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D랭크 임무
교육이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움직였다.
답을 알았으니 그 답을 말해 줄 차례다.
보고서를 쓰라고 했다.
오른손이었다고만 쓰면 되려나?
아니지, 기본 양식은 갖춰야겠지.
위쪽에 올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팀장님께 드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네.
막 자리에 도착한 순간, 놓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지? 뭘 놓쳤지?
머리에서 답은 안 나오는데 감각은, 불멸 특유의 육감과 직감은 느꼈다.
놓친 게 있다고.
그러니까 그게 뭐지?
천천히 상황을 되짚었다.
되짚은 상황 속에 답이 있었다.
내가 양팔로 안은 건 오케이, 그건 내 감각을 완전히 속여 먹었다고 치면 그만이다.
그럼 어떻게 그 타이밍을 알았지?
내가 덮칠 거란 걸 알아야 속일 수 있지 않나?
감각을 흔드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일까? 아닐 것이다.
그게 쉬웠다면 불멸자가 모든 특수종을 다 썰고 다녔겠지.
팀장은 미리 준비했다. 그 싸움의 와중에서 그 한순간을 노린 거다.
단 한 방에 끝내려고.
어떻게 알았지?
탁.
발이 멈췄다.
사무실 내 자리 앞에 선 채로.
시선이 자연스레 팀장에게 꽂혔다.
팀장은 귀를 파다가 날 바라봤다.
"봐, 저 새끼 내 욕하는 거 맞다니까. 지금 봐, 눈깔로 욕하잖아. 이 새끼야, 너 지금 상사 욕했냐?"
……운인가, 운일지도 모르지. 순전히 운으로 내 공격을 읽은 걸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뭔가 있다.
"아닙니다."
대강 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재차 고민에 들어갔다.
"저거, 저거 버릇없는 것 봐라."
팀장의 말은 무시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이제는 다른 화두가 생겼다.
염병, 숙제 한번 지독하네.
두 번째 문제는 금세 답이 나왔다.
첫 번째와는 달리 그 해답이 나한테 있었으니까.
기본이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배웠던 것 중 하나.
상대를 마주하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순간, 난 무엇을 하는가.
주먹이 오가고 스텝을 밟는 순간, 내 시각과 촉각, 육감은 무엇을 하는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듣고 보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팀장은 내 타이밍을 정확히 읽어 냈다.
단기 예지.
달리 말하면 ‘전투 예지’.
불멸의 감각을 제대로 키운다면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감각을 확장하면 가능할 것이다.
이 또한 깨닫는 순간 어떻게 하는지 알았다.
그와 함께 난 보고서를 꼭 손으로 쓸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숙제의 답은.
이거로 대신하면 그만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호기가 솟았다.
상대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는 생각과 새로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희열, 복합적인 감정이 날 움직였다.
"점심 먹으러……."
팬더 대리가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난 심장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기척 죽이기는 나를 보여 주지 않는 것.
그걸 반대로 한다.
우습게도 기척 속이기는 변신족의 비기 ‘야성의 살기’를 다루는 법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그걸 토대로 난 기척 속이기를 실현했다.
실제로 그리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움직일 것처럼 보여 준다.
사무실 한복판, 난 발을 한 번 내딛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당장 달려들 거란 착각을 줄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돌았나."
반응한다. 팀장이 자세를 잡고 순간적으로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탁자를 발바닥으로 밀었다.
구수한 냄새가 날 것 같은 고무 슬리퍼 바닥이 테이블을 나한테로 밀어냈다.
난 그 움직임 전부를 눈에 담았다.
완벽할 순 없다.
처음 해 보는 거니까.
하지만 흉내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감각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모든 신경을 상대에게 집중한다.
감각 확장으로 인한 단기 예지, 그러니까 전투 예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거다.
집중력.
상대만을 오롯이 내 인지 범위 안에 넣는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열린 감각을 통해 주변 모든 정보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와 뇌를 엉망으로 만들 테니까.
고요하다. 한없이 고요한 시간이다.
주변 소리를 차단한 채, 오롯이 집중한 순간이었다.
"웃냐?"
팀장이 말했다. 그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딱 한 번, 딱 한순간, 난 팀장의 다음 행동을 읽었다.
테이블을 밀고 기척에 반응하는 팀장의 움직임을!
"네."
대답과 동시다.
펑.
땅을 박차고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바닥을 박찬 힘을 이용해 몸을 내던지시다시피 했다.
팀장은 테이블을 내 쪽으로 밀며 그 힘을 사용해 뒤로 물러났고.
물러남과 동시에 왼발을 축으로 몸을 틀었다.
내 공격을 예상한 움직임.
그리고 난 그런 팀장의 목에 래리어트 어택을 먹였다.
팔로 감싸 그대로 질식시켜 줘야지.
그 야심 찬 꿈은 금세 깨졌다.
퍽!
목이 걸리긴 했는데 그사이에 팀장의 팔이 끼었고.
"이 새끼 봐라."
팀장의 웃는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염병, 내가 본 것처럼 팀장도 봤다. 수 싸움에서 졌다.
그와 동시에 상하좌우 공격의 기척을 느꼈다.
시발, 뭐가 진짜인지 모르겠잖아.
쩍.
턱이다. 주먹이 턱을 갈겼다. 숏 어퍼였다.
"욱!"
어금니를 꽉 깨물고 통증을 참았다. 칼날 구보에 비하면 한 대 맞는 거야 우습다.
턱을 맞아 균형감을 잃었기에 뒤에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버텼다.
그제야 탁하고 고무 슬리퍼가 바닥에 떨어졌다.
"너 뭐하냐?"
팀장이 물었다. 슬리퍼 한 짝을 잃어서 한 발을 다른 발 위에 올린 채였다.
"보고서요."
"뭐?"
"숙제 해답이요."
얼얼한 턱을 잡고 목을 좌우로 꺾었다.
우둑, 우둑.
"보고서라고?"
"이게 더 정확한 답 같았거든요."
내가 답하자.
"또라이네."
파티션 바로 넘어 외부 보안 2팀의 대리가 말했다.
소란을 일으켰으니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 정상이니?"
팬더 대리가 물었다.
"의무실 가 봐."
얼음 선배도 말했다.
화림에서 말하는 의무실은 하나다.
정신의학, 상담 치료 센터.
뭐라 답하기도 전이다.
"뭐, 시발, 답은 맞긴 하네."
팀장이 떨어진 슬리퍼를 발끝으로 가져와 신으며 말했다.
그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네?"
그 말에 내가 되물었다.
사실 욱하기도 했고 순간적으로 열이 올라 덤비기도 했다.
나도 나 자신이 왜 그랬나 싶었다.
아마도 순간의 희열 때문이겠지.
성적인 충동이나, 폭력의 충동 대신 찾아온 희열이 준 에너지.
고로 변신족의 본능이 몸을 먼저 움직여 버렸다.
그런데 팀장이 저리 말한다.
이 양반 정상인가?
"뭘 빤히 봐? 가서 커피나 타 와."
몸을 일으켰다.
커피 타는 건 팀의 막내가 할 일이다. 한번 시원하게 덤비고 한 대 맞으니, 아까 느꼈던 충동이 사라졌다.
"침 뱉으면 뒈진다. 내 미각 못 속인다."
네, 그런 짓 안 합니다.
예민한 불멸의 미각을 속일 자신은 없습죠.
무색무취 무미의 독약을 구하기 전에는 충실하게 맛있는 커피 믹스를 만들 겁니다.
그런데 팀장 이 사람 왜 이러나.
다짜고짜 덤볐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모르겠다. 커피나 타 와야지.
회사 생활 별거 있나.
시키는 거 잘하고 하지 말라는 거 안 하면 되는 거지.
* * *
"쟤 뭐한 겁니까?"
"기척 속이기."
동훈이 묻고 김정아가 중얼거렸다.
"몰래 가르쳤어요?"
동훈이 다시 물었다.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팀장이 답했다.
아니지, 절대 아니지.
"근데 대뜸 덤빈 걸 보고서라고 인정해 줍니까?"
"인상적이잖아. 시바."
중봉이 말했다.
표정 숨기는 거 하나는 자신 있었던 팀장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3팀장, 애들 교육 신경 써. 사무실에서 이게 뭔 난리야?"
예민하기로는 이 사무실에서 원톱을 다투는 외부 보안 2팀장의 말이었다.
"신경 쓰고 있는 거다. 이게."
"쫓아낼 거면 빨리 쫓아내든가."
2팀장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그 중얼거림을 못 듣는 사람은 없었다.
동훈은 생각했다.
3팀은 신입을 받지 않는다. 특히나 저런 새파란 신입은 원하지 않는다.
왜? 팀장님이 원하지 않으니까.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랬었다.
"김정아, 저거 몸뚱이는 어때?"
"육체 단련도만 봤을 때는 회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습니다."
선배이자, 광익에게 기본적인 격투술을 가르치는 사람의 말이다.
"어디서 배운 거겠죠?"
동훈이 물었다. 여전히 아까 그 비기에 꽂혀 있었기에 나오는 물음이다.
팀장은 생각했다.
배우긴, 그 거친 투박함, 제대로 배운 순혈이었다면 보일 수 없는 어설픔이다.
말 그대로, 지금 막 이 자리에서 깨닫고, 깨우친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익히자마자 써먹은 거다. 그것도 팀장 자신한테.
‘어디서 저런 게 왔을까?’
부모 얼굴이 궁금해졌다.
모든 불멸자의 개인정보는 기밀이다. 그건 부하 직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임원급이 아니면 볼 수가 없다.
혼혈인데 이 정도 재능, 이레귤러라고 퉁 쳐서 말하는 게 부족할 정도다.
중봉은 진심으로 광익의 아버지 얼굴이 궁금했다.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이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그래서 궁금했다. 신입의 부모가.
* * *
사격, 나이프 파이팅, 대인 전투 훈련, 인베이더 대비 전투 훈련.
훈련, 훈련, 훈련.
화림에서는 신입에게 지겨울 정도로 훈련을 강조했다.
나도 신입이라 그걸 감내해야 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
그러니까 출동도 없고 일도 없는 월급 루팡의 삶이었다.
훈련과 교육을 병행한 후, 인베이더 대비 몇 가지 포메이션을 배우러 갈 참이었다.
뚜르르르.
그때 전화가 울렸고, 팬더 대리가 받았다.
"네, 보안 3팀 이동훈입니다."
몇 마디 말이 오갔다.
일이 생겼다. 인력 자원이 부족해서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통화를 끝낸 대리가 팀장에게 보고했다.
이제까지 몇 번의 임무가 있었지만, 난 출전한 적이 없었기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데.
"정아야."
"네."
"꽝 데리고 갔다 와."
씰룩.
귀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꽝은 나를 지칭하는 말이고.
난 방금 팬더 대리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D랭크 임무를요?"
김정아가 물었다.
"손이 부족하다고, 염병, 우리가 뭐 남는 손이야?"
팀장이 말했다.
사수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가 편다.
감정 표현이 드문 사수이니, 이것만 봐도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 유광익."
대답하고 날 부르며 몸을 일으킨다.
각 잡힌 듯한 움직임이다.
일어나서 따라가니 지하 창고로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정확히는 무기를 보관하는 무기고였다.
"무장 챙겨."
얼음 선배가 말했다.
그 ‘무장’이라는 것.
그동안 입어 보고 휘둘러도 보고 조작도 해 봤다.
하물며 이 장비의 소재와 제작 과정까지 따로 배웠다. 그 장비들이다.
방검방탄복.
통신 장비가 부착된 방탄 헬멧.
손목 부착형 태블릿 PC.
무릎, 팔꿈치를 감싸는 티타늄 합금 보호대.
발목 위까지 완전히 감싸면서 사이즈 조절이 필요 없는 응축 가죽 전투화.
이 중에서도 헬멧은 세라믹 소재 위에 티타늄을 감싼 거로 인간의 과학 기술로 만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화림의 기술력이 집약된 물건 중 하나라고 했다.
손목시계 형태의 태블릿 PC나 다른 것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화이트홀 너머의 신소재, 새로운 자원을 인간의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
그게 바로 화림, 불멸특수대의 전투 복장이다.
옆을 보자, 얼음 선배가 옷을 갈아입는 게 보였다.
몸에 쫙 달라붙는 이너웨어 슈트다.
저것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일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기본 장구류 외에는 커스텀 장비를 맞추기 마련이었다.
오롯이 자기 기분에 더 잘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황금으로 도금한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말 다 한 거지.
"뭘 봐?"
몸매 훔쳐본 거 아니다. 커스텀 장비를 눈여겨본 거지.
"아닙니다. 개인 화기는 어떻게 합니까?"
임무는 D랭크, 본래라면 훈련된 일반인 분대급 병력이면 충분하다.
하지면 우리는 불멸특수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이다.
물론 개인 화기는 챙겨야 한다.
"권총 챙겨."
"네."
그리 말하며 사수가 토카레프 한 정을 챙겼다.
"그거 가지고 가시게요?"
"묵직하고 좋다."
이 양반 의외로 밀리터리 마니아일지도 모르겠다.
7.62mm탄을 쓰는 토가레프라니.
공식 명칭 tt-33, 여덟 발짜리 탄창을 쓰고 한 발이 한 발이 묵직한 맛이 있는 총이었다.
난 그 옆에서 글록 17을 들었다.
9mm 파라블럼탄을 쓰는 무난한지만 훌륭한 화기다.
D랭크 임무이니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심장이 콩콩 뛰었다.
어찌 됐든 첫 임무에 첫 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