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넥광익
"난데."
날 찾기에 손을 들어줬다.
숨길 게 뭐 있나.
온 놈은 아홉, 다 덤벼도 나한테는 안 된다.
그동안 기술 단련 받으며 느낀바.
내가 제대로 실력 발휘하면 17 대 1의 전설을 찍을 수도 있을 거다.
"너냐? 유광익이?"
"아하."
불현듯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셜록 홈즈가 나와 문신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알아낸 눈치인데.
넌 또 뭘 혼자 알아내고 그러냐.
뭐, 궁금하면 물어보면 그만이지.
"난 왜?"
내가 일어나며 묻자, 문신이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턱턱 몇 걸음 걸어와 거리를 좁힌다. 거 새끼, 화끈하네.
나랑 싸우자는 거지?
그래, 어디 주먹다짐 한번 해 볼까나.
벌점 몇 점이 뭐가 중요하랴.
애초에 싸워도 벌점이 적은 이유가 적당히 싸워 보란 거로 보였다.
어딜 부러뜨려 줄까 고민하던 차다.
"나도 부탁 좀 하자."
저자세다. 부끄러워하진 않고 당당하긴 해도 날 향해 부탁조로 말했다.
……음?
"……앙?"
당황스러워 되묻자.
"나도 네 꿈 꾸고 싶다."
아, 시발, 뭐야.
다 큰 사내새끼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오만 정이 다 떨어지잖아.
"나 여자 좋아해. 존나 좋아해."
놀라서 급히 말했다.
"그걸 자랑이라고."
셜록 홈즈 넌 닥쳐.
"아니, 재워 달라고. 너희 방은 다들 편히 잔다며? 정말 뒈질 것 같아서 그런다. 우리 방 애들도 좀 부탁하자."
……아, 너 방장이구나. 그러니까 조장.
되게 안 좋은 쪽으로 오해할 뻔했잖아.
"몇 조?"
"1조다."
"……가자."
재워 달라는데, 그게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싸우러 온 게 아니었네.
그럼 아까 샤워장에서 3조 나불거린 것도 싸가지 개나리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어?
"어떻게 알고 왔냐?"
슬쩍 묻자.
"왜 모르겠냐? 벌써 소문이 파다한데."
문신이 친근한 웃음을 보이며 답했다. 호감 가득이다.
"그래?"
"김요한이 이게 좀 싸."
말하며 문신이 손을 제 입으로 갖다 대고 엄지와 검지로 주둥이 여닫는 표시를 한다.
아, 김요한이가 범인이구나.
"왜? 곤란한 부탁이었냐?"
"아아아니."
고개를 크게 가로저어 주었다.
곤란은 무슨.
"가자고."
그의 방으로 가, 그들의 소원대로 넥 슬라이스를 먹여 줬다.
"꼭 네 꿈 꿔야 해?"
순진해 보이는 여자애가 묻길래.
"강동원 꿈꿔라."
하고 축복도 내려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첫날은 1조, 다음 날은 2조도 합류했고.
개중에 적당히 적응해서 잠들 수 있는 놈을 제외하면 다들 날 찾았다.
"3조 유광익한테 넥 슬라이스 맞아 봤냐?"
"어? 아니, 우리 조에도 있어. 힘 조절 잘하는 애."
"캬, 얘가 뭘 모르네, 걔한테 한번 맞아 봐, 아주 아침이 상쾌해. 후유증이 제로야. 꿀잠 제조기야."
이런 말들이 떠돌았다고 한다.
입 싼 김요한이 전해 준 이야기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난 상대의 몸 상태를 보고 숙면 코스로 보내 줬다.
덕분에 밤이 바빴다.
이 새끼들 다 재우려면 최소 한 시간은 걸리잖아.
교관도 딱히 말리는 눈치는 아니고.
하다 보니 요령이 더 붙었다.
내 앞에서 줄을 서면 내가 때려서 재우고, 기다리는 몇 놈이 알아서 침상에 날라 줬다.
불면이 만든 협동의 현장이다.
난 그러면서도 끝까지 마지막 루틴을 잊지 않았다.
"오늘도?"
바비킴 노래로 묻자, 우리 잘생긴 개나리께서는 몸을 돌렸다.
그래, 오늘도 불면의 밤을 보내렴.
며칠 내내, 난 다시 비만 친구를 붙들었다. 벌점이 좀 쌓였지만, 그와 별개로 난 이 친구의 완주를 도왔다.
"……너 진짜 왜 이러냐?"
"왜라니, 우리 룸메이트잖아."
내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 그래.
본래 떨어진 지갑을 주우면 꼬박꼬박 우체통에 넣어 주는 양심 그 자체라 그렇다고.
"너 살 좀 빠졌잖아. 이제 될걸."
"그런다고 네가 이럴 필요는 없잖아."
"신세 한번 진다고 생각해, 나중에 밥 한번 사든가."
"……그래."
비만은 고개를 끄덕였고.
"혼자는 힘들지, 반대쪽 내가 붙든다."
그동안 친해진 문신 친구가 비만의 반대쪽 날개가 되었다.
"힘들면 뒤에서 밀어주랴?"
다른 놈들도 몇몇 와서 한마디씩 건넸다.
"미치겠네."
비만은 그 말을 끝으로 호흡을 조절하더니, 완주했다. 첫 완주였다.
"……."
라떼 교관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응하고 나니, 이 생활이 꽤 재밌었다.
밤에 몰래 야식도 먹고 무서운 얘기도 해가며 동갑내기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훈련과 교육은 꼬박꼬박 받았다.
"블랙홀이 뭔지 모르는 놈은 없겠지? 그거 모르는 놈이면 인베이더다."
라떼 교관과 단발머리, 양초 교관이 번갈아 지식을 전해 줬다.
첫 시간은 인베이더 넘버링 교육이었다.
"넘버 원부터 이름이 붙은 놈이고, 패드에 이미지와 상대하는 법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 날에 간단한 테스트도 있으니까 외워라."
인베이더는 블랙홀에서 이곳을 침공한 놈들의 총칭이고 한 종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넘버링 시스템은 그런 놈들을 분류한 거였다.
‘넘버 1’부터 시작해서 숫자가 높을수록 나중에 나타난 놈들이었다.
판타지 세계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혹은 우리 톨킨 선생님이 사실은 마법사라 이쪽 세계를 여행한 건지, ‘오크’라는 놈도 있었다.
놈은 ‘넘버 12’ 그러니까 ‘넘버 12 오크’ 이런 식으로 표기되는 인베이더다.
육체의 힘을 믿고 덤비는 놈으로, 집중 사격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부연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 외에도 슬라임, 슈퍼 머쉬룸, 눈먼 개, 휠 나이트 등등.
패드에 저장된 놈들만 쉰 개가 넘었다.
"거기 저장된 놈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놈들이다. 방심하면 불멸자라고 해도 죽는다."
교관이 감정 없이 사실만 전달했다.
그래, 불멸자도 죽지.
그리고 이제까지 받은 교육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이 교육의 목적, 이 회사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앞뒤 상황을 유추하면 뻔했다.
행정안전부 소속 공기업 화림정보통신은 화이트홀에 진입하거나 블랙홀에서 나온 인베이더를 제압하는 회사라는 걸.
뭐, 대부분 일반인도 안다. 이런 일을 하는 집단이 있다는 걸 말이다.
올드포스도 엑스큐라시도, 초능력협회 사이오닉도.
전부 그런 일에 연관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사실 인터넷 창 조금만 뒤지면 나오는 정보다.
불멸, 변신, 초능, 마법.
이 네 개의 힘을 지녔거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인베이더와 싸우고 화이트홀을 넘어 이세계를 탐험한다는 걸 말이다.
모든 도시에는 비상시 대피할 쉘터가 있었고 그런 훈련도 1년에 한 번씩은 지역별로 받는다.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서 인베이더의 위협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고로 그걸 상대할 이들도 있어야겠지.
화림정보통신도 그중 하나였다.
역시나 고액 연봉은 아무나 주는 게 아니다.
이 모든 걸 알고 유추한 순간, 솔직히 난 반겼다.
어머니는 반대하시겠지만 말이다.
UDT를 갈 이유가, 군대에 갈 이유가 진짜 없어졌다.
그래서 만족한다.
그나저나 아버지는 다 알고 보내신 것 같은데.
정말 아들을 이런 위험에 몰아넣으시려고 한 건가?
이런 상황을 반기긴 하지만, 아버지의 저의가 의심스럽긴 하다.
그래도 고민해서 뭐 하나.
나중에 여쭤보면 될 일을.
"넘버링 인베이더는 주의하면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마주치는 순간 무조건 퇴각해야 할 인베이더도 있다."
라떼 교관은 패드의 다음 페이지를 보라고 했다.
거기에 적힌 세 글자.
네임드.
넘버링의 숫자가 그 종을 뜻한다면 네임드는 홀로 이름을 가진 존재를 칭한다.
대형 게이트 사건, 거대 블랙홀이 출현했을 때, 오백에 가까운 무장 전투 인원을 베어 버린 놈도 패드에 있었다.
블루 나이트, 일명 ‘청기사’다.
자연스레 시선이 네임드 청기사에 관한 설명을 훑었다.
[양발에 호버 추진기로 추정되는 기구가 달렸고, 등에는 두 장의 금속 날개가 달렸다.
그 속도는 순간 시속 150km/h에 육박하고, 그 갑주는 전신 모두 휠 나이트의 전면부 갑주 이상으로 튼튼하다.
소화기, 유탄발사기, 화염방사기, 수류탄, 크레모아 등 화기 공격에 흠집만 난 전적이 있다.
양팔에 솟는 푸른 에너지 블레이드는 크롬 합금 방패도 가른다.]
거창하네.
"마주치면 도망가라. 네임드는 악몽이다."
교관이 말했다.
청기사 외에도 이제까지 세상에 나타난 놈이 몇 있었다.
우리는 그런 걸 배웠다.
이후에는 단발머리 교관에게 불멸의 서포트 아이템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건 블러드 젝이라고 하는 건데, 위험하면 팔뚝에 꽂으면 돼요. 그럼 알아서 혈관 찾아서 수혈해요."
말하며 보여 준 건, 한 손으로 감싸기도 힘든 두툼한 원통형 도구였다.
뚜껑을 돌려서 까는데, 그걸 까면 삐죽한 침이 있었다.
허벅지나 팔뚝에 꽂아 수혈하는, 과외 선생이 말했던 이동형 수혈팩이었다.
"이건 순간 신체 능력을 높여 주는 건데, 코카인하고 헤로인을 일정 비율로 섞고 거기에 엥거 잎을 빻아서 만든 겁니다. 우리는 흔히 전투 뽕이라고 부르는데, 공식 명칭은 ‘BB-8’이고. 유럽에서는 오딘의 축복 따위로 불리기도 해요."
플라스틱의 긴 막대 모양인데 주사기는 아니고, 힘줘서 꽂으면 공기 압력으로 피부를 뚫고 약이 들어가는 거란다.
그런데 내 귀를 의심했다. 마약이 잔뜩 섞인 것 같았는데?
"너무 과하게 쓰지 않으면 중독까지 가진 않지만, 과하게 쓰면 불멸이라고 별수 있나요. 평생 금단증상 달고 사는 거지."
그런 말 생긋 웃으면서 좀 하지 말지.
섬뜩하다. 섬뜩해.
"독일에서 개발한 거라 뭐 보탄의 축복이니, 오딘의 축복이라 하는데. ‘마인드 칵테일’ 계열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 중 하나예요."
단발머리 교관이 이어서 설명했다.
마인드 칵테일, 전투 중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고양감을 주는 약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 외에도 피지컬 칵테일이나 다른 칵테일 드럭도 몇 개 있었다.
완전히 약쟁이 세상이다.
다음은 양초 교관의 총기 적응 훈련이다.
"모르는 거랑 알면서 안 하는 거랑은 완전 다르다."
평소와 똑같은 냉기 풀풀 날리는 어투였다.
그렇게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사격 예비 훈련을 받았다.
자세 잡고 쏘는 법만 배우면 금방이었다.
이쪽은 불멸, 감각 특화의 신인류다.
뭘 던져서 맞추는 건 기가 막히게 잘했다. 쏴서 맞추는 것도 마찬가지고.
수류탄부터 시작해서 몇 가지 전장 병기를 배우고.
다시 구보와 웨이트 트레이닝, 기술, 육체 내구도 단련의 반복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밤에 꿈나라로 보낼 친구의 숫자는 줄었다.
다들 과격한 생활에 점점 적응했다.
나는 2주 차 이후부터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수면제, 내 꿈 꿔, 넥 슬라이스, 다양한 별명으로 날 부르던 놈들은 언제부턴가 전부 다 날 넥광익으로 불렀다.
이 새끼들이 부모님이 주신 성을 갈아 버리네.
"넥광, 먹을래?"
그래, 어쩌겠나. 고만고만한 나이대의 놈들이 모여 사는 게 이런 것을.
"당연한 말을."
난 1조 문신남이 준 초코바를 받았다.
제일 좋아하는 종류였다.
트믹스.
비스킷과 캐러멜의 조화를 초콜릿으로 감싼 희대의 발명품이 날 행복하게 했다.
"개좋아."
말하며 야금야금 씹어 먹자, 잘생긴 개나리가 날 흘겨봤다. 눈이 마주쳤기에 한마디 건네줬다.
"요즘 잠은 잘 자고?"
다들 적응하는 와중에도 이 새끼는 유독 늦다.
"꺼져."
아, 여전한 반응.
이래서 널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늘 새로워, 짜릿해, 멈출 수가 없어.
"아니, 잘 자라고. 내 꿈 꾸고."
놈은 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하루하루 반복된 훈련에 체력이 붙어 동기 애들도 오전 구보 따위는 이제 손쉽게 넘어갔다.
우리 비만 친구도 이제는 도움 없이 완주하고.
꼴등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몸 쓰는 일에 재능이 있는 놈도 있고 없는 놈도 있지만, 총기 숙련도는 다들 놀라울 정도였다.
나야 뭐.
이미 배운 거 복습하는 수준이었다.
난 그것보다는 다른 거에 집중했다.
패드에 나온 회사 내 계급 구조나 인베이더 넘버링, 네임드 놈들을 숙지했다.
그렇게 마지막 쪽지 시험이 다가왔고.
"다들 수고했다."
나 때는 어땠느니 하던 라떼 교관이 먼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버텼으면 전부 통과한 거나 다름없다. 벌점으로 탈락한 사람도 없고. 마지막 날이니까, 담배 태우는 사람?"
그가 대충 둘러보며 흡연자를 파악하고 담배를 돌렸다.
아는 형이 군대 다녀와서 말한 적이 있었다. 훈련소 마지막 날 교관은 더없이 천사가 된다고.
여기도 그랬다.
"한 대씩 피워."
라떼 교관을 시작으로 다들 친절하게 변했다.
"고생했어. 후배들."
파랑새도 마찬가지다.
쪽지 시험은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고.
금세 끝났다. 애초에 문제가 몇 개 안 됐다.
모든 일정이 끝난 참이다.
양초 교관이 단상 위에 올라 모인 우리를 보고 말했다.
"오티 결과를 발표하겠다."
다들 뭔가 싶을 때, 순위를 나눈다는 설명이 뒤따랐고 그에 따라 부서 배정이 되리란 말도 나왔다.
그래, 이렇게 사람 모아 놓고 신입 교육을 했다.
벌점을 줬으니, 당연히 상점도 있겠지.
그걸 토대로 순위를 매기는 건 당연한 일.
부서에 배정하려면 적성 파악도 하고 평가가 필요한 거 아닌가.
훈련이라고 해도 오티다.
점수를 토대로 신입도 원하는 부서를 택할 자유가 생기겠거니 했다.
"상위 세 명에게는 포상금이 있다."
와아아아!
그 말에 다들 환호를 내질렀다.
세상에 돈 만큼 좋은 건 없지.
나도 나름 기대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3등, 기효민."
누구냐, 넌.
처음 듣는 이름이네.
그 말에 누군가 단상 위로 향했다.
촐랑거리며 뛰어가며 올라가는 놈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원하는 부서에 지원하면 최대한 고려해 줄 거다."
"어, 그럼 전 보안팀이요."
"지금 말고 나중에."
"아, 넵."
어벙해 보이는데 용케 3위네.
"2위는……."
그리고 재차 양초남이 말을 이었다.
2위는 예상 안이었고, 1위는 모두의 예상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