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너희 기남이
"전 여기 남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다.
또라이 팀장과 투덜이 팬더 대리, 얼음덩이지만 사실은 따뜻하고 후배를 인정할 줄 아는 사수.
겉으로 보면 믹서기요. 안에서 봐도 좋을 것 하나 없는 팀이다.
"사장님 때문이냐? 그건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박필로 팀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렇게 대놓고 러브콜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야, 이 새끼야, 아니라잖아."
팀장이 껴들었다. 저걸 보니까 새삼 남기로 한 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만.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했다.
박필로 팀장과 이중봉 팀장.
직급이 같고, 한쪽이 화림의 로열로드이자 앨리트 코스라는 감사팀이지만.
실력 차이가 이렇게 심해서야.
내가 봐도, 둘이 붙으면 이중봉 팀장이 이길 거라는 직감이 온다.
저 또라이 팀장이 사회 적응 능력은 최하위여도 전투력만큼은 최상급이라는 거다.
난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직급 채우고 빨리 승진하는 것과.
본연의 실력을 키우는 것.
두 개로 나눈다면 배울 게 있는 쪽에 남는다는 거다.
성격은 개차반 같고.
"남는다는데에에에, 어쩔 건데에에에."
박필로 팀장을 놀리는 걸 보면 확실히, 무조건 또라이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솔직히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렇게 날 넉 다운시킨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시발 팀장, 이 새끼야, 나이를 잊었냐? 혀는 왜 내밀고 지랄이야.
"그럼 왜?"
박필로는 시발 팀장을 외면하고 날 바라봤다.
"배울 게 많이 남았습니다."
"반성문이나 쓰라고 시키는 저 작자 밑에서?"
내가 반성문 쓰는 거 벌써 유명하구나.
"네."
담백한 대답이었다.
그 말에 박필로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작자? 나보고 그런 거냐?"
우리 팀장이 코에서 김을 뿜었다.
화난 용과 같은 기세다.
박 팀장은 그걸 사뿐하게 무시했다.
"가자. 심 대리."
"네? 네."
심 대리가 주섬주섬 일어나 제 팀장 곁에 붙었다.
"야, 어딜 그냥 내빼."
"팀장님, 팀장님, 우리 팀장님, 여기까지. 건드려서 좋을 거 없어요."
궁둥이 무거운 팬더 대리가 나와서 팀장을 말렸다.
상황이 종료됐다. 팀장이 입을 삐죽거리다가 몸을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당연히 남는 거지, 뭘 대단한 일 했다고 서 있어."
아, 보기 싫은데 실실 쪼개는 걸 봐 버렸다.
성격 나쁜 양반 같으니라고.
뭐, 실력도 실력이지만.
난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김정아 사수가 내 어깨를 두드렸고, 팀장은 그 사수를 위해 또라이 본연의 모습으로 징계 위원회에 선 걸 봤고.
그 모든 상황을 짐작한 팬더 대리는 한숨 한 번에 이 일을 털어 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같은 말씀을 하셨다.
판단이 어려우면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겸사겸사 배울 것도 배우고.
생각하며 앉는데 뒤에서 섬뜩한 느낌이 뒷골을 후렸다.
급히 고개를 숙이니 휙 하고 뭔가가 내 뒤통수가 있던 자리를 스쳤다.
"어쭈? 피해?"
"……뭡니까?"
팀장이었다.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살금살금 다가와서 왜 뒤통수를 후려.
"기특해서."
팀장이 말하고 나갔다.
"이거 뭡니까?"
팬더 대리를 보고 묻자.
"기특해서 그런다고 하네."
"기특한데 뒤통수를 까요?"
"넌 아직도 팀장님을 모르니."
아니, 이제는 좀 안다.
저건 정상인이 아니지.
괜히 남겠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다.
훈련하고 가끔 문서 작업 끄적대고 출근하면 반성문을 썼다.
두 번째 반성문에는 진심을 조금 더 담았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제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이거 몇 자나 써야 합니까? 폰트는 뭐로 하고요?>
내 진심, 호기심을 담았다.
"이런 또라이가."
그럼 팀장은 어김없이 달려들었다.
오전 일과 중 하나다.
반성문을 제출하고 덤비는 팀장과 어울리고.
처음과는 달랐다. 많이 달랐다.
배운 게 있었고 곁눈질로 배운 것도 많다.
주먹질 몇 번으로 이길 순 없어도 빨리 끝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자.
"오늘도 5분 본다."
팀장과 나와의 대련을 보고 주변 직원이 내기를 걸기 시작했다.
"7분 28초, 내 직감이 얘기한다. 오늘은 그 정도는 버틴다."
그동안 내 최고 기록은 4분 52초.
그런데 5분? 이 새끼가 내 성장 정도를 우습게 보네.
쩍!
팀장과 대련 나흘째였고.
그날 난 6분 1초를 버텼다. 거기에 팀장은 처음으로 발을 썼다.
이제까지는 주먹질만 했는데.
싸우긴 또 오지게 잘 싸우는 양반이다.
난 배웠다. 익혔고, 그의 기술을 쏙쏙 빼먹었다.
솔직히 말해서 즐거운 나날이었다.
이상하게 재밌다.
그 이외에도 훈련 과정이 더 있었다.
전투 운전, 방어 운전, 총기 사용,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법.
다른 특수종을 상대하는 법, 일반인과의 마찰이 생겼을 때의 대응법.
배울 게 더럽게 많았는데, 난 이게 전부 재밌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고.
불멸과 변신의 화음이 기가 막히게 어우러진 내 몸은 그 모든 훈련을 수월하게 해나감에 성취감도 느꼈다.
아, 뿌듯해.
"자, 여기서."
그리고 변한 게 있었다.
김정아 사수, 이 작자가 날 데리고 다니며 1:1 코치를 하기 시작했다.
"느낌, 넌 불멸, 그 느낌에 의존해라."
사수가 간간이 팀장을 상대하는 법도 알려 줬다.
"그럼 사수는 어떻게 합니까?"
불멸의 감각이 없음에도 사수는 근접 전투 능력 A클래스를 가졌다.
"다 막는다. 누구나 손은 두 개니까."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녀는 말보다 행동으로 설명했다.
그편이 나도 이해하기 쉬웠다.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동기의 얼굴보다 팀원의 얼굴만 보고 끝내는 하루가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사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 붙들었고, 우리 둘은 붙어 있는 시간이 정말 길어졌다.
이렇게 가까워지다 보면 정말로 우리 집 식탁에 앉힐 수도 있지 않으려나.
그러지 말자. 진짜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속임수. 팀장님 버릇없다."
여기서 버릇이란 습관이란 의미로 쓴 단어였다.
자신의 몸을 온전히 컨트롤하기에 그렇단다. 버릇조차도 속임수로 쓴다고?
그거, 참 괜찮은 방법이네.
팀장을 상대하는 법을 떠나, 팀원으로서의 전투 포지션도 가르쳤다.
"넌 저격수다."
근접 전투는 팀장, 중거리 전투는 사수가 탑 클래스다.
그러므로 약간의 노력만으로 어지간한 저격수 뺨을 때리는 불멸이기에, 저격수 포지션은 가장 쉬운 포지션이었다.
"컴벳 디렉션을 잡아 보자."
화자가 말하는 재주가 없어도 청자가 영리하면 괜찮은 케미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 우리 둘이 그러했다.
그녀는 훌륭한 교사는 아니었다.
내가 만나 본 과외 선생 둘과 비교했을 때, 가르치는 재주가 많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대신 몸으로 직접 보여 줬다.
그리고 나한테는 그게 더 빨랐다.
그녀가 서 있는 자리, 움직이는 패턴, 그 모든 걸 기억하고 되새긴다.
왜 그 순간에 왼쪽으로 빠지는가.
왜 그 순간에 사격이 아니라 근접 전투를 대비하는가.
각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주변에서 외부 보안 3팀이 개차반 같아 보여도 팀워크가 좋다는 말이 나올 때쯤이다.
"이거 누구 보냅니까?"
"반푼이."
팬더 대리가 말하고 팀장이 답했다.
여기서 반푼이는 나였다.
꽝에서 반푼이로 호칭이 변했는데 하나도 기쁘진 않았다.
내일 반성문에는 웨이브를 막을 당시에 내가 했던 일이 반푼이의 최선이었다고 써야겠다.
"에, 그죠. 나갈 사람이 없네."
팬더 대리가 말했다.
김정아 사수에게 내려진 징계는 작전 참여 불가.
고로 사수는 나갈 수 없다.
근데 왜 그게 징계냐?
"어딥니까?"
입 무거운 사수가 먼저 물었다.
"아직 몰라. 하여간 인간들이 치사해. 약점을 들춰서 징계를 먹이고."
약점은 뭔데.
호기심을 담아 눈빛을 발사하자.
"뭐, 시발, 뭘 꼬나봐."
팀장이 반응했다. 나중에 사수한테 슬쩍 물어봐야겠다.
대답해 주려나?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지.
"어딜 갑니까?"
이제 슬슬 적응해서 나도 곧잘 물을 건 묻곤 했다.
한 사람 몫을 한다는 건 이미 증명했고.
수습 사원이라도 일은 해야 하는 거니까.
외부 보안 3팀은 현장 요원이 중점인 팀이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전이나 미션에 참여하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막 그 일이 들어온 거고.
"공항 가서 인간탐지기 좀 하고 와."
팀장이 말했다.
"뭘 해요?"
"거기 가면 인간 탐지견도 몇 마리 있을 거다."
염병, 알아듣게 좀 말해라.
"다른 팀에서 지원 나온다냐?"
날 무시한 채 팀장이 팬더 대리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간다는데요."
"누구?"
"기남이요."
"우리 기남이?"
나를 두고 잘도 말을 나누는군요. 두 분.
거기에 우리 기남이는 뭡니까.
우리 광익이라고는 한 번도 말한 적 없으면서.
"네, 기남이하고 미호도 보낸답니다."
"엘리트 사이에 반푼이를 끼워서 보내야 하냐? 하긴 원래는 정아 보내면 될걸, 시발. 거지 같네."
네, 듣는 제 기분도 거지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트 둘보다 제가 더 훈련 성적이 좋은데요.
오티 성적 따위 이미 잊은 지 오래여야 정상 아니냐.
겉으로 보면 정기남은 더럽게 예민한, 아직도 제 감각을 다 컨트롤하지 못하는 반푼이인데, 다들 그 새끼는 특별 취급이란 말이지.
"신입만 갑니까?"
사수가 물었다.
"잔챙이 잡는 일이야. 우리는 보조로 가는 거다."
팀장이 답했다.
이제 진짜 무슨 일인지 들어야 했다.
"설명해 줘."
팬더 대리가 사수에게 말했고.
"대리님께 들으면 안 됩니까?"
난 훌륭한 청자였지만, 작전 브리핑은 어지간하면 정상인에게 듣고 싶다.
사수도 말하는 것만 보면 정상은 아니라고.
설명을 더럽게 못 한다.
피티 발표시키면 팀원 전부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든가."
팬더 대리랑도 그동안 꽤 친해졌다.
그가 브리핑을 해 줬고.
난 왜 팀장이 나한테 인간탐지기나 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불멸의 감각은 특별하다. 거기에 직감과 육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반은 점쟁이 수준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수상하다고 하면 정말 수상한 사람이 잡히는 거다.
물론 이게 완벽한 건 아니다.
그래도 꽤 확률 높은 수상한 인간탐지기가 될 수 있었다.
"잡아야 할 놈은 얘. 변신의 귀재. 초능 특수종."
그러니까 초능력자.
가진 능력은 쉐이프쉬프터.
우리나라에서는 형태변환능력이라 불리는 거다.
자신이 기억하는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기에 도망 다니며 스파이짓 하기에는 최적의 능력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떤 능력도 완벽할 순 없다.
특수종이 나온 지 긴 세월이 지났고, 과학과 편집증적인 집요함은 모든 능력의 약점을 찾아냈다.
동공의 색, 머리카락, 외모 모든 게 변하지만, 형태변환도 냄새를 지울 순 없다.
"아, 그래서 탐지견이 오는군요."
"진짜 개가 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닙니까?"
"엑스큐라시 산하 국내 업체에서 변신족 보낸다는 거야, 여기만큼은 또 그 애들이 최고잖아."
팬더 대리가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후각은 변신족이 최고라는 소리다.
이 양반도 살 조금 빼면 기가 막힌 미모일 텐데.
살을 안 뺀다.
오티 때 만났던 푸름이가 생각난다. 요새 다이어트는 잘하고 있나 몰라.
"그래서 제가 할 일은?"
"병풍처럼 서 있다가 네 어설픈 감각에도 수상한 놈이 걸리면 넌지시 얘기해 주는 거."
……꼭 내가 가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일을 굳이?"
제가 가야 합니까? 홀로 웨이브 블랙홀을 막은 신성이? 화림의 다크호스가?
"최소 불멸에서 세 명을 요청했고, 이 일로 돌릴 인력 따윈 없다. 그래서 신입 셋만 가는 거고 인솔자로 분석팀 대리가 따라가긴 하지만 그 작자한테 뭘 기대하진 말고."
팬더 대리가 말했다.
브리핑 이외 필요한 정보다.
"네."
대리는 별일 아니라고 했다.
1년에도 몇 번은 쉬이 일어나는 요청 건이라고.
불멸과 변신을 그저 센서로만 생각하는 애들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수상한 놈을 말해 주면 땡이다.
그럼 잡는 건 그쪽 인력이 한단다.
그쪽 인력은 경찰 직속의 특수종 부대로.
초능력자로 이뤄진 부대란다.
국가 소속 초능 부대라고 하니까.
왜 파워레인저가 생각이 나냐.
근데 그런 일에 왜 정기남과 우미호는 따라올까.
그 의문을 꺼내어 물으니.
"이 건은 정확히 정기남 같은 애를 요청한 거고, 너는 그러니까 표면적으로는 불멸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경호원? 그런 거지."
회사에서 이전 내 전투 능력을 높게 사긴 했나 보다.
그 기남이 새끼를 호위하라고 날 붙인 걸 보니까.
아, 기분 엿 같네. 이상하게 기분이 안 좋네. 아무래도 내일 반성문은 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해야겠다.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다.
"야, 우리 기남이 잘 지켜라."
팀장이 말했다.
네, 너희 기남이 방심하면 뒤통수를 후리고 오겠습니다. 시발 팀장님.
내일 반성문 기대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