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규격 외 혈통 천재-6화 (6/488)

6. 언제나 엄마 밥이 최고지

불멸의 훈련이 미친 짓 위주라면, 변신은 무식한 짓 위주로 시켰다.

몇 kg까지 바벨을 들 수 있나.

3대 몇을 치는가.

이런 게 기준이 되는 거다.

그 한계선을 테스트로 보고 그걸 뛰어넘는 게 훈련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무식하게 하루 내내 뛰게 만드는 거다.

이거만 했다면, 그래 좋다.

뭐, 그럭저럭 견딜 만했을 거다.

"운동 신경이 너무 무뎌."

통나무 선생이 말했다.

내가 무디면 전국 고등학교에 있는 19살 남아 중에 운동 좀 한다는 놈들은 전멸할 겁니다.

그런데도 통나무 선생 눈에는 차지 않나 보다.

"이거 들어 봐."

양옆에 20kg짜리 바벨을 끼운 철봉이다.

봉 무게 포함해서 60kg.

드는 거야 문제없다. 변신족의 괴력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성인 남성의 3배다.

물론 무조건 3배의 힘을 내는 건 아니다.

인간 중에도 괴력의 소유자가 있고 변신족에도 허약한 사람이 있다.

어쨌든 난 허약하지 않았다.

이 무게는 깃털까진 아니어도 부담을 주는 무게는 아니다.

"올라가."

통나무 선생은 연신 폰으로 뭘 살피며 말했다.

가끔 보면 노트북을 켜고 눈이 벌게져서 뭘 할 때도 있었다.

나한테 선생의 화면을 볼 겨를은 없었다.

지금 당장 이 무식한 짓을 해야 하는걸.

"뛰어."

단순한 명령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칼날 구보에 이은 미친 구보 2탄이다.

"여길요?"

"안 다치게 조심하고."

"이걸 들고요?"

"맨몸으로 하면 너무 쉽잖아."

처음부터 너무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드는 건가?

안 드나 보다. 쳐다도 안 본다.

어디서 태블릿 PC를 가져와 연신 화면만 살핀다.

난 다섯 개짜리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 계단 한쪽 끝에 발바닥의 반 정도, 그러니까 내 발의 좌우 폭이 대략 8cm라면 4cm의 폭을 가진 나무판이 날 반겼다.

길기도 길다.

여길 뛰는 게 이틀째의 오전 훈련이었다.

"중심, 언제나 무게 중심을 잡고 나머지는 운동 능력으로 때워."

"……그게 됩니까?"

반신반의해서 묻자.

"될 때까지 하는 거지."

당장 기대하는 얼굴이 아니다. 나도 기대 안 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짓이다.

쓱 하고 발을 올리며 봉을 들고 균형을 맞췄다.

"뛰라니까?"

아, 그래 걸으라고 안 했지.

굳이 이름 붙이자면, 변신족 전통의 외줄 구보 훈련쯤 되겠다.

난 뛰었다.

떨어질 걸 각오했다. 뭐, 뼈 한두 군데 부러져도 금세 나을 거고.

변신족의 튼튼한 육체가 고작 지상 3m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크게 다칠 일도 없을 거다.

통나무 선생은 주기적으로 말했다.

"변신족은 몸을 아껴야 하는 게 일 번이다. 전장에서 다치면 무조건 불리해. 우리는 불멸처럼 무식하게 몸이 낫지 않으니까."

통나무 선생님은 불멸자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이런 훈련을 시켜도 기본적으로 변신 훈련은 과학이 가미되어 있다.

기구와 전자 기기를 쉬이 사용한다는 거다.

실제로 이 높이에서 떨어져도 다칠 확률이 낮으니 시킨다는 말이다.

근데 나 왜 여유 있냐?

첫발만 기우뚱거렸을 뿐, 그 이후에는 달릴 만했다.

솔직히 말하면, 평지랑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예민한 촉각이 런닝화에 가해지는 압력을 느끼고 균형을 잡는다.

오감 강화, 불멸자의 육체가 빛을 발했다.

보통 변신족도 운동 신경이 몹시 뛰어난 편이지만.

감각 특화인 불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뛰다 보니, 적당히 재밌다.

칼날 구보보다 쉽다.

적어도 칼날에 내 발을 들이밀 일은 없으니, 이게 훨씬 재밌지.

탁탁.

직선거리 50m, 지하실의 대각선과 대각선을 연결해서 만든 구보 코스다.

그걸 완주했다.

한 번도 기우뚱하지 않고 말이다.

"……왕복 2회."

통나무 선생이 태블릿 PC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아무리 재밌는 스트리밍 영상도 지금 나보다 흥미를 줄 순 없나 보다.

놀람 반, 흥미 반.

그 눈빛을 보며 다시 뛰었다.

왕복 2회.

어려울 것도 없다. 그걸 끝내고 내려오자, 통나무 선생이 말했다.

"단계 올린다."

"네?"

"본래 이 구보 이름은 외줄 구보다."

내가 붙인 이름이 맞네.

외줄 구보.

그냥 그리 보여서 말했을 뿐인데, 이놈의 육감이란, 너무 잘 맞아서 문제지.

선생이 나무판자를 치우고 다른 걸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거 와이어 같은데요?"

"응. 이게 진짜야. 나무판이야 사실 유아 걸음마 수준이지. 몸 단련된 정도를 보고 엉망인 줄 알았는데, 타고난 하드웨어가 좋은 건가. 균형감은 좋네."

유아 걸음마 이후는 혼잣말이었다.

그리고 통나무 선생이 계단 끝과 끝에서 줄을 연결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강철 와이어다.

"튼튼해서 안 끊어진다. 그러니까 떨어질 때 조심하고. 괜히 와이어 잡으면 피부 까지니까 그냥 떨어져."

선생이 밑에 매트까지 깔아 주며 말했다.

위험하면 그냥 바닥에 떨어지란다.

괜히 걸려서 피륙에 상처를 내지 말란 거다.

아까 나무판은 4cm는 됐다.

그럼 와이어는?

넓이를 재는 게 무색하다.

"여길 뛰어요?"

"맨몸으로 시작해."

철봉은 놓고 하라는 말이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익숙해지면 들고 뛰라고 하겠지.

뻔한 미래다.

그래, 무식한 짓인데.

이상하게 겁이 나지 않았다. 불멸에서 하도 다쳐 봐서 그런가.

그거에 비하면 진짜 할 만하잖아.

난이도로 치자면 이쪽이 헬 코스가 맞다.

더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도 불멸보다는 덜 지랄 맞았다.

불멸 훈련은 난이도가 높은 게 아니라 애초에 훈련 목적이 몸을 망가뜨리는 데 있으니까.

어차피 회복하니까 망가지는 경험을 하라는 거다.

변신족은 반대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몸의 능력을 십분 끌어올리자 이거다.

와이어 위에 올라섰다.

팅 하고 퉁겨지는 선의 흔들림을 발바닥으로 느꼈다.

내 몸무게의 두 배가 올라가도 단단히 버텨 줄 것 같은 장력이 느껴진다.

"걷는 거로 시작해도 좋아."

파격이다.

줄은 튼튼했고, 흔들림이 적었다.

거기에 여기가 무슨 천 길 낭떠러지도 아니고 폭풍우가 부는 곳도 아니다.

여긴 오피스텔의 지하 주차장을 개조한 공간이고 바닥에는 매트도 깔아 놨다.

무서울 게 없다 이거다.

줄 위에 올라서서 첫 번째 걸음을 내디디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발바닥부터 시작해서 머리끝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장대를 상상했다.

그 장대가 내 중심, 무게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무너질 일이 없다.

두 번째 걸음도 걸었다.

꾸욱 하고 발바닥으로 줄을 누르자, 내 무게를 견딘 와이어가 끼이잉 하고 운다.

세 번째 발부터는 뛰었다.

가벼운 구보다.

퉁퉁퉁퉁퉁.

거문고 뜯는 소리처럼 내 발이 줄을 탔다.

내친김에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뛰어 봤다.

덩덩덩 덕 쿵덕! 덩기덩!

근데 이거 자진모리장단 맞나?

음악 시간은 그리 좋아하는 수업 시간이 아니었다.

어쨌든 완주했다.

끝내고 돌아서니.

"봉 들고."

통나무 선생이 말했다.

네이, 네이.

* * *

변신 쪽 훈련은 확실히 불멸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피로가 두 배는 쌓였다.

불멸 쪽이 상처 회복으로 인한 피로라면 이쪽은 순수하게 체력을 깎아 먹는다.

외줄 구보 오십 회부터는 진짜 선생의 정강이에 로우킥을 날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와 버금가는 튼튼한 그 다리가 어찌 될 것 같진 않았다.

완성된 변신족의 육체는 철완과 강각의 하모니라 했던가.

강철의 팔뚝과 다리란 말이다.

하여간 덤빌 일이 생겨도 일단 튀고 봐야 할 모습이니.

이건 여자 남자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덤비면 확실히 내가 죽을 것 같은 그런 직감이 든단 말이다.

하여간 지치고 지친 채로 오피스텔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주에 보자."

"네."

가정 교육을 잘 받은 자식답게 바르게 허리 한 번 꺾어 주고 나섰다.

어머니의 차가 보였다.

차에 오르자, 어머니가 액셀을 밟으며 입을 연다.

"광익아."

"네."

"왜 이런 걸 시키는지 궁금하지?"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깜빡, 깜빡.

왼쪽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 신호를 받고 넘어가며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맞고 다니는 건 못 볼 것 같아."

"……네?"

누가 맞아.

학창 시절 아무리 잘 나가는 일진도 못 건드렸던 나를?

원펀맨이라 불리는 나를?

물론 그 별명을 내 앞에서 그리 부르면 주리를 틀어 버릴 거다.

창피하게 누가 저딴 별명을 붙였는지.

어쨌든 학교에서 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학생이었다.

공부 잘하지, 싸움 잘하지.

물론 직접 싸운 적은 거의 없다.

덤비는 애들 몇 번 쓰다듬어 준 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 한 방이라 원펀맨이 됐고.

그런 내가 누구한테 맞아. 엄마, 그거 아니야.

"적어도 네 몸 하나는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엄마는. 그리고 아빠가 네가 공무원이 되길 바라시잖니? 그게 위험할 수도 있고."

내가 군인이 된다고 선언했던 아침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 속에 있는 공무원은 암묵적으로 책상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직종이었다.

거기 어디에 위험이 있다는 겁니까. 어머니.

"공무원 되는데 제 몸을 지킬 줄 알아야 해요?"

"기왕 얻은 몸 예쁘게 쓰는 법도 알아야지. 지금 넌 너무 허약하잖니."

누가 허약해요.

엄마, 그러지 마.

동창 애들이 들으면 전부 놀라 자빠져.

제일고 원펀맨.

그게 내 별명이라고.

"우리 아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면 엄마가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네."

어쩔 수 없다. 어머니는 걱정이 앞선 거다.

그래, 그럼 따라야지.

네, 어머니.

변신족의 후예로서 육체 한 번 제대로 각 살리고 오겠습니다.

이제까지 굳이 초콜릿 복근을 만들지 않아도 내 몸은 튼튼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동 좀 더 하는 거다.

나중에 UDT 가서도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는 안 될 거다.

집에 오자마자 24인치 와이드 모니터에 게임기를 연결해 조이패드를 신명 나게 흔들고 싶었지만, 너무 졸렸다.

씻고 낮잠 2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벌써 저녁 시간이었다.

지금 자라고 해도 다시 잘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버지가 깨우셨다.

"종일 잠만 잘 거냐? 방학이라고 너무 게으르게 생활하면 안 된다."

나무라시는구나.

아버지 사실, 소자 나흘 동안 두 분의 배려로 이틀은 육체의 내구도를 실험했고 이틀은 체력의 내구도를 실험했습니다.

"먹었으면 운동도 좀 하고."

아니요. 운동은 이제 그만.

"네."

그래도 뭐라 말할 수는 없다.

나가니, 어머니가 오븐에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식욕이 들끓어 올랐다.

훈련 중에도 많이 먹긴 했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에너지도 컸다.

이미 먹은 에너지는 다 소모했고.

바비큐 먹고 만 하루를 굶은 상태이기도 해서 고소한 삼겹살 냄새와 타닥타닥 기름 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절로 침샘에서 침이 폭포처럼 터져 나왔다.

식탁에 앉아 아버지가 한술 뜨시는 걸 보고 고기를 집어 입에 쏙 넣었다.

눈보다 빠른 손이었다.

으적.

한 입 씹은 순간이다.

잘 구운 지방에서 기름이 훅하고 입안을 유린하고 바삭한 겉면이 씹는 즐거움을 더했다.

아아아! 미미(美味)! 이거다.

겉바속촉.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제대로 구운 오븐 삼겹살 구이다.

맛있다. 훌륭했다.

돼지 바비큐도 좋았지만, 제대로 요리한 음식은 맛이 다르다.

이건 버터와 다진 마늘로 풍미를 살린 후 레몬즙을 섞었다.

고기 위에 은근히 올라온 노란 가루가 보였다.

레몬 제스트다.

껍질을 강판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서 뿌린 거다.

레몬의 산미가 느끼함을 잡아 준다.

맛있다. 맛있다. 맛있다.

세 번을 외쳐도 내 심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흘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식사이기도 했다.

와구와구!

마구 씹고 삼키며 눈앞에 놓인 뚝배기에 숟가락을 침투시켰다.

후루룩!

된장찌개의 맛은 어떠한가.

이 또한 나의 미각을 유린했다. 시골 된장 한 스푼에 설탕 한 스푼.

조갯살을 넣어 시원함을 살리고.

재료 먼저 익히고 된장은 마지막에 풀었다.

텁텁함이 죽고 시원함이 살아나는 바지락 된장찌개다.

고춧가루 데코레이션이 합류해 환상의 하모니를 이뤘다.

와구와구!

"……며칠 굶었니?"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 음. 밖에서 공부하다 보니 체력이 달리나 본데."

아니요, 진짜 그냥 맛있어서 그래요. 말 시키지 말고 드셨으면 합니다.

먹고 또 먹었다.

바비큐만큼은 아니더라도 냉장고 거덜 낼 정도로 먹었다.

우리 집 냉장고는 상업용이다.

그것도 두 개.

1,070리터짜리 네 칸 모두가 냉장 용도인 거 하나, 900리터짜리 전부 냉동 용도 하나.

그러니 내가 냉장고를 거덜 낼 일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비유다.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새삼 경기도 화성 한구석에서 결심한 내 각오가 떠올랐다.

"어머니."

비장함을 갖고 불렀다.

"응?"

다 먹은 그릇을 식기 세척기에 차곡차곡 쌓으시며 어머니가 답하셨다.

"저 요리 좀 배우고 싶어요."

"……요리?"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어머니가 날 돌아보셨다.

난 단순한 방식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요즘 대세는 요섹남입니다. 미래의 며느리를 위해 요리 좀 알려 주시죠."

어머니 음식 솜씨는 거짓말 안 보태고 전국 최고다.

이건 집밥을 사랑하는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부분이리라.

언제나 엄마 밥이 최고지.

"요리하는 섹시남이라. 나쁘지 않지. 근데 일단 섹시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몸이 그래서야 요돼남이 될 것 같은데."

어머니는 위트가 있으셨다.

요리하는 돼지 남자라니.

물론 이제까지는 변신족의 몸을 믿고 단련 따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적당히 뱃살이 나온 스무 살 청년의 전형적인 몸매였다.

"일단 요리부터요."

아니면 다음 주에 산에 갔을 때, 생선 대가리 카레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훈련 중에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봤던 그 요리를 말했더니, 작대기 선생이 눈을 반짝거렸단 말입니다.

싫다. 그건 도저히 못 먹겠다.

몸을 혹사하는 훈련과는 다른 의미로 생존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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