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23화 (23/488)

23. 난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습이 왜 수습인가.

90일, 3개월 동안 회사 생활에 필요한 걸 배우고 적성에 맞는지 확인하는 시간인 거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습사원을 쳐 보면 이렇게 나온다.

회사의 일을 배워 익히는 과정에 있는 사람.

그래. 내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화림에서 배워야 할 건 참 많았다.

"방검방탄복. 재질?"

"바운스 레더와 케블라 합성 섬유입니다."

"오."

팬더 대리가 감탄했다.

"그거 외우는 게 뭐 어렵다고."

팀장은 툴툴거렸고.

나한테 질문한 인공미 넘치는 김정아 사원님은 담담히 날 바라봤다.

난 이어서 말했다.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합니다."

총탄이고 칼날이 다 튕겨내는 방호복이다.

거기에 내열과 방한까지 가능한 의복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설명하자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들어도 잘한 설명이었다.

"넘버 육십사."

팀장이 턱을 괸 채 물었다.

넘버링 질문이다. 그러니까 저 숫자에 맞는 인베이더의 이름을 말하면 된다.

근데 육십사가 뭐였더라?

생각하자, 유광익, 넌 할 수 있어.

집중했다.

"휠 나이트?"

"확실해?"

사실 몰라. 그래도 일단 질렀으면 고다.

"확실합니다."

"진짜?"

팀장이 되물었다.

"네. 진짜."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새끼야, 다녀와."

"네."

미친 인간들.

난 대답하고 일어나서 뛰었다.

어디로 가냐고?

그동안 사내에서 내가 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밥때 되면 식당.

그거 아니면 사무실 내 자리.

그리고 훈련장이다.

화림은 사내 복지 시설에 투자를 많이 했고 내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팔만복지대장경의 극치는 이 안에 있었다.

육체 단련, 동체 시력 훈련, 감각 제어 훈련, 중력 제어 훈련, 전신 구속 훈련, 홀로그램 대련 훈련 등등.

갖가지 상상력을 발휘한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이게 끝도 아니었다.

무소음 수면실과 물리치료실, 안마시술소, 음악감상실 등.

휴식 공간까지 완벽하다.

하지만 훈련장 외에는 구경도 못 해봤다.

왜냐고?

바빴다. 왜 바쁘냐고? 이 미친 팀장과 대리와 선배란 인간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수습사원으로서 의무를 강조했고.

참 많은 걸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까지 좋았다. 드디어 인정받고 이 회사의 제대로 된 톱니바퀴가 되는 거였다.

그래, 염병 내 착각이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팬더 대리가 처음에 저리 말하고 나한테 서류 더미를 줬을 땐 뭔가 했지.

"이게 뭔지 물어봐도 됩니까?"

예의 있게 물은 질문에.

"외워."

몰상식한 답이 왔다.

대충 봐도 파일 두께가 어지간한 사전 두께였다.

"몇 페이지까지요?"

희망을 품고 물으니.

"전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래, 수습 기간이 삼 개월이다. 삼 개월 동안 외우면 되겠지.

"나흘 준다."

나흘? 이 미친 팬더가 대나무를 못 처먹어서 미친 건가 싶었다.

"못해? 관두던가."

그 한 마디에 오케이!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흘 뒤, 시험이 시작됐다.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 시발."

그놈의 시발은 아주 입에 붙었네.

"하나라도 틀리면 그 시간부터 한 시간 동안 훈련장으로 간다."

이 정도면 가혹 행위 아닌가 싶지만.

문제는 내 육체가, 몸이, 염병 너무 튼튼하다는 거다.

하루에 내는 문제는 평균 열 개.

그중 세 개는 틀렸다.

저 서류철 하나 외우는 데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저 개애애애나아리이이 팀원님들께서 저런 서류철을 몇 개 더 줬거든.

첫 번째는 넘버링, 두 번째는 도핑약의 종류, 세 번째는 기본 장비.

"이걸 외우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는 겁니까?"

라고 한 번 물었는데.

"아하, 우리 수습 사원님께서 이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팀장이 진짜 더럽게 비아냥거렸다.

그래도 들을 건 들어야지.

"넘버링은 기본, 상대를 모르면 상대할 수 없다. 인베이더 내장에 들어갔다가 똥 되기 싫으면 외우는 건 당연하고."

팀장을 시작으로.

"네 몸을 파악하고 적절한 도핑약을 쓰는 건 기본이다. 칵테일 드럭 종류도 모르고 싸우겠다고? 넌 전쟁터에 총도 안 들고 나갈래? 뭐, 우리 광익이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응, 그치?"

팬더가 말을 받고.

"구조를 모르면 그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없다. 사용법만 아는 것과 무기의 구조를 파악하는 건 다른 문제다. 시키면 그냥 해라."

북극녀가 결론을 내렸다.

네, 하나같이 맞는 말이긴 하네요.

그래도 사흘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저 미친 삼 남매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외웠다. 사흘에 하나씩 추가되는 서류철을 머리에 때려 박았다.

간간이 이 사회를 이루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배웠고 만약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대응하는 법도 배웠다.

자주 틀렸고 틀리면 훈련장으로 뛰어갔다.

육체 단련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이 회사 사원 전부는 몸을 단련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누가 쇳덩이 드는 훈련을 좋아하겠나.

물론 난 조금 좋아한다.

거기에 이 작자도.

"광익이 어서 오고."

박다람, 오리엔테이션 때 대인 격투 교관이었던, 내부 감사 1팀장이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넌 무슨 훈련을 밥 먹는 것보다 자주 하니."

암기력이 부족하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제가 뭐든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 자주 보니 반갑다."

사내에서도 이 쇳덩이 드는 거에 중독된 사람이 몇 있었는데 박다람 팀장님이 그랬다.

그리고 난 자주 틀려서 절로 훈련 중독자가 되어가는 중이고.

그 외에도 고통 감내 훈련장에는.

"고통을 즐겨라."

사이코, 아니 빨간머리 양초 교관이 있었다.

김한, 내부 분석 2팀장이다.

오티 때 만났던 교관 셋 중 마지막이다.

첫 번째 라떼 교관, 이장모는 마지막 날 이후로 본색을 드러냈다.

그의 별명은 부처.

인사본부장이란 직책임에도 그는 모든 이에게 친절했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란 소리를 들었다.

오티 때는 컨셉이었다고 했고.

박다람 팀장님은 오티 때는 좀 깐깐해 보였는데 회사 내에서는 적당히 나사 풀린 모습으로 변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인간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직 살아 있군."

……거, 사람한테 할 말이요? 그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팀장.

"네, 뭐, 오늘도 열심히."

대충 답하고 들어섰다.

고통 감내 훈련.

들어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칼날 구보하고 숨 참고 여기저기 몸을 썰고 고통을 담담히 감내하는 곳이다.

다행인 건 여기는 주에 1회 이상 오지 못한다.

이런 짓을 자주 하다가 불감가학병에 걸린다든지, 미쳐버릴 수 있으니까.

주에 한 번도 많다.

이걸 자주 하는 선배는 정말 흔치 않았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하는 훈련이니.

"또 왔어?"

훈련 담당관이 날 보고 이리 말할 법도 하지.

"네, 뭐. 몸이 찌뿌둥하네요."

여전히 암기력이 병아리 대가리라서 왔다고 할 순 없지.

팬더 대리 말로는 이미 정기남과 우미호는 이걸 다 외웠다고 한다.

개나리들, 니들이 머리가 그렇게 좋았냐?

팀장은 이걸 나흘이 아니라 이틀 만에 끝냈고 얼음 비약 인간인 김정아는 사흘 만에 끝냈다.

이것보다 더한 인간도 있었다.

그 팬더, 그 둔해 보이는 곰탱이 대리는 하루 만에 다 외웠단다.

다들 왜 카이스트 안 가고 여기 있나 모르겠다.

천재 집단 나셨어, 아주.

외우고 훈련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꽤 힘든 시간이었다. 끝나고 귀태나 요한을 볼 시간도 없었다.

외우기 바빴다.

잠깐 쉬는 틈이라면 집에서 밥 먹고 씻을 때였다.

"아빠는요?"

"요새 출장이 잦네."

식탁 앞이었다. 요새 아버지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에는 별도 잘 안 보이니 이 말이 진짜였다.

최근 한 달간 진짜 마주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회사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말이야.

물론 기밀을 유출할 순 없다.

외부로는 불멸특수대라 불리는 집단은 사실은 화림정보통신을 비롯한 몇 개 회사의 집합체다.

더 세밀하게 말하면 정부가 키우는 회사가 출장 나가거나 외부로 파견 나가면 그게 불멸특수대가 된다.

그러므로 사내 기밀은 아무리 불멸을 가진 아버지라도 시시콜콜 말할 순 없었다.

몰래 말할 수도 없었다.

기밀 유지를 위해 사원 전부는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매주 거짓말 테스트도 했다.

손을 올리면 정전기 짜릿하게 느끼는 그런 기계 말고 진짜 거짓말 테스트다.

이 시대에 정밀한 기계는 필요 없었다.

초능 특수종이면 해결이다. 독심까지는 아니어도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명하는 기술은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나도 몇 번 만나봤고 단순한 질문 몇 개를 받았었다.

"기밀 유출했나요?"

"아니요."

대화 끝.

그것만으로 내 말의 진실 유무를 안다니까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엄마."

"왜?"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기민하게 음식을 입에 넣으며 내가 말했다.

"회사에서요."

"응?"

멸치볶음을 수저째로 뜨더니 입에 넣는다.

저 아름다운 얼굴에 저 먹성이라니.

아버지가 반할 만도 하시지.

반전미가 넘치신다.

"그, 음."

뭔가 앞뒤 다 자르고 말하려니까 이상하긴 한데.

"회사에서 좀 가혹하게 뭘 시켜요."

"뭘? 때려?"

아뇨. 제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겠습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일을 좀 과하게 가르치는 것 같아요."

이걸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네.

다 외우라고 하는 것들이 또 필요 없는 일은 아니니까. 저 말이 맞긴 하다.

그런데 말하고 나니 뉘앙스가 이상하다.

엄마 앞이니 투정이나 한번 부리고 싶어 말했는데.

"우리 아들 인정받는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졌다.

난 항정살 다섯 점을 한 번에 집어서 입에 넣고 여섯 번의 저작을 통해 고기를 잘게 부순 뒤, 꿀꺽 삼켰다.

"근데 그게 좀 과해서 힘드네요."

다시 투정.

"힘들면 관둬."

쏘 쿨.

어머니 쿨내가 진동하십니다.

그래, 투정은 무슨 투정이냐.

"아닙니다."

내가 택한 길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고.

물론 걷기 전에는 몰랐다만, 지금은 안다.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그러니까 못 때려치워요.

연봉이 육천오백이에요 어머니.

세상은 돈이 최고예요.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돈 때문에?"

어머니가 물으셨다.

이때는 난 이 질문을 다음 날 또 들을 줄은 몰랐다.

전혀 몰랐다.

"돈도 돈인데, 음, 그냥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말하면 어머니는 뒷목을 잡으시겠지.

아직 그런 불효자가 되고 싶진 않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날 구해 줬던 사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난 자주 그 사람이 생각났다.

아직도 누군지도 모르고 특수종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커오던 중이다.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 난 변신족의 몸을 가졌다.

자신이 재능이 있는 부분에 관심이 가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처음 해 본 게임에 미친 듯한 재능을 보인다면 당연히 프로게이머에 관심을 둔다.

타고난 미적 감각이 있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웹툰 작가가 되겠지.

이야기를 좋아하고 머릿속에 있는 걸 써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면 글쟁이가 되기도 할 거다.

난 몸 쓰는 재주가 꽤 뛰어났다.

그걸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다면 사람도 아니다.

그러고 싶었다.

그러면 이 초인적인 힘은 어디에 써야 좋을까?

일반인한테?

부모님에게는 군인이 된다고 했지만, 내 목표는 하나였다.

보통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힘.

철판을 우그러뜨리는 완력과 메이저리거가 던진 야구공을 낚아채는 순발력과 감각을 갖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베이더.

그래. 난 인베이더를 죽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명확하게 인류의 위협이 되는 적과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날 지켜줬던 그 등을 보인 남자처럼 말이다.

"어머니, 고기 더 없습니까?"

잠깐 딴생각하는 사이 어머니가 항정살 구이를 전부 해치우셨다.

"누누이 말했지."

"식탁 앞에서는 딴생각한 놈 잘못이다."

내가 말했다.

우리 집 가훈이다. 아니, 가훈까지는 아니지만, 지켜야 할 룰이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고, 씻을 때 씻고 놀 때 놀고.

"이제 너도 버니까 나가서 사 먹든가."

"아직 첫 월급 안 받았는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니, 일단 출근하면 직장인이지."

상관 많은데요.

그렇다고 말에 토를 달진 않았다.

새삼 내가 지금 회사 생활에서 버티는 이유를 알았다.

어릴 때부터 봐오던 어머니보다는 입에 시발을 달고 살지만, 설명까지 해 주는 팀장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팀장의 행동이나 말에도 어느 정도는 합리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자.

산유국의 왕자는 오늘도 합리적인 팀장에게 감사는 무슨, 팀장 개새끼.

자야겠다. 정신적 피로는 숙면이 답이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