."

그래, 다르지.

중봉은 생각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 새끼가 나타났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저 새끼 대충 사옥 빈방에 던져 놓고 와."

중봉이 말했고.

광익은 이날 처음으로 무단외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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