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거 원래 이럽니까?
인류는 오랜 시간 인베이더와 싸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그동안 상대를, 그러니까 인베이더의 출현 패턴을 파악했다.
기출 문제를 수십 번 풀어보면 그 문제의 해답을 아는 법이다.
인류는 그렇게 했다.
블랙홀이 생길 때마다 그걸 연구했고, 거기서 나오는 특수한 파장을 찾아냈다.
블랙홀은 열리기 직전 특별한 아우라를 내뿜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슨 에너지를 뿜는단다.
그래서 그 뿜어내는 아우라의 농도와 형태를 보고 블랙홀의 형태를 파악했다.
얼마나 빨리 열리는지, 아우라의 농도와 색을 판독해 어떤 방식으로 인베이더가 이쪽 세계로 넘어오는지.
단순히 인베이더를 상대하는 법을 넘어선 쾌거였다.
그 덕분에 피해는 줄었고, 대응 방법은 다양해졌다.
배경 지식으로 보면 이 판독기는 초능 단체 사이오닉이 만들었고.
덕분에 지금도 그 초능 단체가 명맥을 유지한다고 한다.
나야, 뭐 판독기를 누가 만들었고 그 이면에 깔린 정치 따위야 알 바 아니었다.
난 헬멧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간소화된 브리핑이었다.
그것도 전문 용어로 점철된.
"원 앤 UC, 핫 라인, 언택트 가드 경보 발동 중."
사수의 목소리. 평소와 같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현 상황을 알렸다.
D랭크 임무, 그러니까 랭크는 곧 블랙홀의 수준을 말했고, 거기서 인베이더가 출현한다는 보고였다.
풀어서 말하면.
‘원’은 넘버 원 인베이더 출현.
‘UC’는 그 외 다른 인베이더가 나올 확률도 있다는 것.
‘핫’은 블랙홀이 열리는 속도를.
‘라인’은 블랙홀에서 인베이더가 나오는 형태를 말한다. 라인은 한 마리씩 질서 정연하게 나오는 거고.
‘언택드 가드’는 경보 시스템을 말하는 거다.
웨에에에에에에엥!
더럽게 시끄럽네.
작전 지역에 근접한 뒤로 계속 내 청각을 괴롭히는 언택드 가드의 경보음이다.
이 소리는 곧 주변에 블랙홀이 열렸다는 소리고 당장 피하란 말과 동의어였다.
그러니까, 이 소리가 들리면 튀란 거다.
괜히 얼쩡대다가 인베이더에게 죽으면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개인 보험에도 인베이더 피해 보상 보장이 없다.
정확히는 한 십 년 전에는 있었는데 블랙홀을 이용해 자살하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없어졌다.
본래라면 보험 사기라고 해도 적당히 잘 팔아먹었을 텐데.
인베이더에게 죽은 인간이 진짜 운이 나빠 뒈졌는지, 아니면 의도해서 자살한 건지, 어떻게 판단한단 말인가.
보험 회사는 못 먹는 감을 깔끔하게 포기했다.
헬멧이 어느 정도 소음을 막아 주는데도 경보음이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주변에 오가는 차, 사람 모두 알아서 피할 판이었다.
그런 내 눈앞에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검은 구멍이 보였다.
열리기 직전의 블랙홀이었다.
국도 옆의 논밭, 그 허공에 덩그러니 구멍이 생긴 거다.
저기서 인베이더란 침략자, 괴물 따위가 튀어나오는 것만 아니라면 참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걸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저 왜 긴장됩니까."
첫 실전이다.
인베이더가 덤벼서 어디 한 군데 박살 나도 회복하는 불멸이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지.
나도 사람이다.
거기에 선배와의 돈독한 감정 교류라도 할 겸 물었는데.
얼음 김정아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아니, 이럴 때 회사 선배로서 긴장도 풀어주고 그러는 게 정상 아니냐.
난 구멍을 주시했다.
앞으로 수없이 보게 되겠지만, 처음이라는 두 글자는 사람을 쉬이 감상에 젖게 만들기 마련이다.
왜 저걸 보고 모든 사람이 블랙홀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알겠다.
허공에 뻥 하니 뚫린 검은 구멍은 블랙홀이란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렸다.
과거의 기억이 편린처럼 떠올랐다.
휴즈 게이트 사건 때, 내 앞에는 저것보다 몇 배는 큰 구멍이 열렸었다.
공포와 두려움 사이로 안도감이 스며들었을 때.
난 결심했었다.
저 블랙홀에서 나오는 모든 새끼를 조지는 삶을 살기로.
오늘이 그 삶의 첫 단추를 끼우는…….
"화기 확인."
선배의 말에 상념에서 나왔다.
나름대로 의지를 다지는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깨졌다. 이 작자는 진짜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다.
지금 되게 막, 응?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이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그런 삘이었는데.
"네."
물론 난, 입 닥치고 가져온 총기를 확인했다.
"글록 17, 열일곱 발 탄창 둘, 확인 이상 무."
현재 파악한 바로는 저 블랙홀에서 나오는 인베이더는 많아야 다섯에서 열.
그래서 D랭크 임무다.
거기에 전 세계 통일로 만든 넘버링 표기법에 의하면 넘버 원의 인베이더가 나올 예정이다.
그러니까, 졸라 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일은 일.
감정 교류할 줄 모르는 사수도 자신의 화기를 확인했다.
"유닛 하나, 둘 작전 지역 도착."
감정 없는 사수의 목소리가 헬멧을 통해 들리고.
난 첫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무장이 과한 게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빨리 열리는 블랙홀인 핫이긴 했지만, 나오는 놈들 머리통에 총알만 박아 주면 끝날 일이다.
긴장이라는 두 글자를 슬며시 마음에서 지울 무렵.
어서 빨리 인베이더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고 싶은 욕구를 끌어올릴 그때쯤.
웅.
이해할 수 없는 변화는 그때 생겼다.
"으음?"
불멸의 감각이 먼저 상황을 포착했다.
육감에만 느껴지는 구멍의 아우라가 변한다. 정확히는 팽창했다.
깜빡하고 냉동실에 넣어 둔 사이다 페트병처럼 블랙홀의 구멍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팽창이란 표현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냉동고에 넣어 둔 탄산 페트병이 불어나는 걸 느린 화면으로 보는 기분이다.
"사수?"
입을 열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거 원래 이럽니까?"
D랭크 블랙홀은 처음이다. 아니, 애초에 직접 이걸 처리하는 게 처음이다.
어릴 때야 당하기만 했고 그 뒤로도 이걸 눈앞에서 볼 일은 없었다.
이게 정상인가?
다시 눈으로 물었다.
헬멧의 페이스 가드 위로 무감정한 인형 사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와, 이 양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네.
그 표정에 느껴지는 건 당혹과 당황이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유닛 원."
사수가 출동할 때 받은 코드명을 말했다.
통신기를 통해 본부로 그대로 그 목소리가 흘러 들어갔을 것이다.
그녀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상황 TT, ES."
TT는 상황 변화를 말하는 것.
ES는 긴급한 상황이라는 거다.
어, 뭐냐, 이거.
"지원 요청합니다."
사수가 말했다.
위기다. 감각의 경고도 필요 없었다. 상황을 인지하고 직시했다.
"영상 송출해."
팬더 대리의 목소리다. 내가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헬멧에 있는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곧 팽창한 블랙홀의 모습을 본부에서도 볼 수…….
"이런 시발."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퇴각해."
돌아오란다. 그래, 회사 생활 별거 없으니, 시키는 거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된다.
"이제 가면 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사수는 말이 없었다.
"왜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녀의 눈이 뒤로 향했다.
이곳은 국도 옆의 논바닥이었고 우리 뒤쪽으로 몇 개의 인가가 보였다.
거리를 가늠해보니 대략 4~5km.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점이 찍힌 게 보인다. 그냥 점은 아니었다.
우사와 창고 건물, 집 몇 채 따위겠지.
이미 오면서 주변을 위성 지도로 살피고 왔다.
저 안에는 사람이 살 것이다.
잘해야 열 명 이내의 사람이.
이게 D랭크 블랙홀이었다면 모든 일은 수월하게 처리됐을 거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얌전히 넘버 원이란 눈먼 개의 머리에 총알이나 박아 줄 일이 꼬였다.
저 민가에 있는 사람, 그들은 곧 인베이더를 마주할 것이다.
국도야, 경보가 울린 직후 출입을 통제했으니 문제없다. 민간인 차량이 오갈 일은 없다.
하지만 저긴 아니다.
거리상 저들은 대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배웠다.
D랭크 블랙홀 발생 시, 인근 3km를 통제한다. 그럼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눈으로 가늠한 거리는 대략 4~5km,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면 이미 도망갔겠지만.
보통 사람의 귀에 이 사이렌 소리가 얼마나 명확하게 들릴까.
그것도 4km의 거리를 두고 말이다.
저 인가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명료한 정신이 그걸 인지했다.
불멸 대원은 고가의 인력이다.
산술적인 가치로 봤을 때, 고작 십수 명의 민간인과 등가 교환할 수 없다.
그러니 돌아가야 한다.
"지원 병력 나간다. 클로징 팀이 갈 거다. 아, 시발 저거 왜 계속 커져?"
통신을 송신 받으며 나도 봤다.
구멍이 이제 거의 내 키의 두 배만큼 커졌다.
아주 드문 경우, 블랙홀 상황이 변하기도 한다.
특수종에게 이레귤러가 있고.
일반인 중에서도 특수종만큼 잘 싸우는 사람이 있고.
넘버링 가운데 ‘네임드’란 인베이더가 있는 것처럼.
모든 블랙홀이 정해진 법칙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상태 확인, C랭크 웨이브 형태, 핫 라인, 위험 감지."
헬멧 안쪽에서 들리는 팬더 대리의 목소리.
웨이브 형태, 인베이더가 우르르 몰려나온다는 말이다.
"재수가 없네요."
"……그래."
내 말에 사수가 답했다.
인류는 대비했지만, 모든 일에 대비할 순 없었다.
이 블랙홀의 팽창 또한 마찬가지다.
저기 배 빵빵해진 블랙홀에서 나오는 건 넘버 원의 인베이더.
눈먼 개, 공식 명칭은 ‘블라인드 독’.
눈이 있는 자리가 밋밋한 검은 사냥개를 닮은 놈.
머릿속에서 수없이 외웠던 인베이더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체고는 50~60cm.
치악력이 강하고, 시속 70km 이상으로 달린다.
무리로 모이면 위험하지만, 개체 하나의 힘은 약하다.
별 한 개짜리 위험도의 인베이더.
무지막지하게 빠른 놈이다.
10km 안쪽 거리는 단숨에 주파할 것이다.
고로 저 새끼들이랑 달리기 시합은 불가능, 민간인이 저놈들을 상대로 도주하는 것도 불가능.
징후가 생기자마자 열리는 블랙홀을 핫이라고 한다.
그보다 느리면 웜, 가장 느린 건 콜드다.
대체로 핫 타입의 블랙홀은 인베이더를 라인 형태로 내보낸다.
풀어서 말하면 블랙홀 구멍은 금세 열리지만, 괴물 새끼들은 하나씩 나온다는 말이었다.
둘이나 셋씩 내보내면 컷 라인.
우르르 몰려나오면 웨이브다.
본래라면 핫 라인의 블랙홀.
열 마리 정도 나올 예정이었고, 순서대로 총알에 죽을 예정이었다.
"열립니다."
내가 말했다. 한 마리가 머리를 들이미는 걸 시작으로 오프닝이 시작됐다.
찌지지지직.
홀 중간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 중간에 개 대가리가 나타났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균열 중간에서 머리를 들이민다.
본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살덩이로 덮인 낯짝이 보였다.
머리를 다 꺼낸 놈이 침을 흘리며 짐승의 울음을 토해 낸다.
"크르르르."
"야, 너희 둘 다 돌아오라고."
묻고 싶었다. 우리가 돌아가면 저 뒤에 어설프게 자리 잡은 인가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나야 모르지.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지원 오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혹시나 물었다.
"유닛 2, 입 닥치고 사수 명령 따라라."
팬더 대리의 말이다. 평소의 여유로움은 사라진 그 말투에 상황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닿았다.
"지원은 최소 15분."
사수가 중얼거린다.
그럼, 저기서 지금 머리를 꺼내고 앞발을 반쯤 꺼낸 놈이 특유의 발달한 후각으로 저 뒤쪽 민간인 모인 곳으로 내달려 인간을 찢어발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겠군요.
"퇴각한다. 더 지체하면 우리가 타깃이 된다."
사수가 말했다. 아니, 근데 사수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왜 발은 가만히 멈춰서 있습니까.
"유닛 2, 명령에 따른다. 우리는 지금 즉시 차량에 탑승해서 이탈한다."
여기까지 운전하고 오신 분이 일단 운전석에 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그리 말하면서 토가레프에 손을 올리십니까.
"야, 너희 뭐하냐?"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팀장이 물었다.
철컥.
사수가 토카레프의 노리쇠를 당겼다.
장전 완료네.
탕!
그대로 날 직시한 채, 균열은 쳐다도 안 보고 쏜다.
탄환은 균열을 뚫고 나온 병아리 개새끼의 머리에 박혔고.
놈은 균열에 반쯤 몸을 걸치고 퍽하고 바닥에 머리를 떨궜다.
안 가냐고 물으려 했는데.
사수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사격 자세의 교본 같은 자세다.
이 양반 봐라.
안 갈 생각인데?
솔직히 그냥 돌아갈 줄 알았다.
작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 1,000명 이하.
인공지능의 발달과 새로운 자원이 투입된 과학의 힘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삼 분의 일로 줄였다.
그리고 매년 인베이더 사망자 수는 대략 5,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운 나쁘면 만 단위가 넘을 때도 있다.
질병과 교통사고 따위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 대신, 인간은 아직도 인베이더에게 죽는다.
희생은 어쩔 수 없다. 그럴 거로 생각했다.
당연한 거니까.
새삼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했는지 떠올랐다.
당연한 게 싫어서 시작한 거 아니었나.
"선배."
"왜?"
열린 균열 사이를 주시하며 내가 말했다.
"나 선배한테 반해도 돼요?"
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메마른 여자 같으니라고. 농담이 안 통해요. 농담이.
철컥.
나도 권총 노리쇠를 당겼다.
염병할 인베이더가 균열 사이로 대가리를 들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