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환상의 비율
시간은 쏘아진 화살과 같다고 했다.
나한테도 그랬다.
테러범을 잡은 이후 몇 번의 외근이 더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며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차갑지만 따뜻한 사수가 그동안 왜 바빴는지 알겠더라.
테러 조직원을 잡았다고 내 회사 생활이 탄탄대로가 됐다거나, 특별 취급을 받는 일은 없었다.
대신 일 좀 한다는 소문이 났고, 회사는 그런 인재를 가만두지 않았다.
일을 시켰다. 무지하게 시켰다.
신입 사원이 수습 딱지를 떼는 기간은 석 달.
월급을 세 번 받을 동안, 특수종 범죄자 다섯을 잡았고.
아니, 이 새끼들은 무슨 범죄의 피가 흐르나.
하나같이 왜 사고만 치고 사냐.
하긴 나 같아도 하루아침에 그런 힘이 생기면 이런저런 일을 해 볼 것이다.
나도 변신족 각성 이후에 곧바로 학교 일진부터 조졌다.
그날의 나는 빛나고 있었지.
하여간 범죄자 특수종이 끝도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특히나 화림 담당 구역에 블랙홀 이슈가 이렇게 많았어?
내가 클로징에 참여한 블랙홀만 해도 열 개가 훌쩍 넘었다.
다른 팀 지원이 여덟, 우리 팀 전담이 둘.
그동안 깨달은 사실 하나, 팀장은 외근을 더럽게 귀찮아하고.
보고서 쓰는 건 더 귀찮아한다는 것.
"시이발, 오늘 날 잡자."
그렇게 딱 석 달이 지난 어느 날이다.
팀장이 내 보고서를 보고 한마디 읊조린 뒤 몸을 날렸다.
내 몸이 자연스레 반응했다.
"또."
탁!
날아오는 손날을 쳐 내고.
"왜."
로우킥은 다리를 들어서 막고.
"이러십니까."
박치기는 고개를 옆으로 꺾어 피했다.
"보고서."
불과 10cm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팀장이 말했다.
이 양반은 입 냄새도 안 나네. 화림 내에서 손꼽히는 헤비스모커인데도 고약한 냄새 따윈 없었다.
말하는 거 보면 시궁창 냄새가 나야 하는데 말이야.
"전 사실만 명시하라고 배웠습니다."
팬더 대리가 그렇게 가르쳤다.
"아, 그래서? 시발, 너희 팀장님은 작전 시간에 코나 파고 졸았다?"
내가 봤는데 코 파고 조는 거.
졸면서 총을 그렇게 잘 쏘는 사람은 처음 보긴 했다.
인베이더 넘버링 2, 도플갱어를 그냥 조져 버리더라.
인베이더 도플갱어는 신화에 나오는 도플갱어와는 달랐다.
이들은 아군의 모습을 베끼지만, 그 모든 걸 따라 할 순 없는 놈들이었다.
외형, 장비, 체형 모든 걸 복사해서 그대로 변한다.
자신과 똑 닮은 표정의 인베이더는 보는 것만으로 위화감이 들게 한다. 다만, 이들의 복사체는 어디까지나 외형뿐이니.
냉병기는 베껴도 총화기는 베낄 수 없는 거다.
복사체도 놈 육신의 일부니까.
육신을 잘라내서 총알로 바꾸는 재주는 없었다.
인간의 외형을 베끼는 순간, 총을 든 머저리 인형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그 신체 능력이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보다 힘이 세고 빠르다.
거기에 숫자가 나타났다 하면 일개 소대는 우습게 넘는다.
최소 백 단위다.
나오는 형태가 라인이든, 컷 라인이든 말이다.
라인은 하나씩 줄지어 나오는 거고.
컷 라인은 둘, 셋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인과 같은 형태다. 한 번에 나오는 숫자만 다를 뿐이지.
팀장은 졸면서 그놈들의 미간에 총탄을 박았다.
단발로 코 파면서 쏘는데 백발백중, 안 보고 쏘는데도 맞고 졸면서 쏘는데도 맞는다.
대용량 탄창 꽂은 권총 하나, 그거로 일을 끝낸 거다.
"전 딱 거기까지 보고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난 팀장이 방아쇠를 당기는 건 못 봤지. 코 파고 조는 것만 봤다.
사실은 사실이다.
"정기남과 우미호가 보고 싶다."
팀장이 말했다.
하루에 다섯 번씩 듣는 말이다.
처음에야 이마에 핏대가 서기도 했고 이 말을 듣고서 괜히 우미호를 찾아가 시비를 걸기도 했다만.
이제는 아니다.
팀장의 말이 상처가 되기에는, 이미 딱쟁이가 앉다 못해 새살이 솔솔 돋아나고도 남았다.
"저도 보안팀에 갔어야 했는데."
그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해 주는 건 예의 아닌가.
팀장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기남과 미호의 쌍 개나리 얘기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난 그의 속내를 짐작해서 말해 줬다.
"저승으로 보내 주랴?"
그렇게 말하곤, 팀장이 날 밀쳤다. 순식간에 거리가 생긴다. 타격 거리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반성문 기간이 지난 뒤, 내 결투장은 보고서란 이름으로 올라갔다.
아, 달라진 것도 있었다.
탁! 탁! 탁!
팀장의 주먹을 연신 막자 생기는 소음이다.
"거참, 시끄럽네."
주변에서 더는 팀장과 내 대련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는 것과.
예전처럼 주먹질 몇 방과 발길질 몇 방에 내가 쓰러지지 않는다는 거다.
"시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백핸드 스윙이 날아온 걸 피하자, 팀장이 중얼거렸다.
팀장은 자기만의 룰이 있는지, 나에게 하루 십 분 이상을 투자하진 않았다.
대련은 어디까지나 십 분 내외다.
하루의 시작을 땀을 흘리며 시작하니, 어찌 보람차지 않을까.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정 교육을 어머니 주먹으로 살벌하게 받은 몸이다.
겉모양은 그렇지 않다고 해도 팀장이 나에게 하는 건 교육이었고 훈련이었으며 가르침이었다.
끝날 때마다 난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말했고, 그걸 들은 팀장은.
"시발."
항상 저리 답했다.
팬더 대리와 사수도 이제 이런 일상에 익숙해져서 우리 둘이 무슨 난리를 쳐도 묵묵히 제 일을 했다.
자숙 기간, 징계를 자숙이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간이 끝난 뒤 사수는 날아다녔다.
비약 인간이란 무엇인가.
겁나게 잘 싸우는 인간이란 의미였다.
사수와도 몇 번 작전에 나가 봤고, 팀장과도 가 봤다.
다른 팀원도 봤고.
동기인 문신남과도 만났다.
바쁘긴 참 바빴다.
그렇게 석 달을 지내니 알겠더라.
왜 외부 보안 3팀에 있는 게 불행인 건지.
한때 내가 이 팀의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미운 오리 새끼가 여기에도 있다.
외부 보안 3팀이 그랬다.
성격 지랄맞은 팀장은 이 팀을 그렇게 만들었다.
이유는 몇 가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두 개였다.
하나, 싸움 못 하는 불멸자가 있다.
작전을 수차례 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외근을 나가지 않는 팬더 대리다.
그는 피를 보면 기절하는, 혈액 공포증을 앓고 있다.
시발, 이게 말이 돼?
팔이 잘려도 새로 돋아나는 불멸자가 혈액 공포증?
그래, 그렇다고 치자.
언젠가 나아지겠지. 실제로 그는 주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니.
둘, 불멸도 혼혈도 아닌 존재가 있다.
비약 인간 김정아가 그렇다.
화림 정보 통신, 이곳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자회사다.
회사 직원이 외부에 나가면 요원이 된다. 그 소속은 불멸특수대.
그런데 불멸도 혼혈도 아닌 애가 있네?
본래라면 절대로 여기에 발붙이지 못해야 정상인데.
팀장이 우겨서 데리고 있단다.
본래 우리 팀 별명은 쓰레기통.
남들이 쓰다 버린 쓰레기를 데리고 임무를 수행하는 팀장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그 인식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실적과 인정이 필요했다.
팀장은 가혹하게 팀을 운영했다.
새로운 신입이 오면 적응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고.
적응한다고 해도 능력 있는 이들은 곧 다른 팀으로 떠났다.
불멸 우월주의가 없다고 해도 비약 인간과 한 팀이 되는 걸 좋아하는 불멸자는 없었다.
실제로 내 사수는 동기도, 친구도, 동료도 없었다.
이 팀이 전부였다.
겉으로는 그녀를 회사의 동료로 여기지만, 진짜 동료로 생각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들어왔는데, 기가 막히게 적응을 잘한 거다.
내가 또 별명이 카멜레온이지.
어딜 가도 그 색에 맞추는 인간 분위기 메이커라 이거다.
이 모든 정보는 요한이 형이 줬고 요한이 나한테 쓸데없는 정보, 어디까지나 팀장 기준에서 쓸데없다는 거지, 나한테는 유용했다. 하여간 정보를 줬다는 걸 안 팀장은 요한이 형을 나흘 동안 괴롭혔다.
퍽.
지나가다 주둥이를 후리고.
"마음에 안 들게 생겼어."
다리를 걸었는데 피하자 로우킥으로 넘어뜨리고.
"마음에 안 들게 생긴 주둥이야."
보이는 족족 나흘 내내 이랬다.
요한은 나에게 팀장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었다.
가능하면 시도해 볼 텐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지.
하루에 십 분, 그 대련을 통해 배운 것 하나.
난 아직 팀장의 바닥을 보지 못했다.
저 사람의 속내도 모르겠고.
덩달아 사수의 속도 모르겠다.
팬더 대리도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 모르고.
혈액 공포증이면 얌전히 집에서 로맨스 코미디나 보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여기서 불멸특수대로 일하고 있는 건지.
결론만 말하자면.
이 미운 오리 새끼인 3팀에는 실적이 될 만한 일도 거의 없고.
그런 기회도 없다.
다른 팀과 합작으로 작전을 실행해도 대부분 공적은 다른 팀 앞으로 간다.
팀장은 그거에 대해 불만도 없어 보였다.
사수도 팬더 대리도 마찬가지.
고로, 나만 불만 있다.
"선배, 수습 기간 끝나면 올해의 신입 사원 뽑거든요."
자리에서 고개만 살짝 옆으로 꺾어 말했다.
옆자리 사수가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 혜택이 장난이 아니에요. 성과급도 성과급이고 사옥 우선 배정도 해 준다고요."
"안다."
그 사옥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아는 걸까.
"근데 우리 팀 실적이……."
말끝을 흐렸다.
열심히 일하면 뭐 하나.
내가 여기서 자잘한 인베이더 대가리에 구멍 뚫을 동안.
다른 팀원은 큰 줄기 사건을 몇 개를 해치우는데.
이전에 내가 잡은 테러범, 그 새끼가 엮인 일 때문에 외부 보안 1팀과 분석팀 몇 개가 합동으로 작전을 실행했다고 들었다.
거기에 우리 팀 자리는 없었다.
신입 사원 평가 중에는 실적이 큰 파이를 차지했다.
"전 사옥 가고 싶거든요."
그곳은 복지의 꽃이다.
현재 내 훈련 성적은 A급.
필요한 건 실적인데, 초반 두 개의 사건 뒤에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티끌 모아 태산 모르냐?"
귀 밝은 팀장이 말했다.
"티끌은 모아도 티끌입니다."
내가 답했다.
"한마디를 안 지네, 시발."
제가 가정 교육은 제대로 받았는데, 또 쉽게 지는 법을 배우지는 않았는지라.
"말씀하시길래."
"대답하지 마. 혼잣말이다."
"알겠습니다."
"하지 말라고."
"네."
"하지 마."
"넵."
"시발."
이번에는 대답 안 했다. 했으면 진짜 죽일 것처럼 살기가 느껴졌다.
변신족의 고유 기술인 야성의 살기까진 아니지만, 기척 속이기를 변형한 살기다.
"오늘 회식인 건 알지?"
뒤에서 팬더 대리가 말했다.
"네, 압니다."
모든 회사 사원이 모이는 전체 회식이다.
입사 이후 한 달 뒤에 하거나, 아니면 수습 기간이 끝나면 한다.
요즘 특수종 범죄 비율이 늘어서 바빴다고 했다.
그래서 전무, 이사 하여간 높으신 분들의 판단하에 수습 기간이 끝난 뒤로 회식이 잡혔다.
창밖으로 겨울의 이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시간이 되자.
"가자."
팬더 대리가 말했다. 회식 시간이었다.
"네."
먹을 때 먹고 놀 땐 놀고 쉴 땐 쉬는 게 내 인생의 모토다.
내가 속한 팀이 미운 오리 새끼이건 뭐건 위장에 양질의 음식과 알코올을 채울 시간이었다.
공식적인 단체 회식이다. 우리 팀만 가는 게 아니다.
업무 끝나고 옆 팀도 그 옆 팀도 우르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장님이 직접 나선 버스터 콜의 위력이란.
어디 고깃집이라도 빌리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
우리가 불멸특수대고, 화림이란 가면을 쓰고 일한다고 광고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인 곳은 구내식당이다.
자리는 충분했다.
새로운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고 양질의 고기가 준비됐다.
변신족의 후각이 그걸 잡아챘다.
냄새 죽이네.
그렇게 각 팀이 자리에 앉았고.
시발 팀장이 소주 뚜껑을 리드미컬한 박자로 땄다.
따다닥.
뚜껑을 열고, 조르르 한 잔을 따르고.
치이익.
그사이 팬더 대리가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곧 자글자글 기름이 튀는 소리가 났고.
"삼겹살은 지방을 녹여야 맛있다."
팬더 대리는 자신의 고기 철학을 읊었다.
술자리에서 고기 굽는 부심 있는 사람이 있는 건 행운이다.
그는 제대로 구웠다.
팀장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꿀꺽하고 목울대가 쓰디쓴 액체를 넘겼다.
그걸 보며 난 생각했다.
팀장 양반, 술은 좀 하시나.
내 손은 맥주병을 잡았다. 병따개가 어디 있나.
회식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인가.
제대로 된 폭탄주를 만들 줄 아느냐, 마느냐다.
퐁. 맥주 뚜껑을 땄다.
경쾌한 소리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불량 학생이 되진 말아라.
하지만 그렇다고 못 논다는 소리도 듣지 말아라.
어머니는 나에게 가르치셨다.
콸콸콸.
맥주와 소주의 비율을.
아버지는 나에게 가르치셨다.
잔을 휘돌려 내 손안에 작은 회오리를 만드는 법을.
잔을 들어 원을 그렸다.
맥주와 소주가 섞여 흰색 회오리 포말을 만든다.
손에 쥔 잔에 자연의 신비가 담겼고.
시선이 느껴지기에 보니, 사수가 날 빤히 본다.
"왜요?"
"나도 한 잔."
뭐, 어렵다고.
폭탄을 말았다.
소주 반 잔과 맥주 반 잔의 환상적인 조화가 막잔에 담겼다.
사수가 그걸 받아서 꿀꺽꿀꺽 삼켰다.
"……맛있네."
사수가 말했다.
에헴, 당연하다.
부모님께 배운 비장의 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