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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39화 (39/488)

39. 갖고 싶은 거

"니 이름은 왜 말하고 다니냐? 스타 되고 싶냐?"

팀장이 물었다.

"실수입니다."

"아, 난 또 니가 연예인이 꿈인 줄 알았지."

"아닙니다."

진짜 실수다. 관등 성명을 대는 연습을 하도 시키니까.

그리고 그 타이밍이 그랬다.

적당히 긴장을 풀었고, 기남이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딱 그 순간에 예상치 못한 질문이 들어왔고 굳이 비밀도 아니기에 신입 사원이라고만 말하려고 했다.

아니, 그냥 일반 사원.

그런데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거다.

신입 사원 유광익이.

"내가 스타를 몰라 뵙고 지금 지랄하다가 나중에 엿 될 수 있잖아요. 시발."

자기가 하는 걸 지랄이란 걸 알다니, 당당한 사내, 우리 팀장은 사나이다.

"지랄이요?"

굳이 짚어서 말하자.

"시발, 듣고 싶은 것만 골라 듣네?"

네, 제 귀가 어느새 그렇게 됐습니다.

베스킨고막스 서티원.

팀장은 욕하지만, 뒤에서 팬더 대리는 웃었다.

사수도 아침에 보자마자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는 이게 그녀 방식의 칭찬이란 걸 알고 있었다.

사고 쳤다.

블랙홀을 막은 건 명령 불복종이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강희모 대리님이 명령했고, 난 그걸 따랐다.

그러므로 이번 일은 공적이었다.

수습 사원, 아니 입사 후 첫 공적.

자타가 공인한 첫 공적이다.

사고 제대로 친 거다.

고작 수습 사원이 3급 수배범을 잡은 것도 부족해서, 그 수배범의 뒤를 캐 보니 프로메테우스란 테러 집단의 조직원이란 것도 밝혀졌다.

그 새끼가 보통 새끼가 아니었다는 거다.

"테러범 잡아서 좋냐?"

솔직히 좋지만, 우리 팀장의 성격을 생각해봤을 때 순순히 답해 뭐하나.

아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소 뒷발로 쥐 잡은 격이라고 말하려 했다.

"네, 적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입은 날 배신했다.

가끔 내 입에 또 다른 자아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시발."

팀장이 축객령을 내렸기에 내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난 프로메테우스란 여섯 글자를 되새겼다.

테러 단체. 세상에 불을 가져온 신처럼, 이 세상 모든 인간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하겠다는 미친 과학자 집단이자 테러 단체다.

생각이 자연스레 프리랜서 우체부까지 이어졌다.

그 여자가 운송하던 정보는 사이오닉 단체의 것이었다고 하는데 기밀 중의 기밀이라고 했다.

강희모 대리는 굳이 날 불러 이 모든 걸 말해 줬다.

브리핑 이후 흘러가는 일도 알아야 한다면서.

누구와 다르게 몹시 친절했다.

그 덕분에 내가 한 일의 가치를 알았다.

어쩐지 어깨가 으쓱한걸.

나 이번에는 진짜 잘한 거니까.

팀 실적에 공헌한 남자가 된 나는 적당히 다리를 벌려 앉은 채로 모니터를 켰다.

허리도 뒤로 젖혔다. 여유 넘치는 회사원의 자세를 완성하니, 기분이 좋았다.

"유광익 씨?"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누군가 부르게 고개를 들었다.

금테 안경의 말쑥한 정장 차림.

눈에 익은데.

"같이 좀 갑시다."

익숙한 얼굴과 기질, 기억은 쉽게 떠올랐다.

그리 오래된 날도 아니다.

오티 마지막 날에 봤던 양반이다.

금테 안경과 그 기척 죽이기.

같은 숙소를 쓰는 순혈과 혼혈의 불멸 모두의 감각을 속이고 들어왔던 남자, 남명진 사장의 비서다.

"어딜요?"

나도 모르게 묻자.

"위로."

그가 답했다.

"다녀와."

팬더 대리가 뒤에서 말했다.

왜라고 묻고 싶은데,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꽤 건방진 물음처럼 들릴 것 같았다.

이중봉 팀장에게 덤비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이쪽은 나와 접점이 적은 인간이다. 회사 생활 잘하는 법을 떠올렸다.

시키는 거 잘하면 된다.

"넵."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비서가 이중봉 팀장을 향해서 가볍게 목인사를 했다.

팀장은 알았다며 대충 손을 저었다.

이 둘은 또 무슨 관계야.

원래 사장 비서가 좀 더 높은 거 아닌가?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시발 팀장이 더 높은 직위 같았다.

"갑시다."

그가 말했고 난 그 뒤를 따랐다.

승강기를 타고 9층으로 갔다.

9층, 승강기에서 내리니 또 다른 비서가 보였다.

어지간한 연예인 뺨에 핵 펀치를 날릴 외모의 여성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쯤.

실제 나이는 그보다 많겠지.

순혈로 보였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여자가 일어나서 말했고 날 데려온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끼익.

두꺼운 나무문이 열렸다.

"안으로."

비서가 말했다.

"혼자요?"

끄덕.

남자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쓱하네.

안으로 들어가니 문이 하나 더 보였다.

미닫이로 보여, 슬쩍 밀어서 고개부터 들이미니, 사장의 사무실이 보였다.

한쪽 벽이 전부 창으로 되어 있어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창가를 우측에 두며 벽을 등진 자리에는 원목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가운데는 긴 소파와 테이블, 상석에는 1인용 소파가 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그런 사장 사무실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고급스럽긴 했다.

"왔으면 앉아."

문을 반쯤 열어서 구경할 거 다 하니, 사장이 말했다.

"네, 신입 사원 유광익."

말하고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이 보였다.

"그렇게 경찰이랑 변신 애들한테도 소개한 건가?"

인사하자마자 공격이라니.

"실수였습니다."

우리 팀장에게 하던 것처럼 덤빌 순 없기에 얌전히 말했다.

"알지. 그래, 그런 실수도 하고 그래야지.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어."

"감사합니다."

"마셔."

"네."

커피잔을 들어 맛을 봤다.

커피 맛은 쥐똥만큼도 모르지만, 비싼 원두로 내린 커피라는 생각은 들었다.

"테러범 잡았다며?"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

눈웃음을 보이는 사장이다.

"감사합니다."

"갖고 싶은 거 있어?"

대뜸 묻는 말에 나도 모르게 이 사무실이 탐난다고 할 뻔했다.

아니지, 그건 좀 이르지.

"진급?"

사장이 물었다.

난 아직 수습 사원이고, 3개월 이후에 이 수습이란 딱지를 뗀다. 그럼 그때는 3급 사원이 되겠지.

"대리로요?"

혹시 몰라 물으니.

"너 도둑놈 심보구나."

사장이 웃음기를 섞은 말투로 답했다.

"하하, 농담입니다."

대충 넘겼다. 혹시나 했지.

대리로 바로 진급시켜 주면 고민해 볼 만하잖아.

"3급 사원은 바로 시켜 줄 수 있지."

사장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3급이라. 그건 딱히 굳이.

2급도 아니고 3급?

그건 석 달만 있으면 자동인데?

"나랑 독대하고 말도 안 되는 진급까지 시킬 일은 아니다. 신입이 했으니까 놀랄 일인 거지."

사장이 말했다.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본 말이다.

사실 나도 그리 큰 기대는 안 했다.

사장이 한 말은 사수가 이미 말해 준 내용이었다.

칭찬은 하지만, 그 자리에 내가 아니라 강희모 대리가 있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라는 거다.

불멸특수대는 그런 곳이었다.

체에 거르고 거른 특별한 인재가 남은 곳.

그래서 시험도, 오티도 살벌했고.

"그럼 절 왜?"

사장이 일개 사원, 그것도 아직 제대로 3급 사원도 못 단 날 왜 부르나.

딸깍.

잔을 내려놓은 사장이 상석에서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기특하잖아."

뭐지, 저 눈빛.

과외 선생 둘은 날 향해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사수는 말은 없어도 날 꽤 괜찮은 녀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팬더 대리는 날 향해 흥미를 보이고.

팀장은 매일매일 날 어떻게 엿 먹일까 고민했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똑같이 했다.

사수는 존중해 주고, 팬더는 동물원에서 구경하듯 봐주고.

팀장에게는 매일 어떻게 엿 먹일까 고민했는데.

사장의 눈빛은 통 알 수가 없다.

이 양반 무슨 생각일까? 고민은 짧았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사장의 이런 관심은 호의가 기초일 테니, 이게 나쁜 건 아닐 거고.

난 그냥 회사 잘 다니고 진급 제때제때 하고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 된다.

그 와중에 배울 만한 건, 다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갖고 싶은 거 없나?"

사장이 물었다. 진급도 아니고 팀을 옮길 필요도 없다. 그 외에 딱히 다른 것도 바랄 게 없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돈이요."

말해 뭐해.

회사원에게 승진과 월급 빼면 뭐가 남겠나.

돈이 남지. 돈이 최고지.

"참신하네. 알았다. 나가 봐."

사장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로 말했다.

볼 일은 이게 끝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비서의 안내를 받고 승강기를 타고 자리로 돌아왔다.

"시발."

팀장이 내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뭐가 또 아니꼬운 겁니까.

"네, 신입 사원 유광익."

내가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답했다.

"우리 기남이가 왔어야 했다. 저 새끼 말고, 저 새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 대답하는 건 더 기분 나쁘고."

팀장이 말했다.

너희 기남이, 내가 작전 있는 날 말로 탈탈 털어 줬는데.

그날의 일을 전부 말해 주고 싶었다.

아니, 말해 줘야겠다.

나 아직 보고서 쓰기 전이었다.

"보고서 쓰겠습니다."

외근 이후에는 보고서다. 이게 기본이다.

말하고 집중했다.

명필과 명문을 넣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시간이 지나갔다.

보고서 쓰는 법은 팬더 대리에게 배웠는데, 간단명료하게 사실만 명시하라고 했다.

난 그 사실을 좀 디테일하게 썼다.

정기남이 넋 놓고 있던 순간은 묘사로.

나와 있던 대화는 큰따옴표를 넣어서 대사로 구성했다.

결재란에 내 사인을 넣고 사내 ERP 프로그램을 통해 팀장에게 보냈다.

팀장이 결재하면 위로 올라갈 보고서다.

"뭘 세 장이나 써."

팀장이 내 보고서를 곧바로 확인했다.

세 장도 잘 간추린 거다.

"반푼아."

팀장이 날 불렀다.

금방도 읽었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가며 답했다.

"네, 신입 사원 유광익."

팀장은 웃지도,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모니터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툭 뱉을 뿐.

"시방새."

그 말 이후 갑자기 덤비는 건 아닌가 경계하는데, 팀장은 제 옷을 찾더니 사무실을 나섰다.

"저거 다른 팀으로 보내."

나서며 팀장이 말했다.

"맨날 말만 그렇게 하시고."

팬더 대리가 답하며 내가 올린 보고서를 열었다.

당연히 팀장의 결재 사인은 공란이었고.

그걸 다 읽은 팬더 대리는 한참 킥킥댔다.

"하아, 너 소설이나 쓰지 그랬냐?"

웃다가 찔끔 나온 눈물을 닦은 팬더 대리가 말했다.

"그건 현실 기반이니까 수필에 가깝습니다."

내가 답했다.

"금요일이니까 다 끝냈으면 가라."

팬더 대리가 말했다.

어느새 해가 져서 어둑어둑했다.

팀장도 갈 때 돼서 간 거고.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사수를 슬쩍 봤다.

근데 이 양반은 주말에 뭐할까.

회사 끝나면 매일 기숙사로 직행한다던데.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즐거운 주말 보내십쇼."

인사하고 돌아섰다.

금요일이다. 불금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내 사랑 PL4와의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속닥거리며 출입구에 선 연인이 보였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가장도 봤다.

그 외도 사람, 사람, 사람.

테러 단체의 위협이 터져서 매스컴을 타긴 했지만, 그 일로 내 신상이 밝혀질 일은 없었다.

물론 얼굴도.

노이징 시스템이란 게 있다.

내 얼굴, 개인 신상명세가 인터넷에 올라가는 걸 막는 거다.

테러범을 잡은 일로 포상을 받았다.

그럼 그 일로 세상이 변할까?

아니겠지.

겨우 그런 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내 통장의 숫자가 변할 뿐.

부르르.

폰이 울었다.

사장은 약속했다. 회사 생활에서 돈 제때 입금 안 해 주는 게 최악이라고.

그래, 나도 동조했고.

사장님은 약속대로 당일 입금하셨다.

인터넷 뱅킹 만세.

화림 정보 통신 만세.

내 통장에는 현상금과 포상금 포함해 880만 원이 들어왔다.

월급보다 많았다.

"세상은 장밋빛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옆에서 그걸 들은 여대생 하나가 힐끗 날 보더니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일찍 왔네?"

집으로 향하니 어머니가 날 반기셨다.

"네, 소자 왔습니다."

"저녁은?"

"주세요."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이번에 일 잘했다고 보너스를 받았어요."

"이제 꼴랑 몇 달 다녔다고 보너스?"

테러 조직원을 잡았거든요.

"제가 업무상 과실을 찾아서 수정했거든요."

정기남이 놓친 걸 제가 잡았죠.

새삼 뿌듯하군.

"그래, 잘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난 품에서 오만 원권 스무 장이 담긴 봉투를 꺼냈다.

"내복 선물은 너무 고리타분하니까."

말없이 받으신 어머니는 조용히 품에 챙기신 뒤, 냉장고를 열며 말했다.

"나으리, 이베리코 목심을 사 둔 게 있는데 어떠하신지?"

"에헴, 그래, 한번 내와 보게."

곧 둘이서 킥킥대며 고기를 구웠다.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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