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훈련은 공부였다.
"어서 와요."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탁자 위에서 노트북을 켜고 뭘 탁탁 두드리는 대머리 아저씨였다.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헤어스타일이다.
영구적인 탈모 치료제가 개발된 이래 대머리는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비록 값이 싼 탈모 치료제는 부작용을 동반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탈모를 해결하고 보니까.
그러니까 저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선택형 대머리일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 남자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날 빤히 보더니 물었다.
"응시생?"
왜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묻는 걸까.
난 원서와 신분증을 다시 꺼냈다.
"접수 번호 48번. 저기로."
난 날 놀라게 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다른 무엇보다 이 광경이 날 당황하게 했다.
칼날이 빼곡하게 찬 구보 코스나 목을 조르는 교수대가 있어도 이리 놀라지 않았을 거다.
반듯한 책상과 의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앉은 사람들도.
분위기가, 그러니까 다들 국·영·수 위주로 철저하게 공부한 것처럼 시험 치르기 직전의 열기를 보여 주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마지막까지 수첩이나, 프린트물 따위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니.
나만 빈손이다.
선택형 대머리 시험관이 안내해 준 자리로 가서 앉았다.
힐끔 하고 날 보는 시선이 몇 명 있었지만, 나머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들 자기 공부하기 바빠 보였다.
예감이 불길했다.
내가 받은 수업은 이런 게 아닌데.
필살 족집게 과외 중에 책상은 구경한 적도 없다.
그런데 여기는 이대로 수능 시험장으로 옮겨 놔도 위화감이 없을 거 같다.
몸을 과하게 쓸 것 같아서 트레이닝팬츠와 이너웨어까지 입고 왔는데.
그, 음. 할 일이 없네.
다들 공부하는데 나만 빈손이다.
스마트폰을 앞에다 제출하라고 하지 않아 폰은 있는데, 여기서 당당히 폰 게임을 해도 될까?
아니, 이건 쌉오바다. 하는 순간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시험 시간을 기다리는데.
"수험용 사인펜 없는 사람?"
대머리 시험관이 물었다.
나만 손들었다.
시험관과 눈을 마주쳤다.
너는 뭐 하는 새끼니?
그가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나도 눈으로 답했다.
뭐 하는 새끼긴요. 아버지와 족집게 과외 선생에게 된통 속은 불우한 미소년이지요.
아니, 미소년은 취소하자.
주변에 앉아서 공부하는 애들의 외모가 장난 아니었다.
이대로 프로파일 101에 나가도 단체로 뽑힐 것 같은 미모다.
하얀 피부를 바탕으로 날카로운 눈매와 강아지를 닮은 눈매 등, 전부 매력은 달랐지만, 하나의 공통점으로 대동단결이다.
전부 미남, 미녀다.
그중에서도 내 왼쪽에 앉은 흰 셔츠와 고동색 슬랙스 팬츠를 입은 남자가 단연 압권이었다.
TV에 출연하는 잘생겼다는 애들 다 모아 놔도 얘만 할까 싶다.
키도 커 보이고 손가락도 예쁘다.
"가져가라."
대머리 시험관과 눈으로 나눈 대화는 내 상상이었다.
그는 감정 없이 나에게 수험용 사인펜을 건넸다.
그나저나 이거 번지수 잘못 찾은 것 같은데.
노란 뚜껑을 가진 사인펜을 손에서 팽그르르 돌리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이거야 뭐, 익숙하다.
OMR 용지에 기재하는 용도의 컴퓨터용 사인펜이다.
시험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수험용 사인펜이라고 하기도 하지.
이거 정말로 시험이잖아.
대충 시험장을 보니 여기에 앉은 사람 숫자만 쉰 명에 가깝다.
넓은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가 덩그러니 오십 개 놓인 셈이다.
대머리 시험관은 그 앞에 자기도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앉았고, 그 뒤에는 갈색 커튼이 창문을 틀어막고 있었다.
지금 덩그러니 놓인 오십의 수험생과 시험관을 제외하면 공간이 너무 넓어서 허전했다.
덕분에 책상 간격이 최소 1m는 되는 것 같다.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도 꽤 멀다는 거다.
그뿐 아니라 시험관이 문을 열자 건장한 분들이, 남자와 여자 가리지 않고 다 건장했다.
하여간 사람들이 들어와 책상 사이로 이동형 칸막이도 밀어 넣었다.
곧 1인용 개인 독서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난 이 독서실에서 할 일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고.
"10분 뒤에 시작합니다."
대머리 시험관이 말했다.
급 우울해졌다.
기왕 하는 시험 붙고 싶다. 그런데 이건 시작하는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잖아.
나에게 칼날로 만들어진 구보 코스를 줘.
그럼 발목이 잘릴 듯 잘리지 않으며 달리는 신기를 보여 줄 수 있다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들어온 사람이 시험지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아, 미친.
속으로 욕하고 시험지를 든 남자가 오는 걸 기다리는데.
덜컹!
문이 격하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칸막이 덕분에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늦었죠?"
숨을 몰아쉬며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고 나랑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싶다.
"네. 접수 번호 50번. 저기로."
꼭 저런 놈이 있다. 시작하기 5분 전에 바람돌이 소닉처럼 질주해서 들어오는 친구.
"아우, 늦잠 자서요."
누가 묻지도 않는데 말하더니 자리로 향하는 소리가 들렸다.
낙천적인 느낌을 물씬 주는 놈이다.
그 사이 시험지가 내 책상 위로 향했다.
아, 열어 보기가 두렵다.
책의 형식으로 된 시험지의 겉면이 눈에 들어왔다.
[불멸 특채 테스트]
그 밑에 접수 번호와 이름을 적는 칸이 있었고 이 시험지는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고 쓰인 것도 보였다.
외부로 시험 내용을 외워서 반출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과 특수종 특별법에 위배되니 주의하라는 말도 보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시험 내용 어디서 까발리거나 몰래 들고 가면 법으로 너의 인생을 조져 버리겠다는 말이었다.
단순한 위협으로 보이지 않는 문구다.
다들 시험지를 펴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에휴, 근데 난 공부 따위 하지 않았는걸.
다른 이들이 국·영·수 위주로 시험을 준비했다면 난 그 시간에 뜬금없이 체육 교사와 함께 피를 쏟아냈다.
아버지가 있다면 묻고 싶다.
저한테 왜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촤락.
시험지를 펼쳤다.
"어렵네."
뒤에서 누군가 중얼거렸다.
"조용."
시험관이 그를 나무랐다.
아마도 여기에 있는 이들은 전부 불멸자다. 그러니 저런 나지막한 목소리도 다 들을 수 있는 청각의 소유자란 거다.
안 그래도 사인펜 마킹 소리, 시험지 넘기는 소리가 귀에 쏙쏙 박혔다.
누구는 뒤에서부터 누군가는 앞에서부터 푸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저리 신나게 시험지를 들추는 소리가 날 리가 없을 테니.
그런 상황에서 나도 문제를 직시했다.
대망의 1번 문제다.
1. 다리에 백 원 동전 크기의 관통상을 입었다. 다음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을 고르시오.
① 이동식 수혈팩 장착
② 부상 부위 파악(총상 또는 열상 등)
③ 엄폐물 찾기
④ 지혈
⑤ 신에게 기도하며 현실 도피
어, 음, 문제가 왜 이러냐.
아까 누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슥.
사인펜을 그었다.
정답은 4번이다.
특수종이 아니라면 2번이나 3번이 더 중요할 수 있지만, 아니다.
이 문제에는 함정이 있다.
일단 관통상 크기다.
백 원 동전 크기라면 크다고 할 수 없다.
곧 다친 면적의 크기를 고려해 투사체에 당했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지혈이다.
피 흘리는 거만 막으면 작은 상처는 불멸자에게 치명적일 수 없다.
난 이걸 몸으로 배웠다.
과외 선생이 떠들기도 했지만, 칼날 구보 몇 번 해 보면 자연히 아는 거다.
위험한 건 출혈성 쇼크지. 상처 자체가 아니라는 거다.
즉 피를 막는 게 최우선이다.
일단 지혈하고 엄폐물 찾고 이게 순서라는 거다.
피를 최대한 흘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
2번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1번과 연관된 문제였다.
2. 급속한 실혈로 순환 혈액량의 몇 퍼센트를 잃으면 쇼크가 일어나는가?
① 5~10%
② 10~15%
③ 15~20%
④ 20~25%
⑤ 25~30%
진짜 문제 왜 이러냐.
답 3번.
불멸을 잡는 법 중 하나다. 지속적인 출혈로 쇼크를 일으키는 것.
난 이걸 몸소 겪었다.
피도 흘리고 내장도 찔리며.
물론 난 쇼크가 일어나지 않아서 잔소리를 들었다.
내 기준으로는 답이 없지만, 보통은 3번이다. 급속한 실혈이라고 했으니까.
불멸자라도 베이스는 일반인과 같다.
즉, 보통 인간과 비슷하게 쇼크가 일어난다.
다른 문제도 비슷했다.
상대가 휘두른 칼날을 피할 수 없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정답, 팔을 내준다.
기동력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하는 보루다.
전부 이런 식이다.
그제야 난 내가 받은 과외의 위대함을 알았다.
작대기 선생은 결코 날로 먹지 않았다.
이 시험은 전부 불멸의 몸을 갖고 어디까지 굴러 봤고, 그걸 알고 있는지 묻는 거였다.
그리고 난 이 몸뚱이를 갖고 지옥 훈련을 넘어 정말 지옥에서 놀다 온 수준으로 굴렀다.
나중에는 아예 독까지 먹이더라.
그거 회복하는 시간도 알려 주고, 위험한 독도 알려 줬다.
혈액 응고를 방해하는, 혈우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다고 들었다.
작대기 선생에게 들었던 상식과.
내가 내 몸뚱이를 신나게 구르며 얻은 산 지식.
그 모든 게 해답이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란 영화가 떠올랐다.
내가 살아온 경험이 곧 이 시험지의 정답이니.
마킹하는 손에 어찌 주저함이 있겠나.
삭, 삭, 삭, 삭, 삭, 삭.
신들린 무당처럼 OMR 용지를 채웠다.
헷갈리는 문제가 중간에 걸렸지만, 고민은 짧았다.
오랜 시간 대한민국의 학생으로 살아온 결과, 고민이 필요 없다는 걸 아니까.
처음 확신한 게 답이다.
고치면 틀린다. 난 그리 했다.
그렇게 마지막 문제까지 왔다.
불멸을 죽이는 방법을 서술하시오.
(수장, 매장 제외)
주관식 문제도 있네.
하긴, 그럴 수 있다.
이 시험지도 회수해 간다고 했으니, 곧바로 확인하겠지.
불멸을 죽이는 방법이라, 이건 너무 뻔한 문제다.
수장이라, 감옥에 가둬 바다 한가운데 던진다. 영원한 고문이기도 했다.
매장, 땅속에 가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폐가 망가지며 뇌에 가는 혈액 공급이 끊겨 죽는다.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겠지.
그리고 회복되면 다시 그걸 반복한다.
생각만 해도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생포 당하느니 자살하는 게 맞지만, 불멸자에게 자살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수장과 매장은 불멸자를 미치게 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이 주관식의 의도는 무엇인가.
모든 문제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불멸의 육체를 지닌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 무뎌진다고 했다.
"그러면 안 돼. 오히려 더 예민해야 한다."
작대기 선생은 그리 말하며 내장을 찌르고 독을 먹였다.
하도 당하다 보니 그 고통의 끔찍함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을까 걱정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내 멘탈은 참으로 튼튼했다.
딱.
사인펜 뚜껑을 끼웠다가 뽑았다.
고민은 없다.
이 문제의 의도는 불멸을 가진 자로서 위험을 어디까지 감지하나 묻는 거다.
내가 의식하는 위험 수준.
쓱쓱.
거침없이 몇 문장을 적고 정리한 뒤, 시험지를 덮었다.
시험지는 총 여덟 장, 전체 시험 시간은 2시간이었다.
그런데 난 조금 빨리 끝냈다.
40분쯤 지났으려나.
고개를 드니 날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끝난 사람은 먼저 나가셔도 좋습니다."
대머리 시험관이 날 보고 말했다.
포기했나? 그런 생각이었을까?
아니다. 다 풀었다.
"시험지와 용지는 그대로 자리에 엎어 두고 나가면 됩니다."
들고 가면 불멸의 감각을 지닌 이들은 훔쳐볼 수도 있겠지.
그걸 위한 칸막이가 아니겠나.
시험지를 엎고 일어났다.
그리고 보무도 당당히 걸어 나갔다.
딸깍.
문을 열고 나서니, 다시 단발머리 누나가 보였다.
문을 지키는 역할이자, 나서는 사람에게 경고하는 문지기 같았다.
"시험지에 겉면에 있는 사항 읽었죠?"
"네."
"그거 동의한다는 내용이에요."
말하며 태블릿 PC를 내민다.
그 위에 개인정보 보호법에 동의하냐고 묻는 거랑 수틀리면 불멸이고 뭐고 너 올드포스한테 잡혀간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이 시험의 내용을 반출했을 때 얘기다.
개무섭네.
그럴 일 없으니, 동의에 체크하고 이름과 사인을 했다.
"혼혈인가 봐요?"
끝내고 돌아서는데 단발머리 누나가 물었다.
네, 변신과 불멸의 혼혈이죠.
"네. 뭐."
대강 답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인 걸 본 사람이 왜 대나무 숲에 가서 목이 터져라, 폭로의 외침을 내질렀는지 알겠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사실 변신과 불멸의 콜라보레이션이라 말하고 싶었다.
"잘 되길 빌어요."
단발머리 누나가 눈웃음을 보였다.
그린라이트인가 싶었지만, 몸을 돌렸다.
내 이상형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귀엽긴 한데 섹시미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