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오른손이었다.
팀장과의 대련 이후, 다들 날 패배자라 놀리기에 전 직원이 한 번씩 비웃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냥 으레 일어나는 그런 일.
그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거였다.
그러니까, 변한 건 없었다.
얼음 공주와 눈인사를 했다. 이 선배는 언제나 1등 출근이고 오늘은 나도 좀 일찍 왔다.
자리를 잡고 앉으려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왔네, 꽝익이."
"뒤에 익자는 빼, 이건 그냥 꽝이야. 정기남, 우미호 놔두고 왜 하필 꽝이 왔어."
팬더와 시발 팀장이 같이 출근하는 모습이다.
둘이 나눈 대화를 듣자니 참 정겹다. 매일 듣다 보니 이제 이것도 익숙해졌다.
산유국의 왕자는 자비롭도다.
나는 관대하다.
"야, 너 속으로 내 욕했지?"
팀장이 물었다.
"안 했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했잖아."
"안 했습니다."
나는 관대하다.
"안 했다잖습니까."
팬더 대리가 말렸다.
"아니, 했어. 분명해, 아침인데 기분이 더러워. 특히 꽝을 보는 순간 기분이 더 더러워."
우리 팀장님이 기분이 나빴구나.
그랬구나.
근데 팀장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아침에 기분 좋은 적이 없지 않습니까?
"내 눈을 바라봐. 넌 내 욕을 했어. 내가 바로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야."
진짜 거짓말 탐지기 초능 특수종이 보면 배를 잡고 웃을 거다.
그리고 당신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이었어?
시발 두 글자로 모든 대화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방언이 터지더니 청산유수다.
언제부터더라.
아, 중력 제어 훈련 끝나고 나서부터 슬슬 입을 열었지.
중력 제어실에 처박아 놓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우고 싶은 인간…….
"봐, 딱 지금, 욕하네."
"아닙니다. 밑에 층에서 신입 오티 교육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이 새끼 도망가는 것 봐."
"그만 괴롭히세요."
팬더 대리가 피식 웃더니 자리에 앉았다.
소동 아닌 소동에도 김정아는 눈길 한번 안 줬다.
그래도 내 사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유심히 봐야 알 수 있을 만큼 작은 고갯짓이다.
그 길로 팀장의 지랄을 빠져나왔다.
"저 새끼 언제 한 번 걸려 봐."
"저번에 두들겨 팬 거로 성에 안 차십니까."
"시발, 차겠냐? 한 열댓 번은 더 해야지."
뒤에서 날 두고 떠드는 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아니, 옆 팀에도 다 들리겠다. 이 양반아.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붙을 줄 아나.
일단 숙제 해결하고 비벼 볼 만하면 그때 다시 붙을 거다.
그래, 숙제. 그 숙제가 문제다.
염병,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이 안 나온다.
난 팀장의 양팔을 붙들었고 조였다.
부러지거나 최소한 금이 갔을 거다.
그 상황에서 뭐로 내 머리를 후려갈긴 걸까.
발? 불멸자는 연체동물이 아니다.
오랜만에 어머니께 대련을 요청해서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 봤다.
양팔을 붙들린 상태에서는 발로 머리를 찰 순 없겠더라.
그러므로 발은 아니다.
그럼 박치기?
아니지, 그거라면 피했을 거다.
무기일까?
맨손 대련이었다. 암묵적인 규칙이었고, 보는 눈이 많았다.
아무리 막 나가는 팀장이라지만 신입이랑 대련하면서 몰래 무기를 쓴다고?
아니지, 그렇게 치사한 인간은 아니다. 아침마다 지랄맞은 성격으로 발광을 하지만 그런 인간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었다.
"엄마, 나 변신족이라 몸이 좀 튼튼하잖아요."
"그렇지."
"타격 한 방에 기절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보여 줄까? 문 크리스탈 파워 펀치로?"
"아뇨. 그냥 일반인이요."
어머니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넌 변신족 몸뚱이가 무슨 비브라늄인 줄 아니?"
"어제 어벤져스?"
"응."
밤늦게 영화 보시는 것 같더라니.
"그래도 튼튼하잖아요."
"특수종이라고 해도 몸의 구조는 인간과 같잖니, 그러니 단련된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단련, 그래, 팀장의 육신은 담금질된 강철과 같았다.
숙제의 답을 찾기 위해 맞아서 쓰러진 순간을 수없이 되새겼다.
그때의 감각을 기억했고, 그 순간을 복기했다.
양팔을 붙들었을 때, 팀장은 아주 단단했다. 커다란 바위를 안은 기분이었다.
적절한 힘.
완벽한 타격점.
두 가지를 갖췄다면 무엇이 가능한가.
나 같이 튼튼한 변신족도 쓰러뜨릴 수 있겠지.
그래, 이건 인정한다니까.
문제는 뭐로 쳤냐는 거다.
팀장 이 양반한테 꼬리가 달렸나.
생각하는 와중에 신입 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은 분석팀에서 교육을 나온다고 했다.
"꽝익."
"빵귀."
귀태 형과 마주했고 우리는 서로의 애칭을 불렀다.
"요한이는 요새 죽을 맛인가 본데. 저기 봐라."
먼저 대회의실에 들어가 널브러진 불쌍한 영혼이 보였다.
엎드린 채로 곤히 잠든 모습이다.
우리 요한이, 감각을 완전히 조절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잘도 자네.
사람은 많았고 한마디씩만 해도 꽤 데시벨이 높았다.
그 밖에도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오티 때 1조였던 문신남과.
내가 등 떠밀었던 비만 돼지 강푸름.
"넌 살 안 빼냐?"
"빼는 중."
여전히 말 짧고 사교성 없는 새끼다.
그리고 개싸가지 개나리 정기남과.
그에 준하는 싸가지 우미호도 보였다.
신입도 숫자가 꽤 되다 보니 이렇게 대회의실에 다 모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은 다 잘라서 교육하는데 오늘은 다 모였다.
분석팀 교육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한다.
아, 몰라, 지금 나한테는 숙제가 더 중요하다.
귀태 옆에 적당히 앉아서 물었다.
"불멸 중에 꼬리가 나는 사람은 없나?"
"……우리 광익이 아침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 마셨니?"
없군.
그럼 꼬리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냐.
"조용."
그사이 대회의실 앞에 사람 하나가 나섰다.
"옆 사람 깨워 주고 모니터 주목합니다."
귀태가 요한을 깨워 줬다.
그사이에도 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놈의 숙제, 빌어먹을 숙제.
뭐냐, 뭐로 때린 거냐.
"자, 저는 분석팀의 장호성 대리입니다."
귀는 대강 열어 뒀다.
화림의 교육은 굉장히 심플한 편이다.
딱딱한 사내의 시스템을 외우는 걸 제외하면 대부분 필요한 것만 머리에 넣어 준다는 개념이다.
이것도 모르면 제대로 일 못 할걸? 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들을 건 들어야 했다.
"분석팀은 다양한 일을 합니다. 위험인자를 추적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추측이나 예언을 듣고 그 이유를 찾는 일도 하죠."
대강 아는 얘기다.
그 말 많은 요한을 입 다물게 한 팀이다.
김요한은 분석팀 신입이었고, 덕분에 자기 인생에서 최고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외우고 익힐 게 다른 팀의 10배는 된다고 한다.
초반에 여유 있을 때는 분석팀의 대단함을 나와 귀태에게 열심히 설파하곤 했다.
"그중에서 관찰은……."
블라블라.
"특수종이 개입된 실종 사건은 골든 타임이 짧으므로 상황 분석이 아주 중요……."
블라블라.
그래, 그렇구나. 분석팀은 위대하구나.
외울 필요는 없으니 나도 개요만 머리에 넣으면 그만이다.
뭐로 때렸을까.
여전히 숙제 고민이 머릿속 대부분을 차지했다.
절간에 사는 스님은 화두 하나를 두고 평생을 참선하고 고민한다더니.
지금 내 꼴이 그렇다.
계속 귀는 열어 뒀다.
분석팀 장호성 대리는 적절한 템포로 계속 말을 잇는 중이었다.
"오라클 프로젝트라는 게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래를 예언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었죠. 그 여파로 나온 게 지금의 분석팀입니다. 네, 뭐죠?"
우등생 우미호가 대뜸 손을 들었다.
"예언가는 실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실재합니다."
예언가라니. 허무맹랑한 말 같지만, 진짜 있단다.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처럼 진짜 앞날을 예측하는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모든 예언가는 미래는 가변성이라고 말한다.
e=mc² 같은 소리다.
미래 = 가변성이란 거다.
미래는 끊임없이 변하므로 특정한 시점을 말하는 행위 자체가 또 다른 미래를 파생시킨다.
그러므로 예언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뤄지는 확률이 낮다.
고로, 모든 예언가는 거짓부렁쟁이다.
최근에 얼음 선배에게 특수종의 역사에 배울 때 들은 얘기다.
내가 또 이런 쪽에는 관심이 많아 즐겁게 공부한 편이다.
장비의 소재가 어떤 건지 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암, 오천 배 낫다.
"미래 예측은 말함으로 거짓이 된다. 하지만 말하지 않은 채 그 장면을 투영하고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다면, 그 미래는 실현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우미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니까 말하면 거짓이 되니까 말하지 않고, 그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만 한다는 거다.
"네, 그런 이론도 있었죠."
"실제로 구현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게 오라클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실패했다고 하셨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등생 포스가 절절 흘러넘치는구나.
동기 얼굴 몇 명에 불편한 기색이 보였다.
안 그래도 지루해 뒤지겠는데 왜 시간을 끌고, 지랄이냐는 그런 기색 말이다.
난 흥미가 생겨서 귀를 기울였다.
"역시 우리 미호, 영리해. 내가 반한 여자답다."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느라 고생이 많소, 우리 귀태 형.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저 우미호도 가만히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정말 아주 작게 간신히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이렇게 작게 말하는 것도 재주다.
"실패한 이유, 네, 많이 알려지진 않긴 했죠. 그렇다고 비밀도 아니니 말해 보죠. 간단합니다. 인간의 뇌는, 더 쉽게 말하면 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란 놈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장호성 대리가 자신의 머리를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예언의 능력을 가진 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는데 그들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것 중 사실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많았다는 거죠. 그것도 그럴듯한 게 많아서 많이들 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오라클 프로젝트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만들어 냈죠."
예언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일을 진실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들의 예언 메커니즘이 만들어 내는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은 진실이라 믿지만, 객관적으로는 허무맹랑한 얘기도 섞여 있다.
고로 인간은 착각한다.
착각, 그 두 글자가 뇌리에 남았고.
꽈릉.
머릿속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수없이 많은 인과가 머릿속을 스친다.
문장이 뒤엉킨다.
대련 상황이 되새김질 된다.
"팀장님은 왜 여기 있습니까?"
내가 물었고.
"사명감."
팀장이 답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지?
양팔을 조였다.
방금 장호성 대리가 뭐라고 했나.
인간의 뇌는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대련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었다.
그 비기의 이름은 무엇인가.
기척 죽이기다.
내가 배웠고 익힌 것.
불멸의 비기, 팀장도 순혈의 불멸답게 물 흐르듯 쓴 기술이다.
이 비기의 원리는 무엇인가.
인지의 혼란이다.
상대방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뇌는 순간 혼란을 일으킨다.
인지 부조화.
심리학에 이런 용어가 있다.
이솝 우화에 여우가 너무 높은 곳에 열린 포도송이를 보고 아무리 뛰어도 닿지 않자,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라며 포기하는 이야기가 있다.
상대가 눈앞에 있지만, 느껴지지 않으므로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게 기척 죽이기의 기본이다.
불멸의 감각은 유별나고 특출나기에, 상대가 인식하고 인지하는 감각에 주는 정보를 차단하는 게 가능하다.
그럼 그 반대는?
아니, 응용인가?
인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난 맞고 쓰러졌고 맞으려면 때려야 한다.
그 상황에서 무기를 쓰지 않고 때리려면 뭐가 필요한가.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주먹이다. 주먹으로 때렸다.
기척 죽이기의 응용.
깨달음과 동시에, 순간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았다.
기척 죽이기 다음 단계의 비기를 알 수 있었다.
기척 속이기.
상대에게 거짓 정보를 주고 착각하게 만드는 거다.
난 양팔로 팀장을 조였다.
그리고 팀장은 당했다.
난 팀장의 양팔을 다 붙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진짜인가? 깨닫는 순간, 내가 당했던 그 시간이 머릿속에 스치듯 떠올랐다.
초를 쪼갠 그 시간을 불멸의 감각은 느낀다. 복기하고 또 복기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한 장면을 내 머리가 제멋대로 구현했다.
팀장은 양팔을 붙들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오른팔은 빠져 있었다.
남들 눈에는 내가 덤벼 껴안고, 그대로 한 대 맞고 기절한 장면이지만.
나한테는 갑자기 떨어진 벼락같은 일격이었다.
"오른손이었네."
내가 말했다.
수업 중이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날 주목했다.
"……유광익 사원, 할 말이라도?"
"……죄송합니다."
달리 핑계 댈 말이 없었다.
"졸았습니다."
"조는 건 저희 팀 신입 하나로 충분한데요."
장호성 대리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한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저 사람이 꽤 무섭나 보다.
괜히 눈 밖에 났다.
이게 다 팀장 때문이었다.
어쨌든 숙제의 첫 단추는 풀었다.
날 때린 건, 오른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