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7화 (7/488)

7. 칼과 총

사흘 쉬고 다시 만난 작대기 선생은 통과 조건과 별개로 이건 기본 훈련이라 했다.

그러니까 칼날 구보, 기절 버티기, 낭떠러지에서 다이빙.

세 가지 코스 반복은 필수 코스가 됐다.

죽을 만큼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이게 또 그렇지는 않았다.

변신족 훈련의 와일드함을 경험하고 오니, 고통만 제하면 짧게 끝나는 불멸의 훈련을 할 만해졌다.

그렇게 기초 훈련이 끝난 뒤다.

"칼 써 봤니?"

선생이 물었다.

그의 손에 적당한 길이의 정글도가 들려 있었다.

칼날 길이는 두 뼘 정도에 손잡이는 가죽끈을 칭칭 감아 놨다.

"아니요."

그가 칼을 허공에 몇 번 휘둘렀다.

쐥쐥, 허공을 가르는 칼날이 노래를 불렀다.

좋은 노래는 아니었다.

"불멸의 장점은 재생이다."

네, 알지요.

"총탄은 맞아도 뚫리거나 탄을 밀어내며 재생을 하니까 괜찮거든? 근데 이런 냉병기는 지랄 맞아. 다리라도 잘리면? 그거 재생하는 몇 시간 동안 적군이 가만히 있어 줄까? 사지 중 하나를 잘리면 재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죠."

"피해 면적이 적은 공격은 그냥 맞아. 대신 이런 건 피해야 한다."

슝.

허공에 대고 칼을 연신 휘두르는 게 살인마가 따로 없다.

칼날도 더럽게 잘 드는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 그 칼을 꺼낸 이유가?"

"왜겠냐? 머리 좋다며?"

작대기 선생은 웃음기가 없었다.

무표정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칼날 구보에 이은 칼날 피하기 훈련이었다.

아니, 내가 틀렸다. 이건 칼날 피하기가 아니다.

"비껴내."

칼날 맞는 훈련이었다.

불멸 훈련은 다 이따위다.

칼을 아무리 맞아도 몸이 남아나니까 하는 미친 짓, 그게 불멸 육체 사용법이란다.

"치명상을 피하고 경상으로 끝내는 법을 배우는 거다. 다 피하면 소용없어."

변신족 육체의 반사 신경으로 피하자, 선생이 말했다.

"어디서 운동 좀 한 것 같은데 쉽게 가자."

"……네."

칼날 맞기 훈련이었다.

방법은 쉬웠다. 허벅지 근육, 종아리 근육 따위를 노리는 걸 정강이뼈로 받아 내거나 옆으로 비껴 맞는 거다.

물론 말이 쉽다.

칼날이 살을 퍽퍽 때리는 거다.

그나마 칼날 구보를 해 봐서 다행이지.

맞고 버텼다.

불멸의 육체는 칼날에 잘린 부분을 실시간으로 재생했다.

금세 주변이 피로 얼룩졌다.

단시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리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리 변신족의 육체라도 이 정도로 피를 흘리면 빈혈이 오는 건 당연했다.

"후아, 빈혈. 불멸의 약점 중 하나다."

땀을 뚝뚝 흘리며 선생이 말했다.

나 하나 칼날로 패는 데 체력이란 물을 왈칵 쏟아 버린 느낌이다.

"혈액 팩을 들고 다니면서 수혈이라도 해야 하나요?"

농담 삼아 말하자.

"본래는 그렇지. 하지만 그보다는 지혈 먼저 하는 게 낫고."

아니, 진짜 그렇게 한다고?

피를 들고 다니면서 실시간 수혈을 해?

"여기까지, 먹고 쉬고 하자."

이쪽은 짧고 굵은 훈련이 모토였다.

그래서 쉬는 시간도 꽤 있었고.

작대기 선생이 말하고 냄비와 조리 도구를 준비하기에 내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날 돌아보며 눈으로 ‘왜’라고 묻기에 답했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입니다."

"……짜장라면이라도 끓여 주게?"

"아니요."

난 가져온 배낭을 열었다.

차라리 식당가서 사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쪽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선생이 가져온 조리 도구 사이로 생선과 카레 가루가 있는 걸 보고 어머니께 요리를 배운 게 얼마나 다행인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냄비 위에 물 붓고 소금 두 꼬집 넣고 휴대용 가스버너를 켰다.

따따따따, 딱!

불이 켜진 걸 보고 다진 마늘을 담은 지퍼백을 꺼냈다.

"뭐하게?"

선생이 호기심을 담고 물었다.

"면 요리 좋아하시나요?"

난 면보단 밥이다.

하지만 요리를 배워 보니 알겠다.

가스버너 하나에 밥 안치고 찌개 끓이고 하다 보면 밥하다가 하루 다 가겠더라.

그래서 준비했다.

부글부글.

끓는 물에 노란 파스타 면을 집어넣고 대충 집게로 저었다.

스마트폰 타이머를 켜서 시간도 재고.

면이 익을 때, 면수 일부를 그릇에 담고 나머지는 바닥에 버렸다.

그다음은 유리병에 담긴 토마토 미트소스다.

선생은 팔짱을 끼고 앉은 채로 내가 하는 걸 구경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 두르고 다진 마늘을 적당히 넣고 볶고 면을 올린다.

간은 소금 탄 면수로 하는 거다.

차아아악.

면에 남은 물기와 기름이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었다.

그 위에 소스 붓고 버무린다.

끝이다.

요리를 배워 보니 알겠더라.

제대로 된 환경과 도구가 없다면 뭘 해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그럼 어쩌겠나.

마트에서 파는 즉석요리 가져올 게 아니면 이게 최선이다.

만들어진 소스와 삶기만 하는 면.

그래서 만들어진 건 미트소스 스파게티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먹을 만한 게 만들고 싶다면 소스가 진한 요리를 하라고.

후룹.

선생이 한 입 먹더니 눈을 감았다.

"맛있네."

나도 먹었다. 다행이다. 먹을 만했다. 솔직히 맛있었다.

마트 만세. 미트소스 만든 사람 상 줘야 한다. 진심이다.

다음에는 크림소스도 사 와야지.

더 다행인 건, 작대기 선생의 미각이 정상이란 거다.

"요리도 훈련의 일종이었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그것도 훈련이었어?

내가 빤히 보자 선생이 말을 잇는다.

"미각을 둔감하게 하는 거다."

주춤하며 말하는 걸 보니, 저건 핑계다.

둔감은 무슨.

그도 불멸, 다른 이들보다 감각이 뛰어난 특수종이었다.

그러니까 미각이 예민하니 맛있는 게 최고란 거다.

먹었다. 잘 먹고 충분히 쉰 뒤, 다시 훈련이다.

칼날 잘 맞기라고 불러야 할 수업이다.

"하나 추가하자."

칼날을 팔 근육으로 받아 내는 게 익숙해질 때쯤이다.

선생이 주문을 추가했다.

그와 함께 갑자기 어떤 신호도 없이 달려들어 칼을 내 배에 꽂았다.

푸욱!

"아악!"

고통과 함께 비명이 터졌다.

아파!

놀라서 선생의 목을 그러쥐자, 선생이 말했다.

"내장 재생 훈련이다."

염병.

목을 쥔 손에 힘을 빼자, 선생이 칼을 쑥 뽑았다. 찌를 때만큼 화끈한 열통이 배를 훑어 냈다.

뇌가 타 버릴 것 같았다.

더럽게 아팠다.

"지혈해."

배운 대로 배를 꾹 눌러 피를 멈추고 버텼다.

이런다고 지혈이 되나 싶었는데, 된다.

불멸 육체 개사기.

"내장 재생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하지. 그래서 기초 체력 단련이 필수다."

"끄응, 방금은 어떻게 한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낌새라도 있었으면 피했을 텐데, 칼날이 배를 뚫는 순간까지 몰랐다.

싸움을 많이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주먹다짐 좀 해 봤다.

물론 상대가 나보다 월등히 신체 능력이 약하긴 했지만, 그때 그들의 움직임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야성의 감이라는 거다. 거기에 지금은 불멸 각성을 하며 오감에 이어 육감도 얻었다.

하지만 방금 배때기에 칼을 맞을 땐 아무것도 못 느꼈다.

"뭘?"

"찌른 거요"

"기척 죽이기다. 상대의 감각이 예민하면 내 기도 숨길 줄 알아야지."

무협지에서 나올 만한 얘기구나.

"어떻게 하는 건데요?"

"잘."

나쁜 새끼. 남의 배에 구멍을 뚫었으면 양심상 친절하게 알려 줘야지.

"후우, 후우."

심호흡하며 배에서 손을 떼자, 구멍 뚫린 옷과 핑크빛 살이 보였다.

구멍은 막혔다.

내장은?

아직 좀 불편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다. 간질간질한 걸 보니 아직 재생 중인 것 같았다.

"……아물었네?"

선생이 물었다.

"재생하라고 찌른 거 아닙니까?"

"맞지. 맞는데……."

선생은 더 말을 잇는 대신 물었다.

"기척 죽이기 배워 볼래?"

"네."

냉큼 답했다.

내장 재생을 포함해 창에 찔리고 칼에 찔리고 도끼에 잘리는 훈련까지 더해졌다.

그중에 몸에 박힌 화살을 맨손으로 뽑아내는 건 정말 짜증이 치솟았다.

아까 변신족 훈련보다 낫다고 한 거 취소다.

개아프다. 몹시 아프다.

그래도 버텼다. 감각을 차단하고 통각을 조정하며 어떻게든 버텼다.

육체 내구도가 정말 한계에 다다르는 기분이 들어 평소보다 세 배 네 배는 먹었다.

파스타 면을 많이 가져와서 다행이었다.

몸이 회복하는 동안에는 조심해야 할 것들도 배웠다.

"덫은 조심해야 한다. 밟고 나면 끔찍하게 아프고 고통이 계속되면 여기가 제대로 안 돌아가거든."

선생이 자신의 머리를 툭 집으며 말했다.

"순간적인 고통이 아니라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건 위험하다 이거죠?"

통증은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게 한다.

그래서 불멸은 통증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들의 전투는 어지간하면 몸으로 때우며 이뤄진다고 하니.

짧고 굵은 수업과 지옥 훈련을 넘어 지옥의 형벌과도 같은 훈련으로 이틀이 금세 지나갔다.

어김없이 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차로 날 태워 주셨다.

다시 변신족 훈련 코스다.

"잘하고 와."

응원까지 해 주신다.

네. 그래야죠.

승강기에 내려가니 통나무 선생이 날 반겼다.

"왔니?"

이쪽도 비슷했다. 외줄 구보 반복, 나머지는 무게를 들고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다.

둘의 진도가 비슷한 건지, 여기도 칼날 맞기랑 비슷한 게 추가되기도 했다.

"피해 봐."

선생이 말하고 총구를 겨눈다.

진짜 총은 아니었다. 끝에 주황색 플라스틱 같은 게 달린 모델 건이었다.

겉보기와 달리 마냥 장난감 수준은 아니었다.

개조해서 만든 총이었고, 실제 비비탄보다 무겁게 만든 특수탄과 가스를 주입해 만든 특제 총이다.

"총은 위험해. 맞으면 바로 몸에 타격을 준다."

선생이 말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총구가 자신에게 향한 순간, 움직여라.

엄폐물을 찾든지, 엄폐물이 없다면 총구가 겨눌 수 없도록 빨리 달려라.

일직선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좌우로 꺾고 방향을 바꿔서 상대에게 예측 당하지 마라.

변신족의 육체는 그걸 가능하게 한다는 거다.

역동작이 걸려도 근육에 힘을 줘서 단숨에 방향을 바꿔 뛰고.

탄력을 이용해 몸을 날린다.

역동적으로 움직여 적과 거리를 좁히는 훈련이었다.

"맞지 마! 한 발 맞으면 바로 전투 불능이라고 생각해!"

나에게 불멸의 육체가 없다고 해도 한 발에 바로 전투 불능은 아니다.

변신족의 육체는 그리 허약하지 않으니.

그러니 저 말은 최대한 맞지 말라는 훈련의 일환이었다.

"맞으려면 피해가 없는 쪽으로!"

이건 불멸이나 변신이나 같았다.

불멸은 움직이는 근육이 상하지 않도록, 변신은 팔뚝으로 총알을 막아서 기동력을 잃지 말라고 가르쳤다.

둘 다 기동력을 중시하는 건 같았다.

불멸과 변신.

난 수업을 듣고 배우면서 깨달았다.

각각 특징에 맞게 이들의 전투 방식은 변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나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 몸을 갖고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거였다.

불멸은 칼이나 표면적에 넓게 상처를 주는 걸 조심해야 한다.

총으로 치자면 소총보다는 산탄총이 위험하다.

변신족에게 칼로 덤비는 건 오히려 반기는 종류의 일이다.

"가까이 붙는 적? 피하고 때려."

그게 가능한 게 변신족의 운동 능력과 육체다.

이쪽은 오히려 산탄총이 만만하다.

쏘는 범위가 넓다지만, 일단 피하면 그만이니까.

피하고 붙는 순간 게임 끝이다.

아니면 아예 멀어져서 조준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하면 된다.

변신은 일단 안 다치는 걸 전제로 깔고 움직이니까.

그렇게 훈련이 몸에 익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무식하게 몸을 자르는 것보다야, 체력 단련이 낫지 하며 담담히 훈련을 이어 갈 때다.

갑자기 솜털이 삐죽 솟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바로 뒤에서 내 목에 칼을 휘두른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기에 외줄 구보를 하다가 뛰어내렸다.

가까스로 와이어를 피하고 매트 위로 떨어지며 앞으로 두 바퀴 구르고 뒤를 돌아봤다.

"후욱, 후욱."

숨이 절로 찼다.

호흡을 가다듬고 살피니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뭐가 있었는데.

그 끔찍한 느낌이 지금도 등 뒤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벌레처럼 남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내 눈에 스마트폰을 꼬나쥔 통나무 선생이 보였으니까.

"……느꼈어?"

통나무 선생이 물었다. 설마 했는데, 그녀가 한 짓이다. 이유 없는 확신이 들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