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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 외 혈통 천재-9화 (9/488)

9. 불멸자도 노래는 못한다.

뇌는 하루 동안 사용하는 총에너지 중 20%를 쓴다고 한다. 즉, 두뇌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체 기관이다.

즉, 활발한 두뇌 활동을 위해서는 포도당이 공급되어야 한다.

고로 수험생의 아침으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상 차림은 백 점 만점에 백 점이었다.

흰 쌀밥에 쇠고기뭇국, 장조림, 계란 후라이, 무생채, 깍두기.

소화가 잘되는 거 위주에 에너지원이 든든한 반찬이다.

"시험 날 아침은 든든히 먹되 소화가 잘되는 거로 먹어야지. 과하게 먹지 말고."

어머니는 오늘을 정말 시험 날로 믿고 있었다.

아니요, 엄마.

제가 과외로 받은 수업은 사실 책상에 한 번도 앉을 필요가 없는 불멸 생존 훈련이었답니다.

말하고 싶다. 진실 마렵다.

"네."

집안의 평화를 위해 입을 다물고 숟가락을 들었다.

과하게 먹지 말라고 했다만.

아무래도 변신족에게 소화불량이란 건 너무도 먼 단어다.

어머니는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하실 만큼 먹는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덕분에 맛을 떠나 영양소도 골고루 풍부했다.

사과 다섯 개를 마지막으로 공격적인 아침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준비는 잘했지?"

"네, 과외 선생이 짚어 준 걸 매일 복습했습니다. 꿈에서도 공부했거든요."

복습하기 싫어도 알아서 됐다.

그 모든 훈련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꿈에도 나왔으니까.

발목이 잘리고 내장이 찔리는 훈련을 받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다.

"떨어지면 아버지 실망하실까 무섭다."

내 눈에 어머니는 복잡한 심경으로 보였다.

공무원이 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험에 떨어지는 건 싫고.

그렇다고 응원하자니 변신족 아들의 앞날이 걱정되는 그런 복잡한 심경.

괜찮아요. 엄마.

전 불멸자이기도 하거든요.

속으로 진실을 답하고 일어났다.

대장의 활발한 운동량을 확인 후 전신을 빡빡 씻고 밖으로 나섰다.

뒤에서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마음을 정하신 한마디다.

"떨어지면 엄마랑 사각의 링에서 만날 줄 알아."

아, 그건 좀.

"……떨어질 수도 있죠. 굳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거지."

난 어머니와 사각의 링에서 두 번 만났다.

그 두 번은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한 번은 소심한 반항 때문이었다.

"오진 아웃."

그때의 기억이 아련히 머리를 스친다. 거짓말 다섯 번 걸리면 링으로 올라오라는 그 말.

다섯 번을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링에서 만났고 그 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에 발끈하게 되었다.

여기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래.

자식 잘 이겨.

말로도 이기고 주먹으로도 이겨.

두 번째는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로 동급생의 사촌 동생이 학교 폭력을 당한다는 말에 나선 일이었다.

피가 좀 끓던 시절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게 변신족의 본능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리 생각한다.

앞으로 나섰고, 때렸다. 폭력은 쉬웠지만, 해결은 어려웠다.

나중에는 열다섯 명이 밤중에 몰래 덤볐는데 상대가 되겠나.

이쪽은 특수종인데.

한 방에 하나씩, 열다섯 방.

그걸 본 친구의 사촌 동생이 중얼거린 한마디가 내 별명이 됐다.

"원펀맨."

제일고 원펀맨.

그 뒤로 싸움다운 싸움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쥐어 터지며 들은 말도 있고, 실제로 일반인을 상대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변신족인 거 알려 주고 싶으면 스트리밍 방송을 켜렴. 그리고 당당히 밝혀서 끌려가. 그게 빠르다, 아들."

아, 나긋나긋하게 말씀도 잘하시지.

그게 원투 펀치 이후, 왼손 훅으로 내 머리를 후려친 직후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내 잘못은 잘못이었다.

변신족의 정체도 정체지만, 힘 조절을 조금만 잘못했으면 사람을 몇이나 죽일 뻔했으니.

후일 상대 쪽 부모가 개입해서 일이 더 커지려는 건 어머니가 어찌어찌 합의 봤다고 들었다.

나는 자연히 떠오른 과거의 기억을 뒤로 미루고 말했다.

"사양할게요."

링에서 만나는 건 피하고 싶다.

불멸과 변신의 육체 단련을 거쳤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래. 그럼 붙으면 되겠네."

"네, 반드시."

기필코, 꼭 합격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귀에 커널형 이어폰을 꽂았다.

든든한 위장과 온기가 느껴지는 어머니의 응원 덕에 긴장감이 많이 가셨다.

이게 막 고3 수험생 타이틀을 뗀 거나 다름없다 보니 ‘시험’이란 두 글자가 주는 압박이 좀 있다.

이럴 땐 역시 노래지.

불멸의 감각은 세밀하게 감각을 조절하게 해 준다.

그래서 15살 시절부터 내 소망 중 하나를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노래 잘하기다.

띵.

승강기에서 내리고 적절한 도입부를 지나 후렴 부에 다다른 노래를 흥얼거렸다.

명곡, 전람회의 취중진담이다.

내가 또 이 노래 나오는 영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이후로 즐겨 듣게 됐다.

"왜 난 반대로 말해 놓고오, 돌아서 후회하는지이이 이이젠 고오배액할게에, 처어엄부우터어 너어어얼 사랑해 왔다아아고오오 이이이러어엏게에에 너어얼 사아라앙해애애애."

적당히 바이브레이션을 넣다 보니, 집중해 버렸다.

"그거 고백이야?"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옆을 돌아봤다.

아 씨, 나 홀로 콘서트 중이었는데.

노래하는 걸 누가 들었다고 생각하니 적당히 창피했다.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나한테 프러포즈할 때 노래는 하지 마. 그 얼굴에 굳이 노래까지 잘하라고 요구하진 않겠어."

그래, 나도 안다. 아무리 불멸자로 각성해도 노래는 안 되더라.

이건 진짜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발성과 노래 잘하기는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난 재능도 없으며 후천적 노력도 하지 않고 날로 먹으려 했다.

그러므로, 난 박치에 음치까진 아니지만, 썩 훌륭한 싱어도 아니었다.

그래, 잘 아니까 그만하지?

그런 눈빛을 보내며 나한테 시비를 건 아이에게 입을 열었다.

"그걸 네가 왜 걱정하냐?"

옆 동 사는 혜민이다.

이름 강혜민, 올해로 19살.

키 160cm.

몸무게 49kg.

눈대중으로 봐도 사이즈가 나온다.

겉보기에는 말랐는데, 생각보다 단단한 몸이다.

요새 공부한다고 고생한다더니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어머니와 혜민이 어머니가 친분이 있으셔서 나도 여차여차하다가 아는 사이가 된 아는 동생이다.

"나한테 고백 안 할 거야?"

"응. 안 해."

"왜?"

"……내 이상형 수도 없이 말해 주지 않았니?"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가끔 공부도 봐주곤 하다 보니 꽤 친한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농담을 스스럼없이 하지.

"나처럼 예쁘고 볼륨 있고 머리 좋은 여자가 흔한 줄 알아?"

말하며 한 걸음 다가와 팔짱을 낀다. 가슴이 팔에 닿았다.

"길에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오빠 손목에 철로 된 팔찌를 선물해 주고 싶은 거니? 그리고 머리가 좋다니? 양심이란 친구는 장례라도 치러 준 거니?"

말하며 팔짱을 뿌리쳤다.

"어디 가?"

혜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찰싹 붙어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멀기도 하구나.

"공무원 시험 보러."

"……에듀빌?"

"거기서 그게 왜 나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네. 나 세뇌당한 것 같아. 어떡하지?"

아, 그래. 사실 나도 공무원 세 글자만 들으면 그 말이 자꾸 생각나.

공무원 합격은 에듀빌!

공인 중개사 합격도 에듀빌!

그런데 정작 저 CM송은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악마의 노래다.

괜히 수험생 금지곡이 아니다.

"바쁘다."

"오빠, 나 고3이야. 내년이면 대학생이고."

"축하한다. 민증 나오면 술 마시며 인생 낭비하지 말고."

"너랑 나 한 살 차이거든요."

"덕분에 명백한 세월의 차이가 느껴지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년 되면 이 쭉쭉 빵빵 미녀를 노리는 늑대들이 득실득실할 거라니까? 지금은 여고라서 그렇지, 대학은 여대 안 갈 거라고."

"일단 공부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아는 강혜민 양의 성적은 인 서울이 상당히, 매우, 몹시 어렵다.

"연애하는 김에 그것도 좀 도와주고. 남친이 공부 잘하는 게 이럴 때 좋은 거잖아."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누가 누구 남친이야. 훠이, 저리 가."

말하면서 오는 버스에 잽싸게 올랐다.

그러자 밖에서 혜민이가 가운뎃손가락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그래, 저래서 쟤는 패스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고 건강미가 넘치긴 하다.

머리는 안 좋은 게 아니라 공부에 취미가 없는 편인 게 맞았다.

보드게임 같은 거 할 때 보면 머리가 팽팽 잘도 돌아가더라.

하지만 공부는 싫어한다.

이런 모든 문제를 떠나서, 성격이 좀 그렇다.

내 앞에서야 곱상해 보이지.

혜민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꽤 유명하다.

내가 제일고 원펀맨이면, 쟤는 별명이 하이킥이다.

수틀리면 까고 보는 발차기에 여럿 누웠다.

그리고 날 볼 때마다 저리 세차게 들이미는데, 솔직히 부담스럽다.

툭하면 미국에서 건너온 손가락 욕을 해대는 애를 좋아하라니.

그러기에 내 여성관은 명확하다니까.

참한 여자. 거기에 섹시하고 거기에 똑똑하고 거기에 글래머에.

하여간 그렇다.

버스에 올라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쉭쉭 지나가는 익숙한 동네 풍경이다.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왜 있는지 모르는 모텔 건물이 보이고 그 옆으로 고미술 상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저기 장사는 될까?

손님이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시험은 역시 몸 쓰는 거겠지.

그런데 여의도 한복판에서 용케 그런 걸 준비하네.

반쯤 졸면서 과외 선생이 가르친 훈련보다 더 강도가 높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지하철역이었다.

내려서 환승하고 여의도역에 도착하니, 시험 시작 30분 전이었다.

8시 30분.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열심히 길을 찾아 들어가자, 15층은 훌쩍 넘을 것 같은 높은 빌딩이 있었다.

돌아가는 회전문을 지나쳐 들어가니, 건장한 정장 차림의 남자와 그 뒤쪽에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주변을 휙휙 둘러봤는데 따로 시험장 안내문은 없었다.

그럼 물어봐야지.

안내데스크 안에는 어여쁜 누나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떻게 오셨어요?"

"오늘 여기서 특채 시험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저벅저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 있던 남자가 내 뒤로 와서 물었다.

"응시자입니까?"

데스크 안내원 대신 나선 남자를 봤다. 눈썹이 진한 잘생긴 형이었다.

"네."

남자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훑고 나서 말했다.

"……응시원서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사기꾼을 보는 눈빛이다. 데스크 옆을 지나쳐 폰을 들었다.

거기에 아버지를 통해 접수한 원서와 내 이름 세 글자가 당당히 쓰여 있었다.

당연히 신분증을 요구할 게 뻔하기에 주민등록증도 꺼내 보여 줬다.

"여기요. 유광익."

"네. 확인했습니다. 저쪽 승강기로 가셔서 9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눈썹 진한 형은 날 보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난 승강기에 들어가 9층을 눌러 올라갔다.

띵.

내려서 옆을 보니 사원증이 없으면 안 열리는 자동문이 보였다.

그 앞에 다시 또 안내원이 있었다.

"응시생이세요?"

"네."

"원서 보여 주세요."

짧은 단발머리의 여자였다.

흰 블라우스에 까만 바지를 입었는데 커리어우먼 느낌이 물씬 풍겼다.

"네."

다시 한번 원서와 신분증을 보여 주고.

"저기 들어가서 끝쪽 방에 가시면 돼요."

"넵."

삑.

말과 함께 목에 건 사원증으로 문을 열어 준다.

난 안으로 들어가 단발머리 누나가 말한 끝쪽 문을 향해 걸어갔다.

[특채 시험장]

다섯 글자가 쓰여 있는 곳이다.

그나저나 여기 방음은 잘 되나.

선혈이 튀고 난리가 날 텐데, 이걸 진짜 여의도 한복판에서 하네.

올드포스, 세계정부의 힘이라 이건가.

대한민국 정부도 올드포스 소속이니,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을 거다.

하물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불멸자를 공무원 비슷한 거로 채용하는 시험으로 보이고.

딸깍.

긴장감이 돌았다.

이 문 뒤에 갑자기 칼날이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칼날을 적절히 피해 내는 게 이 시험장에 들어가는 조건이 될 수 있었다.

여길 통과하면 불멸 특공대 따위가 되는 걸까?

그런 종류의 훈련을 받았으니, 이런 잡생각이 들기도 했다.

끽.

문을 열고,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기대하고 예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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