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미운 오리 새끼
"우리 아들은 어디서든 잘할 거야."
출근 전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무렴."
아버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는 것처럼 걱정스러운 눈빛이지만, 그래도 믿음을 보이신다.
마음이 든든했다.
자신도 있었다.
난 이제까지 어디에 속하든 잘 지냈다.
학교도, 학원도, 하물며 옆집에 사는 혜민이와도.
지금에서야 혜민이도 순해졌지. 처음 봤을 때는 무서운 아이였다.
세상 전부에 원망과 원한이 가득해, 가출과 일탈을 일삼는 그런 아이.
그런 혜민이와도 잘 지낸 나다.
하물며 최근에 신입 사원 오티에서 또 깨달았지.
난 물에 물 탄 듯 잘 지내는 성격이란 걸 말이다.
그 싸가지 없는 정기남과.
옆에서 거드는 우미호를 두고도 난 오티 최고의 호감형 인간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아무리 까칠해도 기남이 새끼만 하겠나.
"너라면 괜찮을 거다."
하물며 어머니 몰래 아버지가 따로 이렇게까지 말해 주셨다.
적당히 눈치 볼 줄 알고 잘 녹아들 줄 알면 사회생활에 큰 무리가 없을 터였다.
인터넷에서 신입 사원의 몸가짐 따위를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첫날이니까, 옷은 정장이 낫겠다."
어머니의 의견과 내 마음이 같았기에 넥타이까지 맨 아침.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한 첫날.
여의도의 한 빌딩이었고.
난 덤덤한 척했지만, 적당히 긴장했다.
선임이 반겨주면 적당히 웃으며 겸손을 보여야겠지?
오티 결과는 이미 알고 있을 테고.
그렇게 튀게는 행동하지 않았다.
성적은 적당히 유지했고 인간관계에 집중했으니까.
튀지 않게, 눈에 띄지 않게, 그리고 적당히 잘 녹아들자.
오티에서 받은 사원증을 들고, 예전에 봤던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지나 승강기를 타고 7층에서 내렸다.
"후우."
숨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어 배정된 팀으로 향했다.
파견 본부 소속 외부 보안 3팀.
내가 소속된 부서의 이름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대강 알지만, 자세한 건 들어가서 배워 봐야 알겠지.
그렇게 내가 일할 부서에 도착했다.
책상 네 개, 하나는 비어 있고 세 개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블라인드를 반쯤 내린 창가를 등진 채 앉아 있는 어지간한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중년 남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팀장이겠구나 싶었다.
눈을 마주친 팀장이 먼저 환영 인사를 뱉었다.
"시발."
……응?
혹시 내가 아는 시발과 다른 의미의 시발이 있나.
저게 자기 부서의 배정된 신입 사원으로 온 사람에게 할 첫 마디로 적절한 건가.
그 바로 앞 책상에 앉은 둥글둥글한 얼굴의 남자가 날 바라봤다.
눈 밑이 검어서 팬더를 닮은 통통하고 귀여운 타입이다.
혼혈이겠구나.
그가 날 빤히 본 채로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장난합니까? 아니, 신입이라니? 장난하냐고!"
팬더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우리 부서 알잖아. 근데 신입을 보내? 이럼 안 되지.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경력직 보내라고. 그거 아니면 그 1등이나 2등이라도 보내 줘야지. 아니, 팀장님. 아니죠. 그건 아니죠. ……아 씨, 욕 안 했습니다. 안 했어요."
딸깍.
통화가 끝났다.
"앉아."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이다. 짧은 머리칼의 보이시한 매력의 여자였다.
이쪽은 뭔가. 또 혼혈인가.
빼어난 미모가 아닌 걸 보니 순혈은 아니고.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았다.
할 말이 없었다.
여자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에게 향했다.
"어떻게 할까요?"
"몰라, 시이이이이발."
팀장은 입이 참 험하구나.
"선배?"
여자의 물음이 팬더에게 향했다.
"나도 몰라. 어쩌라고."
"……그럼 신입 교육은 제가 합니다."
대답은 없었다.
난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길게 보지 않아도 깨달았다.
‘아무래도.’
잘못된 인사 조치 같다.
내가 올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오감을 넘어 육감을 자극하며 팍팍 뒤통수를 후려쳐 줬다.
"유광익?"
"네, 신입 사원 유광익."
여자 선배, 하얀 셔츠는 칼처럼 각이 서 있고 바지도 그렇다.
얼굴도 어쩐지 각이 딱딱 잡힌 느낌이다.
키는 180cm에 가깝게 커 보였고, 반쯤 걷은 셔츠 소매 사이로 쪼개진 근육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슬림하지만 단단한 차돌을 연상케 했다.
"할 일 알려 줄게."
타고난 군인 같은 선배였다.
"네, 선배님."
직함을 모르니 일단 선배.
그녀는 모니터를 툭 치더니 그 밑에 삐죽 솟은 파일철을 하나 당겨 나한테 줬다.
"화림 인사 명부다. 내일까지 외우고 태워."
이곳은 정부 산하 단체에서 키운 회사.
모든 게 기밀일 테니, 태우라는 말은 금세 이해했다.
그래도 하루는 좀 짧은데?
슬쩍 봤는데, 사람 이름만 세도 수백 단위는 넘어갈 것 같은데.
물론 내 의문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차돌 선배가 말했다.
"화장실 갈 때, 식사할 때 제외하고는 여기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다."
"……."
"이게 보안콜, 이쪽이 일반콜. 보안콜 받으면 ‘신입 사원 누구누구입니다’ 하고 바로 찾는 사람에게 내선 연결한다. 내선 연결하는 법은 전화기에 붙어 있고. 일반콜을 받았을 때는 절대로 불멸, 변신 또는 회사 내부 일을 발설하지 않는다. 인지했지?"
딱딱 부러지는 말투의 내용을 가까스로 머리에 박아넣었다.
눈앞에 두 개의 회색 전화기가 보였다.
하나는 보안, 하나는 일반.
보안은 받으면 내선 연결, 일반은 받으면 내부 업무나 기밀에 관한 말은 절대 하지 않기.
전화기 옆에 작게 ‘보안’과 ‘일반’이라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럼 전 조사 나갑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났다.
차돌 선배가 떠난 뒤.
가시방석의 시간이 도래했다.
염병.
딸각, 딸각.
따다다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이 팀장 한 건 했다며? 축하혀."
다른 팀에서 들리는 정겨운 소리와.
"네가 기남이야? 반갑다."
저 멀리서 들리는 환영 인사.
정기남이구나.
슬쩍 고개를 돌리니 파티션 다섯 개 너머로 다른 팀에 소속된 정기남이 보였다.
쟤도 환영받는데.
드르르륵.
"한가하냐? 눈알이 막 돌아가네? 일이 없어?"
기남을 보는데 귀에 팬더의 목소리가 꽂혔다.
발로 바닥을 밀어 의자를 끌고 다가와 하는 말이다.
"아닙니다."
일단 아니라고 하자.
이유는 모르지만, 난 이 작자, 그러니까 내 선배와 선임, 앞으로 이곳에서 함께 일할 작자들에게 찍혔다.
"어디서 너 같은 게 왔을까?"
지구에서 왔습니다. 외계인은 아니거든요.
속으로만 답했다.
농담 한마디 잘못하면 귀싸대기라도 날릴 것 같다.
"너 남 사장 어벤져스라며?"
"시발."
그 물음에 팀장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할 줄 아는 말이 저것뿐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시발 팀장은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모니터에 얼굴을 처박았다.
곧 헤드폰을 꺼내더니 쓰고는 미간을 찌푸렸고.
팬더 대리.
인명부를 뒤져 우리 팀부터 외운 나는 이 작자의 이름도 알았다.
이동훈, 직함은 대리다.
"어벤져스라뇨?"
내가 되물었다.
"몰라? 아는 게 뭐야?"
아는 거 없지. 오늘 첫날이거든.
그렇게 말하며 윙크라도 해 주고 싶다.
"내가 때려치우고 말지."
드르르륵.
팬더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벤져스라. 사장한테 찍혀서 그런 건가.
기왕 어벤져스 할 거면 아이언맨 하고 싶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위트가 톡톡 튀다니, 나란 남자란.
할 일이 없었다. 인명부만 죽어라 외웠고.
중간에 점심을 먹는다고 사내 식당을 갈 수 있었다.
맛있었고, 영양가가 넘쳤다.
팬더랑 마주 앉아서 먹었는데 소화는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꿋꿋이 먹었다. 일단 배고프면 될 일도 안 된다.
6시가 되자,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타박타박 걸으며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시발."
뭔데, 따라 나오란 건가?
"퇴근하란다."
팬더가 통역해 줬다.
시발 한마디에 참 많은 게 있네요.
난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났다.
앉아 있다고 할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말을 걸어 볼 만한 차돌 선배 - 이름은 김정아, 직급은 사원이었다 - 는 복귀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의 결론.
정기남은 귀여운 거였고, 우미호는 상큼한 거였다.
아버지, 세상에는 참 미친 새끼들이 많네요.
아무래도 내 상사와 팀원은 정상의 범주를 넘어섰다.
퇴근하고 나와서 우두커니 건물 앞에 섰다.
어지간한 대기업을 씹어먹는 클래스의 복지와 연봉.
당연히 과중한 업무가 있을 테고 힘든 순간도 있겠지.
각오했다. 각오했는데.
설마 첫 단추부터 이렇게 지랄 맞을 줄은 몰랐다.
싸늘한 바람이 날 스치고 지나갔다.
늦여름이라 저녁나절이 되니 더위가 훌쩍 가셨다.
그렇게 서 있자니.
"퇴근?"
익숙한 목소리가 날 불렀다.
"귀태 형."
그 옆, 요한도 보였다.
그래. 떠버리 요한, 네가 필요했다.
요한이 킥킥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고생했지? 맥주 한잔할래?"
"소주로."
상처받은 마음에 소독이 필요하다.
"미호야, 같이 갈래?"
바로 옆에서 귀태가 지나가는 미호를 향해 말했다.
우미호는 대답도 안 하고 쌩 지나쳤다.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는 걸까.
"봤냐? 나 한 번 본 거. 이제 슬슬 넘어오는 것 같은데."
우리 귀태 형은 정신이상자 같다.
"가자."
요한이 우리를 이끌었고.
곧 우리는 톡톡 튀는 소리와 자글자글 굽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껍데기 집에 도착했다.
원형 테이블에 플라스틱 의자, 문은 얇은 유리가 달린 여닫이다.
여의도에 이런 데도 있구나.
뒷골목을 몇 번 헤매더니 찾은 곳이다.
"맛집이래. 선배가 말해 줬어."
요한이 말했다.
적당히 감각을 조절하는 데 익숙해진 셋이다.
뭐, 애초에 그리 예민한 타입도 아니고.
"여기 껍데기 세 개랑 소주 하나요."
"뭐로?"
사장으로 보이는 이모가 앞치마를 두른 채 업소용 냉장고를 툭 친다.
두 종류 소주가 보였다.
"왼쪽이요."
불멸 출신의 아이돌 연예인이 광고한 소주였다.
"하나 물어보자."
주문하자마자 내가 물었다.
"나만 그래?"
"응."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사원 사이에서 공식 방송 주둥이 요한이다.
"왜?"
요한이 말을 시작했다.
시작은 사장이 손을 쓴 것부터였다.
남명진 사장이 내 인사에 직접 관여했다는 거다.
거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래도 사장인데, 인사권 정도는 부릴 수 있지.
이제까지 그러지 않은 적도 없었고.
사장님은 직원의 애로사항을 잘 들어주는 편이기도 했단다.
그래서 부서 이동을 원하면 사장에게 직접 보낼 수 있는 메일도 있었고.
문제라면 내가 속한 부서였다.
파견 본부 소속 외부 보안 3팀.
파견 쪽 일 자체가 꽤 험한 편인데.
그중에서도 외부 보안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들어가는 곳이란다.
그만큼 고되고, 그만큼 능력을 요구하는 곳.
거기에 외부 보안 3팀은 악명이 자자했고.
"유명하더라. 그 팀장, 오는 직원마다 다 갈아 마신다고 해서 별명이 믹서기야."
시발 새끼, 아니 시발 팀장의 별명은 믹서기였구나.
"그리고 그 팬더 있지?"
팬더는 팬더구나.
"그 선배는 내부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이라는데 자세한 건 모르고. 하여간 능력자란다. 이쪽 일 관련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던데? 매년 다른 쪽에서 스카우트 제의만 수십 건이라더라."
"그 선배는?"
"김정아 선배님 말이지?"
요한이 어느새 따라 둔 소주를 한 잔 쭉 들이켜고 다시 잔을 내밀었다.
공손히 양손으로 잔을 채우자, 그가 정말 작게, 불멸의 청각으로도 간신히 들을 만한 소리로 말했다.
"그거래. 비약으로 만든 초인."
난 오티 때 패드에서 본 내용을 되짚었다.
그 패드 안에는 불멸과 변신을 포함한 블랙홀에 관련된 이면 세계에 상식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요한이 말한 건 그중 하나였다.
불멸과 변신, 초능과 마법.
네 개의 특별종이 나타난 뒤, 일반인도 그들을 견제할 필요를 느꼈다.
그들은 마법과 마술, 연금의 영역에 손을 댔고.
그렇게 ‘비약’을 만들었다.
정보란에는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인체 실험과 비인도적인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대강 추측과 느낌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고로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의 결과물.
그게 바로 비약이다.
먹으면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 힘을 부여하는 것.
물론 그냥 먹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니.
"별명이 칼이래. 팀장이 갈기 전에 썰어 버리는 역할이라고 하더라."
아니, 뭔 정상인이 없어.
"믹서기에 칼에 팬더에. 어벤져스는 지들이 어벤져스네."
나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별생각 없는 한마디였고 크게 말한 것도 아닌데.
마주 앉은 귀태가 갑자기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날 본다.
예민한 불멸의 감각이 뒤쪽의 인기척을 느꼈고, 귀태의 눈이 향하는 방향도 정확하게 인지했다.
내 뒤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지쳐 보이는 김정아 사원님이 보였다.
"인명부를 외우라고 했지, 뒤를 캐라고는 안 했는데?"
아, 왜 여기에 이 시간에 계시나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 지나쳤다.
우리 자리는 여닫이문 가장자리였고 그녀는 밖을 거닐다 우연히 내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재수가 옴이 붙었구나.
칼이 멀어진다. 그와 함께 내 출셋길이 칼날 구보의 길처럼 변하는 환상이 보였다.
"서비스."
이모가 흰 접시 위에 잘 구운 잣을 놓고 갔다.
난 그 잣을 보며 생각했다.
잣 된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