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예민함 (1)
"이 새끼가, 너 이게 재밌지? 앙? 나 놀리냐?"
다음 날, 팀장이 반성문을 들고 말했다.
"네?"
난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훌륭한 연기력이었다.
"봐, 저거 나 놀리잖아."
팀장이 말했다. 팬더 대리와 사수는 답하지 않았다.
눈치는 더럽게 빨라요. 어떻게 나흘이나 돼서 자기를 놀린다는 걸 깨닫는 거지.
"오냐, 오늘 날 잡자."
평소와 같이 팀장과의 교육 대련이 시작됐고.
난 팀장이 쓰는 몇 가지 기술을 더 훔쳐 배웠다.
오후에는 분석팀 대리 호출로 4층으로 향했다.
회의실을 빌려서 그곳에서 정식 브리핑을 들을 시간이었다.
"얼굴이 왜 그러냐?"
보자마자 대리가 물었다.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채니, 저리 물을 만도 하지.
"이중봉 팀장님과 수담을 나누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 너 외보 3팀이지."
네, 제가 바로 그 외부 보안 3팀의 신성, 다크호스, 샌드백, 동네북 유광익입니다.
염병, 언젠가 팀장의 뒤통수를 까고 말 거야.
내가 먼저 왔고 다음으로 우미호가 왔다.
"넌 정말 아둔해."
오자마자 날 칭찬하는 말을 듣자니, 새삼 이 친구의 성격을 되새기게 된다.
이런 개나리가.
다음은 기남이였다. 너희 기남이가 왔다.
"신입 사원 정기남입니다."
"그래, 알지."
생긋 웃은 분석팀 대리는 모니터를 켰다.
"대강 상황은 알 거야. 우리는 현장에서 초능 무기 전술팀과 합류할 거고, 그 팀의 보조를 맡는다."
팬더 대리는 능력이 없다고 했지만, 분석팀 대리는 훌륭한 화자였다.
요즘 또라이 팀장 또는 말 짧은 사수와 지내다가 정상인을 보니 눈과 귀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남이가 내부로 들어갈 거고, 너희 둘은 입구 쪽에서 대기할 거다."
내가 손을 들었다.
"응?"
"왜 기남이만 들어갑니까?"
"기남이?"
정기남이 내 말에 반응했다.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라."
"그럼 동기끼리 뭐라고 부르냐?"
내가 답했다.
"동기?"
너랑 내가? 눈썹 씰룩이고 표정만으로 그리 말하니, 주먹이 운다.
한 대 후려치고 싶네, 새끼.
"대리님도 호칭 똑바로 부탁드립니다."
와, 염병 개나리 새끼.
아버지 정말 이런 새끼도 동기니까 사랑해야 할까요? 주먹으로 사랑을 전하고 싶네요.
"……어, 그래, 그쪽에서 요청한 건 뛰어난 감각의 불멸이니까 정기남 사원만 들어가는 거지."
대리님, 왜 이렇게 순둥이십니까.
저 싹수 노오오란 신입 사원에게 당장 ‘네 이놈! 이 싸가지없는 놈!’하고 뺨을 갈기셨어야죠.
저희 팀장님 반만 닮으셨다면 지금 저 새끼의 손모가지를 부러뜨리셨을 텐데.
대리님은 넉살 좋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둥, 분위기를 몰아갔다.
근데 뛰어난 감각의 불멸? 이 새끼는 그냥 예민 보스 아니었습니까.
"작전에 이의 있으면 말해, 근데 어지간하면 바꾸는 거 없다. 어차피 우리는 보조로만 가는 거고 전투 쪽에 관여할 일은 없으니까."
"네,"
나라도 얌전히 대답해 주자.
우미호가 눈썹을 씰룩였다.
"인력 낭비입니다. 이런 일에 불멸이 넷이나 가는 건."
"정확히는 진짜 불멸 하나와 쭉정이 셋이겠지."
기남이 중얼거렸다.
다 들려, 이 미친 새끼야.
그리고 쭉정이 셋? 너 지금 대리님도 포함한 건 알고 하는 말이냐?
"……너희 사이 안 좋니?"
대리는 제 욕을 들었음에도 팀워크를 걱정해 말했다.
그래, 나한테는 그렇게 들렸다.
일을 하려면 사이가 좋진 않아도 손발은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그런 느낌의 의문이다.
이 대리님, 성격이 좋은 걸 넘어서 너무 물렁물렁한데.
요즘 하도 거친 사람만 봐서 내가 이상해진 건가, 아니다. 그냥 물렁하다.
"일은 일이다. 정신 차리고."
대리가 말했다. 그 말투조차도 부드러웠다.
"브리핑은 그게 전부입니까?"
기남이 물었다.
"응. 그렇지."
간단한 내용이긴 했다. 정기남은 안으로 나랑 우미호는 밖.
그리고 분석팀 대리님은 외부 상황실에서 통신 전달 및 전체 상황 파악.
위치 선정과 할 일이 정해졌다.
나랑 우미호가 할 일은 혹시나 생기는 특별한 상황을 대비한 스페어였다.
"그럼 전 먼저."
기남이 일어나 나갔다.
나가는 그를 보고 우미호가 말했다.
"작전 지휘관이시라면 더 중심을 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게 효율적입니다."
"어, 그래."
"브리핑이 끝났으면 저도 가 보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우미호가 말하고 나갔다.
둘만 달랑 남았다. 난 상대를 위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정기남 저 새끼가 좀 그렇죠? 동기라서 죄송합니다. 우미호는 네, 압니다. 부끄럽네요."
"어쩔 수 없지. 난 혼혈이니까. 여긴 또 능력 우선이니까. 난 불멸 쪽 피가 좀 옅거든."
불멸특수대는 애초에 불멸 중에서도 거르고 거른 이들만 들어오는 곳이다.
고등학교로 치면 상위 몇 %만 가는 과학고요. 대학으로 치면 카이스트 같은 곳인데.
일단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능력을 증명한 거 아닌가.
물론 이 안에서도 경쟁은 있다.
안다. 그리고 일찌감치 진급과 기타 여러 가지를 포기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수긍했고 일어났다. 어쨌든, 일은 일이니까.
일만 잘하자.
"내일 뵙겠습니다."
난 바르게 인사하고 나섰다.
"쉬운 작전이라고 해서 작은 낌새도 무시하지 말고, 에, 음, 더 해 줄 말은 없네."
네, 조언 감사.
그나마 난 좋게 봤는지 그가 웃었다.
강아지상의 대리는 웃는 얼굴이 참 매력적이었다.
느낌으로 보자면 연상 킬러.
누나들이 보면 환장할 그런 얼굴이다.
다음 날, 우리는 인천 공항 앞에서 만났다. 아예 출근을 이쪽으로 했다.
공식 외근 두 번째, 작전 참여 두 번째다.
대형 관광버스가 외부 상황실이었고.
일에 관련된 초능 전문 특수팀, 줄여 말해서 PWAT 팀을 만났다.
SWAT에서 파생된 초능을 지닌 경찰 특공대였다.
팀장은 잘 빠진 여자였다.
외모는 불멸자에게 익숙해진 나에게는 그냥 평범한 정도고.
일반인이 보기에 한 번쯤은 되돌아볼 그런 얼굴이었다.
"불특대 베타 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코드는 베타.
순서대로 베타 영, 하나, 둘, 셋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필요한 일은 전부 숙지하셨죠? 돌발 행동은 삼가시길 부탁드리고 한 분은 안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준비는 끝났습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얼굴로 수수하게 말하는 대리와 딱딱하게 할 말만 하는 상대 팀장이다.
각자 자리를 찾아갔다. 난 우미호와 게이트 5번 입구 앞에서 대기했다.
안쪽 유리로 정기남과 몇 사람이 보였다.
그럼 일단 통신 수신 상태부터 확인하고.
"베타 셋, 수신."
귀 옆에 붙이는 작은 통신기를 통해 말하자, 상대의 답신이 왔다.
"베타 하나, 방해되지 않게 비킬 것."
정기남이 답했다. 저 새끼는 인성에 문제 있다. 확실해.
아니면 어디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웅변 학원이라도 나왔을 거다.
"베타 제로, 확인."
베타 셋은 이번 작전 내 코드명.
베타 하나는 정기남.
베타 제로는 분석팀 대리였다.
당연히 베타 둘은.
"앞쪽 거수자 둘."
우미호다. 그녀가 앞을 보고 말했다.
무테안경에 정장 차림, 넥타이까지 맨 마른 남자와 비슷한 차림의 더벅머리의 남자다.
겉으로 보면 수수한 회사원 같았다.
아니, 겉으로만 그리 보였다.
뭐야, 이 새끼.
불멸의 감각이 상대를 감지했다. 흰 와이셔츠와 각 잡힌 정장 바지 안쪽, 탄탄함을 넘어서 단단함이 느껴지는 근육의 소유자다.
잘 포장된 폭탄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리얼 가드에서 왔습니다. 조금 늦었네요."
둘이 다가와 말했다. 내가 상대를 알아보듯 상대도 우리를 알아봤다.
아군이다. 그것도 어머니와 같은 일족, 변신족이었다.
리얼 가드는 엑스큐라시 휘하, 미국에 본사가 있는 경호업체의 이름이었고.
"네, 불특대 베타팀입니다."
내가 말하자, 무테안경의 남자가 눈웃음을 보인다.
"네."
둘이 말하고 우리를 스치듯 들어갔다.
저 둘이 이번 작전에 투입된, 형태변환 초능 특수종을 잡을 탐지견이었다.
"생긴 건 멀쩡하네."
"그런 거에 신경 쓸 바에 지나가는 사람이나 하나 더 보는 게 좋아."
혼잣말에 우미호가 답했다.
그래, 일하자. 일.
내가 너나 기남이랑 무슨 말을 하겠니.
착하고 똑똑하고 잘생긴 내가 참자.
누군가를 잡기 위해 기다린다는 건 참 지루한 일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도 초겨울에 밖에서 찬 바람 맞으며 마냥 기다리는 거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이십 대 여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떠나는 커플.
중년 남자, 회사원으로 보이는 사람, 때에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남자.
짐도 없이 급히 움직이는 사람.
셔츠 한 장만 입고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
저 사람은 여행사 직원이다.
아까부터 항공사 카운터랑 공항 안에 있는 여행사 부스를 오가더라.
의심 가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면 내 감각에 걸리지 않거나.
그나저나 정기남은 뭐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 안에서 저러고 있는 걸까.
여행사 부스를 가장한 곳에 앉은 채로 멍하니 앉은 놈이 보였다.
모자에 선글라스 끼고 있는데도 눈썰미 좋은 여자 몇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간다.
그래, 모자와 선글라스로 가렸어도 저 미모는 어디 안 가지.
우미호와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면밀히 말하면 우미호 쪽이 좀 골치였고.
"저기, 혹시 연락처 좀."
우리도 적당히 야구 점퍼에 모자 쓰고 우미호는 마스크까지 했는데도 벌써 다섯 번째 연락처 사냥꾼이 나타났다.
야, 주겠냐?
거울에게 물어봐라. 거울아, 거울아, 내 얼굴이 헌팅에 적합하니?
거울에서 주먹이 튀어나와 면상을 후려치겠네.
"결혼했습니다."
그런 시도를 우미호는 확실하게 거절했다.
유부녀 드립.
"애 있습니다."
엄마 드립.
"저 남자입니다."
트랜스 드립까지.
"에이, 그러지 말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놈이 있었다.
그런 놈은 내가 나섰다.
"뭐야? 누군데?"
남친인 척 사기다.
나도 딱히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귀찮은 똥파리는 치워야 할 거 아닌가.
"아, 죄송합니다."
아무리 질긴 놈이라도 내가 나타나면 다 튀었다.
내가 또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옷 위로 드러날 정도로 탄탄한 근육의 소유자 아닌가.
변신과 불멸의 혼혈이 준 튼튼한 육체는 겉으로 보기에도 참 단단해 보인다.
어딜, 감히 내 여자한테.
연기를 실감 나게 하려고 나 스스로 최면까지 걸었다.
"과해."
우미호가 그런 날 향해 핀잔을 줬다.
"내가 뭐든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라."
대답하고 상황을 살피는 중이다.
감각을 확장한 채로, 주변에 흐르는 소리, 직감의 경고를 기다리는데.
"베타 하나, 확인 요망, 남색 셔츠, 연 청바지 삼십 대 초반 추정의 남자."
정기남이 말했다.
남자?
브리핑받을 때 찾을 상대는 여자라고 했었는데.
하긴 상대는 쉐이프쉬프터, 형태변환자다.
불특대 채널에서 말한 거지만, 곧 외부 상황실, 관광버스에 있는 대리가 전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공항 곳곳에 숨어 있는, 아까부터 특이한 인간을 찾는데, 혈안이 된 내 감각을 방해한 이들이 움직였다.
깍두기 아저씨 같은 남자와 날렵해 보이는 트레이닝복의 여자, 그 외에도 정장 차림의 남자 하나.
셋이 끝이 아니다.
곳곳에 자리 잡은 PWAT를 지원하러 온 일반인 코스프레 중인 특공대도 나섰다.
형태변환자는 기본적으로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
변신은 전투로 쓸 초능력이 아니니까.
난 정기남이 지목한 놈을 찾았고 살폈다.
뭐가 다르지?
내가 보기에는 이제까지 지나간 놈들과 다르지 않다.
"리얼 가드 쪽에서 교차 확인했다. 80% 이상이다. PWAT 쪽에서 제압할 거다. 우리는 지켜만 본다."
통신을 들으면서도 난 정기남과 내 차이를 찾기 바빴다.
뭘 보고 저쪽이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보기에는 그게 그건데.
"정기남이 왜 특별 대우를 받는지 몰라?"
내가 고민하는 모습이 느껴졌는지 우미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