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12화 (12/488)

12. 모자간의 감동 코드는 없었다.

꽝!

어릴 때, 건물 해체용 철구 크레인이 건물을 부수는 걸 본 적 있었다.

그걸 가까이에서 보면 이런 소리가 날까?

아니면 천둥이 바로 옆에 떨어지면 이런 소리가 날까.

폭음이 귀를 때렸다.

그 뒤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삐- 하는 이명과 머리가 몹시 아프고 어지럽다는 것만 기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바닥에 엎어져 허우적거렸고 버둥거리는 내 눈에는 휘어진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따위와 그 위를 덮은 피와 살점 등이 보였다.

뭘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왜 겁을 집어먹었는지도 모르는,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에 차디찬 공포를 느꼈다.

그저 무서웠다.

이 모든 일이 어서 끝나고 엄마 얼굴이나 보고 싶었다.

엄마하고 외쳤는데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아빠. 엄마.

아무리 불러도 안 들린다.

나 울고 있나?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렇게 바둥거리지도 못하고 엎어져 있을 때다.

누군가 내 앞을 막더니,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췄다.

그는 내 귀를 두 손으로 감싸더니, 천천히 말했다.

삐- 소리 사이로 난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사실은 반사적으로 입 모양을 읽은 거지만.

"괜찮아."

그리고 돌아선 그 사람의 등을 잊을 수 없다.

2011년의 봄.

휴즈 게이트, 대형 블랙홀이 세상을 강타한 날의 기억이었다.

그 등을 끝까지 보다가, 눈을 떴다.

"아, 시발 꿈."

또 이 꿈이네.

기왕 꾸는 꿈이라면 쭉쭉 빵빵 미녀가 나오는 꿈이나 꿀 것이지.

내 평생 그런 행운은 없는 걸까.

창밖을 보니 해가 이미 떠, 커튼 너머에서 자신의 강렬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커튼을 걷으면 눈부실 것 같다.

오늘도 화창하군.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하니, 오전 7시 10분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기상이었다.

눈은 떴지만, 꿈 때문에 기분이 뒤숭숭했다. 그래서다.

난 일어나는 대신, 인견으로 만든 얇은 이불을 품에 돌돌 말아서 다리로 안고 옆으로 누웠다.

내가 침대요. 침대가 곧 나인 자세다.

거기에 폰을 벽에 기대고 무튜브 키면 최고다. 행복해.

지나간 예능 클립 영상을 보며 한창 낄낄거리는 중이었다.

찰칵.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퉁.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엄마다.

"뭐하니?"

뭐지? 난 어머니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이제 일어나려고요."

그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아들, 면접 끝났다고 너무 노는 거 아니니?"

시험도 보고 면접도 본 뒤다. 이제 좀 쉴 타이밍이다.

오늘 내 계획은 열한 시쯤 침대와 분리한 뒤,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니고 브런치도 아닌 아점을 먹고, 온종일 PL4와 데이트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 약속 없지?"

"있어요."

"……진짜?"

"네."

"알지? 오진 아웃이면?"

"링에서 엄마랑 데이트."

그리고 그 데이트의 마지막은 유혈 코스다.

"누구랑 약속?"

"저 자신과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놀먹싸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놀먹싸자?"

"놀고 먹고 싸고 자고."

어머니는 웃지 않으셨다.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그저 손을 들어 천천히 새끼손가락부터 주먹을 말아쥐셨다.

갑자기 일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일을 해야지.

놀고먹기만 하면 사람인가?

훈련할까? 아니면 공부를 할까.

벌떡 일어나자, 어머니가 날 보고 말했다.

"얘기 좀 하자."

"네."

나가면서 거울을 보니, 하도 침대에 비비적대서 머리가 닭 볏처럼 솟아 있었다.

눈곱만 대충 떼고 거실로 나갔다.

"거기 가면 조심해야 한다."

서두를 꺼내신 어머니의 말은 요약하면 간단했다.

변신족의 본능은 위험하다.

본능에 지배당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무슨 사고냐고 묻자.

"폭력 사건이 제일 많았지."

"그다음은요?"

"강간."

이제까지 난 변신족의 본능을 우습게 봤다.

사실 지금까지는 내 몸에 이상이 없었거든, 그러니까 걱정도 안 했는데.

어머니 말 들어 보니까 이게 장난이 아니다.

"욕구 못 참으면 차라리 나가서 울부짖어. 그게 나아."

변신족 역사에서도 그 본능을 못 참아서 달밤에 울다가 보름달에 우는 늑대인간 설이 생겼다고 했다.

왜 하필 그날 보름달이라, 타이밍 참 공교롭지.

단순하게 말하면 욕구의 문제다.

꾹 눌러서 참다 보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해결 방법이 없나요?"

"있지."

그래, 없을 리가 있다. 없었다면 벌써 이 세상은 변신족이 친 사고로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런데 뉴스에서 가장 많이 사고를 치는 특수종은 마법과 초능이지, 불멸과 변신이 아니거든.

"극기."

아, 그 말에 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여덟 살 생일 이후, 어머니는 나를 곧장 산에 데려갔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비울 때면 둘은 등산 데이트를 했다.

말이 데이트지 맨몸으로 암벽을 타는 수준의 서바이벌이다.

북한산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있는 험준한 산은 다 타 본 것 같다.

극기, 자신의 감정이나 욕심 충동 따위를 이성으로 누르는 걸 말하는 거다.

극기 훈련이란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산을 통해 나한테 그걸 알려 준 거다.

"그리고 해소."

본능을 누르기만 하면 언제라도 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절하면서도 적절하게 해소해 줘야 한다는 거다.

현대인이 받는 스트레스랑 굉장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도는 에너지야 운동으로 소모하면 되는데, 다른 게 문제지. 그래서 엄마가 여자 친구 좀 만들라고 했잖니. 그러다 곰팡이 펴. 아니, 곰팡이만 피면 다행이게? 너는 사고 칠 확률이 매우 높은 피를 타고났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가 남을 독설인데.

아는 내가 들으니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에너지는 운동으로 소모 - 이건 지금도 하는 거고.

여자 친구 만들라는 것 - 성욕 해소가 안 되면 본능에 휘둘릴 수 있다는 거다.

사고 칠 확률이 높다는 것 - 엄마 피를 이어서 넌 변신족의 본능이 언젠가 터질 거야, 라는 거다.

어머니, 참 다행이죠.

"괜찮아요."

난 그 말을 일축했다.

아직 본능이 발현되지 않아서 안심하는 건 아니다.

욕구 조절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거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 손 안에 작은 세상, 스마트폰을 켜면 다 나와요.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자 친구 없어도 문제없습니다.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그런 경우도 많이 봐서."

"아니요."

빠른 부인으로 이것도 일축.

"오리엔테이션이 한 달이라니, 무슨 회사가 그 모양이니."

어머니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이 걱정되는 거다.

난 면접에 합격했고, 그걸 부모님께 알렸다.

아버지 어머니 둘 다 기뻐하시는 건 당연한데.

오리엔테이션, 신입 사원 환경 적응 훈련이 무려 한 달이란다. 그러니까 한 달 합숙이다.

뭘 가르치길래 한 달이나 걸려.

정확히는 5주 코스라고 했다.

합격도 했겠다. 이거면 약속을 지켰고 이제 굳이 출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아버지 말대로 유예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까 했는데, 그랬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아버지가 괜히 추천하신 게 아니었다.

경쟁률 따위는 모르지만, 아마도 불멸자를 자식으로 지닌 양반들은 알음알음 전부 시험에 응시하라고 했을 거다.

신입 연봉 6,500만 원.

보너스 별도 지급.

크으, 취한다. 무슨 연봉이 대한민국 직장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수준이냐.

수습 기간이 끝나면 독립 아파트를 준단다.

소형이지만,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직장과 가까운 집을 준다.

서울 한복판에서 신입 사원에게 소형 아파트 하나를 내준다?

이 회사 왜 이래? 미친 거야?

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거기에 체력단련비를 포함해 각종 복지가 끝없이 있었다.

복지로 팔만대장경을 쓰려는 게 분명했다.

팔만대장복지경은 다 읽기도 힘들었다.

여기서 옵션 하나 더!

18개월 이상 근무 시, 군 면제다.

까약! 소리 질러!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꿈꿀, 그런 드림 팩토리 아닌가.

물론 난 군인이 꿈이‘었’지만, 이게 또 강제로 끌려가는 거랑 내 발로 가는 거랑은 얘기가 다르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다가 군으로 향하면 가산점이 붙는다.

이 모든 게 입사 후 오리엔테이션이라는 관문만 거치면 내 손에 들어왔다.

면접 이후, 이 설명을 듣고 관련 서류를 받았을 때 절로 손이 떨렸음은 안 비밀이다.

여담으로 서류를 보고 부모님께 보여 줘도 되냐고 묻자, 단발머리 면접관이 말했었다.

"아빠 쪽이죠?"

"아, 네."

불멸 혈통 묻는 거에 답하니.

"어머니랑 평생 철창을 사이에 두고 지내고 싶다면 말해요. 그것도 나름 추억이겠다? 그치?"

귀엽게 말하긴 하는데 내용은 사이코패스다.

사이코지만 안 괜찮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말할 수 없었다.

이 조건, 이 대우.

굳건한 한 남자의 마음을 녹이기 충분했다.

"그래도 아들, 하고 싶은 일을 놔두고 돈 때문에 일을 선택하는 건……."

"아니요, 어머니."

난 과감하게 어머니 말을 끊었다.

용기가 솟아오른다.

"소자 꿈을 바꿨습니다."

"……그러니?"

"네이, 소자, 이 행정안전부 소속 공기업의 수장이 되어 보고자 합니다."

앞날이 창창한 청년으로서 이 정도 포부는 가져 줘야겠지.

절대로 돈과 집과 조건 때문이 아니었다.

난 날 인정하고 뽑아준 회사에 잠시간 몸을 맡기고 싶었을 뿐.

"아, 그래?"

어머니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지."

"그게 다 영민한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덕 아니겠습니까? 물론 두 분의 피를 이은 제가 잘난 거지만."

"다행이야."

"네?"

"내 자식이라 다행이야. 이리 말해도 꼴 보기 싫지 않은 걸 보면. 변신족 아이 중에 너 같은 애가 있었다면……."

말끝을 흐리셨는데 굳이 뒷말을 듣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한 달이나 오리엔테이션으로 집을 나가야 했으니, 어머니는 걱정했다.

이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었다.

일단 오티가 한 달이고.

수습 기간에는 단체 생활이었다.

그 모든 게 끝나야, 저 꿀과 같은 복지가 완전히 내 손에 들어오는 거고.

그러니 당연히 걱정하는 거다.

"진짜 괜찮아요."

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이해도 하는데.

엄마, 나 잘 섞였나 봐.

아버지도 어머니도 두 분 다 내 본능에 민감했다.

변신족이 욕구를 자제하지 못한다면 불멸은 예민한 감각이 문제였다.

긴장을 풀면 옆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진짜 천둥 치는 소리만큼 들린다.

그 기간이 반복되면 어떨 것 같은가?

보이지 않을 게 보이고, 들리지 않을 게 들린다.

자연스레 촉각도 예민해지고 미각은 미슐랭 뺨따귀를 후려갈길 만큼 민감해진다.

그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렵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산에 들어가 살며 심신을 다스리기도 하고, 절간에 들어가기도 하는 거다.

불멸 중에 절에 숨어 사는 스님이 많다는 건 정설이었다.

변신 중에서도 본능 발현이 조금 세게 나타나는 친구가 있고.

불멸 중에서도 특히 예민한 친구가 있는 건데.

난 혼혈이고, 둘 다 아니었다.

본능은 적당히 스무 살 피 끓는 청춘만큼만 나타나 모니터 화면 속 처자들의 위로로 충분했고.

불멸의 예민함 따위는 없었다.

어디서든 잘 자고 뭐든 잘 먹는 그런 타입이란 거다.

"하여간 일 터지면 바로, 알지?"

"네, 바로 연락할게요."

그래도 걱정을 하시는 걸 보니, 이래서 어머니인가 보다.

난 조용히 일어나 의자에 앉은 어머니를 뒤에서 안았다.

탄탄한 등과 굳건한 어깨, 단련된 육체를 안으며 말했다.

"진짜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제 선에서 해결할 겁니다.

괜히 어머니 불러서 사달을 일으키고 싶진 않아요.

일단 이쪽이 불멸과 관련된 일이라서 부를 수도 없을뿐더러.

변신족이자, 이 화끈한 어머니가 오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백허그를 한 내 손 위로 어머니가 손을 겹쳐 올리고는 말했다.

"씻어라. 냄새난다."

"……네."

모자간의 감동 코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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